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너도 밤나무냐?-밤꽃 향기 야시시한 섬진강 <19번 도로>

찰라777 2011. 6. 15. 08:40

 알 듯 말 듯한 밤꽃의 독특한 향기 

-밤꽃 향기 진동하는 섬진강 '19번'도로

 

저에게는 늘 다시 가고 싶은 길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남원에서 밤재를 넘어 구례로, 구례에서 지리산 옆구리에 섬진강을 끼고 벚나무 터널을 지나가는 아리아리한 길, 바로 섬진강 "19번" 도로입니다. 벚나무 사이사이로 문득문득 다가오는 은빛 물비늘을 훔쳐보며 가다보면 어느 듯 조영남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화개장터에 다달읍니다. 거기서 양변에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 들이 더욱 조붓하게 하동포구까지 이어지는 길- 19번 도로는 분명,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임 틀림없습니다.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변에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는 섬진강 19번 도로는 은근한 밤꽃향기가 진동하고 있다.

 

 

 

19번 도로를 따라 가로수 사이로 은 빛 찬란하게 빛나는 섬진강 물비늘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어느 듯 하동포구에 도착합니다. 좁은 길은 언제 달려도 싫증이 나질 않고 자꾸만 가고 싶은 길입니다. 하동 포구 나루에 늘어선 재첩식당에서 재첩국 한 그릇 후루룩 마시고, 우거진 '송림'에 발자국을 찍고 나면, 크아~ 십년 체증도 싸악 내려가고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길이 바로 섬진강 19번 도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 섬진강몁 도로

 

 

어찌해서 이름이 '19번'도로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턱이 없지만, '19번'은 성인에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의미심장한 숫자입니다. 해서 19번 도로를 달리다보면 풋풋한 소년소녀들도 성인이 된 듯 사랑을 속삭이며 걷고 달리는 은근하고 조숙한 느낌이 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나는 사계절 섬진강 19번 도로를 달리고 싶어집니다. 자꾸만 가고 싶은 그리움의 길이기도 합니다.

 

 

꼭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습니다.

6월 중순, 나는 아예 이삿짐을 싸들고 서울에서 섬진강으로 이사를 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남원에서 19번 도로를 따라 밤재를 넘고 구례로 넘어오자 무어라 형언할 수없는 그윽한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어 왔습니다.

 

구례읍을 지나 섬진강변으로 접어들자 그 향기는 더욱 진해졌습니다. 그것은 코끝만이 아니라 온 몸을 덮쳐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향기일까 궁금해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니 나지막한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마을에는 밤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섬진강변에는 매화꽃과 벚꽃만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뇌쇄스런 햇볕이 비추이는 유월은 분명 밤꽃의 계절이었습니다.

 

울창한 벚나무 녹음이 터널처럼 우거진 조붓한 19번 도로와 섬진강 둔치사이, 그리고 섬진강을 가운데 끼고 지리산자락과 백운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따끈따끈한 햇살을 받아 설화(雪花)처럼 희고 고운 연두색 밤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었습니다. 송이송이 늘어선 밤꽃을 보는 순간 그 알듯 말 듯한 독특한 향기의 진원지를 확연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털 나고 그렇게 많은 밤꽃을 구경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에는 착해빠져 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고, 은비늘 같은 섬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스트라이프를 그리며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빠,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었어?"

"그럼 있고말고. 그래서 금수강산이 아니더냐?"

"아하, 그렇구나! …"

 

 

▲물비늘 반짝이는 섬진강

 

 

인도며, 프랑스며, 중국이며 여기저기 아름다운 지구촌을 다녀온 바 있는 경이가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연신 탄성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끼고, 양변에 이토록 은은하고 포근하게 골골이 정이 드는 은근한 산자락을 지구촌 어디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란 힘듭니다.

 

 

초하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리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산 아래로 차근차근 이어지는 계단식 논두렁의 소박하고 질박한 곡선, 가로수 사이로 반짝거리는 섬진강의 찬란한 물비늘… 그것은 아무리 두고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입니다.

