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20] 신관보다는 관리인이 더 좋겠오

찰라777 2004. 9. 15. 16:21
.... 올 림 피 아 ....



올림피아 고대 올림픽 경기장의 레슬링 스쿨 Palaestra의 이오니아식 기둥


그래, 신관보다는 관리인이 좋겠오.

빗방울은 금방 다시 멎었다. 그리고 해가 뜨기도 하고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했다. 한줄기 바람이 이오니아식 기둥 사 이로 흘러들어왔다. 바람을 따라 들어 간 곳은 신관의 사무실이라는 곳이었다. 제우스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이 거주 하는 곳.

“이봐요, 내가 신관처럼 보이질 않소?”
“아니요. 전혀… 신관보다는 관리인 정도로 보이는 데요. 호호호.”
“그래, 실업자인 주제에 신관보다는 관리인 훨씬 좋겠어.”

신관처럼 근엄한 폼을 잡으며 흉내를 냈으나 아내는 나를 관리인 신분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사실 나는 관리인 신분이 훨씬 좋겠 다는 생각을 해본다. 갖은 형식에 얽매여 사는 신관보다는 신전을 지키는 관리인이 단순하고 더 오래도록 근무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유적지의 관리인 직을 임명해주면 당장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폐허 같은 유적지가 나는 무작정 좋으니까. 고 서적이나 한 무더기 쌓아 놓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책이나 읽으며 시간의 역사를 따라 고대와 현대 오가는 유적지의 나그네... 생각만해도 짜릿한 쾌감 같은 걸 느낀다.



* 피아다스 작업장내의 비잔틴 교회터


내가 만일 여행을 하다가 돈이 다 떨어져 생계가 어려워 진다면 아파트 관리인이나 경비직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본적도 있다.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네모난 경비실에 앉아 졸며, 책이라도 읽을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과 이상은 항상 다르기 마련이지만, 내 친구의 매형 중에 그런 분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분은 청계천에서 책방을 경영하다가 여 행 바람이 나서 책방을 때려치우고 홀로 훨훨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 분이다. 중고 봉고차까지 끌고 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던 용감한 60 대의 여행자!

여행에서 돌아온 그 분은 지금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여 한달에 30만원씩 꼬박꼬박 저축을 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돈이 모아 지면 다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겠단다. 그분은 지독히도 낙천주의자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에는 그는 항상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어서, 그를 바라보노라면 내게 없던 고민까지 나타나서 죄다 날라 가 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아이들이 다 장성해 결혼까지 해서 분가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 걱정도 없고, 아내와는 서로 자유로운 생활을 선언한 상태여서 부담도 없단다. 나는 그렇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그분이 존경스럽다.

여행분야가 아닌 다른 어떤 일이든 좋다. 몇 껍 질로 입혀진 체면을 훨훨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자기의 삶을 솔직하게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후회없는 인생이 되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나도 그분처럼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여행을 꿈꾸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 땐 독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경비 원이 되어 근무할지도 모르는 일.

혹 내가 여러분의 아파트에 경비원이 되거덜랑 가끔씩 보너스도 집어주고 맛있는 것도 한 접시씩 남겨서 넘겨주오. 그 대가로 내 그 대의 무거운 짐도 들어주고, 원한다면 즐거운 여행담도 님들의 아이들에게 퍼질러지게 들려 드리리라... 하하. 하여간 꿈이 있는 생활은 항상 즐겁다!



*피아다스의 작업장. 이곳에서 피아다스는 8년동안 제우스 신상을 만들었음.



신관의 사무실 앞에는 ‘피디아스의 작업장(Pheidias Workshop)'이라는 곳이 있다. 피디아스는 이곳에서 고대 올 림피아 최고의 작품 제우스 상을 제작한다. 1950년에 들어서서야 발견된 이 작업장의 발굴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피디아스 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다고 한다.

제우스 신전의 한 가운데 안치된 제우스 상은 보석과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것으로 의자에 근엄하게 앉아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높이가 12m 정도나 되는 제우스 상은, 오른손으로는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을 떠받치고 있고, 왼손은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 팡이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진자도, 불행과 비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제우스 상을 보게 된다면 고통과 절망에서 잊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대 사람들에게 제우스 상을 한번 보기만해도 고통과 절망을 잊게 해주었던 제우스 상은 안타깝게도 파괴되어버리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여긴 뭐하는 곳이었나요?”
“선수들이 묵었던 숙박시설이라고 하는군.”

피디아스의 작업장 앞에는 선수들이 숙박시설로 사용 되었다는, 이 유적지에서 가장 큰 건물터인 ‘레오니데온’의 터가 남아 있다. 기원전 4세기 경에 만들어진 로마시대의 스타디움에는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고하니 선수들의 숫자도 많았으리라.

벌거 벗은체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을 연상하며 나는 제우스 신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속)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