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007영화를 방불케 하는 라싸 가는 길

찰라777 2011. 5. 25. 07:33

한 달만에 도착한 티베트 고원의 도시 골무드

 

 

 

5월 17일, 드디어… 4월 15일 베트남 하노이를 출발한 지 30일 만에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입구 청장공로(靑藏公路, Qinghai-Tibet Highway)에 도착을 했다. 골무드와 라싸를 잇는 이 도로는 1166km에 달하는 하늘길이다.

 

 

 

▲라싸로 가는 입구인 골무드 역에 도착하여

 

 

▲골무드 풍경

 

 

평균 해발고도가 4000m이상인 청장공로는 쿤룬을 넘어 최고점인 탕굴라(Tangu-la, 5180m) 고개를 넘어야 한다. 버스는 무인지대인 불모지를 30~50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고 하는데, 일기와 버스 사정에 따라 다르므로 정확한 시간을 기약 할 수 없다.

 

아무튼 우리는 이미 라싸에 입성을 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골무드 역에 내렸다. 사방은 하얀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해발 2800m의 골무드는 마치 달나라에 착륙한 것처럼 황량했다.

 

어쨌든 골무드 역에 발을 내딛은 우리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기념사진을 한 장 씩 찍었다. 배낭이 무거웠지만 아내는 라싸로 간다는 흥분 때문인지 피곤한 줄도 잊고 있고 있었다.

 

 

▲해발 2800m의 골무드 역 이정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중국 공안원 복장을 한 중국인이 우리를 흘끗 쳐다보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역을 빠져 나갔다. 중국의 잊혀진 끝에 있는 이 외딴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거의가 티베트로 계속 가려는 것뿐이다.

 

사람들을 따라 역사를 향해 엉금엉금 걸어 나가는데 상구머리를 한 중국인 청년 두 명이 우리를 따라 붙었다. 딱 보아하니 삐기의 차림이었다. 그들은 무거운 배낭을 걸머진 우리가 라싸로 가는 사람인줄 대번에 알아보고 접근을 한 것이다.

 

삐끼는 싼 돈으로 택시를 타고 라싸로 갈 수 있다고 하며 계속 우리를 따라 붙었다. 일인당 800위안이면 빠른 택시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삐기를 애써 무시한 채 일단 역전앞에 골무드 호텔에 있는 중국국제여행사로 갔다.

 

 

▲라사로 가는 기점 골무드 역에 도착하여..

 

 

그러나 중국국제여행사(CITS) 직원들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1인당 1700위안을 내야 티베트입경허가서(TTB Permit)를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로 가는 라싸행 투어 버스표를 구입해야 한다고 거드름을 피웠다.

 

이 요금에는 티베트입경허가증, 보험료, 버스요금, 라싸 도착 후의 3일간의 라싸 관광요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어처구니없는 관광 패키지는 라싸에 입성을 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어진다. 중국인들은 라싸로 가는 표를 사는데 고작 120위안(좌석)이나 160위안(침대)을 지불하면 된다.

 

"도대체 같은 자기 나라를 여행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지요?"

"티베트는 위험한 지역이라 외국인 여행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거야."

"세상에! 1700위안을 줄 바에야 차라리 아까 그 삐끼를 다시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요?"

"글쎄, 그건 불법이라 가다가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내고 추방을 당해야 하는 위험이 있어."

"그래도 아까 그 청년을 다시 한 번 만나나 보지요?"

 

 

▲중국의 외딴 변방 골무드 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베트로 가려는 여행자들이다.

 

 

아내와 내가 망설이고 있자 여행사 직원이 불쾌한 표정으로 쏘아보고 있다. 우선 우리는 그 불친절한 여행사를 나오고 싶었다. 여행사에서 나온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일단 점심을 먹었다. 아침을 둘이서 라면 한 개로 때웠으니 배가 고픈 것은 당연했다.

 

 

007영화를 방불케 하는 골무드 탈출 작전

 

버스정류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라싸로 가는 버스는 민간업자도 있다. 중국국제여행사 버스는 오후 5시경에 진평루에서 출발을 한다고 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삐끼가 우리에게 접근을 했다. 버스로 가는데 800위안 이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침대 버스인데 그 요금에는 만약에 공안원에게 걸릴 경우 그들에게 줄 뇌물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전혀 걱정을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색안경을 쓴 그의 차림이 꼭 사기꾼처럼 보여 믿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공안원이 변장을 하여 삐끼역할을 한다고도 하니 조심을 해야 한다.

 

"이런! 여긴 삐끼 천국이군."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을 들렀는데 아까 역전에서 만났던 그 상구머리의 삐끼를 용케도 다시 만났다. 그는 아마도 계속 우리를 미행했던 모양이다.

 

"600위안이면 편하게 갈 수 있어요. 이스라엘 여행자 두 명과 함께요."

"뭐? 이스라엘 여행자?"

