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긴 장마 뒤에 절구통에 피어난 수련의 아름다움

찰라777 2010. 8. 20. 11:24

 

절구통에 피어난 수련의 아름다움

긴 장마 끝에 절구통에 피어난 수련을 바라보며 지친 심신을 달랜다 

 

 

▲한뼘 크기의 절구통에 피어난 한 송이 수련은 완벽한 만다라의 세계처럼 보인다.

 

 

오늘 아침에 나는 밖에 나가 정원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도 잠잠하기만 하던 수련이 기지개를 켜며 절구통 안에서 곱게 피어나고 있질 않는가! 그 모습은 마치 '만다라의 세계'처럼 보인다. 겹겹이 싸인 꽃잎이 만다라처럼 가운데 노란 꽃술을 보호하고 있다.

 

수련을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관찰 하기는 처음이다. 아내와 함께 순천에서 수련을 옮겨와 절구통에 심고 매일 물을 주며 애지중지 키워온 애정 때문인지 친 자식처럼 돌보며 세밀히 관찰을 하게 되었다. 구례로 이사를 온지 한달이 되던 지난 7월 16일 우리는 이 수련을 순천 어느 화원에서 옮겨와 뒤뜰에 뒹굴고 있는 절구통에 심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지 연잎이 노래지고 시들시들했는데, 절구통에 마사토를 깔고 거름을 주었더니 이내 싱싱하게 자라났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수련은 꽃잎위로 한 방울의 오물도 용납하지 않는다.

 

 

허지만 장마철이어서 인지 좀체 꽃을 피울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드디어 오늘 아침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난 것이다. 푸른 연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찬란하게 드러내고 있는 한 송이 수련의 아름다움은 말과 글로서는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푸르디푸른 연잎사이로 꽃잎은 가장자리에서부터는 연녹색으로 피어나다가 연분홍, 빨강색으로 변하며 겹겹이 둥그런 원을 그리다가 마침내는 촘촘히 노란 꽃술이 아름다운 여인의 속살처럼 드러내고 있다.

 

 

 ▲ '물의 요정'이란 말이 전혀 어색치 않을 정도로 수련은 아름답다.

 

 

수련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꽃잎위로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물게 하지 않으며, 시궁창에서 피어도 그 향기가 가득하고, 사철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하며, 그 모양이 둥글고 원만해 보는 이를 편하게 하고, 만개하면 찬연하고 아름다운 색의 고움에 바라보기만 해도 그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맑아진다.

 

과연 '물의 요정'이란 말이 무색하지가 않다. 물의 요정! 수련의 학명은 님파에아(Nymphaea), 즉 '물의 요정'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있다. 수련의 산지이자 나라꽃으로 정한 이집트에서는 나이르의 신부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태양신과 침묵의 신에게 바치는 꽃으로 왕의 대관식에 꽃이 바쳐진다고 한다.

 

 

 

 

수련은 여름 볕이 강렬한 한낮에 꽃을 활짝 피웠다가 저녁이면 다시 꽃을 오므린다. 씨가 굳어 하늘이 어두우면 낮이어도 활짝 핀 수련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꽃의 이름도 밤이면 잠을 자는 연꽃이라 하여 수련(睡蓮)이 되었다. 오후 2-3시를 가리키는 미시에 꽃을 피운다하여 미초, 한낮에 꽃을 피운다 하여 자오련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어제부터 햇볕이 강하게 들어오더니 그동안 장마에 움츠렸던 식물들이 탄소동화작용을 하며 한껏 푸르게 자라난다. 담장 밑의 채송화도 고개를 내밀고 꽃을 피우고, 침묵을 지키던 꽃잔디와 결명자도 꽃이 피어났다. 거실에 놓아둔 안시늄도 피노키오 코처럼 길게 꽃대를 내밀고 있다. 비록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정원이지만 우리가 정성을 들여 가꾼 탓인지 '타샤의 정원'이 부럽지 않다. 헤르만 헤세가 그토록 정원을 가꾸기에 열을 올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장마 후에 햇볕이 들자 작은 정원에는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채송화, 결명자, 꽃잔디...

 

 

헤세는 체코 출신의 작가 카펠 차페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란 책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 전쟁의 잔인함에 몸서리쳤던 헤세에게 정원은 냉정한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영혼의 평화를 지키는 장소였다.

 

안경과 밀짚모자를 쓰고 해바라기에 물을 주는 노 문호의 모습은 한 평의 땅에 책임을 지는 것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시작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그는 보덴호수, 베른 등으로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원의 목가적인 분위기에 철학적인 의미를 가미하여 <정원 일의 즐거움>이란 책을 남겼다.  

 

▲거실에 놓아둔 안슈늄도 피노키오 코처럼 길게 꽃대를 내밀었다.

 

 

'어느 날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심는 과정에서 소톱 밑이나 긁힌 상처를 통해 흙이 몸 속으로 들어와서 일종의 중독이나 염증을 일킨다. 이 독에 감염되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 순간부터 정원 가꾸는 일에 열을 올리는 원예광이 되는 것이다.'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해 유명해진 체코 출신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한 말이다. 어내는 이미 정원을 가꾸는 일에 중독이 되어 있다.

 

모처럼 장마 끝에 눈부신 햇빛이 감도는 아침! 어젯밤 나는 잠을 자다가 지네에게 물리는 변을 당했다. 아내는 나보다 몇일 전에 등어리를 물린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 뼘 크기의 절구통에 피어난 수련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비록 땅에서 기어나온 지네에게 물려 살이 부어오르며 염증을 일으켰지만 우리는 이미 정원 가꾸기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2010.8.20 구례 섬진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