 

 

▲질박한 논두렁의 곡선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밤꽃

 

 

유월의 섬진강은 밤꽃 향기가 선선한 바람을 타고 온 천지를 휘감아 돌며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매료시킵니다. 꼬숩듯 하면서도 다소 비릿한 밤꽃의 특유의 향기는 화개장터를 지나고 하동포구까지 끝이지를 않고 이어집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하동송림에서 섬진교를 지나 매화마을, 남도대교, 간전면, 문척면을 휘돌아오는 길에도 밤꽃은 지천에 피어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매화마을도 원래는 밤나무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매화마을에는 매화나무 사이사이에 밤나무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홍쌍리 매실농원의 밤

 

 

그렇게 밤꽃 향기 그윽한 섬진강변으로 귀농을 한지 꼭 1년이 되었습니다.

섬진강변에 눌러 살고 있는 요즈음 저는 그 밤꽃의 독특한 향기 속에 아침 눈을 뜨고, 날이 어두워지면 더욱 진해지는 밤꽃 향기를 이불삼아 잠이 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평리 마을은 동서남북이 밤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집집마다 밤나무들이 한그루 이상은 들어서 있습니다. 백운산과 계족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가에도 밤꽃이 눈처럼 희게 피어 있습니다.

 

 

남자를 상징하는 유일한 꽃

 

 

栗花如雪 香浮浮, 疊疊結子 如繁星

"율화여설 향부부, 첩첩결자 여번성

 

밤나무 꽃은 눈처럼 피어 향기가 진동하고,

밤송이는 송이송이 달려 하늘의 별들이 내려앉는 것 같구나

 

 

▲남자를 상징하는 유일한 밤꽃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은 밤꽃을 흰 눈이라고 했고, 밤송이를 하늘의 별이라 표현했습니다. 과연 밤골에 살면서 가까이서 밤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밤꽃은 설탕처럼 고운 것이 꼭 흰 눈꽃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밤꽃은 처음에는 소녀의 머리를 여러 갈래로 곱게 딴 것처럼 연두색으로 길게 아래로 쳐지다가 그 매듭 사이사이에 하얀 핀을 꽂아놓은 것처럼 하나 둘 꽃차례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차례가 솜사탕처럼 하얗게 얼기설기 얽히며 일어납니다.

 

 

▲머리를 딴듯 늘어진 밤꽃 초기

 

 

피침처럼 뻗힌 수많은 흰 수술 끝에는 노란 방울을 달고 있는데, 아래로 길게 처진 수꽃은 마치 여우의 꼬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수꽃에 달려 있는 수많은 핀은 남자의 정자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다소 고소하고 비릿한 향기를 뿜어내는 밤꽃향기는 마치 남자의 정액냄새와도 흡사하여 옛날에는 밤꽃 냄새를 양향(陽香)이라 불렀습니다. 해서 밤꽃이 필 때면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더욱 근신을 하였다고 합니다.

 

 

▲남자의 정자를 닮은 밤꽃 수술

 

 

밤꽃은 남성을 상징하는 유일한 꽃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죄다 여성을 상징하지만, 유일하게 남성을 상징하는 꽃이 바로 이 밤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전통 혼례를 올릴 때에 밤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혼례식이 끝나면 동네 여인들은 밤을 재빨리 집어가곤 하였습니다.

 

 

서양에서도 밤꽃 향기는 '남자의 향기'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평소 새침하던 여인도 밤나무 숲을 함께 걸으면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남자의 향기에 취해서 그렇다는 의미로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속설에 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밤꽃이 피어나며 특유한 냄새를 풍긴다

 

 

아카시아 꽃이 여성의 향기라면 밤꽃은 역시 남성의 향기인가 봅니다. 그것은 꿀에서도 나타납니다. 아카시아 꿀은 희고 맑으며 향기도 달콤한데 비해, 밤에서 뜨는 밤 꿀은 향도 별로 없고 색깔도 거무튀튀하며 씁쓸한 맛이 납니다. 그러나 밤 꿀은 칼륨, 철분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위와 간을 좋게 하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아카시아 꿀보다는 훨씬 몸에 좋은 약꿀로 쳐 줍니다.

 

 

 

▲마치 성게처럼 묘하게 생긴 암꼬츤 수꽃 밑에 핀다

 

 

밤꽃은 한그루에 수꽃과 암꽃이 함께 피어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여우꼬리처럼 부승부승하고 길게 아래로 늘어져 달리는 것은 수꽃이고, 암꽃은 이 수꽃 꽃차례 바로 밑에 숨어서 세 개씩 달리는데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암꽃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꼭 성게의 모습처럼 기이하게 생겼습니다. 묘한 것은 독특한 향을 품어내는 것은 수꽃이고, 암꽃은 향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밥나무'에서 '밤나무'가 된 유래 

 

밤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참으로 그 깊이가 끝이 없습니다. 서설도 길었지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밤나무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아볼까 합니다.

