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개구리 집 가는 길

찰라777 2011. 2. 17. 05:46

 

개구리 집 가는 길

 

 

 

 

오늘 오후에는 날씨가 한결 풀려 포근하기까지 했다. 아침 기온은 여전히 영하의 날씨로 춥지만 점심을 먹고 나자 어제까지 그렇게 심하게 불었던 바람도 자고 봄 날씨처럼 따뜻하다.

 

 

"여보, 오늘은 점심 먹고 나서 산책을 좀 가요."

"그거 좋지. 오늘은 개구리 집으로 한번 가볼까?'

"거기까지요? 꾀 먼 거리인데."

"그래도 길은 좋으니 걸을 만 할 거요. 가다가 힘들면 돌아오면 되지."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2시경에 집을 나섰다. 아내는 개구리 집에 봄소식을 전해주어야 한다며 봉오리가 맺힌 산수유 가지를 신문지로 싸서 들고 나왔다. 지난번 산동 마을에 가서 얻어 온 산수유다.

 

 

 

 

우리 마을에서 4km 정도 떨어진 야동 마을에 '개구리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과는 작년에 난로 때문에 방문을 하여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시안이 아빠가 그 집에 좋은 난로를 놓고 있으니 한번 견학을 해보라고 해서 집에 들렀더니 집안에 온통 개구리 인형, 그림, 모형들로 장식을 해놓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집을 개구리집이라고 했고, 그들 스스로도 개구리집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들이 이곳 구례까지 이사를 온 사연도 참 기이하다. 원래 개구리 집 남편은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었던 재미교포다. 그는 수행을 하기 좋아해서  7년 전에 네팔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지리산 쌍계사 인근의 어느 절에 계시는 한 스님을 우연히 네팔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스님께서는 한국에 오는 일이 있거들랑 지리산에 한번 들리라는 말씀을 남겨놓고 떠나 가셨다는 것.

 

그 뒤 한국을 방문하게 된 그는 지리산에 계시는 스님을 만나 한 겨울을 그 절에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한겨울을 나고 보니 지리산자락이 그렇게 포근하고 마음에 들더라는 것. 그는 지리산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아예 네팔에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개구리 집은 야동마을에서도 200여 미터 위쪽으로 올라가는 백운산 쪽에서 가까운 꾀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집터를 사들여 손수 집을 지었다. 15평정도 되는 작은 집인데, 집이 아주 단단하고 야무지게 지어져 있다.

 

 

수평리를 출발한 우리는 만수마을 쪽으로 가다가 자연석으로 다랑논두렁을 쌓아놓은 예쁜 길을 걸어갔다. 그동안 날씨가 워낙 추어서 그런지 아직 논두렁과 들판에 초록색 풀들이 보이지 않는다.

 

 

 

 

동편에 서 있는 계족산이 성처럼 우뚝 서 있고, 산 중턱에는 임도가 꼬불꼬불하게 나 있다. 그 길 모습이 마치 페루의 마추픽추로 몰라가는 길처럼 아련하게 보인다. 구례벌판이 섬진강을 끼고 아스라하게 펼쳐져 있다.

 

 

다랑논 들판을 20여분 정도 걸어가면 백운산에서 내려오는 너른 계곡이 나오고 그 계곡 주변에 복구(伏龜)마을이 나온다.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마을이다. 복구마을에서 밑으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돌면 대촌마을이 나온다.

 

 

"여보, 전화를 한번 해봐요. 집에 없을지도 모르니."

"아마 있을 걸."

 

 

전화를 돌리니 개구리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지금 그 집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집에 계실 거죠?"

"네, 그런데 정말 걸어서 오세요?"

"네 날이 하도 포근해서 오늘은 방향을 개구리 집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멀리요? 지금 어디쯤 오시지요?"

"여기서 개구리 집이 보이는 것 같아요. 아마 20분 후면 도착할 겁이다. 집에 계실 거죠?"

"네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이하는 개구리 부인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런데 대촌 마을에서 바라본 개구리 집은 모양이 비슷해서 착각을 하고 말았다. 개구리 집은 한 고개를 더 넘어가야 했다. 농로가 이리저리 이어져 있지만 처음 걸어서 가는 길이라 헷갈렸다. 우리는 대촌마을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마을 노인이 올라왔다. 노인에게 길을 물으니 저 아래 신작로 있는 곳으로 내려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산 아래로 길이 있긴 한데 아주 작은 오솔길이라 걷기가 불편하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신작로로 내려가 한 참을 걸어서 야동마을에 도착을 하였다. 야동마을 마을 회관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있는데 개구리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혹시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요?"

