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지리산에 숨겨진 아미타세계, 서암정사 ②

찰라777 2009. 9. 30. 11:28

 

지리산에 칠선계곡에 숨겨진 아미타세계

조형예술의 극치, 서암정사②

 

 

 

▲서암정사 석굴법당 내부. 우측 가운데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관세음보살(좌)과 대세지보살(우)이 협시를 하고 있다.

 

 

화엄경 60만자를 사경한 원응스님의 대원력의 결정체

 

안양문을 열고 석굴법당에 들어서니 "와~"소리만 나온다. 우리 일행은 아내와 신 선생 그리고 아내의 친구, 네 사람이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와아!" 소리뿐이다. 석굴법당은 동서남북 사유상하 사방이 불보살의 조각으로 빼꼭히 물결치고 있다. 어찌 인간의 손으로 저렇게 정밀하게 한 치의 틈도 없이 조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했거늘 우매한 중생은 상을 쫓는다. 여기 서 있는 이중생도 상(相)을 쫓는 우매한 중생. 이 석굴을 조성한 원응 스님은 석굴을 조성한 불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의 참모습은 형상에 있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형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형상을 통해 부처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기 위한 것이 불사입니다. 그 불사를 통해 부처님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부처님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 그게 바로 중생제도라. 모든 불사는 바로 불심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설치예술이다."

 

“자기 모습을 지워가는 게 참수행이라 봅니다. 이것이 내가 한 불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옳은 불사가 아닙니다. 나도 내 모습을 모두 지우지 못한 사람이지만 내 모습을 지우는 것이 참수행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이 내 나름대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세계를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마지막에 가서 그런 그림자마저 지우는 것이 수행이라고 봐요.”

 

인도의 아잔타 석굴, 실크로드의 둔황 막고굴, 중국 낙양의 용문석굴이 부처님의 형상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상을 쫒는 이 중생은 서암정사의 석굴에 그만 흠뻑 빠지고 만다.

 

화엄경 60여 만자 사경(寫經)으로 널리 알려진 원응(元應)스님. 서암정사는 스님의 대원력으로 세워졌다. 20대 후반 조용한 수행 처를 찾던 중 흰 구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지리산 벽송사다. 감자를 심어 끼니를 때우고, 산더미 같은 일을 해내며 이어가는 수행은 고달프기 그지없었다. 너무나 힘이 들어 떠나 버릴까 하는 마음이 수차례 일어났지만 탈금(脫金)이 다 되어 까만 모습으로 변한 부처님을 들여다보며 폐허를 일구어 벽송사를 중창해 냈다. (▲사진 : 서암정사를 창건한 원응 스님)

 

스님은 어느 날 포행을 하던 중 벽송사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지금의 서암정사 석굴 법당 전면에 다다랐다. 갖가지 바위들이 온갖 형상으로 숲 속에 감추어져 있고, 앞산 연화봉은 장엄하게 솟아올라 석양의 햇빛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 어찌 억겁의 세월을 숲 속에 숨겨져 사람의 인연을 기다리는 성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여기가 만년도량 자리로다.” 스님은 이렇게 확신하고 불사를 시작했다. 1975년 처음 터를 고르고 1988년에는 주변 부지를 매입해 본격적인 불사에 들어갔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조성한 석굴법당은 1989년 6월부터 조각을 시작해 10여년만인 2001년 완공했다.

 

이렇게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이루어진 장소에 원응스님의 원력과 수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며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이다.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극락전으로서 아미타불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시고 있다 석굴법당은 자연 적으로 존재하는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 주로 양각(陽刻)의 조각방식을 활용해 아미타경의 내용을 구현하고 있다.

