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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구와우]그리움을 향한 100만송이의 해바라기-그 진공묘유의 만다라 세계

찰라777 2008. 8. 25. 06:47

 

 

그리움을 향한 100만 송이의 해바라기

  그 진공묘유의 만다라 세계-해바라기 속에 숨겨진 비밀

 

 

 ▲해마다 8월의 끝자락이 오면 태백 구와우 언덕에는 100만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리움을 안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태양의 꽃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그리움'의 꽃이다. 소피아 로렌이 주연했던 영화 "선 플라우워"가 전쟁터로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렸듯이..., 빈센트 반 고흐가 죽는 날까지 찬란한 노랑 물감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덧칠하며 필사적으로 해바라기를 그려냈듯이... 해바라기는 일편단심으로 태양을 향하여 그리움과 기다림을 호소하는 생명의 꽃이다.

 

해바라기는 물의 요정 클리티에가 태양신 아폴론을 하루 종일 그리워하며 짝사랑을 하다 마침내 얼굴은 꽃이 되고 다리는 줄기, 발은 뿌리가 되고만 그리스 신화신화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꽃이다.

 

 

사랑에 빠진 클리티에는 어깨 위로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해(아폴론)가 뜨면 올려다보기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오직 해만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물과 찬 이슬로 배를 채우며 아흐레 동안을 그렇게 지내다가 마침내 그녀의 한 송이 해바라기 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해바라기는 지금도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모하며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질 때까지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태양만을 바라보고 있다.

 

지구상에 피는 모든 꽃들을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유독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나는 인도의 기원정사 앞뜰에 핀 해바라기에 반했으며, 태국의 사라부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벌판에서 전율했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는 태백의 구와우 언덕에 끝없이 피어있는 해바라기 언덕이 있다. 무덥고 시끌벅적한 휴가철이 지나고 8월도 거의 다 지나가는 여름의 끝자락에 나는 태백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100만송이의 해바라기 꽃이 그리움을 머금은 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산안개를 헤집고 도착한 산 높고 골 깊은 태백의 구봉산 자락. 산안개가 거치자 마침내 소피아 로렌의 '선 플라우어'처럼 애잔하고,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강렬하게 노랑물결을 이루고 있는 해바라기 군락과 마주한다. 아홉 마리의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구와우九臥牛 언덕에는 노랑 해바라기의 물결이 굽이굽이 휘돌아 치며 생명의 파도를 이루고 있다.

 

 

 

 

그 노랑 물결 속을 춤추듯 걸어 다니며 나는 빈센트 반 고흐가 왜 그리도 많은 해바라기를 그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해바라기는 그의 자화상이었으며, 그가 추구하는 노란색의 우주였다. 태양의 빛을 좇아 살아온 인생, 고흐에게 노랑은 생명의 색이었고, 순백의 오렌지 빛 해바라기는 그의 생명 자체였다.

 

초입의 해바라기 밭 끝자락에 있는 원두막에 오른다. 망루에 오르자 이윽고 망루 밑으로 노랑 해바라기의 바다가 펼쳐진다. 한 가닥 바람이 계곡으로 불어오자 해바라기는 일제히 노랑물결처럼 출렁거리며 살갑게 감동의 덩어리를 이룬다.

 

 

 

 

노랑물결에 취해 잠시 땀을 식힌 후 다시 오른쪽으로 굽어진 언덕을 오른다. 아직은 염천의 더위를 뿜어내는 태양의 뜨거운 땡볕이 목덜미를 뜨겁게 달구며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한 고개를 넘어가니 더 큰 해바라기 밭이 길게 능선을 따라 굴곡을 이루며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그 진공묘유의 만다라 세계-해바라기 속에 숨겨진 비밀

 

 

해바라기는 하나의 만다라다!

해바라기는 하나의 행성이다.

해바라기는 수많은 위성을 거느린 하나의 우주다.

  

 

 

 

나는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해바라기의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아, 해바라기는 진공묘유의 세계와 같다. 자세히 침묵의 눈으로 해바라기를 바라보면 해바라기는 그 자체가 수없이 많은 작은 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작은 꽃들에 달린 꽃잎들 또한 수없이 많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 즉 만다라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좀 더 가까이 해바라기를 살펴보자. 해바라기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작은 '통꽃'은 꽃가루를 만들어 내는 '꽃 밥', 꽃가루를 받아들이는 '암술머리', 그리고 나중에 씨가 될 밑씨를 보관하는 '씨방'을 갖고 있다.

 

 

 

 

그리고 통꽃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신의 꽃가루를 벌이나 나비에게 넘겨줄 것이다. 이 꽃가루는 자양분이 풍부한 먹잇감이다. 꽃가루는 곤충들의 다리, 가슴, 날개 등에 들러붙어 다른 통꽃의 암술머리에 옮겨지고 꽃가루 알갱이의 수컷 성性세포는 암술머리에 허니문의 달콤한 잠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곤충들이 옮겨준 꽃가루는 마침내 암술머리에 동침을 하며 암술과 황홀한(?) 섹스를 한다. 이른바 수정을 하는 것이다. 햇빛, 수분, 온도 등 모든 자연조건이 완벽하다면, 녀석들은 암술의 씨방에 밑씨로 잉태를 하여 항차 해바라기 씨가 될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 탄생인가! 

 

해바라기는 중심부 원형의 가장자리를 따라 혀꽃(설상화 舌狀花)들이 외겹으로 둘러싸며 차례차례 꽃잎을 피운다. 그리고 이 혀꽃들은 원형을 이루고 있는 통꽃을 빙 둘러치며 커다란 원을 이룬다.

