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강원도

나무들에게도 영혼이 있을까?-남이섬

찰라777 2007. 6. 12. 08:02

나무들의 영혼

  

아담의 사과나무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나무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태초부터 인간의 운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우주의 축인 그 나무는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에 이르기까지 삼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뿌리는 지하 깊숙이 박혀 있었고 가지들은 천상에 닿아 있었다. 땅 속에서 길어 오른 물은 수액이 되고, 태양은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생겨나게 했다. 이 나무를 통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나무는 구름들을 모아 엄청난 비를 내리게 하였다. 곧게 뻗은 나무는 천상과 지하의 심연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고, 이로써 우주는 영원히 재생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보호했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었다.



△하늘로 솟아오른 황철나무

 

또한 나무들의 영혼은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깨달음을 안겨주어 왔다. 불타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을 얻었고,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들었다.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의 군대로부터 구해낸 모세의 신비한 지팡이도 레바논 산 삼나무인 '낙원의 나무'이다. 많은 성자들이 나무가 우거진 총림에서 진리를 얻었고, 먼 옛날부터 샤먼과 예언자들은 신성한 숲과 성목나무 아래 성소를 차리고 기도를 하며 신의 계시를 얻었다.

 

△천년을 넘게 살고 있는 은행나무

 

좀 더 현실적으로 숲과 나무를 바라보자. 숲은 자원의 보고로써 목재는 물론, 펄프, 의약품 등 수많은 경제적 기능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인간이 단 몇 분 동안만 마시지 않아도 생명이 끊어지고 마는 산소를 생산하는가 하면, 스펀지처럼 빗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흘러 보내는 거대한 녹색 댐 역할을 수행하며, 천연 공기정화기와 소음을 막아주는 방음벽이 되어주고, 피톤치드 같은 인체에 이로운 향기를 뿜어내며, 인류의 문화를 꽃피게 하는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우주의 공간에서 무수한 혜택을 제공하는 나무들도 과연 '영혼'을 가지고 있을까?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저술한 '야생의 사고'에 의하면 '야생'이란 '숲'을 뜻하는 실바silva에서 유래하므로 나무들은 기억능력과 함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입증한 사람들이 있다. 자가다스 챈드라 보스라는 인도의 식물학자는 1900년부터 30년 동안 실험을 통해서 식물들에게도 어떤 특정한 기억 능력이 동반된 '감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기억능력은 영혼을 가진 정신현상의 기본요소로서 식물들에게도 '신경조직'과 동일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후에 미국과 소련의 학자들에 의해 확인되고 보완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식물은 바다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식물의 유기체는 동물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며, 동물세포는 식물의 세포가 변형되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세포는 각자의 자율성을 가지고 균형과 방어를 조절하는 고유한 체계, 즉 잠재적인 정신 현상의 원리 자체를 가지고 있는데, 식물들 역시 기억 형식을 만들어내는 반사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무들도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만족, 두려움을 느끼며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기억하여 모두 나이테에 기록한다.

 

나무들이 기억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우리는 동심원을 그리는 성장의 여러 층들인 '나이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무를 베었을 때 우리는 나이테를 통해서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나무가 기후 조건과 성장의 환경에 따라 어떻게 반응을 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적당히 비가 오고 햇빛을 충분히 받은 해에는 나이테가 넓고, 추위와 가뭄이 심한 해에는 나이테 간격이 좁다.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나무들의 기억과 반응에 의해서 몇 천 년 전의 기후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나무들은 번개에 맞았을 때, 숲 속에 불이 나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병충해와 질병에 걸렸을 때 등의 사건들을 자신의 나이테 안에 낱낱이 기록한다. 나이테는 나무의 모든 성장기록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나무에게도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구촌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나무들로 우거진 숲을 발견하게 되면 그 숲 속을 산책하거나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곤 했다.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찌르는 레드우드(세콰이어 나무) 숲, 아마존의 열대밀림, 인도 마날리의 삼나무 숲, 독일 흑림, 호주 블루마운틴의 유칼리나무 숲, 북유럽의 자작나무 숲 등 태고가 숨 쉬는 것 같은 원시림에 머물다 보면 나무들의 영혼과 하나가 되어 함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숲속의 요정이 곧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외국의 숲들은 대부분 접근하기 쉬운 평지에 있다.

 

우리나라도 광릉 숲이나 남이섬의 숲,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은 평지에 있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숲이다. 홀로 이런 숲길을 걸어보거나 나무 밑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보라. 당신은 저절로 나무들의 영혼과 나무들이 주는 혜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숲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휴일보다는 평일 날 하루쯤 휴가를 내어서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다. 뭐 꼭 이런 장소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이면 족하다. 하지만 떠들고, 먹고, 마시고, 놀러가는 숲이 아니라 조용히 산책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나무들의 영혼을 느껴보는 그런 시간이어야 한다. 이제 당신과 함께 나무들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 남이섬으로 여행을 떠나 나무들의 영혼을 느껴보자.

