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내변산 월명암]수선화의 미소

찰라777 2010. 5. 5. 22:38

 

산아래 운무가 별쳐진 곳

아름다운 연등이 걸려 있는 곳

침묵의 선정이 감도는 곳

소리의 언어가 필요없는 곳....

하룻밤을 지샌 월명암의 아침!

 

 

 

수선화는 고요하게 피어

무엇인가 말하려 한다.

 

 

그러나 중생은 알아듣지 못한다.

 

 

대웅전 앞에서 수선화는

활짝피어나며 다시 말한다.

 

 

그래도 중생은 알아듣지 못한다.

 

 

소리지르는 등산객에게

 

 

길 가에서도

 

 

산 벚꽃 밑에서도

 

 

종루 곁에서도

 

 

연등 밑에서도

 

 

뜰에서도

 

 

배롱나무 밑에서도

 

 

담벼락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미소로 말을 하건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 때다!

복슬이 한마리가 어디선가

어슬렁 어슬렁 기어나오더니

비시시 미소를 짓는다

오직 복슬이 만이

비시시 미소를 짓는다.

가섭존자처럼...

복슬아, 너 정말 가섭의 환생이니?

 

 

 

보리수나무 아래에서의 사십 구일이 지난 후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출가 후 품고 있던 그 오랜 소망을  마침내 이뤄낸 것이다. 자신의 성취를 잠시 음미한 후에 그는 곧 새로운 목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도달한 경지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소망은 처음의 목표보다 훨씬 더 이루기 어려웠다. 열반에 이르는 팔만 사천가지의 방편을 그는 대중에게 전했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항상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이르러 그는 침묵해야 했다. 그것은 언외언, 불립문자의 세계였다. 무언가를 가리켰지만 모두 그의 손가락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제자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던 그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꽃을 들었다. 그 순간 그는 제자 가섭이 조용히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그 미소는 언외의 것을 설명하려는 안타까움과 그것을 남김 없이 이해하는데서 오는 미소였다. 또한 나도 당신과 같은 것을 보았다는 동류 의식에서 나오는 미소이기도 했다. 부처는 자신이 두번째 소망을 이루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났다.

 

불교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줄어든 승려들과 신도의 숫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석가모니로부터 이어져온 깨달음의 불빛이 너무나 미약해진 것이다. 수천년전에 시작되어 한때 햇불처럼 타오르던 그 불빛은 이제 단 한명의 노승에 의해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석탄일을 맞아 도량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노승은 사자후를 뿜어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럴수록 다음 세대로 깨달음의 불빛을 넘겨야 한다는 소명 의식은 강해졌다. 조바심에 장내를 둘러보았지만 자신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각자(覺子)의 모습을 느낄수는 없었다. 노승이 말을 멈추자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바로 그 때였다.

 

복슬복슬한 개 한마리가 마당에 앉아 가섭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놓지지 않았다.

복슬이는 수선화의 미소처럼 빙그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월명암에서 20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