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텃밭 늘리기

찰라777 2010. 8. 22. 06:14

텃밭 늘리기

 

섬진강변 수평리로 이사를 오자말자 아내는 텃밭을 늘려야 한다고 닦달을 했다. 마당이라고 해 보아야 몇 평 되지 않는데다가 전부 시멘트로 발라 놓아 텃밭이나 정원을 만들기에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아내는 집안에 텃밭을 늘려야 매일 텃밭에 이것저것을 심어 가꾸는 재미도 있고, 화초도 길러 꽃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수평상회 손사장님께 부탁을 하여 흙을 두 트럭만 실어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손 사장은 이를 흔쾌히 허락하여 며칠 만에 1톤 트럭으로 흙을 두 트럭을 실어와 마당에 부어 주었다. 그 날 마침 서울에서 형님과 큰 조카내 식구들이 내려와 흙을 고르고, 미리 냇가에서 주어온 돌로 담을 쌓아 텃밭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정화조를 퍼내고 그 위에도 흙을 부어 밭으로 만들었다. 돌로 담을 치고 둥그렇게 원형으로 밭을 늘려 만들고 나니 텃밭이 배로 증가하였다. 배로 늘어난 텃밭을 보니 나는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밭을 늘리기 전의 텃밭. 잡초가 무성하다.

 

▲텃밭을 배로 늘린 후의 모습

 

 

텃밭을 만든 후로 큰비가 내려 흙을 반반하게 돋워 주기는 하였지만 상당량의 흙이 빗물에 쓸려 마당으로 흘러 내려왔다. 지난주에는 마침 동서와 처남이 내려왔는데, 동서가 하는 말이 "배수로가 잘 못 되었는데요." 하면서 개울에서 작은 돌을 주어다가 텃밭에 골을 타고 배수로를 내는 작업을 하였다.

 

동내 할머니가 돌담에 비닐을 쳐야 물이 새지 않는다고 하며 집으로 가더니 비닐을 가져왔다. 우리 집은 길가에 있는지라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다가 텃밭 가꾸는 모습을 들려다 보면서 모두 한수씩 가르쳐 주신다. 할머니가 주신 비닐로 발을 치듯 텃밭 돌담 안을 막아놓았는데 동서의 의견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 비닐이 물을 배수가 되지 않게 하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물이 빠지지 않아 흙이 꿀렁꿀렁하여 습기가 차고 채소를 심어도 잘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다시 담 일부를 헐러내고 비닐을 걷어내고 잔돌을 깔아 물이 잘 빠지도록 하고 처마 밑으로는 별도로 배수로를 만들었다. 

 

동서와 나는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작은 돌을 리어카에 실어와 배수로 작업을 진행했다. 리어카도 수평상회에서 빌려왔다. 이래저래 수평상회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동서와 끙끙 거리며 배수로 작업을 끝내고 나니 큰 비가 내렸다. 16일 17일 사이에 내린 집중 폭우는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나 배수로 공사를 잘 한 탓에 흙이 크게 쓸려 내려가지 않고 잘 버티어 주었다.

 

 

'오징어 친구'들과 함께 화단 만들고...

 

텃밭을 배로 늘렸는데도 아내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아내는 거실 앞에 좁은 마당에다 화단을 더 만들자고 했다. 거실 앞에는 돌담장이 있고 역시 콘크리트로 발라놓은 좁은 마당이다. 그 돌담 밑으로 마당을 만들자면 흙을 두 차정도 더 가져와야 한다.

 

마침 서울에서 친구들 세 부부가 왔다. '오징어'라는 타이틀로 모임을 오래도록 갖고 있는 고향 친구들인데, '오징어'는 "오래도록 징하게 어울리는 친구들"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아내는 마침 잘 되었다고 하며 친구들과 함께 리어카로 흙을 실어 나르자고 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더워 낮에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섬진강으로 이사를 하자 친구들과 친척들이 자주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두 공짜로 재워 준적이 없다. 하여간 무언가 작업을 해야만 했다. P와 C라는 친구는 며칠 동안 여기 저기 집수리를 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형님과 조카, 그리고 동서도 텃밭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다 못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라도 내야 한다. 울 집에는 '자비공덕회'에서 가져온 네팔 어린이 돕기 성금함이 거실에 떡 버티고 있다. 아내는 누구든지 일단 오면 1000원 이상을 이 성금함에 넣으라고 고지를 한다. 그러면 대부분 1000원 이상을 성금함에 넣으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그러니 오징어 친구들도 예외란 없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일단 더울 때는 다리 밑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쉬게 하고 아침 일직이나 해가 넘어간 다음에 작업을 시작했다.

