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18] 아내의 오줌 사태(올림피아1)

찰라777 2004. 9. 9. 12:43

□ 그리스인 '루까스'

* '승리의 여신' 니케. 올림피아 박물관(2002.10.24 촬영)


트리폴리에서 올림피아로 가는 버스길은 차멀미가 심한 사람이나 차를 잘 못타는 사람에게는 결코 권할만한 길은 아니다. 좁은 길에 커브가 심하고,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우리들처럼 아예 몸을 흔들리는 버스에 맡겨버리는 스타일은 스릴만점의 흥분을 느끼게 하여 펀펀한 길보다 오히려 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하지만...

버스 또한 결코 고급스럽지가 못해 커브와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삐걱거리며 차체가 흔들거린다. 그러나 운전사는 이런 길에 익숙한 듯 그리스의 댄스 음악을 틀어놓고 마치 곡예사처럼 핸들을 익숙하게 돌려댔다.

버스 차장은 나이가 50대를 넘은 듯한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 구레나룻을 기른 그는 까스께뜨(Casquette) 형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했다.

그는 가끔 음악에 맞추어 흔들거리는 버스에서 춤도 추기도 하고, 내릴 정거장이 가까이 오면 마치 신파극을 연출하는 연극배우처럼 그리스말로 무어라고 떠들어 댔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그 모습이 여간 리드미컬 한 게 아니다.

우리 옆 자리에는 루까스라는 그리스인 청년이 타고 있었다. 그는 화가들이 즐겨 쓰는 베레모를 쓰고 있는데, 모자 빵떡이 어찌나 작던지 고개를 흔들면 곧 떨어질 것만 같아 아슬아슬했다.

가수 강수지 만큼이나 가냘픈 몸매를 가진 그는 말씨도 꼭 여자처럼 가늘다. 거기에다 호사스런 음성을 구사하는 모습이 꼭 여자다.
"저 친구 혹시 게이가 아닐까?"
"설마..."
하여간 우리는 이 루까스 덕분에 밤의 버스여행을 지루한 즐 모르고 즐겁게 할 수가 있었다.



* 올림피아 시 입구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동상(2002.10.24 촬영)



디스플레이를 전공한다는 그는 올림피아에 있는 어느 숍에 디스플레이 코디를 해주기 위해 아테네에서 출발하여 트리폴리에서 밤 버스를 탔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버스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햄버거 등 다양한 음식을 꺼내서 잘근잘근 씹어 먹기 시작했다.

더욱이 과관인 것은 그는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저녁은 이미 트리폴리에서 먹었는데, 차멀미가 나면 무언가를 계속 씹어 먹어야 차멀미를 덜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있으니 양해를 해달라고 했다.

우리 앞좌석에는 엘리자베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인 아가씨가 타고 있었다. 요르단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다는 그녀는 영어 강사료를 저축해서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는 것이 자기의 생활이라고 했다.

다소 뚱뚱한 몹집에 붉은 색을 띤 그녀 또한 보통 수다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리스인 루까스가 한 마디를 하면, 그녀는 한 술 더 떠서 두마디 이상을 했다. 그리고 둘다 곧잘 껄껄껄 웃어대고....

하여간 웃기를 잘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우리 한국인의 표정이 얼마나 웃음에 인색한지 실감이 난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마치 수다 경연대회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자베스와 루까스는 마침 전쟁의 기운이 돌고 있는 이라크에 대해서 한동안 열띤 토론을 벌렸다. 루까스는 힘을 가진 미국이 제 마음대로 중동의 여러 석유국가에 대하여 개입을 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

엘리자베스 역시 타 국가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탐탁하지는 않지만 세계의 평화 질서를 위해서 누군가가 개입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냐는 것.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초이, 내 말이 맞지 않소? 당신 생각은 어떠한가요?”

루까스는 이야기도중에 가끔 이런 말로 나에게 동의라도 구하려는 듯 의견을 물어오곤 했다. 사실 지중해에 접에 있는 나라들을 여행을 하면서 나의 마음은 이미 루까스의 의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정치 이야기는 어디를 가나 따분하다.


□ 겉잡을 수 없는 아내의 오줌 사태

나는 이야기의 화제를 여행으로 돌렸다. 우리가 여행에 대하여 한 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안색이 이상해 졌다. 지금 당장 소변을 누어야겠다는 것. 매우 급하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운전수 옆에 앉아 있는 버스 차장에게 가서 아내의 사정을 말하며 차를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 바디랭기지로 소변이 매우 화급하다는 상황을 여러 번 전달을 했는데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외모가 찰리 채플린을 닮아 너그러울줄로 쉽게 생각했던 그는 의외로 완고하고 고집이 셌다. 버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는 차를 세울 수 없으니 다음 정류장까지 참아달라는 것. 내가 낭패한 모습으로 좌석으로 돌아와 선채로 아내에게 다음 정거장까지 참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데 루까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루까스, 차를 세우지 않으면 아내가 버스 안에서 오줌을 누어야 할 판이요.”
“저런, 아까 버스 정류장에서 화장실을 가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그게 아니고 아내는 지금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이뇨제를 복용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 약효가 있는지 매우 급하게 되었단 말이요.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힘든데, 루까스, 당신이 그 사정을 대신 이야기 해 줄 수 없겠소?”
“원래 그리스 버스는 중간에 잘 세워주지를 않는데, 내가 사정을 한번 해보지요.”

