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지네와의 전쟁

찰라777 2010. 8. 2. 12:05

낭만은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낭망적으로 보이는 돌담의 담쟁이덩굴도 속을 들여다 보면 결코 낭만적일수만 없다.

  

 

"앗 따가워!"

새벽 3시경일까? 거실에서 각하가 잠을 자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뭔가가 등허리를 물었다고 한다. 잠을 들치고 살펴보니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방바닥에 닿은 등허리를 모기가 물을 수는 없고, 불개미인가, 아니면 지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각하가 지네 비슷한 벌레를 보았다는 말도 들었고, 만약에 지네라면 심각하다. 각하는 면역이 약하니 지네 독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벌레 물린 약을 아무리 찾아 도 없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하더니만.

 

물파스를 물린 자국에 뿌리고, 인터넷을 뒤져 보니 달걀을 소금에 풀어서 물린 자국에 담가주면 지네 독이 빠진다고 나와 있다.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달걀도 약이 된다는 것. 이것저것 가릴 새가 없다.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 소금을 타서 일단 각하 허리에 발라 주었다. 각하는 무서워서 거실에서 더 이상 자지 못하겠다고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열대지방의 지네는 맹독을 가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온대지방의 지네는 강한 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온대지방의 지네는 독이 몸에 퍼질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양평에 살고 있는 바람꽃님(그녀는 용문산 밑에서 홀로 산다)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슬리퍼를 신다가 지네에게 물렸는데, 발이 퉁퉁 부어오르더라는 것. 약사인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더니 크게 염려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니 빨리 인근 병원으로 빨리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더라는 것. 해서 급히 차를 몰고 병원에 갔더니 별 다른 치료는 없고 안티푸라민 같은 것을 발라주고 소염제를 주더라는 것. 다행이 며칠이 지나니 부기가 빠지고 괜찮아 지더라는 것.

 

작전 1

 

하여튼 그래도 집안에 지네가 있다면 잡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지네 수색작전에 나섰다. 손전등을 들고 구석구석을 뒤졌다. 한손엔 파리채를, 다른 한손엔 강력 바퀴벌레 스프레이를 들고 거실과 방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지네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각하가 잘못 본건 아닐까? 그럼 개미가 물었을까?

 

지네 수색 작전을 거의 포기하려는 찰라 커튼에 무언가 길게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약 10cm 가량의 지네는 거실의 커튼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여유 있게 폼을 잡고 있었다. 녀석들은 아주 더운 무더운 날밤, 열대야라고 하는 무더운 밤일수록 실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틈으로 들어오다가 불이 꺼지면 방안으로 들어와 이불이나 섬유 위에 올라와 있기를 좋아 한다는 것. 한 마리가 발견되면 또 다른 한 마리가 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왜냐하면 녀석들도 주로 커플로 산보를 다닌다는 것.

 

저 녀석을 어떻게 체포를 하지. 잘못 설 건드리면 녀석이 어디론가 구멍으로 들어가면 말짱 헛것 아닌가. 나는 지네를 앞에 두고 골똘하게 지네 체포 작전을 생각을 해 보았다. 집게가 있으면 녀석을 집어서 집 앞 흐르는 개울에 던져 버릴 텐데. 그러면 살생도 아니 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집안에 집게가 없다. 집게를 미리 사두는 건데.

 

궁리 끝에 나는 한 가지 작전을 짜냈다. 오른손으로 파리채를 릴렉스하게 잡고, 파리채의 탄력으로 강하게 하여 지네를 타격을 하고 바닥에 떨어지면 왼손으로 강력 바퀴벌레 약을 녀석에게 살포를 것. 딱딱한 막대기 같은 것으로 치면 신축성이 있는 파리채보다 실패할 확률이 많을 것 같아서다.

 

일단 전투계획을 세운 나는 녀석 곁으로 다가갔다. 녀석을 내 작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커튼 위에서 여유 있게 폼을 잡고 있다. 나는 파리채와 커튼이 수평이 되도록 잡고, 원 투 쓰리! 하고 부드럽고 강하게 녀석을 내리쳤다. 일격을 당한 녀석은 바닥으로 나둥그러지며 몸을 비꼬면서 요동을 쳤다. 나는 작전대로 녀석에게 소화기를 살포하듯 강력 바퀴벌레 약을 집중 사격을 했다.

 

안개처럼 퍼지는 스프레이 속에 녀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연속살포를 한 후 살포를 중지하고 녀석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갔지? 다시 수색작전이 벌어졌다. 소파를 이리저리 밀치고 찾았지만 녀석은 보이질 않는다. 나는 일단 소파 밑, 탁자 밑에 다시 스프레이를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그렇게 진땀을 흘리며 한동안 소동을 피우고 나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데, 녀석이 낙하한 지점에서 1m 떨어진 곳에서 뭔가 꿈틀 거리고 있지 않는가. 녀석은 아마 스프레이 살포를 맞고 정신이 몽롱한 모양이었다. 나는 바퀴벌레 약에 취한 녀석을 쓰레받기에 받아들고 밖으로 가갔다.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장사를 지내주어야 한다. 마당가에 녀석을 내려놓고 확인 사살을 한 뒤 무덤에 묻어 주었다. 지네여 안녕!

 

 

 

 

 

 

그렇게 녀석과 실랑이를 하고 나니 새벽 다섯 시다. 앞집에서 새벽닭이 울었다. 그리고 이어서 갑자기 확성기에서에 이장 목소리가 큰 소리로 울려왔다.

