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폭풍전야의 지리산 형제봉과 섬진강

찰라777 2011. 6. 28. 05:39

폭풍전야의 지리산 형제봉과 섬진강

 

 

 

▲현제봉 활공장에서 바라본 섬진강

 

 

 

수평리 집에서 계족산을 바라보니 운해가 한 폭의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운해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운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형제봉에 올라 섬진강이 보고 싶어졌다.

 

형제봉은 두 봉우리(2봉 1117m, 1봉 1115m)가 사이좋게 서 있는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형제봉은 하동 악양면에 위치한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과히 장관이다. 형제봉에서 섬진강을 보지 않고서는 섬진강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수평리 집에서 바라본 계족산 운해

 

 

 

멀리 천왕봉에서 제석봉, 촛대봉을 거쳐 남부능선을 따라 이어져 내려온 형제봉은 신선봉을 끝자락이 섬진강에 잠기기전에 우뚝 솟아있다. 그래서 형제봉에 오르면 탁 트인 조망 아래 가장 멋진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다. 슬로시티의 고장 악양의 진산인 형제봉은 풍요와 덕을 내리는 산이다. 비옥하고 너른 악양들이 형제봉을 싸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형제봉 아래 펼쳐진 비옥한 악양들

 

 

형제봉을 오르는 1코스는 악양 강선암에서 철쭉제단을 거쳐 정상까지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고, 2코스는 외둔 삼거리에서 고소성과 신선대를 거쳐 정상까지 3시간 30분, 3코스는 화개 부춘에서 임도를 따라 활공장(패러글라이딩 장)을 경유하여 정상까지 1시간 20분 소요되는 코스로 나누어진다.

 

형제봉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제2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금은 점심 후 오후의 시간인데다 폭풍전야여서 차를 몰고 부춘골 임도를 따라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기로 했다.

 

 

 

 

 

 

 

 

 

 

 

 

 

 

 

 

 

 

 

 

 

 

요즈음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19번 도로는 벚나무가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다. 싱그러운 녹색터널을 달려 화개장터를 지나면 곧 부춘 마을로 들어가는 임도가 나온다. 꼬불꼬불한 길은 부춘 마을 가슴팍을 지나 형제봉 활공장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형제봉 산허리에 매달리듯 붙어있는 ‘부춘’마을은 고려시대 원강사라는 큰절이 있어 ‘부처골’로 부르던 것이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전엔 ‘불출동’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고려시대 학식이 높은 한유한이라는 학자가 왕의 부름을 받고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이 마을에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부춘 마을을 지나면 도로는 더 좁아진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임도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간다. 날씨는 잔득 흐리고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온다. 우거진 녹음이 정적을 이루고 있고, 오가는 사람도 자동차도 없다.

 

 

 

 

 

 

 

 

 

 

 

활공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더 거세게 분다. 자동차에서 내려 활공장으로 먼저 갔다. 아아, 이 파노라마!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스카이라인을 이룬 지리산이 녹색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노고단, 반야봉, 삼도봉, 벽소령, 칠선봉, 영신봉, 촛대봉, 제석봉, 천황봉, 시루봉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폭풍전야의 운해가 변화무쌍하게 소용돌이치며 능선을 넘나드는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엄을 연출한다. 겹겹이 싸인 능선들이 금방 쏟아질 듯한 먹구름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 꿈틀거리는 능선 아래 슬로시티 악양들이 천국처럼 펼쳐져 있다. 들판 사이사이에 집들이 조개껍질처럼 붙어 있다. 들판 사이로 은빛을 발하며 이리저리 이어진 농로가 모자이크를 그리고 있다. 패러글라이더들이 반할만도 하다. 행글라이더를 타고 저 구름 위를 나르는 기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우리라.

 

멀리 섬진강이 태극무늬를 선명하게 그리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강의 저편은 전라도, 이편은 경상도다. 강 건너 백운산이 만만치 않게 산세를 뽐내고 있다. 섬진강 사이를 두고 경사도와 전라도가 갈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강 이편은 경상도 말을 쓰고, 강 저편은 전라도 말을 쓴다. 강을 사리에 두고 선거철이 오면 정치의 이데올로기가 달라진다. 도의 경계를 긋지 말았어야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그냥 섬진강도라고 하면 안 될까? 좁은 땅 덩어리에서 이 편 저 편 편 가름을 한다는 것은 크나 큰  비극이다.

 

활공장에서 형제봉 정상까지는 1.5km, 시루봉까지는 3.5km이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에서 만족을 해야 할 것 같다. 폭풍전야의 먹구름이 언제 폭우를 쏟아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지혜를 내려주는 산이다.

 

폭풍전야의 산행은 조심해야 한다. 곧 폭우를 쏟아져 내릴 기세를 보이고 있는 하늘을 무서워해야 한다. 저 하늘에 구멍이 뚫리면 지금까지 참았던 비가 빗발치듯 쏟아져 내릴 것이다. 자연을 존경하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사실 자동차를 타고 이곳에 오른 것도 불경죄에 해당할 것이다. 나는 노고단과 반야봉, 천왕봉과 섬진강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형제봉을 내려왔다.

 

(201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