그는 앞으로 걸어가 한참동안 버스차장에게 이야기를 하더니 돌아왔다. 만약에 버스 차장이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와 싸워서라도 버스를 세우거나, 아니면 버스안에서 오줌을 누어야 할 긴급사태가 발생할 것만 같았다.

“지금은 길이 너무 좁아 버스를 세울 수 없으니 이 언덕을 내려가면 세워주겠다고 했소. 조금만 참으시오.”
“루까스, 정말 고맙소.”

아내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소변을 참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루까스가 웃으며 조금만 참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선량한 사람 같았다.

아내는 아마 트리폴리에서 버스를 타기 전에 먹었던 이뇨제가 이제 제대로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에다 가파른 언덕길에서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버스도 아내의 소변을 재촉하는 데 톡톡히 한목을 했으리라.

언덕 아래까지 내려가는 3분정도의 거리가 3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버스가 어느 삼거리 모퉁이에서 섰다. 우리는 급하게 버스에서 내려갔다. 그곳엔 구멍가게 같은 상점이 하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들에게 차장이 뭐라고 그리스말로 막 지껴려 댔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루까스의 말에 의하면 소변을 누고 여기서 기다리라는 것. 그러면 약 10분후에 버스가 다시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급한 김에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버스는 우리를 내려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구멍가게로 들어가니 여자 종업원 한 사람이 카운터에 앉아 졸고 있었다. 황급히 들어온 낯선 동양인을 바라보며 그녀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화장실을 물어 본 아내는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갔다.

이윽고 아내가 한참 만에 휴~ 한숨을 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휴우~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이거, 옆에 있는 내가 진땀이 다 나는군.”
“약사가 반 알만 먹으라고 했는데 한 알 반을 먹었더니 사정이 예상보다 급하게 되었나 봐요.”
“어쨌든 다행이네. 버스 안에서 어린애처럼 오줌을 눌 뻔 했잖아… 하하.”
“아이, 당신도…”

내가 아내를 놀려대자 아내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겼다. 하여간 아내의 말로는 오줌을 봇물 쏟아내듯 시원하게 누었다고 했다. 버스에서는 애간장이 탔지만 그동안 소변때문에 고생했던 아내의 말을 듣기만 해도 내가 다 시원하게 느껴졌다.




* 올림피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승리에 여신상 니케


□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는 올림피아에...

나는 가게에서 물 한 병과 콜라 두병을 샀다. 물은 우리가 먹기 위해서였고, 콜라는 버스차장과 운전수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밖으로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달님이 보기에도 오줌사태가 난 아내의 모습이 우스웠던 모양일까? 그런데 버스가 15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우린 또 버스를 기다리며 점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우릴 두고 그냥 가버린 게 아니에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한적한 산골에는 조용하기만 했고,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이윽고 멀리서 부릉부릉 소리가 나더니 버스는 20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버스에 오르는 우릴 바라보며 루까스가 손을 흔들었다.

아마 버스는 그곳에서 한 참 떨어진 어느 마을의 버스정류장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우리들을 태우기 위해 다시 되 돌아온 모양이었다.

“젠틀 맨, 너무 고맙소. 이건 당신에게 드리는 우리의 작은 선물이요.”
“어? 괜찮은데…”

내가 내민 콜라 두병을 차장은 예의 희극배우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쾌히 받았다.

“초이, 당신 아내가 볼일은 잘 보았소?”
“당신 덕분에… 이렇게 시원하게! 하하……. 루까스, 정말 고워요!”
“하하하. 천만에. 하여간 듣던 중 시원한 소리네!”

내가 오줌을 시원하게 누었다는 시늉을 하며 유쾌하게 웃자 루까스도, 버스차장도 껄껄대며 따라 웃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별의 별 해프닝을 다 만나곤 한다. 그래서 '트래블'은 '트러불'의 연속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많은 해프닝 중에서도 올림피아로 가는 버스에서 일어난 오줌사태 해프닝은 매우 힘들었지만 두고두고 우리부부를 웃기는 추억 속으로 몰아넣어주곤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리가 올림피아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23시. 결과적으로 아내의 오줌사태 때문에 시간이 다소 지연되어 도착을 하게 되었다. 어찌되었던.... 올림피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동상이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날개를 활짝 편 채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 계속 -




* 올림피아의 거리표정. 거리는 매우 한적하다.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글/사진 찰라)




Yanni: In Your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