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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를 모르는 강남의 뷔페식당

찰라777 2011. 1. 3. 10:51

구례 촌놈, 2011년 서울 세밑 스케치-강남뷔페식당[3]

불감증에 걸린 도시, 서울

 

지하철을 꽉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표정이 별로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별로 놀라지 않고, 어지간한 일에는 관심도 없는 무표정한 모습. 나도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아파트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사는 사이인데도 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불감증? 서울은 불감증에 걸린 도시이다. 어떤 일에도 감각이 둔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이 서울이다. 위험불감증, 전쟁불감증, 사건사고불감증… 모든 일을 강 건너 불처럼 지나치고 만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구례는 다르다. 우리 마을은 자동차 번호판만 갈아도 다 알아보며 새 차가 되었다는 둥, 시승식을 해야 한다는 둥 한마디씩 한다. 논밭에서 얻은 수확을 오며가며 나누어 먹고, 집에서 장만한 음식도 돌려먹는다. 사람이 적게 살지만 사람냄새가 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옆구리가 시리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살만한 동네! 내가 사는 마을은 그런 동네다.

 


오히려 너무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 불편한 점도 있다. 이웃집에 젊어서부터 남편과 이별하고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화장을 좀 진하게 하거나, 색다른 옷만 입어도 뒤에서 쑥덕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식은땀이 나곤 했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하여간 서울과 시골은 사람의 느낌과 관심이 이렇게 다르다.

 

 

▲2010.12.31자 메트로 신문기사. 이런 기사에도 이제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선반에 올려진 "metro"신문을 펴드니 '서울 오늘 아침 영하 12도', '北 서해5도 점령훈련'이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곳에 포탄이 떨어져도,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나 하다가 금방 망각을 하고 만다.

 

'무장 간첩 김신조가 넘어왔다', '북한 미그기 한 대가 불시착을 했다'는 뉴스만 들어도 마트에서 라면과 쌀을 사재기를 하면서 부산을 떨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런 이야기는 이제 먼 동화에나 나오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포탄이 떨어져도 별로 놀라지 않는데, 간첩이나 비행기 한 대가 넘어온들 놀랄 일이겠는가? 국회에서 의원 나리님들이 조폭들처럼 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코피가 터져도 눈살만 찌푸릴 뿐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역삼역에서 내려 테헤란로의 어느 으리으리한 빌딩 지하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강남에 오니 어리벙벙하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실로 내려가니 약속했던 000뷔페식당이 나왔다.

 

"와, 여긴 만원이내요."

"헉, 정말 엄청나군!"

 

불경기를 모르는 강남의 뷔페식당

 

뷔페식당에 들어가니 이건 별천지다. 붕어빵 할아버지나 장갑 장사가 걱정하는 불경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분위기이다. 모두가 화려한 옷차림에 화장을 멋지게 하고 있어, 폼 나고 부티 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계모임, 연말모임 등으로 뷔페식당은 초만원이다. 400여석 규모에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130여 가지 음식이 산해진미처럼 쌓여있는 뷔페식당의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점시를 든 사람들이 구름처럼 줄을 서고 있는 모습에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다.

 

음식을 진열해 놓은 진열대 앞에 큰 접시를 들고 도열해 있는 사람들과 자칫 잘못하면 부딪칠 것만 같다. 접시를 들고 줄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갑자기 '품바'생각이 나서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현대판 서울의 품바들은 이렇게 말쑥한 차림으로 하얀 접시를 들고 있을까? 폼 내는 그들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 품바로 비쳐지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카운터에 가서 친구의 이름을 대니 안내원이 지정된 자리로 안내를 해준다. 조심스럽게 안내원을 따라 가니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초대를 받은 사람은 우리부부 말고 한 부부가 더 있다. 세 부부가 한 자리에 앉았다.

 

수인사를 하고 진열대로 음식을 가지러 가는데, 거짓말 하나 안하고 5분은 기다려야 음식 한 가지를 접시에 담을 수 있었다. 갈비코너나 인기 음식코너에는 10분도 넘게 기다려야 고기 한 점을 얻을 수 있다.