 

"주민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대청소의 날입니다. 한분도 빠짐없이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셔서 대청소에 동참을 하여 아침 일찍 끝낼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집에 제초기가 있는 세대는 제초기를 들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아침잠도 없나 보다. 밤새 잠을 설친 나는 빗자루와 낫을 들고 어둑어둑한 밖으로 나갔다. 동네 할머니들이 몇 분 나와서 풀을 뽑고 길거리를 쓸고 있었다. 이장이 딸딸이를 몰고 다니며 풀을 실었다. 청소를 하면서도 혹 지네가 나오질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만 보아도 지네가 아닌가 하고 놀랬다.

 

지네는 주로 축축한 숲의 낙엽, 통나무, 생활쓰레기를 버리는 수풀, 축축한 돌담, 하수구 부근, 거름무더기, 콘크리트 마당의 벌어진 틈에 주로 서식을 한다고 한다. 특히 담쟁이덩굴이 있는 돌담에 서식을 많이 한다는 것. 담쟁이덩굴이 덮여 있는 돌담에는 습기가 유지 때문에 지네가 서식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러니 아이비가 타고 오르는 벽이라고 해서 낭만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 일이다. 그런데 중평마을은 거의가 돌담에 담쟁이덩굴이 덮여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점점 많이 나와서 모두 대청소에 참여를 했다. 담쟁이덩굴을 자르고 풀을 뽑아 길을 말끔하게 청소를 했다. 그런데 모두가 70을 넘은 어르신들로 보인다. 그러니 나는 역시 젊은 측에 속했다. 나는 젊은 청년이야. 그러니 일을 더 많이 해야 해. 청소를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에고, 이사를 오시자 말자 청소를 하시네. 이제 그만 하고 들어가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이사를 오자 말자 땀을 흘리며 청소를 하는 나를 보고 미안한 듯 말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동네 대청소에 동참을 했다. 마을에 온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인사도 재대로 나눌 시간이 없었는데, 땀을 흘리면서 대청소를 하니 동네 어르신들이 가깝게 느껴졌고, 동네 어르신들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청소가 끝나갈 무렵 몇 분의 남자들이 제초기를 들고 나와 마을 앞에 있는 풀을 잘랐다.

 

"여러분 수고 많이 했습니다. 슈퍼에서 음료수 한잔 하고 가시지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 땀을 닦으며 동네 앞 슈퍼에서 음료수를 한잔씩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팩으로 된 콩 주스를 마시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전 2

 

지네 소동 때문에 밤잠을 설친 각하는 수면제를 한 알 먹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때서야 각하가 퉁퉁 부은 눈을 부비고 안방에서 나왔다.

 

"물린 자리는 괜찮소?"

"네, 훨 좋아졌어요. 달걀이 약이 되긴 한 모양이에요."

"그것참 다행이군."

 

나는 다시 지네 생각이 났다. 녀석들은 반드시 커플로 다닌다는 데, 어딘가 한 마리가 더 있지 않을까? 현간에서부터 다시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앗! 녀석이 또 한 마리 있네!"

"어디요?"

"여기 현관에…"

"에구 무시라!"

 

각하는 지네가 있다는 말에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관 신발장 앞에 어제 밤 보다 더 큰 녀석에 벽에 붙어 있었다. 큰일이군. 녀석을 그대로 둘 수도 없고. 나는 다시 어제 밤에 짠 작전을 2차로 개시했다. 파리채를 들고 녀석을 강타했다. 이번에는 딱딱한 벽에 붙어 있는지라 정타로 맞은 녀석이 바닥으로 나둥글어 졌다.

 

 

 

'지네야 , 미안하다.' 다음엔 집게를 꼭 사와야지.'

"낭만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지네퇴치 작전

 

이 말이 실감이 난다. 집안의 풀을 뽑아내고, 여기저기 쌓여 있는 풀 더미와 쓰레기를 치웠다. 퇴비더미를 치우고, 구석구석을 말끔하게 쓸어냈다. 담쟁이덩굴도 짧게 자르고 나뭇가지도 밑과 줄기를 잘라냈다. 집안이 한결 훤해 진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나서 아침을 먹고 나서 한 숨을 자고 난 나는 구례 읍내에 가서 지네약과 , 살충제, 붕산, 백분을 사왔다. 그리고 문틈과 벽, 창살 틈에 샅샅이 뿌렸다. 맑은 공기, 맑은 물, 우거진 숲속에 살아가려면 벌레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이른바 지네 퇴치와 예방을 위한 '작전 2'를 전개한 샘이다.

 

그러나 검고 긴 물체만 보아도 움찔해진다. 신발을 신을 때에도 거구로 탁탁 털어 신게 되고, 잠자리에 들때도 이불을 툴툴 털어보게 되었으며, 커튼은 수시로 흔들어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서로 조심을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나에게 치도곤을 당하지 않으려면 녀석들도  조심을 해야 하겠지만 나 역시 녀석들을 조심해야 한다. 서로 다치지 않고 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으음, 허지만 낭만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해...

돌담에 담쟁이덩굴은 보기에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지럽다. 벌이 드글드글하고 지네의 소굴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자연은 모든 만물과 더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벌레가 없는 곳은 그보 도 독한 오염과 매연의 맹독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2010.7.14 지네와 전쟁을 치르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