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새가 되고 싶은 사람들-오롱고 조인의례

찰라777 2008. 1. 5. 09:02

     수수께끼 같은 문명 - 이스터 섬의 롱고롱고 문명

 

△어느날 한국에서 16000km 떨어진 이스터 섬으로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간 나는 사라진 문명의 뒤안 길에서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었던 라파누이들의 환상을 보고 있었다.  전사들은 '새사람(bird man)'오롱고 절벽에서

뛰어 내려 상어떼들이 득실거리는 모투누이 섬으로 헤험쳐 나가 '검은제비갈매기'의 알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

경주에 참여했다. 알을 깨뜨리지 않고 가장 먼저 가져온 자는 조인(鳥人)으로 선정되어 되어 1년동안 섬을

통치하며 신적인 존재로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잃어버린 문명의 섬에는 수수께기의 모아이 석상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만 보일뿐 라파누이드르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을 닮은  오롱고, 라노카오

 

오래전부터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의 떼 삐또 오 떼 에누아(Te Piti O Te Henua), 또는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의미의 '마따 끼 떼 라니(Mata Ki Te Rani)'라고 불려온 이스터 섬은 길이 24km, 면적 12㎢의 거대한 하나의 바위섬이다. 섬은 잃어버린 문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꿈꾸어 왔었는데, 그 꿈이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하나 하나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잉카문명의 발상지 페루의 마추픽추, 마야 문명이 깃든 멕시코의 치첸이사 피라미드, 그리고 여기 이스터 섬의 롱고롱고 문명에 이르기까지... 잃허버린 문명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고 가슴뛰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고고학자도, 인류학자도 아니다. 그저 아내와 함께 세계의 기를 찾아 떠돌아 다니는 배낭여행객에 지나지 않는다. 허지만 잃어버린 문명의 발자국을 따라 갈 때마다 과거의 문명과 현대의 문명 사이에서 어떤 시대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개 된다.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닮은  라노카오 사화산. 분화구에는 달의 표면 같은 물방울 모자이크가 이상한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항가로아 마을에서 오롱고까지는 7km. 길은 제주도의 오름을 올라가는 느낌이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가다가 마지막 정상부근에서는 상당히 가파르다. 섬에서 오직 이곳에만 숲이 우거져 있다. 남국 특유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아침 일찍 이라 그런지 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 부부 둘뿐이다.

 

"제주도의 오름길 같아요."

 

"나는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기분인데…"

 

정상부근에 올라서니 멀리 항가로아 마을이 조개껍질을 엎어 놓은 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길도 제대로 없는 산언덕을 걸어서 올라갔다. 사방이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온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언덕, 그 모습은 바로 제주도에서 보아왔던 오름의 언덕과 하나도 다르바가 없었다.

 

 

 

 

 

드디어 라노카오(Rano Kao)정상이다. 정상에는 마치 성산 일출봉처럼 생긴 거대한 분화구가 있는데, 성산일출봉과 다른 것은 물이 고여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화산이지만 300만 년 전 해저 화산 폭발로 생긴 이스터 섬은 세 개의 거대한 분화구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기생 화산으로 이루어 져 있다. 분화구 절벽에는 이끼처럼 파란 풀들이 돋아나 있고 분화구 안은 마치 달의 표면이나 화성의 표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물웅덩이가 물방울 같은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검은 돌을 주어 돌탑을 쌓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면서 분화구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갔다. 이윽고 바위위에 오롱고(Orongo)라고 쓰인 하얀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은 이 섬에 사는 라파누이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 있는 성역이다.

 

 

새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

오롱고의 조인(鳥人) 의례

 

 

 

 

주변에는 수많은 석실과 바위그림이 있다. 바위에 새겨진 부조는 롱고롱고 문명의 흔적으로 아직도 이 글을 해석하지 못하고 수수께끼에 묻혀 있다고 한다. 세계의 학자들이 해독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롱고롱고의 서판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서판을 판독하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지만 아직까지 성공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암호나 기호가 어떤 단어를 의미한다해도 완벽한 문장이나 문법이 존재할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

 

오롱고에는 53개의 석실과 511개의 바위그림이 있다. 축대로 쌓아 놓은 석실은 마치 비무장지대의 벙커를 연상케 한다. 돌집의 입구는 간신히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석실주변에 흩어진 바위에는 새의 모양이나 물고기 모양을 한 부조, 그리고 알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새겨져 있는데 도대체 수수께끼같은 존재들이다.

 

 

 

 

오롱고 절벽 앞에는 세 개의 작은 바위섬이 조각배처럼 둥둥 떠 있다. 섬의 이름은 모투누이(Motu Nui), 모투 이티(Motu Iti), 모투 카오카오(Motu Kao Kao)이다. 마케마케가 바다새들을 이끌고 피신한 곳이 이 세 개의 섬이었다는 것. 이스터 섬의 최대 종교 행사는 '탕가타 마누(마케마케 신이 변신한 모습, 조인鳥人)'라고 불리는 조인축제다.

 

해마다 남쪽에서 봄이 시작되는 때를 잡아 이곳 오롱고에서 열렸다. 세 섬 중에서 가장 큰 모투 누이 섬에는 철새인 마누 타라(검은제비갈매기가)가 알을 낳기 위하여 날아온다. 조인축제는 이때를 맞추어 열린다. 전사들은 각각 자신의 부하를 한명씩 지명하여 바다의 모투누이 섬에서 마누타라의 알을 갖고 오는 경주를 벌리는 것이다.

