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여보게,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나!

찰라777 2011. 5. 8. 10:41

 

 

천년의 다향! 하동야생차문화축제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계절 오월입니다.

벚꽃 백리를 이루며 들썩거리던 섬진강은 지금,

온통 신록으로 뒤덮여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싱그러운 녹색터널을 따라 천년의 다향이 그윽한

하동야생차문화축제현장인 화개골을 찾아보았습니다.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계절 오월이다. 벚꽃 팔십리로 북새통을 이루던 섬진강은 이제 온통 5월의 신록으로 포장되어 싱그럽다. 벚꽃터널 대신 녹색터널로 변한 섬진강은 녹색축제로 들썩이고 있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르니 '당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란 푸른 팻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하동포구 팔십리가 시작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로 세상에 널이 알려지기 시작한 하동은 이맘때면 연록색의 파도로 뒤덮인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녹차 생산지인 하동은 꽃보다 아름다운 녹차향기로 가득 찬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녹차왕국'을 선언하며 올해로 열여섯 번째를 맞이하고 있다. 화개골에는 천년 전통의 다향이 그윽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로 일약 유명세를 탄 화개장터에 다다르니 자동차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축제장으로 나는 길에는 골마다 '00다원'이라는 간판이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늘어서 있다. 아마 화개골 8km 다라 늘선 다원이 몇 백개는 될 듯 싶다. 저마다 차의 명인이라고 뽑내니 어안이 벙벙하다.

 

축제장 입구에는 거대한 찻잔을 쥐고 차를 따르는 설치물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녹색의 찻잔에서 붉은 혈을 토해내듯 쏟아지는 빨강색의 꽃들은 아무리 보아도 차의 문화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든다.

 

 

차의 명인들이 벌린 차시음장에는 차를 시음하는 관광객들로 북적대고 있다. 차문화센터에서는 왕에게 올린 차를 시음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왕이 무대로 손님을 초청하여 왕과 함께 마시는 차 시음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왕의 차를 마시며 풍류를 즐기는 선량들이 보기에 여여하다. 시음장 뒤에는 왕께 올린 茶의 고향 어다동천(御茶洞天)이란 비석과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차에 대한 역사가 기록된 비석이 서 있다.

   

그중에서 진감선사의 차생활을 그린 고운 최치원의 비문이 유독 눈에 띤다. 이 비문은 지금도 쌍계사에 국보 47호로 세워져 있으며, 진감선사의 다도를 최치원이 새겨 넣었다.

 

 

 

"다시 茶를 공양하면/가루내지 않은 채/돌솥에 섶나무로 달이고는/무슨 맛인지 알지 못한다며/단지 배를 적실뿐이라네/진솔함을 지키고/속됨을 싫어함이/모두 그러하였네".

   

 

 

▲왕과 함께 차 마시기

 

 

그러나 필자는 무엇보다도 차의 원류인 우리나라 차시배지와 한국에서 최고(最古)라는 천년차나무에 관심이 쏠리고 있어 북적대는 인파를 지나 쌍계사 입구에 있는 차시배지로 올라갔다.

 

한국최초로 인증을 받았다는 차시배지는 쌍계사 입구에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이 차의 종자를 가져옴에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했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쌍계사 입구에 있는 대렴공추원비에는 지리산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라 적혀있다. 그러나 차시배지에 대하여는 화엄사 장죽전이 원조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차시배지에 대한 다툼은 역사학자들이 정리를 할 일이다. 차시배지 부근에는 찻잎 따기 체험을 하는 외국인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연록색의 찻잎을 한 땀 한 땀 따내며 매우 신기해하는 그들의 표정이 너무나 신선하고 아르답게 보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찻잎 따기 체험장에는 한국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체험문화를 즐기는 외국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보는 문화와 마시는 문화를 더 즐기는 것 같다.

  

 

 

 

 

 

▲외국인들이 찻잎을 따며 신기해 하고 있다.

 

 

고산선사께서 차마심을 칭송한 스무 가지의 글을 따라 차시배지를 산책해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그 중 제2송에는 찻잎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게 적혀 있다.

 

"돌 틈에 난 차나무 향기가 천리에 진동함에 승속 남녀가 향기에 취해 기뻐하도다. 처음 돋아날 때 참새 혀요 자라서는 치자 꽃잎 같도다. 천상세계 신선과 사람과 귀신이 다 사랑하고 중히 여기네!"

 

찻주전자, 찻잔 등 여러 가지 모양에 새겨진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차에 대한 예절을 알게 된다.

  

 

 

 ▲차시배지에 세워진 당향한 다도 

 

 

차시배지 산책로를 돌아 나오니 '스님과 함께하는 시배지 찻자리'란 플래카드를 써 붙인 정자가 보인다. 마침 정자에서는 두 스님이 찻상을 차려놓고 차를 달이고 있다.

  

"차 하잔 하고 가세요."

 

스님의 말슴이이 마치 목마른 길손에게 "여보게 차 한잔 하고 가게!"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스님께서 잔잔하게 웃으며 차를 권한다. 스님께 합장을 하고 정숙히 앉았다. 함께한 세 보살님도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반긴다. 쌍계사 순제스님은 눈썹이 검고 이마가 시원한 미남형이다. 탤런트 이순재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별로 말이 없지만 그냥 앉은 자세에서 스님의 다도를 느끼게 한다.

 

  

"매일 이렇게 다도를 대중에게 가르쳐 주시나요?"

"축제기간에만 하지요."

"차시배지의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니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릴 텐데요."

"네, 어떨 때는 이 정자가 좁을 정도로 많이 와요."

"아하, 쌍계사에서도 차를 재배 하시나요?"

"야생차를 그대로 자라게 하지요. 쌍계사의 차를 다 가져와서라도 차를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쌍계사 순제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다도를 배우다

 

 

스님과 함께 정숙하게 앉아다도를 배우니 왕의 차를 마시는 것보다 훨 낫다. 배 2배 하는 순간 마음가지 고요해 진다. 숲속에서는 뻐구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에서는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자연의 실내악을 연주해주는 것 같다.

 

그 모습이 하도 좋아 스님께 청하여 어렵게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하도 찍히다 보니 얼굴이 다 달 정도라고 한다. 차를 마시며 대나무 숲에 일렁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니 그야말로 극락 같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오월, 하늘은 맑고 푸르다. 차밭도 푸르고 산천도 푸르고 마음가지도 푸르러 진다.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온다. 

  

 

극락이 따로 있나

스님과 함께

정자에 앉아

다도를 즐기니

여기가 극락일세.

 

"여보게,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나."

 

 

 

 

제 스님께서 따라주는 차를 연거푸 7잔이나 마시고 나니 볼일이 급해진다. 스님께 합장 배래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화개동천에는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지리산 자락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화개동천을 가로 놓인 출렁 다리를 건너 천년차나무가 있는 곳으로 길을 재촉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