 

평소에 1만9500원 하던 점심값을 1만5000원으로 특별 이벤트 할인을 한다고 한다. 거기에 뷔페식당 멤버십 카드를 소지하면 10%를 할인해주고, 맥주와 포도주 등의 음료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뷔페세일이다.

 

 

음식은 풍성 했으며, 사람들은 모두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맛나게 음식을 먹고 마셨다. 많이 먹으면 비만증이나 걸리고 말텐데,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음식을 잔뜩 가져다 놓고는 제대로 먹지도 않고 어지럽게 남겨두고 간 테이블에 여기저기 눈에 띤다. 아이고, 아까워라. 저 맛있는 음식을 지리산 마을 노인정에 가지고 가서 동네 어신들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시장이 반찬인데…

 

붕어빵을 이미 두 개나 먹은 탓인지 나는 음식이 별로 먹히지를 않는다. 엄청난 소음공해로 앞 친구의 말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빨리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친구 부부는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다 먹는다. 초대를 받아 얻어먹는 주제이니 그들이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는 기다려 주어야 한다. 더구나 사모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지라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붕어빵 두 개에 이미 배가 부른 탓일까?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붕어빵 두 개에 이미 배가 채워진 나는 야채와 과일, 케이크 한 점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구경을 하는데 문득 법정스님의 '두타(頭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두타란 범어 'dhuta'를 음역한 것인데, ‘털어버리다’의 뜻이다. 입고 먹고 사는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고 오로지 수도에만 전념하는 것이 투타행이다. 두타에는 열두 가지가 있다. 부처님의 수제자 마하가섭은 죽을 때까지 이 열두 가지 두타 행을 지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차제에 그 열두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식사의 초대에 응하지 않고 날마다 몸소 탁발을 해서 먹는다.

2. 산에서 살며 시골이나 도시에서 머물지 않는다.

3. 남에게서 옷을 얻어 입거나 달라고 하지 않고, 묘지에 버린 죽은 사람의 옷을 누덕누덕 기워서 입는다.

4. 지붕 밑에서 자지 않고 들이나 나무 아래서 잔다.

5. 하루 한 끼만 먹는다.

6. 밤이나 낮이나 눕지 않고 앉아서 지내며, 졸음이 오면 조용히 거닌다.

7. 누더기 옷일지라도 세 벌 외에는 갖지 않으며 방석이나 요 위에서 자지 않는다.

8. 무덤가에서 머물고 절에 살지 않으며,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죽은 사람의 해골을 보면서 도를 구한다.

9. 혼자서 지내기를 좋아하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10. 먼저 나무 열매나 과일을 먹은 다음에 밥을 먹으며, 그 후로는 다시 열매도 과일도 먹지 않는다.

11. 노숙을 좋아하고 오두막에 머물지 않는다.

12. 고기나 우유로 만든 음식을 입에 대디 않고 기름을 몸에 바르지 않는다.


물론 이 두타 행은 출가한 수행자들이 살아가는 규범이지만 지금은 수행자들도 이 규범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와 기후 풍토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감히 흉내도 내기 어려운 시퍼런 생활규범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음식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가져와야 하고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음식을 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시골에서 살면서 부터 음식이 귀하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되었다. 우리마을 사람들은 필요한 음식만 만들어 먹는다. 그러므로 먹고 남은 음식쓰레기도 별로 없다. 

 

먹다 부득이 남은 음식쓰레기가 있는 경우에는 이웃집 할머니네 돼지에게 주고, 가시가 있는 음식쓰레기는 들고양이에게 준다. 늘 지정 된 자리에 음식 쓰레기를 놓아두면 고양이가 천연덕스럽게 찾아와 말끔히 치먹워치운다. 그러니 시골에서는 음식이 버릴게 없다. 그러다 보니 오느듯 들고양이와 나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시골 밥상에 산해진미는 없지만 밥맛 하나는 좋다. 중간에 간식을 할 거리도 별로 없다. 시장이 반찬이이다. 늘 움직이며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인지 일을 한 후에 귀한 음식을 먹는 밥맛이 꿀맛이다.

 

하여간... 12시에 들어간 나는 산해진미의 음식 냄새에 질려서 2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붕어빵의 위력인가? 아, 밖의 찬 공기가 이렇게 시원할 줄이야! 

 

(201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