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서울

[길상사]침묵의 집

찰라777 2009. 9. 5. 07:43

 

▲서울 성북동 길상사  지붕에 널려진 이불, 일광소독을 하기 위해 널어놓은 이 풍경은 도심에서는 볼수 없는 진풍경이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 이런 날은 누구나 일탈을 떠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을 게다. 그러니 역마살이 디룩디룩 낀 나는 어떠하겠는가. 그 어디론가, 세상 밖으로 떠나는 본능이 항상 속에 주리를 틀며 꿈틀대고 있는 사람이 나다.

 

문득 길상사가 가고 싶어졌다. 10년을 법정 스님을 쫓아다니며 기생집에 절을 세워달라는 보살의 시주로 세워진 절! 그 보살만큼 법정스님을 존겨앟고 흠모했던 나는 한 때 길상사이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길상사가 문을 열던 날, 치악산에서 법정스님이 법문을 하러 오던 날, 도심의 생활이 번잡스럽고 머리가 아플 때… 하여간 나는 길상사를 자주 찾아갔다. 그게 벌서 10년 전의 일이다. 오늘 나는 거의 10년 만에 길상사를 찾아가는 샘이다.

 

2호선을 타고, 동대문 운동장에서 다시 4호선을 타고 한성대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갔다. 인터넷은 그렇게 자세하게 나를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길상사로 가는 셔틀버스는 11시에 오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10시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일반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서 내려 길상사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내가 가게에서 길상사로 가는 길을 묻자 앞에 걸어가던 보살이 따라오라고 한다. 보살님은 친절하게 길을 안내 해준다. 9월이지만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골목길을 올라가는데 등줄기에 담이 베인다. 그러나 성북동의 주택가는 나무들이 많아 벌써 절 냄새가 난다.

 

삼각산 근본도량 길상사. 비단결에 가무를 하며 술을 따라주던 기생들의 발자취가 배어 있다 곳, 그 가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젠 모두가 늙은 보살이 되어 도를 깨치거나 극락세계에 있겠지. 그렇게 심신을 희생하여 보시를 했으니…

 

 

 

 

문을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땀방울 을 식힌다. 법당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푸르고 푸르다. 그 푸른 하늘에 비단 옷을 걸친 가희들이 무지개를 타고 춤을 추며 극락세계를 소통하고 있는 것 같다. 푸른 하늘을 적시는 초록의 나무들이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다.

 

법당에서는 목탁소리에 맞추어 스님의 우렁찬 염불소리와 신도들의 염불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흘러나온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방보살…" 백중을 맞이하여 지장기도를 드리는 모양이다. 눈이 오던 날, 비가 오던 날, 꽃이 피던 날, 낙엽이 지던 날… 법정 스님은 짝수 되는 날에 치악산에서 내려와 딱 1시간의 법문을 했다.

 

"중은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별로 할 말도 없는 데 벌써 한 시간이 되었군요."

 

산승은 그렇게 법문을 끝내곤 했다. 매우 추운 겨울에 법문을 하시는 스님을 뵙고 눈물이 날것만 같은 때도 있었다. 저 가녀린 몸에 홀로 얼음을 깨고 손수 밥을 지어 먹고, 홀로 사는 즐거움을 맛본다는 스님! 

 

사원의 마당, 나무 밑에는 여유로운 대화의 장이 열리고 있다. 도심의 시름을 풀어 놓고 야단 법석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 부처님의 말씀만 야단법석인가? 서로 주고 받는 일상의 대화가 드대로 법문이 아니겠는가?

 

나는 법당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설법전을 돌아 선방으로 난 길을 걸어갔다. 설법전 앞에는 서있는 작은 반가사유상이 고즈넉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법당 뒤 담벼락에는 붉은 능소화가 마지막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저건!"

나는 법당 지붕을 보고 놀랐다. 지붕에는 솜으로 만든 이불과 담요가 현란하게 널려 있었다. 일광소독을 하고 있는 절집 풍경이다. 고 모습이 얼마나 정감이 가고 가슴을 적시던지, 나는 입을 벌리고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회색 빌딩 숲으로 가려진 서울의 뒤안길에 이런 절집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선방 마당에 들어서니 70을 넘은 듯 한 노인들이 앞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아마 쉬는 시간인 모양이다. 나는 선객들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했다.

 

"묵언정진"

 

선객들이 하나 둘 선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선객들을 따라 들어가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하는 좌선인지라 선이 아니라 그만 수면의 바다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비몽사몽간에 1시간이 참선을 한 나는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침묵의 집"

 

계곡 옆에는 이런 팻말을 걸어놓은 방이 있었다. 그전에 없었던 방이었다. 스님들이 거쳐 하는 방도 그전 초가집에서 통나무집으로 변해 있었다. 극락전 옆에 있던 공양간도 지장전을 새로 건축하여 지하 1층에 다로 정갈스럽게 지어져 있었다. 공양간으로 간 나는 맬겁시 절밥만 한 그릇 축을 냈다. 콩나물, 김치, 미역국, 고추장, 떡, 빠나나 …

 

지장전에는 도서관도 있었다. 찻집과 나무그늘, 계곡 옆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를 마시는 보살님들이 선량처럼 보이기만 했다. 법당에는 기도가, 나무 밑에는 야단법석이, 선방에는 좌선이…… 길상사는 그렇게 도를 닦는 도량으로 변해 있었다.

 

침묵의 방으로 들어간 나는 다시 벽을 향해 앉았다. 무엇을 찾는가?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 무얼 하고 앉아 있는가? 그냥 앉아 있다. 우매 한 중생은 다시 잠이 왔다. 그렇게 꾸벅 꾸벅 졸다가 나는 4시 15분네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길상사를 내려왔다.


참선을 한 탓일까?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몸과 마음이 개운했다.
비록 졸면서 한 참선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