 

 

밤나무는 참나뭇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으로 잘 자라면 15m까지 크며 길이가 한 뼘쯤 되는 길쭉한 잎새를 달고 있습니다. 잎 가장자리에는 바늘처럼 뾰쪽한 엽침(葉針)이 달려 있는데, 다른 참나무에 비해 엽록소가 이곳 엽침까지 퍼져 있습니다.

 

 

▲수평리 마을의 밤나무 숲

 

 

밤은 한자로 '율(栗)'이라 하는데, 이는 '나무木' 위에 꽃과 열매가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모양을 본 따서 만든 상형문자입니다. 영어로는 '체스트 너트(Chest nut)'라 하는데, 이는 단단한 통에 들어 있는 견과라는 뜻입니다. 가시 같은 밤송이는 아무도 접근하기 어려워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

 

 

 

 

▲꽃과 열매가 아래로 처져 '율(栗)'이라 한다

 

 

우리말로 '밤'나무라 부른 유래는 아마도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린다고 하여 '밥나무'라 불렀던 것이 점차 부르기 쉬운 '밤나무'로 변했으리라는 설과, 혹은 '붙은 씨'를 뜻하는 '붇'에서-받-발-발암-바암-밤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는데, 전자의 설이 더 공감되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밤송이가 크기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금강 부근의 공주 밤은 알밤의 크기가 갓난아기의 주먹만 한 것도 있습니다. '삼국지'나 '후한서'에도 마한(馬韓)에서 배만한 크기의 밤이 난다고 적혀 있으며, 중국 역사책에는 백제에서는 달걀만한 큰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씨알이 굵기로 유명한 공주밤(공주 영평사 밤)

 

 

밤이 어찌나 굵은 지 밤알 열다섯 개면 한 말이 되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밤알 두 개로 식사대접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는 밤알 두 개면 밥 한 공기가 넘는다는 뜻입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에도 "벼농사는 풍년이고 밤은 주먹보다 크다(穰多栗過拳)"고하며 밤의 크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밤'은 '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해서, 밤나무는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열매를 최고로 칩니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저장한 밤을 굽거나 삶아 식구들끼리 둘러 앉아 오순도순 까먹는 맛은 그 어떤 것보다도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따끈한 군밤을 한 봉지 사서 주머니에 넣고 연인과 함께 데이트를 하며 먹는 고소한 맛은 추위조차 잊게 해줍니다. 어린 시절 화롯불에 밤을 굽다가 뻥~하고 터지는 소리에 놀라 자빠진 적은 없는지요. 뻥~ 하고 밤알이 터지는 순간에 눈을 다친다고 조심하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삼정승'을 상징하는 밤알 

-조상숭배를 의미하는 근본 깊은 나무

 

 

생밤은 차례 상이나 제사상에 약방의 감초처럼 절대로 빠질 수없는 제물이지요.

이때는 밤을 깎는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합니다. 생밤을 겉껍질을 벗기고 물에 하루정도 담가놓았다가 칼로 정성스럽게 쳐서 속껍질을 벗겨내어 제사상에 올려놓지요. 제사상을 진설은 조율시이(棗栗柹梨-대추‧밤‧감‧배)순서로 차례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율시이 진설의 의미는 매우 심장합니다.

 

대추는 씨가 하나로 나라의 임금을 상징하여 신위(神位)측에서 볼 때 가장 우측에 놓고, 밤은 밤송이 하나에 밤알이 세톨 씩 들어 있어 삼정승을 의미하니 두 번째로 놓이고, 감은 씨가 여섯이니 육조판서를 의미하여 세 번째, 배는 씨가 여덟이니 팔도관찰사로 마지막에 놓인다는 기막힌 의미가 숨겨 있습니다.

 

'조율시이'로 진설(陳設)한 그 순서 안에 일국의 행정부가 다 들어있는 샘이니 우리조상들은 죽은 후에도 후손들이 출세를 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가르쳐 주고 있는 샘입니다.