 


나무를 심는 자들이여,
천국이 그대들 것이니…

 

오늘의 남이섬은 '원래부터 자연이었던 것처럼' 가꾸어 놓은 나무들의 천국이다. 그 이전에는 땅콩 밭과 밤나무들만 자라났던 평범한 섬에 지나지 않았다. 남이섬 선착장에 도착하여 첫 발을 내딛으니 강가에는 늘씬한 몸매를 가진 나체 소녀상이 강심을 바라보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보다 훨씬 아름답다. 소녀는 마치 숲속의 요정처럼 보인다.

 

가랑잎처럼 생긴 남이섬은 처음부터 나무들의 천국이 될 운명을 타고 났을까? 청평 호수에 떠 있는 14만 여 평의 섬에는 각종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서 있다. 잣나무를 위시하여 메타세콰이어, 은행나무, 향나무, 자작나무, 튤립나무, 벚나무, 계수나무, 밤나무, 아카시아, 느티나무… 그러나 이 나무들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내겠다는 고 민병도 선생이 혼신을 다하여 심고 가꾸어 온 위대한 유산이다. 그는 선견지명이 있어 자신이 머물 천국을 미리 가꾸어 놓은 것일까? 

 

섬 입구에 들어서면 곧 잣나무 숲길이 열린다. 잣나무 길에 들어선 연인들은 벌써 사랑을 들고, 껴안고, 찍으며 걷는다. 거기에는 삶의 무게를 훌훌 벗어버리고, 욕망의 굴레도 벗어 버린 채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 남아 있다. 여기저기서 찰칵 찰칵 사랑을 담는 소리가 들려온다.

 

 

△잣나무 길. 잣나무는 풍요의 신인 아티스의 영혼이 들어 있다

 

소아시아 신화에 의하면 잣나무는 풍요를 상징하는 아티스 신이 죽어서 부활한 나무이다. 전승에 따르면 아티스는 상가리우스 강의 딸인 나나와 케벨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젊은이였다. 케벨레는 돌 위에 뿌려진 제우스의 정액으로부터 태어난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이다. 그러나 아들인 아티스를 사랑하게 된 케벨레는 아티스가 결혼을 하려고 하자 그를 미치게 만들었으며, 이를 알게 된 아티스는 스스로를 거세하고 목숨을 끊는다.

 

케벨레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며 제우스에게 그의 몸이 썩어 없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청한다. 아티스의 몸은 잣나무 Pinus Pinea L.(라틴어로 풍족한 소나무 또는 탁월한 소나무의 뜻)로 부활하고, 그의 피는 제비꽃으로 자라난다. 잣나무는 소나무과 중에서도 유일하게 식용 씨앗을 제공하고 있어 그리스인들은 이를 재생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잣나무 길을 걷고 있는 당신은 아티스 신의 영혼과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잣나무 길 중간쯤에는 '세계 책 나라 축제' 가 열리고 있다. 책은 나무로 만든다. 나무에서 펄프가 만들어지고, 펄프는 종이를 만들며, 종이에 인쇄가 활자화되면 이윽고 책이 탄생한다. 결국 책 속에도 나무들의 영혼이 들어있는 셈이다. 나무들의 천국인 남이섬에 걸 맞는 이벤트다.



△메타세콰이어 길

  

잣나무 길이 끝나면 남이섬의 다운타운에 도달한다. 이곳에서부터는 다시 크게 세 갈래로 가로수 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콰이어의 길, 중앙에 은행나무 길, 좌측에는 벚나무 길이다. 그 어느 길을 가도 좋으나 메타세콰이어 길이 가장 사람들이 붐빈다. 그 길 초입에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과 최지우의 멋진 포즈가 걸려있고, 어깨를 잡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청동상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연가의 흔적은 연인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는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기념촬영을 하는 곳도 이 곳이다. 결국 겨울연가도 남이섬에 살고 있는 나무들의 영혼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하늘을 뒤덮고 도열해 있는 메타세콰이어는 아무리 보아도 멋진 아베크 코스다. 이 길을 걷다보면 나무들의 사랑이 저절로 스며드는 것 같다. 하늘로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는 나무 터널은 웅장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메타세콰이어는 은행나무와 함께 지구상에 살아남은 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식물중의 하나다. 따라서 메타세콰이어 길과 은행나무 길을 걸을 때에는 공룡이 함께 살았던 화석 시대의 쥐라기 공원을 상상해 보자. 당신은 지금으로부터 1억 4300만 년 전의 중생대에 살았던 나무들의 영혼과 함께 하고 샘이 된다.



