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내 손으로 매실장아찌 한번 담가볼까?

찰라777 2011. 6. 22. 12:11

푸른 매실이 주렁주렁 달린 섬진강변은 바야흐로 청매실의 수확기다. 매화꽃에 비해 청매실 향기는 매우 은은하고 그윽하다. 매화꽃 향기를 '귀로 듣는 향기'라 한다면 매실향기는 '마음으로 듣는 향기'가 아닐까? 탐스럽게 달린 열매만 보아도 군침이 입에 가득 고이니 말이다. 

 

 

▲매실 장아찌를 다믹 위해 매실에 캅집을 내고 방망이로 매실을 쳐서 씨를 골라내고 있다.

 

 

나처럼 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매실 장아찌나 엑기스를 만들어 상용을 하는 게 좋다며, 아내는 매실 장아찌를 우리 손으로 직접 담가보자고 한다. 물론 손쉽게 사서 먹을 수도 있지만 매실의 본 고장에 살고 있으니 체험도 할겸 직접 정성을 들여 담가먹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내의 제의에 순순히 동의를 하고 어떤 매실을 구입할까 생각중에 있는데, 마침 매실농장을 가지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광주에 살고 있는 옛 직장동료인 그는 압록 근처 섬진강변에 매실 농장을 가지고 있는데, 주말에 매실을 따러 온다고 했다. 그러니 매실을 따는 체험도 하고, 딴 만큼 매실을 가져가라고 한다. 우리가 매실 장아찌를 담으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이건 정말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다.

 

 

 ▲찬구 농장에서 매실 따기 체험을 하며 매실을 따냈다.

 

  

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는 친구의 매실 농장이 있는 압록으로 갔다. 지난 5월에는 찻잎을 직접 따서 작설차를 만드는 체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매실을 따서 매실 장아찌를 직접 담그는 체험을 하려고 하니 괜히 가슴이 설렌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아내와 나는 계절 따라 농사일을 하나하나 체험을 해보는 것 자체가 새롭고 의미가 깊다.

 

"매실이 아주 튼실하게 잘 열렸네!"

"응,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무공해 매실이야."

"그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군."

 

오전 9시경 농장에 도착을 하니 친구의 가족들이 매실을 분주하게 따고 있었다. 그의 농장에는 약도 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매실이 풍성하게 열려 있었다. 매실농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리를 제법 잘하여 꽤 굵고 싱싱한 매실이 달려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정담을 나누며, 땀을 흘리면서 한나절 매실을 따고 나니 50자루 정도 따졌다. 알알이 달린 매실을 자루에 담아 놓으니 풍성한 기분이 들었다.

 

 

 ▲매실을 딴 노동의 댓가로 매실 두 자루를 얻고 나니 부자가 부럽지 않다

 

 

친구가 준비해온 삼겹살로 막걸리까지 곁들이며 점심도 맛나게 먹고, 매실도 두 자루나 얻었다. 친구는 땀 흘린 노동의 대가라며 선뜻 두 자루를 자동차에 실어 주었다. 매실을 트렁크에 실고 집에 돌아오는데 엄청 부자가 된 기분이다.

 

"큰 알은 장아찌를 담고 작은 알은 매실 엑기스를 담가요."

"그럼 씨를 일일이 다 빼야 겠네?"

"당근이지요. 당신 오늘 매실 씨 좀 빼 봐요."

 

꼼짝없이 일을 해야 했다. 우선 매실을 물로 잘 씻어서 꼭지를 일일이 따냈다. 그리고 물이 잘 빠지는 바구니에 한나절 정도 담아 물기를 제거했다. 물기가 마른 다음에는 씨를 빼내고 매실 살만 발라내서 장아찌를 담가야 한다.

 

 

 ▲매실꼭지를 따내고 좋은 매실만 추려 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매실을 십자로 칼집을 내서 방망이로 두들기면 씨가 톡 튀여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니 만만치가 않다. 칼로 일일이 자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방망이를 잘 못 두드리다가는 손가락을 내리치기 일쑤였다. 거기에다가 매실 살이 씨에 붙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둘이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마침 이웃집 혜경이 엄마가 들어왔다.

 

"에고, 두 분이서 별거 다 하시네. 그냥 두들기면 안 되고요. 소금에 몇 시간 절였다가 해보세요, 그러면 씨가 더 잘 빠져 나와요."

"매실을 소금에 절인다고? 짜지 않을까?"

"약간이 간이 들어간 매실이 더 맛있어요."

 

 

 ▲십자로 칼집을 내어 방망이로 톡 치면 매실 시가 툭 튀어나온다. 소금에 절였다가 치면 더 잘 빠져나온다.