 

 

또한 대추는 자손 번창을, 밤은 조상숭배를, 감은 화합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혼례시 폐백을 드릴 때 폐백 상에는 반드시 대추와 밤이 올라가고 있지요. 혼례식을 올리고 나서 폐백 시 신부가 시가의 어른들께 절을 올리면, 절을 받은 어른들은 신부의 치마폭에 밤과 대추를 던져줍니다. 요즈음은 돈 봉투를 곁들여서 던져 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밤은 물론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뜻입니다.

 

 

 

 

밤나무는 사당이나 묘에 새우는 위패를 만드는데 꼭 쓰입니다.

밤나무가 위패로 쓰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종자에서 싹을 틔워 내면서 종자와 껍질을 밀고 올라옵니다.

 

 

그러나 밤나무는 그 반대로 종자의 껍질이 뿌리가 내려가고 줄기가 올라가는 그 경계부근에 부근에 오래도록 달려 있는데, 길게는 10년 또는 100년 이상 껍질이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나무는 자기가 나온 근본을 잊지 않는 나무로서, 선조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조 깊은 나무로 여겨져 왔다고 합니다.

 

 

밤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탄력성이 커서 일찍이 세계 각국의 철도 침목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목재에 타닌 성분이 들어있어 잘 썩지 않으므로 다른 나무에 비해 수명이 길어 특별히 방부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는 타닌 성분이 방부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하지 않는 성분 때문에 경주 천마총 내관의 목책도 밤나무로 되어 있고, 각종 농기구, 가구재, 건축재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포도주를 보관하는 술통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밤나무 목재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밤나무 밑에서 탄생한 원효대사

 

밤나무에 얽힌 재미나는 설화와 전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원효대사의 탄생설화입니다. 원효대사의 어머니는 유성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만삭이 되어 친정으로 가던 중, 갑자기 산기가 있어 밤나무 숲(지금의 경북 경산군 압량면 남쪽 불지촌)에서 남편의 옷을 밤나무에 걸어 이슬을 가린 채 해산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옷을 걸었던 밤나무를 '사라수(裟羅樹)'라 부르게 되었고, 그 밤나무 열매가 스님들의 바리때를 가득 채울 만큼 유난히 커서 '사라율(裟羅栗)'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지명을 '율곡(栗谷)'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나도 밤나무!"

-율곡 선생의 탄생 설화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과 얽힌 밤나무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율곡의 아버지인 감찰공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이 혼인한 지 5년 되던 해, 이공은 공부를 위해 10년 작정을 하고 서울로 떠납니다.

 

드디어 약속한 10년이 지나 아내가 있는 강릉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이공은 며칠을 걸은 끝에 강원도 대화 땅(지금의 평창)에 이르러 주막에 묵게 되었습니다. 이공이 곤한 잠에 떨어진 야심한 시각, 방문이 열리고 소복단장한 주막주인이 주안상을 차려 들어오며 하룻밤 가연 맺기를 간절히 청해왔으나 이공은 이를 단호히 뿌리치고, 신사임당과 10년 만에 재회하였습니다.

 

 

 

그 후 신사임당은 흑룡(黑龍)이 어린아이를 안겨주는 꿈을 꾸고는 태기를 느꼈는데, 그즈음 이공은 과거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평창 근처를 지나던 이공은 전날 주막집 여자에게 너무 몰인정하게 대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 집을 다시 찾았답니다. 그날 밤 이공이 여인을 불러 정중히 사과를 하고 같이 지내자고 하자 그녀는 정색을 하고 말했답니다.

 

 

"비록 주막을 하여 먹고 사나 그런 여자는 아닙니다. 제가 배운 것은 없지만 오가는 사람을 많이 보아 기색을 대강 살필 줄 아는지라 그날 당신의 얼굴에 서기(瑞氣)가 서린 것을 보고 귀한 자식을 낳아볼까 하는 욕심에 여자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리하였으나, 지금은 그런 서기도 사라졌을 뿐더러 이미 부인의 몸에 귀한 아드님이 잉태되어 있사온데 제가 공연히 정조만 더럽힐 필요가 있겠는지요."

