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지리산 미타암]멧돼지가 놀고 가는 산사에서

찰라777 2011. 4. 22. 11:31

 

 

 

 

▲지리산 자락 깊은 산속 산사인 미타암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실로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다. 그동안 심한 가뭄으로 대지는 마르고 나무들은 갈증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봄비가 내려 마른 대지를 적시니 만물이 생동하듯 숨을 쉰다. 나무들은 춤을 추고 동물들은 노래를 부른다.

 

처마 끝에 달린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며 툭툭 소리를 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음까지 적셔주는 멋진 음악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드럼소리는 전혀 부담이 없는 최고의 멜로디다.

 

 

 

떨어진 빗방울은 동심원을 그리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빗방울이 새로운 원을 그린다. 마당 한쪽에 핀 배꽃에도 촉촉이 빗방울이 맺혀 있다. 그 영롱한 물방울 속에 생명이 쑥쑥 움트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활짝 피었던 벚꽃들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대신 파란 잎이 돋아나 벚꽃터널은 푸른 잎 터널로 변해가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지리산 자락 미타암에 3일 째 머물고 있다. 미타암은 화엄사에서 노고단 쪽으로 2km 정도 올라간 지리산 중턱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이곳 주지 스님이신 각초 스님과는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사이다.

 

각초스님은 막내처남과 대학 동창으로 대학시절에 불심에 환희를 느끼고 출가한 스님이다. 30년 동안 주로 선방생활만 해 온 운수납자로 마치 학처럼 고고하고 조용하신 스님이시다. 그런 인연으로 미타암은 아내가 심장이식을 받기 전인 2007년도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각초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양주 보살이 떠나고 없으니 잠시 암자를 지켜 달라는 부탁이었다. 스님께서는 서울에 일이 있어 4~5일 정도 출타를 해야 한다는 것. 요즈음은 절에 공양주 보살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여 그만큼 일자리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나 외로운 산사에 여자 홀로 머물기가 힘들다. 신심이 있는 사람만이 가정을 떠나 수행 겸 절의 궂은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각초스님께서 일을 마치고 돌아 올 때까지 미타암에 머물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산사는 고요함 그대로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 위치한 암자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없다. 적막한 산사에는 아내와 나 두 사람뿐이다.

 

밤에는 멧돼지들이 찾아 와 꿀꿀거린다. 먹이를 찾아 밤에만 내려오는 멧돼지들은 암자주위를 맴돌다가 먹다 남은 음식물을 먹고 떠나곤 한다. 일전에 이속 찻집 정 사장이 가족과 함께 다녀가다가 멧돼지를 만났다며 전화가 왔다. 엄청 큰 멧돼지이니 조심을 하라는 전갈이었다.

 

 

 

 

멧돼지들은 때로는 사나운 맹수로도 변한다. 그래서 나는 암자 주변을 산책을 할 때에는 긴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다. 그러나 사람이 멧돼지를 건들지 않으면 그들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어젯밤에는 책상에 앉으려고 하니 한 15cm 되는 큰 지네가 슬금슬금 기어오고 있었다. 귀농 초기 때에는 지네를 보면 질겁을 하며 도망을 쳤다. 그러나 이제 지네를 보아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내가 그를 건들지 않는 한 그도 나를 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 처음에는 지네를 보면 파리채 같은 것으로 쳐서 잡아 죽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집게로 자네를 살며시 집어서 숲속 먼 곳으로 던져 주었다. 내가 무슨 권리로 지네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나보다 먼저 이곳에 터를 잡은 터주대감이 아닌가?

 

 

 

 

산사에 있으면 살살 부는 바람소리도 계곡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빠짐없이 들려온다. 바람은 나무를 흔들며 우우 소리를 낸다. 바람은 나무를 통하여 소리를 내고, 흔적을 남긴다. 바람은 높낮이가 없어 보인다.

