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지리산 칠선계곡에 펼쳐진 화엄세계, 서암정사①

찰라777 2009. 9. 29. 09:25

 

지리산 칠선계곡에 펼쳐진 화엄세계

조형예술의 극치, 서암정사①

 

 

▲ 노고단에서 바라본 초가을의 하늘, 조각구름이 제행이 무상함을 말해주듯 푸른하늘에 떠간다.

 

순천에 가면 인물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던가? 2번 국도를 타고 순천에 도착한 나는 우연히 지기의 소개로 신현우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를 보자 어쩐지 기운이 넘치는 어떤 기가 느껴졌다.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을 지키며 살아온 인간 신현우.


"신 선생님을 뵙고 나니 어쩐지 지리산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지리산에 어디에 신 선생님처럼  기가 넘치는 곳이라도 있나요?"
"있지요. 제가 가끔 가는 곳인데, 기가 막힌 곳입니다."
"거기가 어디지요? 가보고 싶군요."

"칠선계곡에 자리한 서암정사란 곳입니다. 만약에 가보시겠다면 제가 안내를 해드리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기꺼이 가고 싶군요."


그렇게 해서 다음 날 우리는 신사장의 안내로 칠선계곡 서암정사로 향했다. 아침 8시 순천을 출발하여 노고단을 넘고 뱀사골을 지나 칠선계곡으로 향했다. 초가을 지리산은 푸른 하늘아래 단풍이 살짝 물들어 가고 있었다. 노고단에 오르니 날씨가 서늘하다.

 

 

▲노고단에서바라본 지리산 반야봉 하늘, 신성한 기운이 서려있음을 느낀다.

 

구불구불 뱀사골을 계곡을 타고 내려와 칠선계속으로 들어서니 산세가 수려하다.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펼쳐지는 칠선계곡은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천왕봉 정상에서 장장 18km에 걸쳐 길게 뻗어있다.

 

"여긴 워낙 계곡이 깊어 여름에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삽시간에 계곡 전체가 폭포수로 변하고 맙니다. 계곡물은 사나운 노도와 같이 물줄기를 뿜어대어 금 새 계곡을 채우므로 비가 내리면 무조건 계곡을 피래 산등성이로 도망을 가여 하지요."
"아하, 그렇겠군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이 워낙 깊고 험준하여 아무나 등산을 허락하지 않지요.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죽음의 골짜기가 많아 히말라야 원정 등반에 앞서 겨울에 칠선계곡에서 빙폭 훈련 등방을 하기도 한답니다."


마천면 소재지에 도착하여 잠시 한숨을 고르고 벽송사 이정표를 따라 아치형으로 세워진 교각을 지나가니 드디어 서암정사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나온다. 벽송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정중하게 합장을 한 돌부처가 서 있다. 합장을 하고 있는 돌부처에 새겨진 글이 마음을 고추 세우게 한다. 급경사를 올라와 차오른 숨을 고르게 하는 돌부처의 미소가 가슴에 스며든다.

 

 ▲서암정사 입구에 서있는 불상

 

 

경건한 마음가짐 그 얼굴 거룩하고
어지러운 행동거지 스스로 몸을 더럽힌다

 

돌부처를 지나니 천년을 묵었을 고목나무가 두 팔을 벌리듯 푸른 허공에 서 있다. 담쟁 넝쿨이 휘어감아 오르는 고목은 제행이 무상함을 보여주듯 허허롭다. 무릇 변하지 없는 것은 없느니라. 세월이 지나면 모두가 나처럼 변해 가느니라. 고목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천년을 묵었을 고목이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리고 있다.

 

고목을 지나니 일주문을 가름하는 두 개의 우람한 바위가 양쪽에 서 있다. 바위는 천혜의 요새를 지키듯 견고하게 서있다. 그 일주문을 지나니 두 개의 돌탑이 나그네를 반긴다. 바이 사이로 보이는 초가을 푸른 하늘이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것 같다. 아아, 푸고 푸르다!

 

 

 ▲일주문을 대신하는 바위와 석탑


百年江河萬溪流(백년강하만계류) 수많은 강물 만 갈래로 시내가 흐른 물은
同歸大海一味水(동귀대해일미수) 큰 바다로 돌아가면 모두 다 한 물 맛이로다

 

물맛이 다 다르다고 콩이야 팥이야,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결국 바다에 이르면 다 같은 짠 맛이 아니겠는가? 이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렷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지나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이 지향하는 마음은 하나라는 뜻이리라. 돌기둥에 물결치듯 새겨진 의미심장한 글씨를 바라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돌기둥을 지나 10여 미터를 올라가면 또 다른 두 개의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민둥한 앞의 사각기둥과는 달리 기둥 전체가 용의 무늬로 꿈틀거리는 조각은 웅장함께 함께 힘찬 기개와 위엄을 느끼게 한다. 돌에 새겨진 조각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듯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조각 한뼘, 글씨 한자 한자가 예사롭지 않다.