 

 

하고 딱 잘라 거절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아이가 인시(寅時)에 출생하게 되므로 일곱 살이 안 되어 호환(虎患-호랑이에게 당하는 화)을 당하게 될 터인 즉 그것이 걱정이올시다" 하니 이공은 그 여인이 범상치 아니함을 깨닫고, 그때까지의 무례를 정중히 사과한 후 호환을 면할 방도를 간곡히 묻자,

 

 

"천 명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데, 대신 밤나무를 천 그루 심으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외다. 다만 아이가 일곱 살 무렵 늙은 중이 와서 아이를 보자 하거든, 아이를 숨기고 밤나무를 보이면 무사할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공은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사임당에게 전 후 사연을 말하고 고향집인 화석정 주위에 부지런히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답니다.

 

과연 그해 12월 어느 날 인시에 아들을 낳았으니 이공은 특별히 밤나무를 키우는 일에 전심전력하였는데,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여인의 말대로 늙은 중이 찾아와 아이를 찾았다.

 

이공은 여인이 시킨 대로 '나는 이미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 적덕(積德)하였으니 내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고 호통 치고, 뒷산의 밤나무 숲을 보여주자 그 중은 천 그루가 맞는지 일일이 세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매었던 한 그루가 말라 죽어 천 그루를 채우지 못하자, 그 늙은 중은 천명을 거역하려느냐고 하며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나무가 '나도 밤나무!' 라고 소리치며 천 그루를 채우더랍니다. 결국 호환을 면한 이공의 아들은 잘 자라서,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고 밤나무 식재론을 제창한 당대의 성리학자 '율곡선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율곡의 고향에는 지금도 밤나무와 비슷한 '나도 밤나무' 란 나무가 있는데 율곡을 살려냈다고 하여 '활인수(活人樹)'라 하고, 그 나무가 있던 고개는 '율목치(栗木峙-밤나무재), 동네 이름도 '율곡리', 선생의 호도 '율곡(栗谷)'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아주 비슷하지만 밤 대신 빨갛고 작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 참나뭇과인 진짜 밤나무와는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나도밤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너도 밤나무냐?"

-울릉도 너도 밤나무에 읽힌 전설

 

 

울릉도에는 '너도밤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자라고 있습니다. 이 너도밤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더 올려 볼까합니다.

울릉도 작은 마을에 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 '이 산에 밤나무 백 그루를 심어라. 어기면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다'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밤나무 백 그루 심고 정성껏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산신령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밤나무 백 그루를 심었느냐?"

"예, 어김없이 심었습니다."

"그럼 가서 세어 보기로 하자."

 

하고 산으로 올라가 한 그루 두 그루 세어 나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분명히 백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세기를 간청하였고, 이번에도 역시 …아흔여덟 아흔아홉… 하고 끝인데 옆에 서 있던 작은 나무가 느닷없이 '나도 밤나무' 하더랍니다.

 

 

깜짝 놀란 산신령이

"너도 밤나무냐?"

하고 재차 묻자

"예, 틀림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밤나무를 정성들여 키웠으나 밤나무는 모두 죽고 너도밤나무만 살아남아 지금도 울릉도에는 밤나무는 없고 너도밤나무만이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울릉도 서면 태하동의 '너도밤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51호로 보호받고 있는데, 참나뭇과에 속하며 세계적 희귀수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 나무랍니다.

 

 

"딱 한뼘만 남겨줘요"

 

기왕지사 밤나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남성 심벌 크기'와 밤나무에 얽힌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옛날 한 과부가 형제를 데리고 살았는데 욕심쟁이 놀부 같은 큰아들이 전 재산을 가지고 분가하자 과부는 어린 작은 아들과 살게 되었답니다. 너무 가난해진 과부는 남편의 제사가 가까워졌지만 큰아들은 신경도 쓰지 않더랍니다.

 

 

어느 날, 착한 작은 아들은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밤 세 톨을 주워, 가장 큰 것은 아버지 제사에 쓰고, 중간 것은 어머니에게, 가장 작은 것은 자기가 먹기로 작정하였지요. 돌아오는 길에 작은 아들은 우연히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닿아 도깨비들이 은방망이를 두드리며 '떡 나와라, 밥 나와라'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도깨비들이 은방망이를 두드리는 대로 떡이 나오고 밥이 나왔답니다.