 

마치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 빛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꽃잎은 해바라기의 기운을 한껏 발산하는 오라aura처럼 보인다. 마치 도를 이룬 부처의 후광처럼 말이다. 이 꽃잎은 바로 벌과 곤충을 유혹하는 빛의 고리다.

 

해바라기는 각각의 통꽃들이 무리를 지어 꽃차례를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여 단체행동을 하는 꽃의 무리다. 하나의 행성처럼 보이는 해바라기의 꽃잎들은 선명한 오렌지 빛 그 자체다.

 

꽃잎들은 마치 행성이 요구하는 모든 에너지를 다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원색의 오렌지 빛이 항차 원자로를 돌릴 수도 있게 되지는 않을까? 수많은 꽃잎들은 하나를 건드리면 연달아 울려 퍼지는 편종처럼 소리를 낼 것만 같다. 그것은 완벽한 만다라의 세계가 들려주는 깨달음의 소리다. 

  

 

 

  

한 마리 꿀벌이 날아오더니 통꽃에 고개를 처박고 꿀을 빨아드리고 있다. 녀석은 해바라기가 주는 꿀단지에 푹 빠져 있다. 나도 벌처럼 해바라기 통꽃에 코를 가까이 대 본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여 마셔본다. 실로 미묘한 향기가 후각을 통해 느껴진다. 말과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다. 세상에는 후각으로 느낄 수는 있어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냄새들이 존재한다. 식물에 분포되어 있는 테르펜과 리모넨이 그런 것들이다.

 

한 송이 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각자의 강한 개성을 지니고 훨씬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식물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들을 줄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해바라기는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꽃은 해를 따라 움직인다. 아침엔 동쪽을 바라보다가 오후엔 서쪽을 향해 서서히 움직인다. 이는 줄기에 있는 광감성 세포가 햇빛을 보는데, 이 줄기의 성장으로 인해 해바라기가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감촉에 반응한다. 미모사는 건드리거나 자극을 주면 움츠러들고 배롱나무는 만지면 간지럼을 타듯이 떤다.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은 툭 건드리면 철커덕하고 입을 다물고, 완두콩과에 속하는 덩굴손은 몸을 돌돌 감아올린다.

 

식물은 미각의 소유자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음미한다. 해바라기는 뿌리를 이용하여 주변의 토양을 음미하면서 영양소를 찾아 나선다. 먹잇감을 향해 서서히 땅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 영양분의 맛을 보고 구미에 맞으면 그쪽을 향해 자라간다. 해바라기 뿌리는 땅 속으로 2.4미터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다니 놀랍다.

 

식물은 소리의 진동에도 발아를 촉진시킨다. 해바라기는 인간의 목소리와 유사하면서 음량은 그보다 약간 더 큰 소리를 들을 때 성장이 촉진된다고 한다. 꽃과 수분受粉 매개체는 소리를 통해 서로를 찾는다.

 

 

 

 

해바라기의 구조는 매우 수학적이다. 하나의 해바라기에는 씨가 21개, 34개, 55개, 89개, 간혹 144개가 합쳐서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룬다. 이를 치밀하게 계산을 해보면 각각의 수는 앞 선 두 수의 합이다. 또한 각각의 수를 그 바로 앞의 수로 나누면 이른바 '황금비율(1.618)'이 된다.

 

이런 존재는 솔잎에도, 연채동물의 등딱지에도, 그리고 나선형의 성운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고 수많은 건축, 미술, 음악의 기반이 되는 비율이다. 인간의 속귀(內耳)에 있는 나선형의 달팽이관에서도 소리의 곡조가 유사한 비율로 진동한다니 놀랍다. 그러니 꽃의 아름다움은 매우 수학적이며 물리학적이다.

 

모든 꽃들은 나름대로 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꽃들의 아름다움을 제외시켜버린다면 세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인간을 비롯하여 동물들이 먹이로 삼는 모든 식물들은 번식을 위해 꽃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꽃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당신은 어찌하여 울고 있나요

 

 

 

해바라기의 노랑 물결 속에 한 여인이 소피아 로렌처럼 홀로 해바라기 밭을 헤집고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더니 이윽고 달려가듯 노랑 물결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녀가 사라져 간 해바라기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그녀가 뛰어간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나는 다시 그녀를 해바라기 밭에서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녀는 한 송이 해바라기 꽃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사연이 있을까? 나는 감히 그녀 곁으로 다가 갈 수가 없다. 오히려 그녀가 방해 받지 않도록 몸을 피해서 나무 그늘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랑하다가 해바라기가 되고만 물의 요정 클리티에를 떠올린다.

 

그녀는 울면서 해바라기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것 같다. 해바라기는 연민의 정으로 노랑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다. 해바라기를 부여잡고 울고 있는 저 여인도 클리티에가 아폴론을 사랑 하듯이 누군가를 지독히도 짝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가족으로 보이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해바라기 밭을 걸어간다. 행복한 모습이다. 해바라기는 그 어떤 슬픔도 기쁨도 고뇌도 다 받아줄듯 늦은 오후의 살랑바람에 한들거리며 해를 따라 서서히 움직인다.

 

해가 태백산맥 자락으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나는 해바라기 밭을 그렇게 서성거렸다. 나는 하루 종일 침묵하며 해바라기에게 귀를 기우린 샘이다. 꽃들은 그들을 아끼고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줄수록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 샘을 조금씩 열어 놓는다. 나는 그저 좋아만했던 해바라기의 존재에 대하여 이제 막, 아주 조금 이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백 구와우 해바라기언덕에서 찰라 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