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86]안정환선수를 좋아 한다는 칠레의 미녀

찰라777 2007. 4. 12. 14:31
 

'영원한 봄의 도시' 아리카

 

 

연중 평균기온이 18~23°C를 유지하고 있어 아리카는 ‘영원한 봄의 도시(Ciudad de Eterna Primavera)'’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언제나 맑은 기후를 보이는 아리카는 여름휴가철에는 해수욕객들로 붐비는 휴양도시다.

 

1565년에 건설된 아리카는 원래 원주민들의 주요 교역 거점으로 페루의 영토이자 라파스에서 철로로 구리와 초석을 실어 나르는 볼리비아의 외항이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칠레에게 빼앗겨 볼리비아는 그만 바다를 잃고 만다. 바다를 잃어버린 볼리비아는 남미대륙의 맹지나 다름없다.

 

▲아리카 번화가 18 Sepitiember 거리

 

 

뭐? 스웨터를 잃어버렸다고!


“이거, 야단났는데요!"

“또 무슨 일이데?"

“제 스웨터가 없어졌어요.”

“뭐? 스웨터가!”


아리카의 로도비아리오(Rodoviario) 터미널에 도착하여 터미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다가 아내가 짐을 챙겨보더니 볼리비아에서 타고 온 버스에 스웨터를 두고 내린 것 같다는 것.


야단났다는 말만 들어도 이제 깜짝깜짝 놀랜다. 갑자기 피로가 배로 엄습해 오는 것 같다. 남미에 도착하여 도둑과 강도를 맞고, 이제 또 스웨터를 잃어버리기까지 하다니…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어쨌든 피곤한 일이다.

 

▲콜론광장 앞에 전시된 기차

 


아내가 스웨터를 잃어버릴 만도 하다. 라파스에서 아침 6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오늘 오후 3시 반에 도착하였으니 무려 10시간의 장거리 버스를 탔던 것…. 5~6000미터 고지의 건조하고 산소가 희박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오면서 고산병과 장거리 여행의 피로에 찌들어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한계점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장거리 버스를 타더라도 볼리비아를 하루 바삐 뜨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아내는 다시 오늘밤에 산 페드로 아타카마로 가자고 한다. 아내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말릴 재간이 없다. 아내가 페달을 밟는 대로 놓아두어야지 만일에 제동을 걸다가는 아내도 나도 함께 수렁에 빠지고 만다. 허긴, 그렇게라도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아내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솔직히 긴 여행길에 힘이 든다.


하여간, 스웨터를 찾아야겠는데… 버스를 내렸던 곳으로 가보니 이미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할 수 없이 Tur버스의 매표소로 가서 매표원에게 버스의 행방을 물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매표원 아주머니는 마치 비행기의 안내양처럼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준다. 하늘색 유니폼을 멋지게 입고 있는 모습은 비행기의 안내양 보다 훨씬 멋지게 보이고 친절하다.

 

 

▲콜론 광장의 야자수 그늘 아래서... 


“아마, 버스가 지금쯤 정비공장으로 갔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요?”

“잠깐만요… 나와 함께 내차로 정비공장까지 가보지요.”

“네! 정말로요. 이거, 너무 미안해서…”

“노 프로블램!”


원, 세상에! 고맙기도 해라! 지구촌을 돌다보니 이렇게 친절하고 천사 같은 버스 매표원도 만나는 군… 마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하던 사무를 옆 사람에게 맡겨두고 앞장을 선다. 아내에게 잠시 매표소 옆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나는 마리아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주창에 세워둔 차에 시동을 걸더니 날더러 타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부러워요!

 

▲아리카 구릉과 태평양에 지는 일몰


아내가 스웨터를 잊어버렸다고 말할 때에는 솔직히 짜증도 나고 아내가 미웠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갑자기 칠레의 미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금방 마음이 누그러진다. 사내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해서… 내 참….


정비공장은 한참을 가서야 있었다. 마리아와 나는 2002년도에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축구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녀는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단을 따라서 일사분란하고 열렬하게 응원을 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그 많은 쓰레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치우고 돌아가는 국민들은 아마 이 지구상에 없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선 보통 있는 일이지요.”

“어머! 정말요?”

“그럼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자신들의 동네 길을 쓸고 청소를 한답니다.”

“와! 우리나라는 언제 그렇게 될까?”