"네, 길을 잃었다가 마을 사람에게 물어 찾아서 지금 야동마을에 도착했어요."

"저런! 그럴줄 알았어요. 거의 다 오셨군요. 그럼 천천히 오세요."

 

 

 

 

야동마을을 지나 위쪽으로 올라가니 드디어 드디어 개구리 집이 보인다. 뒤에는 대나무 밭으로 둘러싸인 개구리 집은 홀로 외롭게 서 있다. 개구리부부가 대문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반가워서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더니 두 부부도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개구리남편이 걸어내려와 아내가 들고 있는 산수유 가지를 건네 받았다.

 

 

개구리 집은 섬진강이 가까이서 보이고 지리산 왕시루봉이 바로 건너편에 있다. 지난번 왕시루 봉에 산불이 났을 때에도 개구리부인이 전화로 알려주었다. 불에 탄 왕시루봉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다. 산등성이에 까만 자국이 보이고 불에 탄 소나무들이 회색빛으로 죽어가고 있다. 겨울 건조기에는 정말 산불 조심을 해야 한다.

 

 

집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정도 걸렸다. 개구리 집 대문을 들어서니 입구 양편에 청매화 봉오리가 예쁘게 맺혀 있다. 처마 밑에 달아놓은 핑경이 바람에 댕그렁거리며 하모니 소리를 낸다. 동편 뜰에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집을 지키듯 우뚝 서 있다.

 

 

 

 

200여 평이 넘어 보이는 집터에는 중앙에 남향 집을 짓고, 앞에는 텃밭을, 동쪽으로는 산에서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대문은 서양식으로 낮고 넓게 나무로 만들어 놓았다. 뜰에는 작은 정자를 만들어 놓고, 정자 옆에는 청매화를 줄지어 심어 놓았다. 청매화들이 봉오리져 곧 피어날 기세다.

 

 

 

 

 

 

 

오동나무 밑에는 개구리부부가 손수 쌓았다는 작은 돌탑 세 개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아직 녹지않은 얼음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다. 물고기도 키우고 있었데 아마 얼어서 죽었을 거라고 했다. 이곳에서 7년 동안 살아왔지만 이번처럼 강추위는 처음이라고 했다. 연못이 이렇게 얼지는 않았다는 것.

 

 

 

 

거실로 들어간ㄴ 입구에는 나무로 조각을 해 놓은 개구리가 'Welcome'하며 웃고 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니 열기가 후끈하다. 거실에 놓은 작은 난로에서 나오는 열기다. 개구리 집은 이 난로 하나로 집안 난방을 하고 있다. 거실 겸 부엌, 그리고 방 하나에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다. 모든 것이 심플하다.

 

 

거실에 있는 모든 가구들은 개구리 부부가 손수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작은 홈 바, 나무 탁자, 나무 의자… 가구 하나하나가 모두 개구리 부부의 손으로 손수 정성을 들여 만들어진 예술작품이다. 거실에는 작은 책장이 있고, 방에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이 놓여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머리가 저절로 정리정돈이 되는 살림이다.

 

 

 

 

개구리 집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만 가지고 있다. 나는 개구리 집에 가면 마치 법정 스님의 방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서가에는 법정 스님의 책이 여러권 꽂혀있다. 나무로 만든 탁자에도 읽다가 덮어둔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책이 놓여 있다.

 

 

개구리 집에는 자동차도, 전화도 TV도 컴퓨터도 없다.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전화는 핸드폰 하나로 부 두 부부가 함께 쓴다. TV를 보는 시간이나 컴퓨터를 하는 대신 책을 읽는다고 한다. 먹는 것은 완전 채식이다.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로 반찬을 하고 쌀만 사서 먹는다.

 

 

이 두 부부가 지내는 한 달 생활비는 15만 원 정도라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이런 부부도 다 있다니 말이다. 아마 모르긴 모르되 지리산 자락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꾀 많을 것이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만 갖추고 살아가는 부부다. 소유의 얽매임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부부라고 할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부부 중에 가장 심플하게 살아가는 부부다.

 

 

개구리 부인은 주전자에 물을 얹어놓고 아내가 가져온 산수유를 병에 꽂았다. 개구리 남편은 우리가 가지고 간 생밤을 칼로 쳤다. 지난번에 만수마을 하 시인이 가져온 밤을 조금 나누어 가져 왔는데 밤을 찌지 않고 그냥 날걸로 깎아 먹는다고 했다.

 

 

 

 

"밤 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요?'

"저이는 저런 일을 좋아해요. 마늘을 까는 거라든지 밤을 치는 일 등 무언가를 손과 발로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렇군요. 이이는요 밤 치는 것은 고사하고 아무 것 할 줄 몰라요."

