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면벽 9년의 시작인가?-가족아카데미아 탐방

찰라777 2010. 9. 29. 14:41

 

평창동 시대를 열어가는 가족아카데미아

면벽 9년의 시작인가?

 

 

구례에서 올라온 지 3일이 지난 지난 9월 19일 평창동으로 이사를 한 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을 찾아갔다. 삼청동에서 평창동으로 이사를 간 곳도 궁금하고, 지난달에 백내장 수술을 하신 이근후 박사님을 만나 뵙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말이 평창동이지 새로 이사를 한 간 정확한 주소는 ‘종로구 신영동 72-7번지 소정빌딩 4층’이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엑셀을 밟으니 자동차는 앵무새처럼 되뇌는 안내자의 소리와 지도를 따라 졸졸 잘도 간다. 청와대를 지나 김신조가 넘어왔다는 세검정 고개를 넘으니 이윽고 평창동이다. 자동차는 구기터널로 가는 길과 국민대로 넘어가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라고 한다.

(사진 : 새로 이사를 간 평창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근후 박사. 백내장 수술을 한 이박사님의 모습은 훨씬 편해 보였다.)

 

홍제천을 가로 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언덕을 기어 올라가니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은 다 왔다는 코멘트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그곳에 4층 건물은 없다. 이 박사님께 전화를 돌리니 다시 내려와서 육교 바로 지나 오른 쪽으로 꺾어서 들어오라고 한다. 차를 돌려 자하문 터널로 가는 곳까지 돌아와야 U턴을 하여 다시 돌아갈 수가 있었다. 문제의 삼거리에 육교가 있고, 육교를 바로 건너니 소정빌딩이 나온다.

 

북한산 둘레길과 철학자의 길

 

소정빌딩 옆 지하 주차장에 차를 파킹을 하고 주위를 살펴본다. 평창동 일대의 경관은 언제보아도 수려하다. 북한산의 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듯 고개고개들이 생동감이 있다. 그 고갯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멀리 보현봉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문수봉이 보인다. 문수봉 밑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어머니가 기도를 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낳았다는 문수사가 있다. 하여튼 지혜의 칼 문수보살과 보시의 길을 닦아주는 보현보살이 굽어보는 평창동은 거지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평창동의 지형은 독일 하이델베르그를 연상케 한다. 하이델베르그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카르 강이 있고, 그 강을 가로 질러 데오도르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따라 가다 보면 ‘철학자의 길’로 이어진다. 철학자의 길을 걷다보면 하이델베르크 성이 어디에서나 보인다. 헤겔을 비롯하여 야스퍼스, 괴테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 길을 산책하며 사색에 잠겼다.

 

소정빌딩 앞에는 작은 홍제천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흐르고 있다. 홍제천 다리를 왔다 갔다 하는 이근후 박사를 생각해 본다. 이 박사는 구기동 집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다닌다고 했다. 집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는 불과 15분 정도의 거리다. 그 길은 마치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을 연상케 한다. 보현봉과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언덕은 하이델베르크 성처럼 보인다. 작은 홍제천은 비록 네카르강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작은 데오도르 다리를 건너가는 사색의 다리역할을 할 것이다. 어쨌든 이 박사는 매일 하루에 두 번은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널 게 아닌가? 평생동안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정신과 의사를 지내며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신 그에게는 이 길을 걸으며 또 다른 사색의 창이 열리지않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떤 기가 서려 흐르고 있다.

 

 

홍제천 앞으로 자동차들이 쉿쉿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구례군 섬진강 변 우리 집 앞에는 개울물이 쉿쉿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데 여기서는 홍제천의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는 자동차가 아스팔트를 문지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가 않았다. 자동차 달려가는 소리와 개울물이 흘러가는 소리는 쉿쉿 소리를 내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도 있다. 그러나 개울물 소리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자연의 소리이고, 자동차가 굴러가는 소리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아스팔트와 자동차 바퀴가 마찰하는 인공의 소리라는 점에서 다르다. 개울물 소리는 언제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지만 자동차 소리는 듣는 즉시 질려 버린다. 비슷한 소린인데 왜 그럴까? 이것도 마음의 조작일까? 그래도 구례나 평창동이나 산이 있고 냇물은 흘러가고 있다.

 

요즈음 이 박사의 구기동 집은 ‘북한산 둘레길’이 열려 많은 보도 여행자들이 집 앞을 지나다닌다고 한다. 집을 나서면서, 집으로 들어가면서, 이 박사는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고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집 마당에 찻집을 내고 싶었어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앉아서 환담을 하며 지낼 그런 찻집. 그래서 집을 지을 당시 설계도 그렇게 했지. 이 길은 원래 북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였거든. 그 길이 여태 닫혀 있다가 이번에 북한산 둘레길이 생기며 다시 열렸어. 그러니 당시에 설계했든 대로 대문을 개방하여 찻집을 열고 싶은 데….”

