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평사리 들판의 부부송과 토지길

찰라777 2010. 8. 17. 08:34

 

 

 

 

 

오늘은 '하동 평사리 문학관' 최영욱 관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간전면에서 861번 도로를 타고 가는데 섬진강의 물이 뻘겋습니다. 어제 내린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지리산 골골에서 흘러내린 계곡의 물이 쏟아져 내려 섬진강이 거의 만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섬진강과 지리산에 내리는 비는 무서울정도로 쏟아져 내립니다. 바람한점 없이 고요한 사태가 지속되다가 순식간에 일진광풍이 휘몰아 치며 하늘이 구멍이 난듯 퍼부어 대는 빗줄기는 그 무엇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TV 수신마져도 빗줄기에 가려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약 10km를 달려가니 남도대교가 나옵니다. 남도대교는 전라남도에서 경상남도를 잇는 화개장터로 가는 다리 입니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을 단 탓에 남도대교를 건너면 "경상남도에 진입했습니다", 반대로 건너오면 "전라남도에 진입했습니다"란 멘트가 앵무새처럼 반복됩니다. 바로 조영남의 '화개장터'란 노래를 탄생시킨 곳이지요.

 

지금 구례 사람이 나룻배 대신 자동차를 타고 화개장터로 건너가고 있는 꼴입니다. "랄라라라~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 콧노래를 부르며  남도대교에서 약 10km를 달려가니 최참판댁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나옵니다. 악양면으로 좌회전을 하니 이윽고 평사리의 너른 들판이 펼쳐집니다. 오늘따라 산허리에 구름이 선경처럼 걸려 있는 평사리 들판은 매우 싱그럽게 보입니다. 오후 5시인데도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들판이 어둡습니다.

 

 

 

 

들판 한가운데는 예의 부부송이 다정하게 서 있습니다. 서희와 길상. 박경리 소설'토지'의 주인공이 부부송으로 변해  평사리에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섬진강을 따라 가는 박경리의 '토지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젊은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토지길을 걷는 모습이 다정하게만 보입니다. 평사리 들판은 소설 <토지>를 잉태시키고, 박경리의 토지는 악양면을 세계적인 명소인 <슬로시티>로 변화시켰으며,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들판을 걸어가는 낭만의 <토지길>로 다시 태어 나고 있습니다.

 

토지길의 제1 코스는 '소설 토지의 무대따라 걷기'로 "섬진강 평사리 공원 ~ 평사리 들판 ~ 동정호 ~ 고소성 ~ 최참판댁 ~ 조씨 고택 ~취간림 ~ 악양루 ~ 섬진강변 ~ 화개장터"를 잇는 18km의 길이고,  제2 코스는 '산과 강 인간이 만든 '눈 속에 꽃이 핀 고장' 화개 길 걷기로 "화개장터 ~ 십리벚꽃길(혼례길) ~ 차 시배지(녹차 체험) ~ 쌍계석문바위 ~쌍계사 ~ 불일폭포 ~ 국사암"으로 이어지는 13km에 이르는 길입니다. 

 

 

 

 

언젠가는 이 길을 한 번 걸어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 걷지를 못했습니다. 있지않습니까? 서울에 사는 사람 남산 올라 가보지 않는다고. 하여튼 날이 좀 선선해지면 아내와 함께 박경리의 토지길과 지리산 둘레길도 걸어볼 생각입니다.

 

6년만에 방문을 한 최참판댁 주변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SBS 드라마 '토지'를 촬영할 때 방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보다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선 것 같습니다. '평사리문학관'은 한옥체험마을 맨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도착을 하니 최영욱 시인이 반갑게 우리 부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멀리 평사리 벌판이 바라보이는 마루턱에 앉아 시인께서 끓여주는 녹차를 마셨습니다.

 

 

 

 

시인의 눈빛은 맑았으며, 멀리 백운사과 뒤를 감싸고 있는 형제봉에는 기기괴괴한 운해가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경치에 반하고, 분위기에 반하고, 시인의 맑은 눈빛에 반하고.... 그렇게 선경에 취해 시인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시인은 네팔화가의 그림을 '토지문학제'에 전시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지리산 자락 섬진강에 이사를 온 후 히말라야의 영혼이 깃든 네팔화가들의 그림을 지리산 자락에 전시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것으로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습니다. 하여튼... 최 시인의 흔쾌한 허락을 받고, 지리산 녹차를 몇 잔이나 연거푸 마시고 우리는 시인의 곁을 떠났습니다.

 

 

 

 

어둑어둑해지는 평사리 들판에 부부송이 마치 포옹을 하듯 서 있습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모태가 된 평사리 들판! 머지않아 저 부부송 가까이 걸어볼 예정입니다. 토지길 18km 중 평사리들판 팻말에는 이렇게 평사리들판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평사리들판(무딤이들)

 

협곡을 흐르던 섬진강이 들판을 만들어 사람을 부르고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촌락을 이루고 문화를 만들어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3가지 이유 중의 첫번째가 이곳 평사리들이다.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 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마름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였다. 그렇듯 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자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을 자랑하는 평사리들(무넘이들)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2010.8.16 하동 평사리들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