내가 약간 뻥을 쳐 부풀려서 하는 이야기에 그녀는 더욱 감동을 받은 듯 운전을 하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칠레 국민들도 축구를 좋아하기로는 지구상에서 둘째 가라하면 서러워할 정도이지만,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던지, 지던지 길거리의 간판이나 술집이 어느 한곳이 꼭 부서지는 사고가 일어난다고 했다.


이기면 기분이 좋아서 한잔, 지면 분통이 터져서 한잔… 그러다 보니 다혈질인 축구 펜들은 사고를 치기 마련이라는 것. 그녀는 아들만 셋이 있는데, 죽어도 축구선수는 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선수 중에 안정환이라는 선수는 매우 매력이 있는 선수라고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안정환 선수를 좋아한다는 칠레의 미녀 

 

 

▲어둠이 깔리는 아리카 구릉

 

엥, 이거 내가 배용준이 보다는 못생겼어도 안정환이 보다 더 잘생겼어야 하는 건데… 하여간 세계의 어디를 가나 축구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안정환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제 한국축구는 물론 한국의 축구 선수들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만큼 유명해지고 있었다.


확실히 월드컵 이후에 한국에 대한 남미 인들의 인식이 매우 좋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게 까다롭던 남미 국가들의 비자도 속속 면제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2 월드컵 축구는 국위선양은 물론 지구촌에 한국인의 이미지를 매우 고무적으로 심어준 것 같다. 나는 칠레의 명예영사라도 된듯 우쭐하였지만 사실 마리아를 똑 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하다. 뻥을 쳐서 말을 했지만 우리네 속사정은 다르기 때문이다. 재발 국제적인 행사가 있을 때만 체면 치례로 하지 말고,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일등국민의 매너를 보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정비공장에 도착을 해서 버스 안을 뒤져보니 아내가 탄 의자의 시렁에 마침 스웨터가 있었다. 버스 안에서 스웨터를 흔들며 나오는 나를 바라보며 마리아가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어준다.


나는 다시 마리아의 옆 좌석에 앉는 특권을 누리며 터미널로 돌아왔다. 미인 곁에 앉아 시내구경을 하다 보니 10시간을 타고 온 버스여행의 여독이 슬슬 녹아내린다. 마리아는 오며가며 아리카에 대한 안내까지 곁들어 준다.


터미널로 돌아오면서 나는 스웨터를 둘둘 말아 왼손에 쥐고는 뒤에 감추고 아내에게 갔다. 괜히 아내를 좀 골려 주고 싶은 장난 끼가 동했던 것. 아내의 표정은 매우 불안 초조한 모습.


스웨터를 찾고 기운도 차리고…

 

 

▲아리카항구에 일렁이는 파도


“왜 그리도 늦었어요? 스웨터는 찾았나요?”

“아니, 누군가 가져 갔나봐. 아무리 찾아도 없어.”

“세상에! 누가 그런 걸 다 가져갔을까?”

“클시… 당신 스웨터는 없었는데 이게 대신 있더라고…”

“아니, 이건 내 것인데… 이이가 날 골탕 먹이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스웨터를 받아든 아내의 표정 또한 환하게 밝아진다. 우린 마리아에게 곱빼기로 감사를 드려야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끈이 달린 볼펜 3개를 주며 그녀의 아들 목에 하나씩 걸어주라고 했더니, 그녀는 그 크고 아름다운 눈을 위로 치켜뜨며 매우 놀랍고 감사한 표정을 짓는다.


하여간 외국인들의 솔직한 감정 표시 하나는 똑 소리 나게 한다니까… 우리도 이런 건 좀 수입을 해서 배워야 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등 이런 표현은 아무리 남발을 해도 싫지 않는 멋진 표현들이 아니겠는가? 볼펜 3자루를 받고 엄청나게 놀라워하며 감사의 표시를 하는 마리아의 표정이 벅차도록 가슴에 와 닿는다.

 

 

▲아리카의 민예품 가게. 눈요기가 될만하다


스웨터를 찾아든 아내와 나는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아내는 스웨터를 찾아서 기운을 찾았겠지만, 내가 기운 찾은 것은 순전히 칠레의 미녀 마리아 덕분이었다. 어쨌든 이래저래 기운을 차린 우린 마리아에게서 산 페드로 아카카마로 가는 밤 11시 Tur 버스표를 샀다.