“그래 가족들의 의견은 어떻든가요?”

“보나마다 참패지. 아무도 찬성을 해주지를 않아.”

“그럼 찻집을 열기는 힘들겠군요."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다시 설득을 해 보아야지.”

구기동 이 박사 집 앞으로 북한산 둘레길이 열리면서 휴일마다 사람들이 때지어 몰려다닌다고 했다. 하여튼 거기에 길이 열린 것이다. 둘레 길도 열리고, 철학자의 길도 열린 것이다.

 

▲툭 튀어나온 달마대사 이마를 닮은 바위가 바라보이는 곳에 이 박사의 사무실이 있다.

 

  

달마대사의 이마인가?

 

소정빌딩 계단을 올라가니 이건 빌딩이 아니라 언덕길과 이어진다. 전혀 의외다. 언덕으로 이어진 계단에는 하늘이 보인다. 하늘을 바라보니 큰 바위가 앞에 떡 버티고 있다. 가족아카데미아는 바로 그 큰 바위 앞으로 난 문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 바위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바위였다. 툭 튀어 나온 모습이 누구 이마 같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도인의 모습 같기도 했다.

“하여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야.”

“바위가 참으로 묘하게 생겼군요?”

“그러게 말이야.”

각하와 나는 바위를 바라보면서 말을 주고받으며 가족아카데미아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왼편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다. 거울을 바라보자니 어쩐지 입구가 넓어보였다. 문 앞에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편은 꽤 넓은 홀이 나오고, 왼편에는 이 박사가 거주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안쪽으로 복도가 뻗어 있었다. 박사님은 창문을 향해 앉은 책상에서 컴퓨터를 켜고 뭔가 작성을 하고 계셨다.

“박사님 저희들 왔습니다.”

“엇, 각하 어서 와요.”

“사무실이 참 좋군요.”

“그래? 삼청동보다는 좀 넓지?”

“넓은 정도가 아니고 쾌적하고 아담해요.”

"수술을 하신 눈은 괜찮으시간요?"

"아주 좋아요."

언제나 긍정적인 답변을 하시는 박사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백내장 수술이 잘 되어서인지 얼굴무습이 훨씬 편하고 훤하게 보인다. 박사님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들을 맞이해 주며 사무실 구경을 여기저기 시켜주었다.

“여긴, 우리 막내의 방이라오. 이 집은 돈을 잘 버는 딸이 샀고, 막내와 나는 세를 들어 살고 있어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사는 사람이 임자지요. 그런데 막내 방도 박사님 방도 도인의 방 같아요.

“허허, 그래.... 여긴 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이고. 여긴 창고야. 아직 정리를 하지 않아서 어수선하지.”

“이삿짐 정리를 다하려면 3년 걸린다고 하지 않던가요?”

“허허, 그런가? 자, 차나 한잔 할까?”

 

 ▲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우)과 예띠의 방(좌 막내방) 

 

사무실을 둘러보고 우린 오른쪽 홀에 앉아 박사님이 손수 가져오신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 지리산에서 도 닦으며 사는 재미가 어떻소?”

“조오치요. 그런데 박사님은 지리산까지 갈 필요가 없이 서울에서 바로 도를 닦는 장소가 생겼군요.”

“허허, 허긴 여기도 조오치.”

“그런데 저 바위는 아무리 보아도 누굴 닮은 것 같아요.”

“누굴 닮았을까?”

“달마대사.”

각하가 바위모양에 딱 맞는 답을 주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창밖의 바위는 달마대사의 이마를 닮은 것 같았다.

“흠, 박사님은 이제부터 면벽 9년의 시대가 열렸군요.”

“하하하, 그랬으면 오죽 좋게.”

박사님과 우리는 통쾌하게 웃으며 바위 앞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삼청동 <옴 레스토랑>에서 란에다가 카레를 찍어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정빌딩 아카데미아 집을 나와 데오도르 다리를 건너 북악터널로 향했다. 터널을 끼어가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근후 박사님이 새로 열어갈 평창동 시대는 어떻게 변할까? 과연 면벽 9년의 시대가 열릴 것인가? 9년 후의 박사님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우리는 삼청동 옴 레스토랑으로 가서 짜아와 카레에 란을 찍어서 네팔 요리를 맛나게 먹었다.

 

(2010. 9. 19 평창동 가족아카데미아를 방문하고 나서)

'국내여행 > 섬진강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추말리는 노인  (0) 2010.09.30
와아~~ "金배추"다!!!  (0) 2010.09.30
화개장터  (0) 2010.09.16
맥가이버를 닮아가는 삶  (0) 2010.09.14
[스크랩] 이속(離俗)-마음을 내려놓고  (0) 201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