 

양각이란 가공된 공예품에 문양을 두드러지게 돌출시키는 시문기법(施紋技法)을 말한다. 우선 그려진 문양을 공예품의 판에 대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 밑그림에 따라 문양의 외곽을 음각한다. 그런 후에 둥근 칼이나 매칼로 문양 부위를 따라 문양 이외의 부분을 깎아낸 다음, 문양 부분의 음양 높낮이를 조각한다. 마무리 작업으로, 어피(魚皮)나 속새를 이용하여 면을 고르고, 호도기름을 칠하여 문지르거나 옻칠로 도장하여 표면 문양을 마감한다.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에 이처럼 양각기법을 통하여 아미타경의 내용을 음각해 놓은 하나의 거대한 아미타불경 서사시다. 밑그림을 그린 화가와 이를 깎아낸 석공들의 혼이 심어져 있는 법당은 장엄 그대로다.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석공들은 장엄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돌을 깎는데 만 열중 하였을 것이다. 불법을 상이 아닌 마음으로 보라고 했다. 나는 이 석굴법당에 조각된 불 세계에서 10년을 두고 조각해 열중해온 석공들의 공들인 마음을 본다. 그 석공들의 마음을 따라 좀 더 자세히 법당을 돌아보자.

 

 

석굴 안에 펼쳐진 장엄한 아미타불 세계

 

석굴법당은 극락전으로서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팔보살,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법장비구, 타방세계, 신장단, 현왕단 등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조각되어 있다. 벽면의 여백에는 구름과 물결 이 불 세계를 장엄하고 있다. 이는 불보살의 원대한 서원과 무한한 불법의 세계를 싱징 한다.

 

또한 십장생을 비롯한 갖가지 동식물과 연꽃이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극락세계를 우리 전통에 맞추어 이상향의 모습을 접목시킨 것이라고 한다. 법당에는 비구 스님이 홀로 앉아 사시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아미타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고 스님의 예불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수를 한 채 꽃발을 디디며 조용히 경내를 돌아본다.  

 

 ▲아미티불 좌측에 감로수병과 연꽃을 들고 서 있는 관세음보살 

 

 

본존불 좌보처에는 관세음보살이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오른손에 자비의 감로수병, 왼손에는 감로수병에서 커 나온 연꽃을 쥐고 있다. 감로수 목마른 중생의 목을 적셔주고 연꽃은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물들지 않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관세음보살은 관음보살, 관자재보살로 불리는 보살로서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한다.

 

고난에 빠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끝없는 방편으로 중생세간에 임하시어 32응신(應身)으로 나투어 중생과 호흡을 같이 한다. 어려움에 처한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즉시에 응하시어 고통을 면하게 해주신다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아미타 본존불 우보처불인 대세지보살은 지혜광명을 두루비치어 중생의 무명을 녹여준다.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우보처존에는 대세지보살이 머리에는 지혜의 보병을 이고 두 손으로 연꽃을 들고 있다. 대세지보살은 지혜광명을 온 십방(十方)에 두루 비치어 삼도고(三途苦-지옥, 아귀, 축생)를 녹이고 무명의 적을 파하는 큰 힘을 보여준다. 대세지 보살이 발을 디디면 삼천 대천 세계와 마군(魔群)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정수리에 보배병을 얹고 있으며 항상 아미타불의 바른편에 시립한다. 아미타불이 임종하는 중생을 맞이하러 올 때 연꽃을 든 관음보살과 함께 합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보살이다. 이 보살의 보배관은 500가지의 보배로 장식되어져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배꽃에는 500여개의 보배꽃받침이 있으며, 그 낱낱의 꽃받침에는 시방세계의 청정 미묘한 불국토의 드넓은 모습이 다 나타나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육환장과 보주를 들고 지옥중생을 마지말까지 제도한 후 성불을 하겠다는 굳은 서원을 세우보살이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는 지장보살이 오른 손에 육환장을 들고, 왼손에는 지혜의 보주를 들고 있다. 보주에서 나오는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의 무명을 깨우치고, 육환장이 진동하는 곳에 지옥의 철성을 무너뜨린다. 지장보살은 이미 부처의 경지에 있지만 지옥중생들을 모두 구제하여 해탈을 시킨 후에 성불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살신보살이다.

