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맥가이버를 닮아가는 삶

찰라777 2010. 9. 14. 20:49

오지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맥가이버의 삶을 닮아가야 하는데...

 

 

섬진강과 지리산 좋아서 구례로 이사를 왔지만 평생 사무직에서 머리로만 일을 해온 나로서는 무엇을 만들거나 고치는데 전혀 소질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인기리에 방영이 되었던 맥가이버(리차드 딘 앤더슨 분)를 기억하시겠지요? 종이 클립, 렌치와 신발 끈을 이용하여 바주카포의 위협 속에서도 탈출에 성공하는 등 발군의 재주를 발휘하던 맥가이버는 한 때 청소년들이 우상이기도 했지요. 어릴 적에 사고로 가족을 잃은 기억 때문에 폭력을 싫어하여 총을 휴대하지 않고 맨손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솜씨는 감탄 그 자체였으며, 그는 항상 정의감에 불타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맥가이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재주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스위스제 맥가이버 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의 솜씨 때문입니다. 그는 항상 조그만 칼을 휴대하고 다니며 절대절명의 위험한 순간에 평범한 물건들을 이용하여 위기를 극복해 내는 ‘맨손의 마법사’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과학지식을 이용하여 맨손으로 적을 물리치거나 위기를 탈출하곤 했습니다.

 

내가 구례로 이사를 하여 가장 부러운 것이 ‘맨손의 마법사’인 맥가이버의 재주입니다. 맥가이버처럼 필요한 것을 척척 만들고 고쳐 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공작에는 문외한입니다. 무엇을 만들고 고치는 재주가 영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진강 변 산골에 사는 처지라서 자잘한 것은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내야만 합니다. 서울 아파트에서야 관리실로 전화만 하면 재깍 달려와서 그때그때 손을 봐주기 때문에 전혀 손수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지요.

 

허지만 이곳에서는 무엇 하나 손질을 하려면 구례읍에 있는 인테리어 점이나 수리업체를 불러대야만 합니다. 저희 집에서 구례읍까지 약 10km 정도의 거리인데다, 소소한 일로 그들을 일일이 불러댈 수도 없고, 또 부른 다고 해도 돈이 안 되는 일에는 오지를 않을뿐더러 거기에다가 비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서투른 솜씨이지만 어지간한 일은 내 손으로 손수 만들고 고쳐야만 합니다.

 