 

 

그 음식을 본 작은 아들은 허기가 져 무심결에 밤 한 톨을 입에 넣었고 깨물자 '딱!'하고 밤알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그 밤알 터지는 소리에 도깨비들은 집이 무너지는 줄 알고 질겁하여 도망치자 작은 아들은 은방망이를 들고 돌아와, 두들기는 대로 소원을 들어 주는 귀물 덕분에 아버지의 제사는 어느 때보다도 진수성찬을 차려 아버지의 제사를 성대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본 욕심쟁이 큰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착한 동생을 구슬려 자초지종을 듣고 난 큰 아들은 그 길로 밤 세 톨을 들고 도깨비 집을 찾아가서 밤 한 톨을 요란스럽게 깨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속은 후 화가 날 대로 난 도깨비들은 도망은커녕 우르르 몰려들어 몰매를 주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큰 아들의 '신(腎)'을 서른다섯 자나 잡아 늘려 버린 것입니다.

 

 

 

큰 아들이 축 늘어진 자신의 그것을 등에 걸머지고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시동생을 찾아가 이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며 훌쩍훌쩍 울면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딱하게 여긴 작은 아들은 은방망이를 가지고 형을 찾아가 한 번 두드릴 때마다 한 자씩 줄여 나갔는데, 형수가 점점 작아져 가고 있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이런 식으로 간다면 그것이 아예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급한 나머지 "내 몫으로 한 뼘만 남겨 줘요. 딱 한 뼘만…"라며 애원을 했답니다. 작은 아들은 형수를 생각해 그녀의 소원대로 '딱 한 뼘만' 남겨 주었는데, 이런 연유로 남자의 그것은 딱 '한 뼘' 크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곳 수평리에는 밤이 되면 정말로 이산 저산에 도깨비들이 불을 켜고 나타납니다. 처음에 이사를 와서는 웬 산중에 마을이 그리 많나하고 멋도 모르고 불이 켜진 산 중턱까지 걸어올라 갔더랬습니다.

 

그런데 그 불빛은 도깨비불도, 마을 불빛도 아니었습니다. 밤나무에 달려드는 벌레를 잡는 집충등(集蟲燈-벌레를 모아들이는 등)이었습니다. 그 집충등이 어떤 때는 은하계의 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사진:수평리 계족산 중턱밤나무 숲에 나타난 도깨비 불).

 

 

 

밤을 맛있게 먹으려면...

-소금물에 담근 후 냉장실에 보관해야

 

 

밤나무를 기르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병충해입니다.

지긋지긋한 병충해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요즈음은 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밤나무 밭 곳곳에 집충등을 설치하여 벌레를 잡고 있습니다. 또한 고슴도치처럼 뾰쪽한 침으로 둘러싸인 밤을 따기도 힘들고, 까기도 힘이 듭니다.

(사진:집충등)

 

밤을 딴답시고 고개를 들고 간짓대로 밤송이를 두드리다가 자칫 잘 못하면 밤송이에 눈이 찔려 실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밤송이를 벗겨내도 다시 단단한 겉껍질과 떫은 속껍질이 질기게 붙어있어 밤 알갱이 속살 하나를 먹으려면 하고많은 수고를 하여야 합니다.

 

 

허지만 그 귀한 밤을 칼로 쳐서 입안에 가득 넣고 으드득 씹는 맛은 천하 일미에 속하는 맛이 나지요. 밤을 넣어 만든 약밥과 갈비찜도 별미중의 하나입니다. 아이스크림 중에도 '바밤바'의 맛은 매우 고소한 맛이 납니다. 프랑스에서는 마론 글라세(Marrons glases)라는 유명한 과자가 있는데, 밤알을 설탕에 진하게 조려 만든 이 과자는 세계 3대 명과에 속할 만큼 맛이 좋다고 합니다.

 

 

▲밤을 소금에 담궜다가 냉장보관하면 벌레가 없다.

 

 

이렇게 별미를 제공해주는 밤을 오래도록 먹으려면 각별한 방법으로 보관을 해야 합니다. 밤에는 심식충(心食蟲-열매의 속을 파먹는 벌레)이라는 알이 껍데기에 붙어 있습니다. 이 알은 껍데기에 붙어 있다가 따뜻해지면 부화를 하여 어린 애벌레가 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다고 애벌레를 잡기 위해 농약을 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밤을 오래 보관하고 싶을 때는 진한 소금물에 한 일주일 정도 담갔다가 냉장고에 보관을 하면 벌레로부터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오래도록 싱싱한 밤을 먹을 수 있습니다.