 

바람은 나무 위를 흔들다가 땅에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때로는 문풍지를 흔들고, 머리칼을 휘날리게도 한다. 바람은 위아래가 없다. 바람은 안과 속이 없으며, 어디든 파고들어 간다. 바람은 무적자다. 바람은 어떤 환경이든지 보이지 않게 적응을 해 나가는 용맹스런 존재다. 나는 바람으로부터 용기를 배운다.

 

반면에 물은 끊임없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린다. 물은 겸손 그대로다.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가 자신을 낮춘다. 겸수익(謙受益)! 물에게서 배우는 것은 겸손한 태도다.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생활 태도를 물은 가르쳐 준다.

 

 

 

 

 

바람과 물은 비를 내리게 한다. 바람이 불어와 구름을 몰고 온다. 바람 따라 흘러온 구름은 태양을 가리고 때를 만나면 빗방울로 변하여 대지로 떨어진다. 그리고 물은 다시 수증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된다. 자연의 법칙은 실로 존경스럽다. 우리는 그런 자연의 법칙을 평소에는 모르고 산다.

 

산사에 홀로 고요히 앉아 있으니 자연의 흐름이 저절로 보인다. 마음 한번 쉬고 나면 사물이 이렇게 확연히 보이는 것인데, 마음을 쉬지 못하는 도시생활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산사에서 하는 일은 아침 5시면 일어나 사원의 문을 열고, 정화수 한 그릇 올리고, 향 한 대 사르고, 내 마음의 불성에 절을 하고,  예불을 올리고, 낮에는 책이나 경을 읽다가 산책을 하다가 좋은 장면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저녁 6시면 다시 향 한 대 사르고, 예불을 올리고, 사원의 문을 닫는 일이 전부다.  그리고 밤 9시면 취침에 든다.

 

 

 

 

문득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말씀이 떠오른다.

 

"심심산골에는/산울림 영감이/바위에 앉아/나같이 이나 잡고/홀로 살더라."

 

홀로 산다는 것은 스님이나 수도자의 몫만이 아니다. 아무리 부부나 자식, 형제, 가족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 혼자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홀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삶이 가능할 때만이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한 순간, 하루를 평생처럼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어제와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홀로 있다는 말의 의미는 외떨어져 홀로 사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스님은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토마스 머튼의 말을 인용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는 존재를 말한다.

 

인간은 본래 전체적인 존재이다.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존재할 때 그의 삶에도 생기와 건강함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홀로 사는 즐거움도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어제 밤부터 내리는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나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며 결코 홀로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멧돼지 친구들이 내려오고, 올빼미가 구구구 울어준다. 아침에는 까치와 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들려준다. 지네와 벌레들도 찾아와 존재를 알린다. 아내가 밥상을 차려준다. 꽃들이 피어나고 시들며 변화를 보여준다. 물소리 바람소리… 그 어느 것 하나 홀로 있는 것이 없다.

 

홀로 존재하면서 전체와 기가막힌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모두가 함께이다. 자연은 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함께 있다.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밤하늘에 별도 홀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우주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내가 산사에 홀로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연의 한 개체로서 자연과 함께 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제 산사를 내려갈 시간이다. 내일 서울에 봉사활동이 있어 오늘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은 아직 오시지않고 있다. 각초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님, 저희들 이만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절에 가져 갈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내려가도 됩니다."

"그럼 저희들 서울에 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학처럼 고고한 스님의 조용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들려왔다. 스님의 음성은 너무나 낮고 작기 때문에 더욱 집중을 해서 들어야 한다. 그 낮은 음성이 그렇게 집중을 하다보면 스님의 마음이 또렷이 내 마음속으로 들여온다. 이는 큰 소리로 하는 말보다 백배 효과가 크다. 큰 소리나 굉음이 울려오면 오히려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닌가?

 

때문에 조용한 산사에는 가만가만 내리는 빗소리도 모두 들려온다. 봄비! 저렇게 가만가만 내리는 봄비는 생명의 비다. 대지를 적시고 나무들의 갈증을 풀어주며, 인간에게 새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고귀한 비다. 아내와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산사를 홀로 비워두고 내려왔다. 아니 산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고 있으니 걱정이 없다.

 

(201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