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촌놈, 2011년 서울 세밑 스케치-지하철풍경[2]
"장갑 100켤레 팔아야 5만원 남는 디…"
지하철을 타기위해 건널목을 건너가는 데, 오토바이를 타고 헬멧을 쓴 퀵서비스 맨들이 일렬로 죽 도열해 있다. 오, 그들은 생업전선의 위대한 전사들이다! 이 추운 영하의 날씨에 생명을 걸고 더 빠르게 배달을 하려는 그들에게 길을 비켜 주어야 한다.
신호등의 파란 스트라이프가 중간 이하에서 깜빡 거린다. 얼음판에 뛰다가 넘어지면 큰일. 참자. 파란 신호등이 떨어지자 퀵서비스 전사들이 웽웽~ 거리며 앞을 다투어 곡예를 하듯 지쳐 나간다. 아슬아슬하고 위험하다. 오, 생업전사들이여! 부디 무사고 운전 하소서...
▲강변역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인파
다음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강변역과 동서울터미널을 오가는 승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건널목 신호등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거널목은 사람의 홍수로 변한다. 이 모습을 보고 유럽의 한 여행자는 참 '역동적'인 한국인들의 모습이라고 했다. 역동적? 그래, 서울은 역동적이다.
덜커덩~ 하고 전동차의 육중한 이중문이 열린다. 전동차는 긴 고래처럼 사람을 토해내고 빨아 들인다. 사람들은 무엇에 끌린듯 밖으로 밀려 나오고 이중문 안으로 빨려 들어 간다. 서클라인인 2호선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이다. 겨우 비집고 들어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가까스로 버텨 선다. 전동차가 출발을 하니 이내 한강이 나온다. 창밖으로 언듯 언듯 비추어 보이는 한강이 하얗게 얼어 있다. 아름답다!
"자, 춥지 않는 장갑이 단돈 2천원입니다.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세요. 이 장갑을 끼면 아무리 추워도 손이 시리지 않아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세요~."
장갑을 파는 아저씨가 일장 연설을 하더니 자리마다 찾아다니며 세일을 한다. 가까이서 장갑을 보니 내가 낀 장갑과 똑 같다. 얼마 전에 둘째 경이가 지하철에서 나에게 선물로 사준 장갑이다. 실제로 끼어보니 이 장갑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내 자리로 다가온 아저씨에게 장갑 낀 손을 들어 보여주며 따듯하다고 말하니 그가 빙그레 웃는다.
(사진: 100켤레를 팔아야 5만원을 벌 수 있다는 2천원짜리 겨울장갑. 의외로 따뜻하다)
"참 따뜻해요. 많이 파시나요?"
"말도 말아요. 요새 되는 게 있나요. 장사가 통 안 되요. 100켤레를 팔아야 겨우 오 만원을 버는데. 요즈음은 오십 켤레도 못 팔아요."
"저런..."
그가 볼멘소리를 하며 다음 칸으로 갔다. 다음 칸에서 그는 한손에 장갑을 높이 쳐들고 일장 연설을 또 한다. 제발 많이 팔았으면 좋겠는데…. 조금 있으니 올드 팝송을 들려주며 CD를 파는 30대 젊은이가 작은 손수례에 카세트를 장착을 하고 나타난다. 그는 별로 말이 없다. 오른 손으로는 수례를 끌며 올드 팝송을 들려주고, 왼손엔 CD판을 들고 복잡한 전동차 안을 그냥 돌아다닐 뿐이다. 시리즈로 된 올드 팝송 CD이다. 한 사람이 사는 것이 보인다. 그는 하루에 얼마나 벌까?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파산회생상담'이라는 문구가 클로즈업 되어 들어온다. 파산! IMF 이후로 기업은 물론 수많은 개인들이 파산을 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며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붕어빵 할아버지, 장갑장사, CD판매하는 젊은이가 갑자기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따듯한 겨울을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