 

 

농염하게 풍기는 밤꽃 향기는 묘한 늬앙스를 자아내게 한다

 

 

밤꽃 향기는 참으로 진하고 농염합니다.

이 글을 쓰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런 시가 눈에 띠더군요. 한시(漢詩)에서 인용된 이 시는 누구의 시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농염한 밤꽃 향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내용이어서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밤꽃 냄새 이미 알고 있다면/이는 필히 처녀가 아닐 것이고/밤꽃 냄새 온 동네 진동하니/이 동네, 저 동네 과부들 바람난다/귀가를 서두르는 아줌씨들 걸음걸이 더욱 종종거리고/잠자리 드는 마누라 콧소리는 점점 더 앵앵거린다/음운이 어떠니 문법이 어떠니 따지면 모두 내 아들이다

 

(栗花香氣已知女 子曰必稱非娘子 栗花香氣滿開洞 萬洞寡婦艶情分 促歸家婦臀芳走 寢入內子弄鼻鳴 是耶非耶皆吾子)"

  

 

 

▲밤꽃 향기 그윽한 아침풍경(수평리)

 

 

제법 긴 글을 썼군요. 재미있나요? 새벽에 이 글을 쓰며 창문을 여니 밤꽃만이 가진 그 특유한 냄새가 창틈으로 새어들고 있습니다. 밤꽃 향기를 따라 아침을 산책을 나갑니다. 오늘은 백운산 자락으로 산책을 나가봅니다. 들에는 아침 일찍부터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멀리 섬진강을 끼고 너른 구례들에는 모내기를 끝난 논과 모내기를 하기 위한 파란 모판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습니다. 논두렁에는 밤나무들이 간간히 서 있습니다. 밤나무 숲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밤꽃 향기가 진하게 진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꽃에 있어야 할 꿀벌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습니다.

 

 

꿀벌이 사라지고 없어 걱정입니다

 

꿀벌은 왜 사라지고 없을까요?

이맘때쯤이면 밤 꿀을 채취하기위해 분주해야 할 통에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질 않습니다. 밤꽃에도 벌은 보이질 않습니다. 밤나무 숲에는 주인을 잃은 벌통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저희 집 담장에 있던 벌집에도 벌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도 작년에는 벌들이 꽤 날아들어 왔는데 금년에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꿀벌이 사라진 밤숲에는 빈 벌통만 외로이 있다

 

 

꿀벌을 키우던 농가는 꿀벌 채취를 아예 포기를 하고 있습니다. 꿀벌을 키우러 왔던 사람들도 떠나고 없습니다. 그래도 작년에는 벌들이 꽤 날아들어 왔는데 금년에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 토종벌의 90% 이상이 전국적인 바이러스 감염으로 떼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더 심해진 이상기후와 냉해로 토종벌이 유충을 낳지 못하고 죽어가면서 토종벌의 종자마저 구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기후-생태계 파괴-냉해-바이러스 감염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휴대전화의 전자기파가 꿀벌의 떼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밤나무에 둘러싸인 계단식 논(수평리)

 

 

ABC 뉴스에 따르면 스위스 생물학자이자 꿀벌 전문가인 다니엘 파브르는 실험 결과 휴대전화가 꿀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응애와 살충제 외에 휴대전화 단말기들과 중계소가 꿀벌 개체수 감소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파브르는 벌집 속에 휴대전화를 놓아두고 이들의 반응을 관찰한 결과 전화가 통화 모드에 있을 때 벌들이 ‘일벌 장단’으로 알려진 특이한 소리를 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보고서에서 “휴대전화의 전자기장에 의해 꿀벌 군집에 ‘일벌 장단’이 발생하면 예기치 못했던 분봉 사태가 벌어지고 이로 인해 군집들이 붕괴하는 극적인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모내기에 바쁜 농가(수평리)

 

 

벌과 나비가 사라진 지구는 어떻게 변할까요?

밤꽃 이야기를 하다가 심각한 이야기로 변하고 말았군요. 그러나 하나뿐인 지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화두입니다. 벌과 나비가 사라지면 아름다운 꽃이 사라지고, 지구를 살아가는 종의 수가 점점 줄어 들 것이며, 지구환경의 황폐화로 우리 인간들도 제명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벌과 나비가 사라져가는 생태계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2011. 6. 14 밤꽃 향기 그윽한 섬진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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