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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할아버지와 이발소 아저씨의 경제학

찰라777 2011. 1. 4. 08:08

 구례 촌놈, 2010년 서울 세밑 풍경 스케치[4]

 

이발소 아저씨가 세상을 보는 눈

"장사도 직장도 다 자기 하기 나름"

 

뷔페식당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동네 이발소로 갔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에 올라오면 이발을 하곤 하는 동네이발소다. 자양동 골목에 자리를 잡은 다섯 평 규모의 작은 이발소는 60대 초반의 아저씨 혼자 운영을 하고 있다. 전에는 아주머니가 면도를 하고 아저씨는 커트와 드라이를 하며 함께 했는데, 지금은 아저씨 혼자 다하고 있다. 나이 든 아내에게 남자들 면도를 하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자신이 좀 힘들더라도 혼자해내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 그는 평생을 이발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수년 전부터 카트, 면도, 드라이까지 해서 만원을 받는 동네 이발소

 

"시골에서 언제 오셨어요? 지리산은 무척 춥지요?"

"네, 어제 올라 왔어요. 춥기는 서울이나 구례나 비슷해요."

 

몇 년째 단골로 다니는 이발소인지라 우리는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동네 이발소는 서울 도심에서 내가 가장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집이다. 그는 또한 내가 이발을 하러 올 때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달해 주곤해서 지루한 줄을 모르고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뉴스를 듣는 그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 뉴스에 밝다. 오늘 화제는 자연히 연말 경기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졌다.

 

"강변역에 있는 붕어빵 집 할아버지가 붕어빵이 안 팔린다고 울상이던데 아저씨네 이발소는 괜찮아요?"

"아이고, 요즈음 누가 붕어빵을 얼마나 먹나요? 그저 옛날 향수에 젖어 먹는 사람이 더러는 있지만 입맛들이 고급으로 변해서 아마 손님이 줄었을 겁니다."

"입맛이 고급화라? 그럼 붕어빵 손님이 적은 건 불황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건가요?"

"경기란 좋았다 나빠졌다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장사와 사업이란 다 자기가 할 나름이지요. 아무리 불황이어도 되는 집은 잘 돼요. 음식이든 장사든 맛이나 서비스가 특출하면 그 집은 잘 되지 않던가요?"

"허긴… 그럼 아저씨는 단골손님이 많아 괜찮은가요?"

"비교적 그런 샘이지요. 그러나 겨울엔 손님이 적어요. 허지만 적게 번대로 적개 쓰면 되지 않겠어요."

"그래도 실업자가 늘어나고 노숙자들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거요? 아유 그건 잘못된 보도입니다. 힘들고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렇지,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하려고만 들면 사방에 일이 펑펑 널려있어요."

"그런가?"

"아니, 외국인 근로자들 숫자만 봐도 증명이 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 외국인 근로자가 150만 명을 넘는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마다않고 다 하거든요."

 

붕어빵 할아버지와 이발소 아저씨의 생각 차이

 

하긴 그렇기도 하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한국을 오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되니 말이다. 지난 번 네팔에 갔을 때에도 호텔 웨이터가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갈 수 있느냐고 하며, 한국으로 가는 길을 좀 가리켜 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코리안 드림'으로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니 이발소 아저씨의 경제학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붕어빵 할아버지의 경제에 대한 의견과 이발소 아저씨의 경제론 중 어느 쪽이 옳을까?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직업에 따라, 계절에 따라, 환경에 따라 경기란 날씨처럼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고, 직종에 따라 경제 순환 사이클이 다르기는 하다.

(사진:이발소 마크가 돌아 가는한 걱정이 없다는 동네이발소는 365일 빙글빙글 돌아간다 )

 

그러나 붕어빵이나, 동네이발소나 둘 다 서민들이 찾는 집들이다. 두 곳 다 손님이 줄어드는 것은 서민경제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증거일게다. 다만, 붕어빵 할아버지는 손님이 줄어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이발소 아저씨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다르다. 붕어빵 할아버지는 늘 경기가 안 좋다고 우는 소리를 치고, 이발소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긍정적이고 여유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울상을 짓는 할아버지내 붕어빵은 때로는 식어 있어  맛이 없다.

 

손님의 입장인 나는 붕어빵집 보다는 이발소에 가는 것이 더 부담이 없고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만약에 두 사람이 같은 붕어빵 집을 경영한다면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붕어빵집으로 갈 것이다. 장사에도 이처럼 요즈음 베스트 셀러로 각광을 받고 있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빈부의 격차가 더욱 갈수록 극심하게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복지정책에 힘을 쏟는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를 있는 문제가 아닐까?

 

거의 이발이 다 되어갈 무렵 텔레비젼에서 2010년을 회고하는 화제의 뉴스 장면이 나온다. 북한 연평도 도발, 천안함, 4대강, 예산안 날치기 통과, 스마트 폰 열풍....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멱살을 잡고 넘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이발소 아저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찬다.

 

경제는 선진국, 정치는 후진국

 

"쯔쯔... 우리나라는 정치하는 사람들만 잘하면 뭐든지 더 잘 될 것 같아요. 허구 한 날 치고 받고 싸우고 있으니 부끄럽지도 않는가 봐요."

"허허, 그러게 말이요."

"스포츠도 잘하고, 수출도 잘 되고, 연예인들도 잘 하는디... 문제는 정치인들이에요. 에구, 언제나 철이 들까요? 경제며, 스포츠며 다른 것은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데 정치는 항상 저 모양이니 말이에요."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지만 정치는 영원한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미의 파타고니아, 아프리카 오지에 가도 한국산 자동차가 굴러 다닌다.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산 휴대폰과 전자제품을 볼 수 있다.

 

수출 4,674억불, 무역흑자 417억불 세계 7위 수출국이라는 경이로운 실적이다. 수출 1억불 달성을 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발소 아저씨의 말처럼 문제는 정치다. 한국정치는 언제쯤이나 날치기 통과 하지않고, 장외투쟁이 없는 정치 선진국이 될까?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고, 쉴 수 있으면 행복하다'

 

아저씨는 드라이로 머리를 단정하게 세우고 마지막으로 빗질을 하며 이발을 마무리한다. 그 모습이 거울에 비쳐진다. 정성스럽게 빗질을 하며 일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삼매경에 젖은 듯 일을 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어떠세요. 괜찮은가요?"

"덕분에 말쑥해졌어요.아저씨 한테 오면 신사가 된다니까. 허허."

"아 네, 감사합니다."

"이발값은 얼마지요?"

"만원이에요."

"아니, 아직도 만원인가요 ?"

"네."

"새해엔 올리지 않을 건가요?"

"글쎄요. 전기세도 오르고 가스 값도 올라 좀 올렸으면 좋겠지만 그냥 그대로 받으려고 해요."

 

동네 이발소의 이발 값은 수년전부터 1만 원이다. 카트와 면도, 머리까지 감겨주고 드라이까지 해주는데 가격은 몇 년째 그대로다. 이발 하나로 자식들 다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아직도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는 행복하단다. 초창기에는 이발을 하는 아버지를 원망까지 하던 아이들이 이젠 일을 하는 아버지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 한단다.

 

"누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러대요.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고, 쉴 수 있으면 행복이다'라고요. 저는 이 나이에 이발소가 돌아가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고, 쉴 수 있으면 행복하다'

참 멋진 말이다.

60을 넘은 나이에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발사 아저씨. 이발소를 나오는데 나는 괜히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렇다! 

행복은 자기 안에 있고, 모든 일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 탓으로 돌리는 이발소 아저씨의 태도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자세다 .

 

(201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