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사하라 사막에서 맞이한 부처님 오신 날

찰라777 2011. 5. 10. 19:54

지중해서 1400km 떨어진 사하라 사막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며

연기의 법칙을 깨닫다!

 

생물이 살 수 없는

사하라 사막에도 물이 고이니

갈대가 자라나고,

물고기가 생겨났으며,

새들도 날아 왔다.

 

 

 

어디서 날아와 싹이 돋아났는지 정말로 신기하다. 바람타고 날라 온 꽃씨 하나가 꽃 천지를 이룬다고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봄이 오자 언제부터인가 우리집 출입구 시멘트 계단에서는 나팔꽃 싹 하나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녀석은 시멘트가 벌어진 틈에서 살그머니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다른 잡초들도 시멘트 틈새만 있으면 정신없이 자라나곤 했는데 잡초들은 다 뽑아버리고 나팔꽃만 남겨 두었다. 이제 제법 줄기도 길어졌다.

 

나는 나팔꽃을 바라보며 16년 전 리비아 사하라 사막에서 자라나는 갈대를 만났던 생각이 문득 떠 올랐다.

 

1995년 5월, 나는 동아건설 50주년 창립을 맞이하여 일간지 경제부 기자, 경제계 인사 등 약 20여명과 함께 요즈음 내전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중해에서 1400km 떨어진 그곳은 도저히 생물이 살 수없는 삭막한 사막지대였다. 그런데 그 광막한 사막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갈대가 자라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하라 대수로 현장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당시 리비아는 유엔의 조치에 묶여 국제선 여객기 착륙이 금지되어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바레인을 거쳐 튀니지에 착륙했다. 튀니지에서 버스를 타고 리비아 국경을 통과하여 트리폴리에 도착, 그곳에서 소형 비행기를 타고 벵가지로 날아가, 다시 벵가지에서 버스로 1400km의 사막을 달려 사하라 사막 깊숙이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사하라 사막 중에서도 가장 삭막한 사리르란 곳이었다.

 

▲지중해에서 1400km 떨어진 사하라사막. 저 사막 밑에

나일강이 200동안 흐르는 물이 고여 있다(1995년). 

 

 

신기루와 모래 바람 속을 뚫고 도착한 '사리르'는 '생명이 살 수 없는' 뜻이라고 했다. 동아건설은 사리르에서 관을 만들어 그곳 사막 속에 묻힌 지하수를 뽑아내 벵가지로 보내는 대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서울특별시 정도 넓이의 취수장에는 약 1.5km 간격으로 취수 파이프를 150~200m까지 땅 속으로 뚫고 들어가 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뽑아낸 물은 장충체육관 크기 2개의 저장탱크에 일시 저장을 했다가 벵가지 근처의 저수조로 보내졌다. 저장탱크의 물은 장장 1400km나 되는 거리를 관을 타고 여행을 떠나 거대한 저수조에 저장되었다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등으로 쓰였다. 저수조는 마치 호수처럼 보였다.

 

 

▲리비아 사하라 사막에서 끌어드린 물로 만들어진 저수지는 마치 호수와 같다(1995년)

 
 

처음 사막 밑의 물을 발견한 나라는 미국이라고 했다. 라사에서 위성사진으로 사하라 사막 투시 사진을 찍었는데 그곳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처럼 나타났다. 석유탐사진이 사하라 사막에 도착하여 시추 확인을 해보니 그것은 석유가 아니라 물이었다. 사막에 매장되어 있는 물은 자그마치 나일강이 200년간 흐르는 유수 량에 맞먹는 양이라고 했다.

 

코란에 의하면 사하라일대는 먼 옛날에는 젖과 굴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각변동에 의하여 강과 숲, 곡창지대가 땅속으로 수몰되고 육지는 사막화가 되어 버렸다는 것. 그 사막의 땅 속을 150m 정도 파고 들어가면 매몰된 강이 나오고, 나무와 인간의 화석도 나온다고 한다. 자연의 변화는 이처럼 놀라운 것이다.

 

▲동아건설에서 관을 만들어 냈던 현장(1995년 사하라 사리르 사막

 

 

이 정보를 입수한 가다피는 녹색혁명의 일환으로 사막의 물을 지중해 연안으로 끌어 들이는 공사에 착수 하였다. 이 공사를 우리나라의 동아건설이 수주를 하게 된 것이다.

 

갈대밭은 동아건설이 관을 만드는 공장 근처에 있었다. 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폐수를 저장하는 연못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언제부터인가 갈대가 자라나고, 갈대가 자라나니 물고기가 생기고, 물고기가 생기나자 그 광막한 사막에 새들이 날아온다고 했다.

 

이 생태계의 연골 고리를 무엇으로 해명할 것인가? 그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의 법칙으로 명쾌하게 해석될 수 있다. 연기(緣起)란 "연(緣)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의 존재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이다.

 

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막에 물이 고이니, 어디선가 갈대 씨가 날아 와 그 연못에 떨어져 내려 생명이 발아가 된 것이다. 갈대 씨는 구름을 타고 왔을지도 모른다. 물이 있으니 갈대가 자라게 되고, 갈대가 있으니 물고기가 생겨난 것이다. 현지 사람들은 마치 올챙이 모양처럼 생긴 물고기를 "깡패고기"라고 불렀다. 녀석들은 갑자기 공중으로 솟아올라 하루살이 같은 생물을 깡패처럼 낚아채 먹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때 나는 사하라 사막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체험이엇다. 생물이 도저히 살 수없다는 황막한 사막에서 자라나는 갈대와 물고기들을 바라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사막에서 뽑아낸 물을 마시고, 야채와 곡식 등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인연의 고리가 참으로 오묘하게 느껴졌다.

 

 

▲사하라사막에서 끌어들인 물로 재배한 채소(1995년 벵가지 근처 농장)

 

 

오늘은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를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란 화두를 들 때에 나를 나아주신 부모님과 가르쳐 주신 스승, 그리고 친구와 맺은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겨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사회와 국가의 중요성도 인식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시멘트 계단 틈에 솟아나는 나팔꽃 옆에 대나무로 지지대를 세워 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그리고 이 나팔꽃과 만나는 소중한 인연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팔꽃은 머지않아 그 고마움을 알고 보랏빛 꽃을 피어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