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독수리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천장-중국 쓰촨성 랑무쓰

찰라777 2011. 5. 18. 08:06

 

 

 

 

 

 

 

 

이생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이 죽는 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달라이 라마-

 

독수리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천장의 현장을 가기 전에 먼저 티베트의 전통 장례식인 천장에 대하여 랑무쓰 빈관의 지배인으로부터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는 천장 풍습을 보기를 원하는 피터와 나에게 천장에 대하여 전통과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을 하여 주었다.

 

천장(天葬, Sky Burial, 조장鳥葬이라고도 함)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티베트 불교의 장례풍습이다. 불교에서는 신체는 현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몸을 떠나므로 육체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빠드마삼바바도 수행을 할 때 공동묘지에서 용맹정진한 후 대오 각성하여 큰 신통력을 얻었고, 붓다께서도 전생에 사신공덕(捨身功德)을 행하여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내주는 수행을 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생겨난 육신은 영혼이 떠나면 다시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자연으로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지구촌의 장례식은 종교와 풍습에 따라 다르지만 땅으로 가는 매장, 물로 가는 수장, 불로 가는 화장, 바람으로 가는 풍장으로 행해지는 데 모두가 자연으로 되돌려 주는 방법에 지나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장례식이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쓰촨성 랑무쓰에서는 티베트인들이 오랜전부터 망자의 시신을 하늘나라로 올려 보내는 천장이 행해져 왔다. 천장은 시신을 독수의 먹이로 준다고 해서 조장(鳥葬)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육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주는 것은 살았던 세상에 베푸는 마지막 자비보시이고 윤회의 고리를 이어주는 행위가 된다.

 

티베트에서 독수리는 신성시 되는 동물로 육식을 하는 신(Dakinis)의 현현이라고 믿어진다. 윤회사상을 믿는 티베트인은 사후에 시신을 신성한 독수리에게 보시하는 것은 독수리를 통해서 죽은 육신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승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천장은 나무가 드물고 토양이 너무 단단해 땅을 파기 힘든 곳에서 시신을 유기할 수 있어 생태적으로 자연친화적인 건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전통적으로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만 화장을 했고, 천연두 등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조각을 낸 뒤 수장시켜 물고기 밥이 되게 하였다. 티베트 식단에서 생선이 인기가 없는 이유가 이 탓일지도 모르겠다.

 

 

 

 

해발 4000m를 전후한 티베트 고원은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땅인지라 화장을 위한 나무를 구하기도 힘들고, 수장은 귀한 물을 오염시키게 되고, 매장은 메마른 땅을 파기도 힘들어 시체가 쉽게 썩지 않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인 천장이 생성된 것이다.

 

중국은 1960,70년대에 천장을 금지했다가 80년대에 티베트가 제한적인 종교적 권리를 되찾으면서 다시 합법화 되었다. 천장은 원래 외부에 공개를 하지 않는다. 티베트인들은 자신들의 장례를 구경거리로 삼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대받지 않으면 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천장의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때문에 티베트에서 관광객들이 천장에 참가하려면 공식적인 허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천장은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행해진다. 랑무쓰 빈관 지배인은 오늘아침에도 천장이 행해 졌다고 한다. 보통 하루에 몇 건의 장례식이 행해지는데 거의 외부인이 보기를 원치 않으므로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꼭 천장의례를 보고 싶으면 가족들의 허락을 받는 것이 예의라고 전한다.

 

오후가 되자 그렇게 푸르렀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천장 터는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진 산 위에 있었다. 천장터로 가는 길은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에 더욱 으스스 했다. 독일인 여행자 피터와 나는 단 둘이서 천장 터로 걸어갔다. 사실 나는 천장 터로 가는 것이 좀 두려웠다. 그런데 피터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앞장을 섰다. 홀로 여행을 떠나온 피터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다분히 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가고 있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의 옷을 모두 벗겨 흰 천으로 전신을 감싸고 마대로 포장을 한다. 유해는 3일 동안 집안에 모셔 놓았다가 4일째 새벽에 미리 예약을 해둔 돔덴(Domden, 천장사天葬師)이 와서 시신을 차에 싣거나 혹은 들 것으로 가져간다. 천장터까지 가는 동안 멈추거나 쉬어서는 안 된다.

 

 

 

 

3500m의 고도를 올라가다 보니 숨이 찬다. 천장터에 가까이 다다르자 타르쵸가 망자의 영혼처럼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천장터는 두 군데로 분리가 되어 있다. 산 중턱에 하나, 산 정상에 하나. 랑무쓰빈관 지배인의 말에 의하면 중턱의 천장터는 일반인이 사용하고, 정상의 천장터는 스님들의 장례식장이라고 했다. 천장터에는 시신을 자르는 도끼와 칼이 놓여 있고, 피자국과 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시신이 천장터에 도착을 하면 돔덴은 시신을 천장단상에 올려놓고, 송백향 더미나 야크 똥에 불을 지핀 다음, 보리 겨를 뿌려 냄새와 연기를 발생 시킨다. 망자의 시신을 하늘나라로 보내줄 독수리를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다.

 

피터와 나는 중턱의 천장터를 둘러 본 다음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의 천장터에도 피 묻은 도끼와 칼, 그리고 선혈이 낭자한 천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솔직히 두려웠다. 그런데 피터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비디오와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존재를 찾아 사업을 접고 홀로 여행을 떠나온 피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가 안 오길 천만 다행이다. 어떻든 외견상으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다. 돔덴은 동이트기 시작하면 숙련된 동작으로 시체를 잘라 잘게 토막을 내어 독수리가 먹기 좋게 한다.