△중생대 쥐라기 시대부터 살아온 은행나무 길

 

메타세콰이어 길이 끝나는 곳에는 푸른 청평호가 넘실대고 있다. 숲길은 좌우 호반으로 이어지는데, 우측은 아카시아와 밤나무 등 각종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좌측으로 돌아가면 호젓한 별장 지대가 나오고, 별장 앞으로는 호반 위에 나무로 만든 통로가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통로에는 눈처럼 져버린 아카시아 꽃이 천지를 이루며 마지막 향기를 품어내고 있다.

 

별장지대가 끝나면 너무나 호젓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마치 나무들의 요정이라도 출현 할 것 같은 그런 길이다. 벤치에 앉은 연인들은 지나가는 행인을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랑의 멘트를 날리고 있다. 만약에 이곳에도 나무들의 요정이 있다면, 그들이 이 연인들의 사랑을 더욱 깊어지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카시아 숲길

 

가랑잎의 끝처럼 생긴 섬의 끝에는 호반으로 향한 철길이 끊겨 있다. 섬의 끝을 돌아서면 곧 갈대숲으로 이어진다. 갈대숲을 따라가다 보면 갖가지 여름 야생화를 볼 수 있다. 개망초, 애기똥풀, 철 늦은 민들레, 마디풀, 토끼풀, 붓꽃, 찔레꽃, 쇠비름… 이 야생화들도 각자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남이섬은 앞으로 야생화 천국이 되지 않을까?

 

△튤립나무 숲길

 

갈대숲을 지나면 인적이 가장 드문 튤립나무 길과 자작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백합나무라고 부르기도 한 튤립나무는 가지 끝에 녹색을 띤 노란색 꽃이 튤립처럼 고귀하게 피어난다. 푸른 잎 속에 감추어진 듯 피어나는 노란 튤립 꽃을 보물찾기를 하듯 찾아내며 길을 걷는 것도 좋으리라.

 

튤립나무 길로 이어지는 길에는 '겨울연가'에서 배용준과 최지우가 첫 키스를 한 벤치가 있고, 그 옆에는 '사랑한다면 사랑을 확인하세요'라는 윤석호 PD의 멘트가 쓰인 초가지붕 간판이 하나가 서 있다. 벤치에는 석고로 만든 인형이 키스를 하고 있는데, 이 벤치에 앉아 서로 부둥켜 앉고 키스를 하며 사랑을 확인 한들 말릴 사람은 없다.

 

△겨울연가에서 배용준과 최지우가  첫 키스를 한  벤치

 

벤치에서 사랑을 확인하기가 뭣하면 자작나무 숲길로 가보자. '나무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자작나무 숲길은 그리 길지가 않다. 그러나 눈처럼 희고 고운 자작나무의 허리는 과연 여인의 미끈한 다리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자작나무를 사람들은 나무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시베리아에서는 자작나무는 샤먼이 숭배하는 신성한 나무다. 또한 게르만의 신화에서는 자작나무는 벼락과 전쟁의 신인 도나르-토르의 나무다. 자작나무는 세상에 빛을 주고, 분쟁을 중재하며, 병자들을 치유하고, 더러움을 제거한다. 이는 자작나무가지로 횃불을 만들고, 자작나무 사우나에 온몸을 담그고, 빗자루와 회초리로 자신의 몸을 친다는 자작나무 용도와도 일치한다.

 

결혼식을 올릴 때 '화촉'을 밝힌다는 말도 자작나무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에는 초를 만드는 왁스 성분이 있어서 불을 붙이면 촛불처럼 오래간다. 하얀 껍질에 화촉을 밝힌다함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부른다는 의미다.  

 

나무의 영혼을 분노하게 하지 말아야....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 섬의 북쪽 끝을 돌아서면 마침내 다시 숲 속의 요정 같은 인어공주 여인상이 나온다. 당신이 이렇게 나무 숲길을 한 바퀴 돌고나면 그 누구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리라. 그 것은 왜일까? 이는 나무들의 영혼이 당신을 포근한 사랑으로 감싸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인간중심주의는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삼림들이 무분별하게 벌채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생태계는 점점 질서를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 자연은 균형의 힘을 상실하고 오존층이 파괴되어 이상 기온을 불러와 쓰나미 같은 지구 대재앙이 몰려오고 있다. 결국 인간들이 나무의 영혼을 노하게 하여 응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자들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인간과 나무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나무를 무참하게 벌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자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진실로 우리가 더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너무 늦기 전에 나무를 심고 보호하여 우리가 약탈한 자연을 회복시키고, 수천 년 전의 균형과 조화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