 

 

▲일을 하기전날 오징어 친구들이 다리 밑 개울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오징어 친구들이 도착한 날 오후에는 함께 다리 밑 개울로 가서 물놀이를 했다. 바둑판을 들고 가서 바둑도 두고 다슬기도 잡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삼겹살 파티를 했다. 마당에다가 숯불구이 좌판을 벌렸다. 이 친구들은 다른 술을 먹지 않고 막걸리만 마시는 친구들이다. 막걸리를 사러 수평상회로 갔더니 파는 막걸리는 다 떨어지고 마침 특별히 양조장에서 제조한 농주가 있다며 돈도 받지 않고 큰 주전자로 하나 담아주었다. 원 이렇게 고마울 데가! 농주를 가져오니 오징어친구들이 대환영이다.

 

"크~ 기가 막힌 막걸리야!"

"음, 자네들을 위한 특주야. 그러니 많이들 마시게나. 내일 아침은 일직 작업을 해야 하니까로. 크크크."

"하하, 이거 병 주고 약주 고네. 하여간 먹기는 잘 먹어야지."

 

오징어 친구들은 거나하게 삼겹살에다가 막걸리를 마시고 모두 개울로 가서 나무꾼과 선녀처럼 멱을 감았다. "아이고 시원해라! 이거 선녀탕이 따로 없네." 친구들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가 첨벙 거리며 흐르는 개울물에 멱을 감았다. 그리고는 늦게까지 옛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모두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오징어 친구들을 깨워 흙을 나르는 작업을 했다. "어이구, 잠도 재대로 못자 것네잉~" 친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모두 일어나 흙을 나르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수평상회 사장은 덤프트럭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데, 흙이나 자갈도 어디선가 실어와 모아 두었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을 해주는 일도 한다. 집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개울가 빈터에 흙과 자갈을 모아 두고 있다. 오징어 친구들은 기꺼이 흙을 나르는 작업을 하여주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흙을 여섯 차례나 실어와 담장 밑에 화단을 만들었다. 흙을 고르고, 돌로 담을 쳐서 담장 밑으로 길게 화단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텃밭 말고도 화단이 탄생했다.

  

 

▲화단을 만들기 전 모습 

 

 ▲오징어 친구들이 흙을 리어카로 실어와 화단을 만든 후의 모습

 

 

흙이 이렇게 귀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처음이다.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 흙이지만 내가 쓸 흙은 귀한 것이다. 흙을 발로 밟고 손으로 만지며 힘들게 일을 하다 보니 농부들의 수고로움이 새삼 느껴진다. 흙을 만지는 작업은 신성한 일이다. 흙은 자연과 하늘이 준 신의 선물이다. 흙에서 모든 생명이 자라나지 않는가? 그리고 만물은 생명을 다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흙은 우리들 자신이나 다름없다.

 

"친구들 덕분에 난 오늘 부자가 부럽지 않네."

"하하, 땅이 몇 마지기나 불어났으니 한 턱 톡톡히 내야겠어."

"내고말고요. 다음에 오면 무공해 채소로 진상을 해 올리리다. 호호호."

"그거 조오치~"

 

화단을 만들어준 오징어 친구들은 모두 만족한 모습이다.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산다. 그런고로 흙이라고는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흙을 나르고 밟으며 화단을 일구고 나니 뿌듯한 모양이다. 친구들은 아침을 먹고 나서 커피를 한잔 한 다음 모두 서울로 떠나갔다.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나서 아내와 나는 배로 늘어난 텃밭을 바라보니 정말로 엄청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 궁리를 했다. 그 때 마침 혜경이 어머니가 오토바이를 붕붕 거리며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2010. 8. 21 텃밭을 늘리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