"네. 그들은 함께 갈 여행자를 찾느라 5일 동안 이곳에 머물고 있어요. 네 명이 한 조가 되어야 싸게 갈 수 있거든요."

"가다가 걸리면 어떡하지요?"

"걱정 말아요. 그 요금에 공안원에게 줄 뇌물도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골무드에는 공안원들의 경계가 자못 삼엄하다

 

 

참 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요지경 속이다. 아까는 800위안이라고 하더니 600위안으로 흥정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여행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삐끼의 말이 귀에 솔깃하게 들어왔다.

 

나는 지구촌 오지를 여행 중에 이스라엘 여행자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은 매우 용의주도하고, 철저하게 여행준비를 했으며, 또 매우 용감했다. 그들이라면 이미 이 삐끼들에 대한 동태와 라싸 입성에 대한 성공여부도 철저히 파악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스라엘 여행자와 한국인 여행자는 세계에서 가장 용감하다는 여행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잠깐 생각에 잠기던 아내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한 번 시도해 보자고 했다. 아내는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용감할 때가 많다. 나는 갑자기 그런 아내의 표정에서 프랑스의 여류 탐험가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을 연상케 했다.

 

 

다비드 넬(사진)은 이방인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던 20세 초에 무려 다섯 번이나 라싸로 가는 것을 시도한 끝에 1924년 2월, 그의 양아들 용덴과 함께 삼엄한 경계선을 뚫고 윈난성에서 영혼의 도시 라싸로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탁발 순례 중인 무식한 티베트 시골 노파 행세를 하며 3000km나 되는 멀고먼 길을, 그것도 육로로 산을 넘고 강을 넘어 걸어서 여행을 했다. 실로 서양여성으로는 최초로 라싸로 입성한 용기있는 탐험가였다.

 

먹을 것이 없어 가죽구두를 삶아서 국물을 마셔가며 라싸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는 우리나라 합천 해인사와 금강산 유점사를 방문 한 뒤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가는 가서 티베트로 가는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라싸 입성에 성공한 그녀는 1927년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Voyage d'une Parisienne a Lhassa>란 여행기를 발표하여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 나는 티베트 여행을 꿈꾸며 하인리히 하러의 <티베트에서의 7년>이란 책과 함께 이 책을 몇 차례나 읽었다. 티베트 여행을 시도하려고 하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가다가 걸려도 좋다는 용기, 그리고 아내의 결단,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 여행자가 두 명이나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우리는 그 삐끼를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까부터 우리들의 동태를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중국 공안원이거나 CITS 직원인 모양이다.

 

삐끼는 그들의 눈을 피하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짜냈다. 자기가 먼저 택시를 타고 갈 테니 영업용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오래전 우리나라 최초의 택시였던 코로나처럼 생긴 푸른색의 택시를 탔다. 우리가 탄 택시에는 키가 자은 삐끼 한명이 뒷자리에 바짝 엎드려서 탔다. 그렇게 해서 교묘하게 공안원을 따돌린 우리는 골무드 교외에 위치한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마치 차를 한잔 마시러 들어간 여행자처럼…

 

 

▲우리가 타고 갈 폭스바겐 세단 산타나

 

 

라싸로 열린 하늘길

 

카페에서 짜이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다른 삐기가 자주색 산타나를 타고 이스라엘 여행자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독일제 폭스바겐은 제법 근사하게 생긴 세단이었다. 폭스바겐에서 내린 이스라엘의 두 젊은 청년들은 달나라에서나 만날 법한 낯선 모습이었다.

 

구레나룻을 텁수룩하게 기른 그들은 마치 어느 낯선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보였다. 그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키가 큰 청년은 '오거'라고 했고 갸름한 얼굴을 가진 청년은 '융'이라고 소개를 했다. 40대로 보이는 운전수는 매우 튼튼하게 보였다.

 

이스라엘 여행자 오거와 융을 만나고, 듬직한 운전수와 폭스바겐 자동차를 보게 되니 일단 라싸로 가는 길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삐끼에게 두 사람분의 요금 1200위안을 지불하고 오거와 융과 합류를 하여 택시를 탔다. 

 

 

 

▲골무드를 빠져 나가자 곧 만년설로 뒤 덮인 하늘길이 열렸다!

 

 

오후 2시, 물과 약간의 간식거리를 챙긴 뒤 드디어 우리 네 여행자를 태운 폭스바겐은 힘차게 엑셀을 밟으며 라싸로 출발했다! 두 사람의 중국 삐끼는 우리가 준 돈을 손에 들고, 만족한 듯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007영화를 방불케 하는 탈출(?) 작전은 스릴마저 느끼게 했다. 걸릴 때 걸리더라도 일 단 기분은 좋았다.

 

그래도 택시가 골무드 시내를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공안원에게 붙잡히면 어떠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자동차가 골무드를 빠져나가자 곧 만년설로 뒤덮인 하늘길이 다가왔다! 우린 그 멋진 하늘길 풍경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하늘에 걸려있는 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마치 허공을 나는 비행기처럼 속도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