한 여름에 이사를 한지라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유리창에 방충망을 치고, 뒤틀린 문들을 올바르게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방충망이 오래되어 헤지고 구멍이 나서 그 속으로 모기, 파리, 청개구리, 지네 등 각종 벌레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사람을 물기도 하지만 실내로 들어오면 하루나 이틀 만에 죽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특히 몸이 부드러운 청개구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말라서 죽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들어오는 벌레들을 약을 치거나 파리채로 두들겨 죽였습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그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죽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이 나를 해치지않는 한 나도 그들을 해치지 않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조심을 하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거죠. 옷을 입을 때나, 이불을 펴고 갤때, 신발을 신을 때에는 툭툭 털어서 지네나 벌레가 없는지 확인을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실내로 침입을 한 녀석들은 가능하다면 집게로 들어내어 방생(?) 하기도 합니다. 하하, 방생이란 용어가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이 방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피차 피해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정문과 뒤 다용도실 문에는 ‘자바라’라는 방충망을 거금을 들여서 설치를 했습니다. 물론 업체를 불러 공사를 했지요. 허지만 거실과 각 방 유리창에 헤진 방충망까지 다 하려면 상당한 돈이 들어 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서투른 솜씨이지만 손수 해 보기로 했습니다. 철물점에서 재료를 사와 창틀을 뜯어서 방충망을 붙이는데 하루를 걸려야 했습니다. 워낙 솜씨가 없어서 방충망이 팽팽하질 못하고 엉성하게 들떠있게 되었지만, 설치를 하고 나니 그런대로 지네, 파리, 모기 등 벌레들이 훨씬 덜 들어 왔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이사를 온 집이 조립식 주택에다가 공사를 날림으로 했는지 문틀이 삐뚤어져 잘 닫히지 않고, 사이가 들떠 있어서 청개구리나 지네들이 들어오는 통로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철물점에서 장석을 새로 사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틀어진 문틀을 겨우 맞추어 냈습니다. 그래도 틈새가 있어 벌레들의 통로가 여전히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한 텝을 사와서 틈이 벌어진 사이를 앞뒤로 막아 놓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훨씬 벌레들의 출입이 줄었지만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어제는 청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와 숨이 막혔는지 압사를 하여 몹씨 안타까웠습니다. 녀석이 살아있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휴지로 감싸 않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청개구리를 장사 지내는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벌레들은 실내로 들어오면 며칠 살지못하고 죽어갑니다. 그만큼 실내 공기가  그들이 살기에 탁하고 습도가 맞지 않는다는 증거겠지요. 그러므로 벌레들이 사는 지역은 그만큼 공기가 맑고 청정하다는 증거입니다. 반딧불도 벌레의 일종인데 도시 근교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벌레이지요. 이곳 수평리에서는 논밭에 나가면 반딧불이 날아다닙니다. 요즈음은 농약도 가급적이면 저농약을 치기 때문에 벌레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고장 난 전기코드를 갈아 끼고, 창고에 전등도 전기줄을 새로 사와 달았습니다. 이 역시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욕실에 샤워기를 새로 달고, 낮은 변기와 세면대를 들어올리고 세탁기와 세면도구 선반을 새로 설치하였습니다. 다용도실에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에 비닐도 깔았습니다. 전에 사시던 어르신이 몸이 불편하시어 모든 가구와 집기가 낮게 설치되어 있어 마치 유치원생처럼 해동을 해야만 하므로 고치지 않고서는 키가 큰 우리들로서는 감당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변기를 들어올리는 데 시멘트를 어찌나 단단하게 발라 놀았던지 하마트면 변기를 깨뜨릴 번 했습니다. 이 공사도 서울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죽마고우가 도와 주었으니까 망정이지 나 혼자서는 도저의 감당하기 어려운 공사였습니다. 수평상회에서 아스팔트를 파는 드릴을 빌려와서야 겨우 변기를 들어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수평상회는 덤프트럭이 여러대 있어서 손 사장은 각종 연장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치 맥가이버처럼 다종차도 고치고 뭐든지 척척 잘도 고쳐 냅니다. 그래서 나는 수평상회 손 사장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지요.

 

마당에 텃밭을 늘리는 데도 역시 수평상회 손 사장에게 부탁을 하여 1톤 트럭으로 흙을 두 차나 실어왔지만 부족하여 서울에서 친구들이 올 때나 친척들이 오면 무조건 붙들고 리어카로 흙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힘이 들어가는 일은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책장이 없어서 이사 올 때 가지고 온 박스를 접어서 책장을 만들어 썼습니다. 그러나 책의 무게 때문에 박스가 점점 오그라들었는데 이를 본 순천의 아내친구가 쓰레기장에 책장과 쌀통이 나와 있다고 전화를 왔습니다. 부랴부랴 순천 친구 아파트로 달려가니 참으로 우리 집에 알맞는 책장과 쌀통이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차에 잘 실어 조심조심 싣고 와 깨끗이 닦아내니 완전히 새것처럼 좋았습니다. 재활용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오래되서 새집 증후군 같은 오염도 없고, 버리는 물건을 다시 쓸 수있으니 일거 양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 이제 완전히 맥가이버가 다 되었군요.”

“괜히 칭찬하는 거지? 또 일 시켜 먹으려고.”

“아녜요. 진짜라고요. 예전에 당신이 아니라니까.”

 

고래도 칭찬을 하면 춤을 춘다고 했던가? 하여간 이래저래 나는 맥가이버를 닮아가려고 용을 쓰고 있다. 시골 오지에서 생존을 하려면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살아가야 한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 기술을 좀 배워둘걸. 하여간 나는 전 집주인이 쓰다가 부러진 곡괭이, 쇠스랑, 도끼 자루 등을 구례 장날 가서 죄다 새로 박아와 쓰고 있다. 시골에서 자립하여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연장이 필요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맥가이버처럼 아미 칼 하나로 만능을 부릴 수 없으니 연장이라도 웬만큼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