 

연화대에 앉아있는 지장보살 왼쪽에는 도명존자, 오른쪽에는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도명존자는 중국개원사의 승려로서 사후세계를 경험한 후 지장보살을 협시가 되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주는 왕으로 지장보살의 안내자로 등장한다. 지장보살이 왼손에 들고 있는 보주는 지장보살의 몸과 일체로 연결된 돌을 연마하여 진주빛 구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석굴법당 중심부에는 석주가 무게를 잡아주고 있다. 원통으로 깎은 석주에는 가지가지 형상의 불세계와 구름을 일으키며 출몰 자재하는 쌍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석주는 시야를 가리는 방해열주가 아니라 오히려 벽면의 조각과 어울려 안정감을 준다.

 

 ▲나한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깨달아 번뇌를 끊어버린, 중생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성자다.

 

 

나한이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깨달아 모든 번뇌를 끊고 참 지혜를 얻은 성자를 말한다. 나한들은 화반과 지팡이 도는 연꽃을 들고 있거나, 입을 가리고 웃기도 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천진무구한 모습으로 서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상징하는 근엄한 존재라면 나한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익살스런 존재다.

 

나한은 중생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한을 조성한 시대에 민중은 어떤 애환을 담고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비춰준다. 또한 나한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개성 있는 나한의 얼굴에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어떤 모습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한전에는 흔히 500나한, 1250나한이 모셔져 있다. 나는 과연 어떤 나한의 모습인가.  불자가 아니라도 나한전을 찾아가 나와 꼭 닮은 아라한의 얼굴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관세음보살을 협시하는 순진무구한 남순동자의 모습

 

 

남순동자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순동자는 관세음보살의 좌보 처로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바닷가의 외로운 섬에 계시면서 항상 말씀 없이 온화한 미소를 띠고 계시지만, 말씀 없는 가운데 항상 푸른 버들잎과 대나무를 통하여 법문하고 계시며, 남순동자는 그 법문을 들음 없는 가운데서도 잘 듣고서 관세음보살님의 뜻을 잘 받들고 있다. 우리가 참으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기 위해서는 남순동자와 같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될 것이다.

 

  

 ▲불법을 호위하는 신장단

 

 

석굴법당의 극락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면에 보이는 것이 신장단이다. 신장(神將)은 불법을 옹호하는 선신으로서 화엄사상의 39위 신장을 위시해 많은 신장이 있다. 신장단에는 합장을 한 중앙의 동진보안보살(童眞菩眼菩薩)을 위시해 각기 다른 복장에 다른 병기를 지닌 신장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신장단 맞은편 벽면 상단에도 두 분의 신장이 남 자를 옹호 하면서 금방이라도 잡신을 내리칠 자세로 서 있다.

 

 

▲저승의 10대 시왕중 다섯번째 대왕인 염라대왕 

 

 

염라대왕은 시왕(十王) 중 하나다. 즉 시왕 중 다섯 번째 대왕으로 죄인의 혀를 집게로 뽑는 발설지옥을 관장한다. 사람의 육십갑자 중 그가 다루는 것은 경자생과 신축생·임인생·계유생·갑신생·을 사생이며, 탄생일은 3월 8일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은 저승의 10명의 대왕중의 한 명이다. 죽으면 바로 염라대왕에게 가는 것이 아니며. 불교의 사당에서는 명부전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서 이 왕들의 심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아미타불을 제외한 무수한 세계의 보살을 표현한 타방세계

 

 

타방세계 불보살은 아미타불의 세계를 제외한 다른 무수한 세계의 보살을 의미한다. 타방세계 불보살은 석굴법당의 벽면 상단 각처에 다수 부조되어 있다. 여기서 타방세계 불보살은 아미타불이 구현해 놓은 극락세계의 장엄함과 거룩함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 외에도 수보리존자, 법장비구, 10대 제자를 비록해서 법당안은 아미타불세계가 장엄하게 새겨져 있다.