 

 

 

 

摩河大法王 (마하대법왕)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서는
調御三千界 (조어삼천계) 온 세상을 조화롭게 이끄시도다

 

힘찬 필치로 조각된 글씨는 무언의 힘을 느끼게 한다. 돌기둥 뒤로는 곧 바로 계단이 이어지고 돌계단 양 옆에는 자연암반에 감실형태로 안을 파내어 섬세하게 양각을 한 사천왕이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 감실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죄지은 자를 벌하겠다는 역동적인 모습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한다.

 

사대천왕은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과 불자를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암반에 조각된 사대천왕의 기개는 일반 사찰문에 서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힘을 느끼게 한다. 석주 쪽에서부터 남방증장천왕(검을 들고 있다), 서광목천왕(여의주를 들고 용을 데리고 있다), 동방지국천왕(왼쪽 발치에 비파를 놓고 있다), 북방다문천왕(오른손에 보탑을 들고 있다)의 순서로 부조되어 있는데, 이는 경주 석굴암의 사천왕을 본떠 조각을 한 것이라고 한다.

 

 

▲남방증장천왕 

 

▲서광목천왕 

 

▲동방지국천왕 

 

 ▲북방다문천왕

 

사대천왕의 위엄을 느끼며 한발 한발 옮기다 보면 대방광문(大方廣門)이 나온다. 대화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민족의 영산에 펼쳐진 대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좁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리고 무한광명의 비로자나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라는 문인가? 사대천왕의 검증과 호위를 받으며 들어가는 대방광문은 예사문이 아니다.

 

 

 

 ▲석굴법당으로 들어가는 대방광문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고 돈다.

 

동굴을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돈다. 이윽고 동굴 앞에는 오래된 미타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절을 짓기전 원응스님이 석굴법당 전면에 도달했을 때 사람이 일부러 깎아놓은 듯한 거암을 보고 몸과 시선이 굳어진 듯 멈추었다고 한다.

 

"여기로구나, 아! 좋구나!"


바위마다 갖가지 모형을 이루고 있어 신비스러운 기운이 넘쳐흘렀다는 것.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부처님의 영산회상, 그리고 아미타상을 상상했다. 스님은 전쟁의 참화로 지리산 주변에서 희생된 무수한 원혼을 달래고, 첨예하게 대립된 남북 냉전의 벽을 허물어 인류평화를 기원하며 부처님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미타굴, 현판글시는 서암정사를 창건한 원응스님 필치다. 쉿~! 표시가 귀엽다. 

 

미타굴 앞뜰에는 자목련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미타굴을 지나 석굴 앞에 당도하니 아기자기한 정원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 종루 옆에는 거대한 우산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바위틈새에 잘 가꾸어진 나무, 그 나무들 사이로 크고 작은 불탑과 불상들이 불국토의 동산을 이루고 있다. 반송 밑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와불 상이 방문객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칠선계곡 위에 펼쳐진 화엄세계.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다. 저 바위동산안에 석굴법당이 있다.

 

▲종루와 소나무 

 

▲반송 아래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와상은 속세의 바쁜 마음을 쉬게 해준다.


부처님의 상스러운 기운(瑞)이 충만한 바위(岩)에 조성된 서암정사. 석굴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는 '하심(下心)'이란 붉은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하심을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절에 찾아가 108배, 1080배, 3000배를 하는 것도 아상을 뽑아내고 자신을 낮추어 하심을 내기위한 것이 아닌가!

 

나는 합장배례 하심으로 내 마음을 낮추고 안양문(安養門)으로 향했다. 석굴법당은 두 개의 출입문이 있다. 하나는 안양문이요, 다른 하나는 극락전이다. '안양'은 '극락'세계이니 이 문을 통과하면 곡 극락세계로 진입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안양문 양쪽에 새겨진 음각이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적굴법당으로 들어나는 안양문

 

 

念念彌陀佛 (염념미타불)   생각 생각 아미타불 염불하면서
步步安養國 (보보안양국)   걸음 걸음 극락국에 들어가소서

 

안양문 왼쪽에는 반가부좌를 한 관세음보살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중생을 굽어보고 있다. 불상은 크지 않으나 감실 안을 깊게 파내어 광배는 물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과 연꽃, 장신구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안양문 입구에는 관세음보살이 감로수를 흘러보내주고 있다.

 

안양문 오른쪽에는 감로병을 든 관세음보살이 감로수를 졸졸 흘러내려주고 있다. 왼손에 염주를 들고 오른손에 감로병을 든 채 자비스럽게 미소를 짓는 모습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감로병 위에는 두 동자가 색안경을 코에 걸치고 천진스럽게 서 있다.


"찰라님, 안양문을 들어서면 아마 크게 놀라실 겁니다."
"그래요!"

 


안양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를 힐끗 돌아보니 칠선계곡넘어 지리산 능선이 켜켜이 성벽을 쌓아 놓은 듯 서 있다. 사바세계와 극락세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석굴법당에 펼쳐진 극락세계란 어떤 것일까? 나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열어준 안양문 안으로 들어갔다.

 

 

(지리산 칠선계곡 서암정사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