 

 

혜경이 엄마는 매실을 까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십자로 칼집을 낸 매실을 꼭지 반대로 세워서 방망이로 살짝 가격을 하자 씨가 톡 빠져 나왔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왼손으로 매실을 잡고 오른손으로 칼질을 하여 조각조각 깎아 내는데 속도가 엄청 빨랐다. 오랫동안 해본  숙련 된 솜씨다.

 

그런데 아내와 내가 해보니 잘 안 된다. 자칫 잘 못하다가는 손을 상할 것만 같다. 우리는 손으로 깎는 것은 포기를 하고 소금에 담갔다가 방망이로 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소금에 담근 매실은 훨씬 씨가 잘 빠져 나왔다. 십자로 긋지 않고 일자로만 잘라도 씨가 톡톡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루를 작업을 해서 씨를 다 빼냈다.

 

 ▲십자로 빠게지는 매실 과육

 

 

▲혜경이 엄마는 매실을 조각내어 잘라내는 솜씨도 일품이다 

 

  

이제 매실 장아찌를 담글 차례다. 일반적인 방법은 매실 10kg, 설탕 10kg(황설탕 5kg, 백설탕 5kg) 비율로 섞어서 잘 휘저어 유리 용기에 담아 100일간 봉해 놓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번 홍쌍리매실농원 매실교실에서 잠깐 들어보니 매실 10kg, 설탕 7kg, 올리고당 3kg에 식초를 약간 섞어 넣으면 매실 맛이 너무 달지 않고 좋다고 했다. 우리는 그 비율로 매실과 설탕, 올리고당을 섞어서 장아찌를 담았다.

 

▲매실과 설탕을 1:1비율로 섞어서 잘 휘저어 주어야 한다.

 

 

매실 엑기스는 매실을 통째로 담는 것이다. 매실 10kg, 설탕 10kg을 섞어서 설탕이 녹을 때까지 휘저었다. 씨는 버리지 않고 별도로 설탕에 재워서 보관했다. 씨에 붙어있는 매실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매실 장아찌와 엑기스를 하루정도 큰 자배기에 담아놓고 설탕과 매실이 골고루 섞이도록 주기적으로 주걱으로 잘 휘저었다.

 

"와! 이 매실 향기! 기가 막히네!"

"매실향이 이렇게 짙은 줄 몰랐어요."

"매실장아찌 담는 일이 쉽지가 않는 일이군."

"농사일이 어디 쉬운 것이 하나라도 있겠어요."

"하긴....."

 

매실향이 온 집안에 가득 찼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거실에 나오니 매실향이 그윽하다. 매실향기는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향기롭다. 신맛을 내는 매실냄새는 입에 저절로 군침이 고이게 한다. 설탕은 매실 수액을 빨아내는 역할을 한다. 설탕이 녹으면서 매실을 우려내어 매실 엑기스가 진하게 고였다. 

 

 

 

▲봉합전 매실 장아찌. 설탕을 위에 잔뜩 버무려주어야..

 

 

이렇게 엑기스로 변한 매실을 도자기 용기와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맨 위쪽은 설탕을 버무려 봉합을 했다. "2011.6.15 봉합"이란 표시를 하고 다용도실에 저장을 해 놓고 보니 마치 타임캡슐을 묻는 기분이 든다.

 

"어디보자, 100일 후면 9월 23일이 되는군."

"매실 장아찌 맛이 어떨까요?"

"하하, 누가 담갔는데. 아주 기가 막히겠지."

"기대가 되는군요."

 

100일 후면 매실 장아찌 맛이 어떻게 변할까? 정말 기대가 된다. 서투른 솜씨로 처음 담가 보는 것이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매실을 따서 장아찌를 담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매실 장아찌를 손수 담그면서 농사일이란 어느 것 하나가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한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음식은 물, 공기, 햇빛을 취하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과 정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봉합을 끝낸 매실 장아찌가 마치 타임캡슐 같아... 100일후의 매실장아찌 맛이 기대된다.

 

 

그러니 우리 밥상에 오르는 그 어떤 음식도 밥상에 오르기까지 수고를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먹기 전에 수고를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잠시 감사 기도를 올린다. 그런의미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1년에 한 번 정도는 작은 농사일이라도 체험을 해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귀농 1년차. 작설차를 덖고, 매실 장아찌를 담아보고, 텃밭에 야채를 심어서 가꾸는 체험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선한 보람을 갖게 한다. 타임캡슐처럼 저장된 매실 장아찌 맛은 100일 후에 과연 어떤 맛을 낼까? 

 

 

(2011.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