 

 

▲석굴법당 안양문에서 바라본 칠선계속과 연화봉. 푸른 하늘과 청량한 산이 바라보니 불국토를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석공들의 장인정신으로 조각된 조형예술의 극치

 

석굴법당을 하나하나 돌아본 후 합장배례하고 안양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발아래 눈부신 햇빛이 부서지고 있다. 석공들은 무슨 마음으로 돌을 연마하고 부처님을 조각하였을까? 서암정사의 석굴법당을 조성하기까지는 원응스님의 대원력과 사주들의 정성어린 시주 공덕도 크지만, 나는 저 거대한 돌을 깎아내어 불단을 조상한 석공들의 공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돌을 깎고 연마하며 칼과 끌로 조각에 열중하고 있었을 석공들을 생각하노라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여기 서암정사의 홈 페이지에 실린 석공들의 영험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암정사의 석굴조각은 홍덕회, 이종원, 이승재, 이금원, 이인호, 맹갑옥 석공들이 수행 정진하는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과 노력에 힘입어 한 치의 흘림 없이 조각을 완성했다고 한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시작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법당의 여러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 주산신과 독수성은 맹갑옥 석공이 겉석을 치고 홍석희 석공이 세조각(細彫刻 )으로 마무리 했다. 사천왕상과 비로전은 이종원 석공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고 배송대는 이금원 석공이, 용왕단은 이인호 석공이 각각 조각했다

 

여러 석공 중에서 특히 홍덕희 석공은 서암정사에서 10년 이상 머물면서 석굴법당을 위시해 사자굴의 모든 조각을 마무리 했다. 그는 33세 때 서암정사에 들어와 10여 년 동안을 굴법당 조각에 전념하다 44세가 되어서야 제대로 햇빛을 보았다고 한다.

 

젊은 석공은 매일 아침 목욕을 하고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쪼았다 한다. 들리는 것은 연못의 물줄기 소리 뿐, 연못 아래에는 그가 거처하던 굴피집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장인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홍덕희 석공은 이 시대의 아사달이 아닐까? 때가 되면 그를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험한 장소에서 도량을 조성하다보니 뜻밖의 사고로 자칫 불사가 중단될 뻔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여 년 전, 지금의 사천왕성 맞은편에 있는 돌탑을 쌓을 때였다. 탑 쌍기를 끝낼 무렵 점심시간이 되어 일꾼들을 태워 경운기를 재조한 짐차를 몰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렸다.

 

운전자를 포함해 일곱 명이 탄 짐차는 걷잡을 수 없이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짐차가 쌓고 있던 탑에 부딪혀 탑을 무너뜨리고 멈춘 덕분에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대형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점검해보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무너진 돌 더미 속에서 옷자락이 내다 보였다. 황급 결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무너진 돌 더미를 치워내자 탑 쌓는 기술자가 모로 누워 기절한 채 돌 밑에 깔려 있었다. 호흡도 거의 끊어져 있었으나 한 참 뒤에야 돌아왔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한 결과 갈비뼈 3대만 부러지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이 사람은 사고가 나는 순간 비몽사몽간에 흰옷을 입은 노인이 자신을 밀어 올리는 것을 느낀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입원해 있을 때도 같은 노인이 나타나 밀치는 바람에 병상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상처로 인하여 신체가 허약해지고 정신이 극도로 혼미해질 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이라는 것.

 

 

▲비로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대나무가 싱그럽다.

 

 

안양문 우측에 관세음보살이 따라주는 감로수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푸르고 허공엔 흰 구름이 몇 조각 둥둥 떠가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른 후 우리 일행은 석굴법당 위에 있는 비로전으로 향했다.

 

 

(참고 자료 :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법당내의 서암정사의 홈피 갤러리 사진을 인용하였으며, 조성과정, 조각에 대한 설명, 조성 경위도 동 홈페이지를 인용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리산 서암정사에서 찰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