"무슨 서운 한 말씀을, 그래도 청소기도 돌려주고 마당도 쓸고 하는데."

"호호호, 그도 큰일이지요."

"하하하 그렇지요?"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개구리 부인이 끓여온 차와 남편이 깎은 밤을 맛있게 먹었다. 정말 개구리 남편은 무엇이든지 손수 다 했다. 심지어는 집안의 문고리까지 나무로 손수 깎아서 만들었다.

 

 

집안 구석구석이 모두 개구리 남편의 손길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이 걸려있다. 그는 보는 것보다도 손수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 장작을 패는 일, 마늘 까는 일, 밤치는 일, 텃밭 가꾸는 일.....

 

 

 

 

개구리 모형을 한 인형, 난로의 문짝, 화장실 인테리어도 모두 나무로 손수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사는 부부도 드물 것이다.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항상 정리정돈을 하며 살아가는 개구리 부부는 참으로 본받을 일이 많다.

 

 

두 부부는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을 하며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화석연료를 거의 쓰지 않고 쓰레기를 최대한 적게 방출한다. 장작을 손수 패 겨울 땔감을 마련하고 난로에서 나온 재는 거름으로 쓴다. TV를 보거나와 컴퓨터를 하는 대신 책을 읽고 사색을 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나는 개구리 집을 갈 때마다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내 방은 항상 어질러져 있으며, 글을 쓴 답시고 컴퓨터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다.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은 거의 없고 남을 시키거나 필요한 것은 사서 쓴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이사를 온다는 것이 친구들이 이것저것 주는 물건을 모두 받아와 진열을 하다보니 어느듯 거실과 부엌, 방안에는 꾀 많은 살림들이 차 있다.

 

 

하여간… 사람이 살아가는 스타일은 각양각색이지만, 에너지를 절약하고 소비를 줄여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좋은 것이다. 밤을 깎아 먹고 치를 몇 순배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 쩍 지나갔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우리는 오후 4시 15분에 개구리 집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은 백운산 비탈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 개구리 부부가 오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개구리 집에서 위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시냇물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이었다.

 

 

개구리 집은 그 시냇물에서 호스를 300m 정도 연결하여 연못으로 물을 끌어드리고 있는데 호수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개구리 부부는 우리가 큰 길을 찾을 때까지 언덕에 서서 우리를 배웅해 주고 있었다. 우리가 큰 길을 발견하였다는 신호를 손을 들어 보이자 그 때서야 언덕 밑으로 사라져 갔다.

 

 

 

 

개구리 남편은 사이클 선수로 키가 훤칠하게 크고 미남이다. 반면에 개구리부인은 남편의 어깨 높이의 작은 키다. 다정하게 사라져 가는 부부를 바라보며 아내와 나는 마주보며 "천생연분이야"하면서 웃었다. 참으로 고마운 부부다. 이렇게 산골에서 인연이 되어 서로 오고 가고 할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새로 걸어오는 길은 매우 호젓하고 좋았다. 마을을 피해서 산언덕 바로 밑으로 난 농로인데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구례벌판을 바라보며 걷는 길옆에는 산수유, 매화 등 봄꽃들이 피어날 준비를 하며 봉오리 저 있다. 며칠이 지나면 곧 꽃이 피어나 아름다운 길을 연출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아내는 마을 아래쪽 좋은 길로 내려가자고 하고, 나는 산 밑 길이 좋으니 그쪽으로 가자고 의견충돌이 있었다. 우리부부가 여행을 하면서도 자주 일어나는 충돌이다. 그런데 산 밑으로 가던 길이 그만 막혀 있었다. 남의 집으로 잘 못 들어가 노인에게 혼 줄이 나기도 하면서 걷다보니 올 때는 1시간 반이나 걸렸다.

 

 

매우 유쾌한 하루였다. 왕복 10km는 걸어 운동을 충분히 했던 날이다. 아내에게는 걷기 운동이 매우 절실하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 춥고 바람이 불어 걷지를 못했었다. 한번은 걷다가 차가운 바람에 감기가 걸려 10여 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는 곤욕을 치루기도 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한다.

 

 

 

아내는 면역이 약해 감기약도 아무것이나 먹지 못한다. 약 처방도 아주 정밀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 큰 병원의 심장전문의의 처방과 치료가 필요하다. 때문에 이식환자들은 감기만 들어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있으니 개구리 집으로 가는 코스를 자주 걷기로 했다.

봄아, 어서 성큼 오너라!

 

(2011.2.15 섬진강 개구리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