 

 

 

 

전사들은 의식용 복장을 하고 '아오의 길'을 따라 석실로 이루어진 오롱고 마을에 당도하여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로 헤엄쳐 간다. 섬에서 검은제비갈매기의 첫 번째 알을 찾아 치열한 경쟁을 벌리는 동안, 오롱고에서는 신들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식이 치러 진다.

 

마누 타라의 알을 가장 먼저 발견한 호푸마누(수영자)는 알을 머리 위에 묶은 바구니에 넣고 오롱고까지 헤엄쳐서 돌아왔다. 그러면 그의 상관인 전사는 머리를 깎고 신관인 백단 나무조각과 적새의 나무껍질 천을 팔에 묶어 주었다. 그것이 조인이 되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조인은 일년동안 종교적, 정치적, 실권을 잡고 섬을 통치한다.

 

 

 

 

 

조인으로 선발된 전사는 신처럼 춤을 추면서 탕가타의 마타베리까지 내려와 동굴에서 인간제물인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이야기이이다. 신적인 존재가 된 조인은 라노 라라크에 있는 조인거주지로 은거하며 부인도 가까이 하지 않고, 전용 화로에서 끓인 것 이외에는 어떠한 음식물도 입에 대지 않고 밖에도 낙지 않는 엄중한 금기 싸서 생활을 했다.

 

한 번 조인이 된 사람은 죽은 후에도 일반인과 구별되는 전용 아후(제단)에 납골되었다. 그는 조인의례가 행해지고 수주일 후에야 비로써 마누 타라의 알이나 고기를 잡는 것이 허락되었다. 1년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그 신성한 알은 힘을 잃게 되고, 힘이 사라진 알은 바다에 던지거나 라노라라쿠의 바위틈에 숨겨두었다. 혹은 나중에 조인이 죽어서 신성한 장소에 묻힐 때에 같이 묻기도 했다. 조인은 은거지에서 나와 이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는 남은 일생동안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았고, 축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태평양의 바람이 윙윙 불어오는 모투 누이 섬을 향해 새처럼 두 팔을 벌려 본다. 좁은 땅 덩어리에서 살아야만 했던 라파누이들은 새가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으리라. 때 마마치 저 멀리 바다 수평선에서 한 마리가 새가 날아온다. 새는 점점 모습이 커지는데 가까이 오니 그것은 란 칠레 비행기였다. 새가 되고 싶었던 라파누이들은 문명이기 덕분에 먼 것으로 날아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조인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일까?

 

 

 

 

오롱고에서 숲 속을 따라 내려오는데, 숲은 유칼립투스 나무들로 들어 차 있고, 알 수 없는 남국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에덴동산과 지상낙원이라는 것은 이런 풍경들을 두고 한 말일까?  우리는 마치 에덴 동산을거니는 아담과 이브처럼 유칼립투수 숲 속을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배낭 하나와 물병, 빵 한 조각 뿐인데 행복하기만 했다.

아침도 커피 한잔과 빵 한조각으로 떼웠지만 배가 고프다던지, 무얼 더 먹고 싶다던지 하는 그런 따위의 생각도 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한 풀숲이 좋고,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감미로운 바람이 좋기만 했다. 아내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적당한 나무가지로 지팡이를 만들고 아무도 없는 유칼리 숲을 거니는 기분은 상쾌하다 못해 날아갈듯한 기분이었다. 이 순간 우리는 숲의 탐험자였고, 아담과 이브였으며, 이 섬을 살가는 여행객이었다. 우리는 조인이 선택한 인간제물을 마케마케 신에게 받쳤다는 동굴을 찾다가 포기했다. 인간제물을 먹는 조인을 상상만해도 아내는 너무마 무섭다는 것. 사람들이 흔적이 전혀 없는 적막한 섬에서 식인동굴을 차는 것 자체가 으스스 해질 수밖에 없는일. 

 

  

기적 같은 빵 한 조각 - 일용한 양식 - 낮잠

 

바닷가로 걸어 내려오니 오후의 태양이 작열하게 비추인다. 그러나 이내 구름이 몰려들어 태양을 가리고 만다. 구름에 태양이 가려져 있건만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푸르다. 파도가 철썩이는 해변을 걷다가 바닷가 어느 원두막에서 한 조각의 빵과 우유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빵 한 조각을 먹고 나니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기적의 빵 한조각이 위장에 포만감을 안겨주고 있다.

 

한 톨의 밀도 생산되지않는 섬에서 한 조각의 빵은 정말 우리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기적과고 같은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빵 한 조각에도 만족을 느끼며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성경에 나오는 '일용한 양식'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까? 서울의 음식점에서 산더미처럼 버려지는 음식물을 생각하면 그저 아찔하기만 하다. 신성한 음식을 버리는 것은 정말 죄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수십킬로미터를 걸어 다녔으니 다리와 몸도 지칠만도 하다. 우리는 배낭을 배게 삼아 원두막 안에 있는 나무의자에 길게 누웠다.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고... 어머니의 품에 안긴듯 우리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잃어버린 문명도, 현대판 문명도 모두 파도 속에 포말을 그리며 바다 속으로 묻혀 버린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시간, 나는 마치 포근한 어머니의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스터 섬, 오롱고에서 찰라 글/사진)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