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구례장날

찰라777 2010. 7. 20. 11:41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구례장

  

 

▲구례장날 모습

 

 

오늘은 구례 장날이다. 구례 장은 3, 8일장으로 5일 만에 한 번씩 열린다고 한다. 하동 장은 1,6일장이니 구례와 하동의 중간에 사는 우리는 1, 3, 6, 8로 장에 가고 싶으면 2~3일에 한 번씩 갈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간전면 수평리에서 구례읍까지는 그리 멀지가 않다. 구례읍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간전교를 지나 19번 도로를 타고 토지면과 화엄사 입구를 지나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섬진강 남쪽 861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문척교를 건너가는 방법이다.

 

그 어떤 길을 타더라도 거리는 엇비슷하다. 토지면을 지나는 것이 1km 정도 가깝지만 그 도로는 차량통행이 많고, 속도계도 많아 운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에 비하면 861번 도로는 아주 한적하고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로 이 길을 이용한다.

 

10시경에 집을 나와 들판을 가로 질러 가는데 푸른색이 아주 상쾌하다. 더구나 계속 비가 내린지라 만물이 물을 먹어 훨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간전면으로 나가는 길 양편에는 노란 금송화(아직 꽃 종류를 확실히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노란 금색이라 그렇게 불러 두자)가 활짝 웃고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 '섬진강 벚꽃길' 문척면

 

간전면 사무소에서 좌회전을 하면 861번 1차선 도로가 섬진강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놓여 있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섬진강 벚꽃길"로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길 중에서 가장 멋들어진 길이다.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구례를 대표하는 이 길은 약 3km 가량의 벚나무 가로수 길이다.

 

곡성군 압록유원지에서부터 시작되어 17번국도 구례방면-유곡유원지-구례군 문척면-간전면-남도대교-하동군 화개면-토지면 외곡검문소-피아골 연곡사 로 이어지는 이 길은 봄이면 하얀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되며, 가을이 오면 빨간 벚나무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이 길은 드라이브 코스는 물론, 걷기, 자전거 하이킹, 마라톤 코스로도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더욱이 요즈음은 지리산 둘레길이 큰 호응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서 간다. 오늘도 젊은 친구들 세 명이 커다란 배낭을 걸머지고 비를 맞으며 강변을 따라 걷고 있다. 아마 이들은 밤에는 텐트를 치고 자는 배낭족인가 보다.

 

 

▲벚꽃나무 터널 

 

"구례읍까지 가는 동안 이렇게 완벽하게 푸른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콘크리트 숲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서울이 도저히 상상이 안가요."

"흠~ 그래. 그럼 자주 내려오너라."

"네, 유럽에서 돌아오면 앞으로 작업을 여기서 해야 할까봐요"

"조오치"

 

그제 서울로 돌아가는 둘째를 태우고 구례읍 터미널로 가던 중 경이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쏟아낸 말이다. 경이는 8월초에 프랑스와 이태리 등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삽화를 그리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경이는 유럽의 미술관과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부분도 돌아볼 겸 한달 간이 유럽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란다.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풍경 속에서 영감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척면사무소 가까이 다다르니 진짜 벚꽃나무가 하늘을 덮으며 완벽한 터널을 이루고 있다. 비를 머금은 푸른 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길손을 즐겁게 한다. 이런 길은 걸어가야 하는데, 자동차 매연을 뿜으며 가자니 나무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문척교를 지나면 이윽고 구례읍이다. 우리가 사는 수평리에서는 약 10km의 길인데 시간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막히지 않고, 신호등이 없으니 시간이 걸릴 턱이 없다. 문척교를 지나는데 이번에 내린 비로 섬진강의 수위가 찰랑찰랑 하게 올라와 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이라는 곳이 그 시원지라고 한다. 지난번 서울에서 이곳으로 올 때 간판을 보아둔 적이 있는데, 이번 여름에 시간을 내어 답사를 갈 예정이다. 데미샘에서 옥정호를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섬진강은 주변에 공장시설이 없어 매우 청정한 물길이다.

 

 

 

▲구례장날 풍경  

 

 

구례 장에 도착을 하니 비가 오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오가고 있다. 장날은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날이다. 구례 장은 의외로 크다. 여수와 벌교 등 항구가 가까운지라 해물도 풍성하다. 게들이 설설 기어 다니고, 갈치, 고등어, 문어 등 싱싱한 생선들이 많이 나와 있다. 아내와 나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지나가는데, 장판을 펴놓은 아주머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이 상치 겁나게 맛이어유. 밭에서 금방 따온 것인 게."

"갈치 좀 사유. 싱싱해요."

"이 게는 지금 막 잡아 왔시유."

 

그저 구경만 해도 배가 부르다. 아내는 상치 값이 금값이 되어 버렸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장마 때문에 2000원에 한바구니 주던 상치가 단 하룻 새에 배로 줄어 들어들었다고 한다. 상추, 수박 한통, 꽃게, 통닭, 고추, 맛, 쓰레기봉투 등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사들고 길가에서 파는 따뜻한 도넛 3개를 사서 한입 우물거리며 장터를 나오는 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값은 서울에 비하면 대부분 싸다. 그러나 공산품은 비싸다.

 

 

▲장마로 강수위가 크게 불어난 섬진강. 강 너머로 지리산이 구름에 싸여 시비하게 보인이다.

 

 

장터나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둘러보는 맛이 난다. 다시 문척교를 지나 집으로 오는데 구름이 지리산 허리를 휘감고 있다. 강물이 띠를 이루고 하얀 구름에 싸인 신비한 지리산을 바라보노라니 꼭 네팔의 포카라나 알프스의 어느 동네에 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정겨운 풍경이 어디 외국의 낯설은 풍경에 비하겠는가?

 

"오늘 점심은 게장 국에 맛살을 풀어 국을 끓여 먹지요."

"그거 대길인데."

 

그런데…… 집에 돌아와 꽃게를 잡던 아내에게 전혀 상상치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에고, 정말 신문의 가십난에 날 희귀한 사건이 일어났다.

 

엇! 새벽에 청소를 하라고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있다. 동네 사람 눈밖에 나지 않으려면 빗자루 들고 마을회관으로 가야 한다. 아니 당연히 협조를 해야 할 일. 그러나 시골은 시도때도 없이 마이크 방송을 한다. 우리집은 바로 마을회관과 붙어 있어 마이크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글쓰기보다는 마을 대 청소가 더 중요하니 청소를 하러가자. 그렇지 않아도 오늘 새벽에 지네 소동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던 차인데 나가서 청소나 하자.

 

 

(20107.14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