사실 10시간의 여독으로 보아서는 오늘 하루 밤을 이곳에서 자야 하는데… 이 긴 나라를 언제 버스로 다 도느냐는 아내의 성화와 마리아의 친절로 스웨터를 다시 찾은 데 힘입어 오늘 밤에 산 페드로 행을 결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리아가 준 아리카 시내 지도 한 장을 받아들고, 우린 ‘영원한 봄의 도시’ 아리카 시내 산책에 나섰다. 아직 밤 11시가 되려면 무려 7시간이나 남았기 때문.

 

아리카 시내의 거리는 작고 예쁘다. 특히 번화가인 "18 de Septiembre", "21 de Mayo" 거리는 레스토랑, 은행, 숍이 줄줄이 늘어 서 있고, 특히 민예품을 파는 골목은 충분한 눈요기 구실을 해준다.



에펠이 설계한 산마르코 교회

 

 

 

▲에펠이 설계한 산 마르코 교회는 작지만 깜찍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도시의 중앙광장인 콜론광장으로 나가면, 스페인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축양식이 아닌 앙증맞은 교회 건물이 눈에 팍 들어온다. 파리의 에펠 탑을 설계한 건축가 에펠의 작품인 산마르코 San Marco 교회다. 이런 곳에서 에펠의 작품을 조우하다니 뜻밖이다. 교회 안에는 밤색 철재로 꽃 모양의 데커레이션을 한 장식이 매우 독특한 인상을 풍긴다.


“우리들의 세계 일주를 무사히 끝내게 해 주소서!”


이 작은 교회의 의자에 앉아 잠시 묵상을 하는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간절한 기도문이다. 나약할 때 기도를 올리는 간사한 인간존재여.


콜론 광장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을 감상하며 비쿠나마켄나Vicuna Mackenna 공원을 가로질러가니 이윽고 태평양이다. 이 태평을 건너가면 마침내 한국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아, 내 나라의 산하가 그립다.


“영이야, 경이야, 애비와 엄만 잘 있다! 너희들도 무사하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잘 있어라!”



영이야, 경이야! -태평양을 향한 절규

 

▲아리카의 해변에 접해있는 태평양의 일몰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쳐 불러본다. 그러나 태평양의 파도는 곧 우리들의 소리를 냅다 삼켜 버리고 만다. 아이들의 이름을 절규하듯 큰 소리로 몇 번 더 불렀다. 그리움에 와락 눈물이 날것만 같다. 아이들만 두고 집을 떠난 지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아이들이 그립다.


바다는 언제나 좋다. 어머니 같다. 모든 걸 침묵하며 받아주고 있으니까. 건너편에는 아리카 구릉이 성벽의 요새처럼 떡 버티고 서 있다. 그냥 지나가자. 높은 곳이라면 이제 지긋지긋 하니까… 해물 탕을 싼 값으로, 잘 한다는 El Rey del Marisco 라는 레스토랑을 론리 플레닛 안내 책에서 찾아내어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Colon 거리와 Maipu 거리 모퉁이의 2층에 있는 이집을 찾느라 꽤 애를 먹었지만 음식 맛은 기대치 이하다. 그래도 우린 칠레산 포도주를 한잔씩 들고 웃기는 축배를 들었다.


“페루의 도둑들아, 라파스의 강도들아, 이제 전생에 진 너희들 빚을 다 받아갔겠지? 사람 잡는 고산병도 그만 물러가라!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 건배!”

“건배!”


탱탱! 우리가 마치 고사를 지내듯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자 건너편에 홀로 앉아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던 60대 노인이 씽긋 웃으며 잉크를 보낸다. 저녁을 먹은 뒤 아내는 식당 바로 앞의 야시장에 들려 사막에서 먹을 과일을 잔뜩 샀다. 과일이 싱싱하고 싸다. 아내가 아타카마 사막은 과일 값이 비쌀 거라고 하면서 귤, 포도 등을 골라 담는 바람에 내 배낭만 점점 더 무거워진다.


밤 10시. 다시 터미널이다. 우리의 천사 투 버스 매표소의 마리아는 퇴근을 하고 없다. 고마운 여인. 드디어 산 페드로 아타카마 사막으로 가는 Tur 버스는 우리들을 실고 태평양 연안을 따라 씽씽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