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가을의 전설, 피아골 단풍

찰라777 2010. 11. 2. 13:49

가을의 전설, 피아골 단풍

단풍으로 피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피아골의 진수

  

 

▲산도, 물도, 사람도 붉어지는 피아골은 삼홍으로 물들어 가을의 전설을 전해주고 있다.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오오, 피아골 단풍이여! 과연 장관이다! 피아골 삼홍소三紅沼에 이르니 탁 트인 시야에 피아골 단풍이 계곡 위 위아래로 펼쳐진다. 남명 조식이 과연 감탄을 할만도 했겠다. 마침 삼홍소 계곡에는 네 여인이 바위에 걸터앉아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들은 아예 삼홍소의 풍광에 취해 마비가 되었나 보다.

 

조선시대의 대학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은 왜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는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란 말을 했을까? 나는 그 답을 모르겠다. 저 계곡에 앉아 있는 네 여인들에게 물어보면 답을 해줄까? 남명도 저 여인들처럼 삼홍소의 어느 널따란 바위위에 앉아 저 붉은 단풍을 안주 삼아 한 잔의 술 걸쳤으리라.

 

 

 

 

영남 사림학파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김종직은 지리산이 좋아 함양군수를 자청했고, 진주목사 김일손은 지리산 등반을 위해 진주목사를 자원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지리산을 찾았지만 남명을 따를 자는 없다. 남명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의하면, '덕산동으로 3번, 청학동‧신응동으로 3번, 용유동으로 3번, 백운동으로 1번, 장항동으로 1번 들어갔다"며 유두류록을 쓸 때가지 11번 지리산을 올랐음을 밝히고 있다.

 

남명은 58세 되던 1558년 4월 10일부터 26일까지 17일 동안 연속해서 지리산 일대를 유람하기도 했다. 그러니 남명이 이 세상을 뜨기까지는 수십 차례 지리산을 들락 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피아골 삼홍소에 이르러 그 유명한 <삼홍소三紅沼>란 시를 남겼다.

 

 

 

 

삼홍소 三紅沼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골골이 모여드는 깊고 긴 골짜기다. 동으로는 불무장능선, 서쪽으로는 왕시루봉 능선 사이에 길고 깊게 파여 있다. <피아골>은 그 이름조차도 기묘하고 멀게 느껴진다. 피가 골골이 튀여 흘러서 피아골인가? 아니면 피하고 무슨 연관이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피아골이란 묘한 이름의 연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여행자는 그 유래를 피아골 계곡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판에서 찾아본다.

 

 

 

 

"피아골이란 지명의 유래는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러 수행하여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중의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는 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마을을 기장 직(稷)을 써서 직전(稷田)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직전(稷田)은 바로 '피밭'이란 뜻이다. 피아골의 본격적인 산행은 그 직전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일인데도 직전마을엔 주차를 하기가 어렵다. 단풍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인홍(人紅)의 무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처럼 비록 기암괴석은 없지만 웅장한 지리산의 주능선을 따라 섬섬옥수 흘러내리는 섬진강의 푸른 흐름은 피아골 단풍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백미다. 연곡사에서부터 주릉을 향해 장장 40여리 펼쳐진다.

 

 

 

 

 

 

 

 

색이 피처럼 붉은 것은 당단풍나무다. 노란색은 생강나무이고,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넓은 잎새는 사람주나무이다. 잎이 작고 붉은 것은 복자기나무이고, 길게 칼선을 이루고 있는 붉은 잎은 가래나무이다. 빨갛고, 노랗고, 연분홍 등 형형색색의 단풍이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풍나무는 왜 붉게 물드는 것일까? 이는 날씨가 차가워지면 잎의 생활력이 쇠약해져 화청소의 색소가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피아골 단풍은 삼홍소를 지나 더욱 절정에 이른다. 삼홍교 다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니 지리산 주능선이 웅장하게 눈에 들어온다. 시대의 어둠을 노래한 김지하는 '지리산'이란 시에서 저 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피가 끓는다고 노래했다.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샆을 보면 노여움이 불 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정말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보기만 해도 피가 끓는 것 같다.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이리도 고운 것은 먼 옛날부터 이 골짜기에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단풍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제와 신라의 싸움터, 임진왜란, 빨치산 토벌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의 피의 역사를 품고 있다. 피아골 단풍에 취해 구계포교 출렁다리를 지난다. 출렁거리는 다리에서 피아골 계곡을 바라보니 붉은 단풍에 취해 온몸이 출렁거린다.

 

아내와 함께한 사실 오늘 산행은 삼홍소까지만 정했었다. 그 이상은 몸이 좋지않은 아내에겐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풍에 취해 걷다보니 조금만 더, 조금만 도 하다가 피아골 대피소까지 오고 말았다. 피아골대피소에 이르니 오후 3시다. 가을 산골의 해는 짧다. 벌써 능선에 가려 계곡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어두워지고 있다.

 

 

 

 

이곳에서 성삼재까지는 족히 4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성삼재까지 도저히 갈 수는 없고 5시가 넘기 전에 다시 연곡사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피아골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돌탑에 기대어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하산 길을 서둘렀다.

 

그런데……하산을 하다가 다리가 풀린 아내가 아차 하며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고 무릎 부위 피부에 벗겨지는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그래도 벗겨진 피부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기어코 진짜 인홍(人紅)을 보이고 마시는 구려. 끌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요. 걷는데 지장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했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는 아내의 표정이다. 따는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마음에 그득 연민의 정으로 피를 흘리는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단풍에 상기되어 몸도 마음도 모두 단풍 그 자체인 것 같다. 계곡을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단풍은 온 몸이 단풍 그 자체다. 산도 붉고, 물고 붉고, 사람도 붉다.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지리산 시인 이원규가 노래했듯 피아골 단풍을 만나려거든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른 지금 당장 와야 한다. 지금 피아골은 오직 단풍으로 역사의 피에 얽힌 가을의 전설을 노래하고 있다.

 

 

 

 

 

 

 

 

 

 

(2010. 11. 1 지리산 피아골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