 

 

 

 

돔덴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냄새를 맡고 날라 온 독수리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돔덴이 작업을 끝내고 한 발짝 물러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시체를 에워싸고 예리한 부리로 인육을 먼저 찍어 삼킨다.

 

천장사가 다시 뼈와 해골을 잘게 부수어 짬빠(볶은 밀보리 가루)를 뿌려 주면 조금 물러나 있던 독수리들이 다시 덤벼들어 그것마저 깨끗이 먹어치운다. 순식간에 시신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시신을 다 먹어치운 독수리는 유유히 하늘로 날아간다. 이윽고 망자의 시신도 독수리를 따라 하늘나라로 올라간 것이다.

 

라마교에서는 죽음도 삶의 일부로 본다. 끝없이 윤회하는 영혼은 삶과 죽음의 구별이 따로 없다는 것. 육신은 눈에 보였다가 보이지 않을 뿐이고, 당초부터 보이지 않는 영혼은 어디엔가 다시 사람이나 동물의 몸으로 윤회하여 살고 있다고 믿는다.

 

천장터에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야크 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 위를 독수리들이 선회하고 있었다. 야크는 풀을 뜯어먹고, 사람은 야크를 먹고, 독수리는 사람을 먹고, 그리고 모든 것은 분해되어 다시 땅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성분을 풀이 다시 빨아 먹고, 야크는 풀을 먹고, 사람은 야크를 먹고, 독수리는 사람을 먹고… 모든 만물은 끝없는 생사윤회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티베트인들의 믿음이다.

 

 

 

 

"피터, 당신은 천장이 두렵지 않소?"

"두려운 마음은 없어요. 처음에는 좀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극히 자연스런 장례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신을 독수리 먹이로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거죠?"

"책을 통해서 천장에 대해서 좀 알고 왔지만 이곳에 와서 현장을 직접 바라보니 육신을 지금까지 신세를 져온 동물들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스터 초이는 천장터를 보는 것이 두려운가요?"

"네, 당신을 따라 천장을 보기 위해 이곳까지 왔지만 천장은 너무 잔혹하고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 중 랑무쓰 천장터를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사람이 산 물고기, 소, 돼지 등을 잡아먹는 거나, 독수리가 사람을 먹는 거나 다 같은 이치라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동물들도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지 않소?"

"허긴 그렇지요."

 

나는 뤼얼가이에서 허쮜로 가려고 하다가 피터가 랑무쓰의 천장을 보러 간다고 하기에 여정을 변경하여 이곳까지 그와 함께 오게 되었다. 피터의 말을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맞는 말이다. 갑자기 일식집에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칼로 그어 회감을 만드는 횟집의 주방장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마을로 향했다.

 

햇빛이 먹구름을 뚫고 레드마운틴 위에 신비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그 위로 사원과 너와집이 겹쳐진다. 까마귀가 울어대는 들판을 걸어 내려오는데 라마승들이 가사장삼을 휘날리며 걸어온다. 시냇물이 흐르는 마을에 돌아오니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천당과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 우매한 중생이 보기에는 저기 산위의 천장터는 지옥이요, 사바세계인 마을은 살아 숨 쉬는 천당처럼 보인다. 랑무쓰의 거리에는 불경이 새겨진 색종이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다. 순례자들은 배고픈 영혼을 달래는 화덕을 돌며 불경이 새겨진 색종이를 공중으로 날린다.

 

 

 

 

"피터 우린 내일 이곳을 떠나 티베트 라싸로 가려고 하는데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북 쪽으로! 북 쪽으로!"

"북 쪽으로 북 쪽으로?"

"네, 나는 여행의 목적지를 특별히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정합니다."

"그럼 우리와 함께 라싸로 가지 않겠소?"

"난 이곳 랑무쓰가 마음에 들어요. 여기서 며칠 더 머물고나서 다음 행선지를 정하려고 해요."

"아하, 그렇군요. 그동안 함께 해서 즐거웠어요. 다음에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요. 좋은 여행되길 바라오."

"초이도 멋진 여행되기를 바라오."

 

 

 

 

피터와 헤어진 다음 나는 내일 아침 7시 허쭤로 떠나는 버스표를 샀다. 숙소로 오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쿵쾅 거리며 으르릉 댔다. 곧이어 장대 같은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다. 비를 피하기 위해 달려가자 금방 숨이 찼다. 엇, 여긴, 3500m 고도란 걸 잊어 먹었네. 숨을 헐떡거리며 숙소에 돌아가니 아내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늦었어요?"

"숨이 차서 빨리 걸을 수가 있어야지."

 

저녁을 먹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왔다. 내일 아침을 생각해서 일찍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천둥 번개 소리에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천장터와 독수리와 야크가 자꾸만 눈에 어른 거렸다.

 

 

 

생(生)과 사(死)

 

독수리들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랑무쓰의 천장터

 

먹구름 몰려오니

하늘과 땅 사이를

번갯불이 칼처럼 갈라 친다.

 

우르르 쾅쾅

천둥치는 소리는

하늘로 떠나는

망자의 영혼소리처럼 들려오고

 

후드득 후드득

천장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독수리들이 날카로운 부리로 시신을

콕콕 쪼아 먹는 소리처럼 들려오네.

 

아아,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