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기적의 이스터 섬

찰라777 2007. 12. 24. 00:54

 

△ 항가로아 마을 항구에 외로이 서 있는 모아이 석상

 

 

마르타! 마르타!

그녀는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부겐베리아처럼 생긴 꽃 목거리를 들고와 아내와 나의 목에 걸어주며 싱글벙글 웃는다. 남태평양의 부겐베리아 향기가 목을 타고 가슴에 묻어난다. 대양의 햇볕을 머금고 피어난 꽃을 목에걸고 우린 어린아이들처럼 웃었다.  "해 아래 밝게 웃으면/오래오래 행복하다고/날마다 가슴속에/빛을 많이 넣어 두라고/나뭇잎을 흔들며/행복을 물들이는/부겐베리아"(이해인 부겐베리아).

 

 

 

 

그리고 서로가 손짓 발짓으로 겨우 알아낸 그녀의 이름은 마르타였다.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으니 우린 바디랭기지로 의사를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피장 파장. 마타베리 공항에서 마르타를 따라서 걸어간 그녀의 집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그대로였다. 그녀의 집에 가까이 갈수록 파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외로운 이스터 섬, 그리고 그 섬 중에서도 항가로아 마을의 한 구석 바닷가에 외로이 터를 잡고 있는 오막살이 집 한 채. 마타베리 공항의 끝 쪽에 허름한 가건물 같은 집이 마르타네 집이었다.

 

 

△ 마르타와 마르타의 남편 로저. 로저는 침묵을 하고, 마르타는 언제나 환하게 웃었다.

 

 

마르타네 집에 들어서니 먼저 늑대보다 더 큰 누렁개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다가 왔다. 곧이어 마르타의 외동 딸 미히노아가 마르타의 치마폭을 휘어잡으며 우리를 보고 괜히 히죽히죽 웃었다. 이어서 마르타의 남편 로저가 밤송이처럼 털이 부한 머리에 구레나룻을 기른 모습으로 말없이 웃으며 나왔다. 마르타가 안내한 그녀의 집은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처마 밑에 놓인 탁자 하나, 헌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우리가 잘 방을 안내한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끓여왔다. 그녀의 환한 미소가 커피 향을 타고 우리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그렇게 다가왔다.

 

“말은 통하지 않는데 왜 이리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지지요?”

“아마도 모아이이 영혼이 마르타의 따뜻한 가슴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오는 것은 아닐까?”

 

행복한 순간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순간순간에 다가온다. 그 순간의 행복을 영원의 행복으로 잡아야 해… 마르타가 끓여온 커피로 가슴을 뜨겁게 적시고 있는데 바닷가에 부서지는 파도의 노래 소리가 우릴 유혹하고 있었다. 소꿉장난 같은 방에 짐을 풀고 우린 긴 여정의 피로도 잊은 채 파도소리를 따라 해변으로 나갔다. 아니 바로 마르타내 집 앞이 해변이었으니 몇 걸음도 채 걷기 전에 우린 거대한 파도 앞에 당도했다. 바람도 불지 않건만 파도는 마르타네 집보다 더 높이 우리를 집어삼킬 듯 거대하게 다가오더니 암벽에 부서지면서 흰 포말로 힘없이 부서지곤 했다.

 

  

 마침 보름이 다가오는지라 하늘엔 타원형의 달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선착장으로 다가가니 모아이의 거대한 석상이 바다를 등지고 수수께끼 덩어리처럼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모아이의 고향은 어느 곳일까? 절해고도의 바닷가에 모아이는 곧 기적이라도 일으킬 듯 신비하게 서 있었다.

 

그렇다! 우린 기적을 바라고 이 섬까지 그 먼 길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기적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고자 나선 기적 같은 여행길이 정말 기적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4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구 둘레보다 더 머나먼 길을 돌아 돌아 부활의 섬에 당도한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세상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시간들. 거기엔 오직 달빛과, 파도와 모아이, 그리고 먼지처럼 왜소하고 가벼운 두 깃털이 모아이 석상에 기대고 서 있었다. 희노애락이 없는 곳, 나를 잊어버린 그런 시간들.... 우린 마치 흰 거품을 물며 달빛에 부서지는 거픔같은 존재였다.  

 

 

어두운 우주를 밝히는 달

암벽에 부서지는 거대한 파도

달빛에 반짝이는 물 빛…

 

남태평양의 한 점에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기적처럼 서있는 모아이

그대 고향은 어디 메인가?

 

오, 곧 기적을 일으킬 것 같은

그대의 영혼 가슴에 느껴지네!

 

기적의 섬

부활의 섬

세상의 중심

라파누이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