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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화성에서 오셨나요?

찰라777 2011. 12. 4. 07:09

손님, 화성에서 오셨나요?

수평리 구멍가게가 그립다!

 

 

▲수평리 수평상회 앞에서 윷놀이를 하는 마을 사람들

 

 

찰라는 금년에 이사 복이 터졌나 봅니다. 수평리에서는 갑자기 이사를 하느라 세 곳에 짐을 옮겨 놓았습니다. 지리산에 오래 둘 것은 미타암 컨테이너 박스에, 12월 15일 날 봉천동으로 이사를 할 짐은 오준모 등산대장 컨테니어 박스에, 올해 수평리 텃밭에서 수확을 한 배추와 무로 담은 김장 김치가 들어있는 냉장고는 혜경이 엄마네 집(냉장고를 가동을 시켜야 하므로)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으면 다시 구의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청정남님께서 임진강에 거소를 마련해 주어 그쪽으로 갈 이삿짐도 꾸려야 합니다. 이래저래 금년에는 이사를 하다가 연말을 마무리 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 내일은 임진강으로 소파와 책상을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안산에 살고 계시는 형님이 봉고트럭으로 옮겨주신다고 하여 봉천동으로 이사를 하기 전에 미리 옮기기로 한 것이지요.

 

이삿짐 이야기를 하려고 이글을 쓴 것은 아닌데… 하여간 이삿짐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필요한 테이프, 끈, 박스 등을 사기위해 테크노마트에 있는 롯데마트로 갔습니다. 가까운 거리이지만 박스 등을 실어야 하므로 할 수없이 자동차를 몰고 가야 했습니다. 수평리 같으면 물론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서 갔을 거리입니다.

 

테크노마트 지하 2층에 있는 주차장으로 가니 자동차들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거리를 이렇게 많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니! 서울에서는 늘 보아오던 풍경이지만 섬진강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나로서는 어쩐지 낯선 풍경처럼 보입니다. 물론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있지만 말입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이렇게 마구 기름을 길에다 쏟아 부어도 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잘 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

 

주차장도 만원입니다. 나는 여기저기 빈자리를 찾아다니다가 가까스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습니다. 뒤에서 빨리 주차를 하지 않는다고 빵빵대는 차들 때문에 진땀이 납니다. 무에 그리 바쁜지 사람들은 잠시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방방거립니다. 차를 파킹을 하고 롯데마트로 들어갔습니다. 카트를 밀고 구름처럼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가고 있습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계산대에는 카트에 산더미처럼 장을 본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포장용 테이프와 장갑, 노끈 등 몇 가지를 사들고 소형 계산대로 갔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찾으니 앗 불사! 지갑이 없습니다. 섬진강 시골마을에서 사는 버릇대로 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입니다. 수평리에서는 지갑을 별로 지니고 다닌 적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구멍가게에서는 물건을 외상으로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안 되는 일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계산대 직원에게 내 차량번호와 주민등록 번호를 적어 놓고 집에 가서 지갑을 가져오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나를 계산대의 여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빤히 쳐다봅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어디 화성에서 오셨남? 마트에서 물건을 외상으로 사려고 하다니. 계산대의 직원이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손님 이곳에서는 계산을 해야만 물건이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빨리 자리를 비켜 주세요.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수평상회 앞 정자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하고 있는 아내와 수평상회 민우엄마

 

그제서야 나는 겸연적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습니다. 물건은 많지만 돈이나 신용카드가 없으면 못 하나라도 가져올 수 없는 곳이 대형마트의 현실입니다. 나는 갑자기 수평리 마을에 있는 수평상회가 그리워졌습니다. 수평상회에서는 돈이 없어도 언제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습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서 필요한 물건을 들고 오면 됩니다. 물론 돈을 가지고 가야겠지만 지금처럼 깜박 있고 지갑이나 돈을 가지고 가지 않더라도 물건을 줍니다. 나중에 갖다 주면 되니까요. 신용카드도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구례 장에서도 몇 번 낯이 익으면 장터 아주머니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줍니다. 이게 시골 인심이지요.

 

또 수평리 마을에는 날마다 이동식 구멍가게 자동차가 마을에 옵니다. 1톤 트럭에 생필품을 가득 실은 이동식 구멍가게에는 만물상처럼 없는 것이 없습니다. 수평리에서는 이동식 구멍가게아저씨도 외상을 줄 때가 있습니다.

 

 

▲수평리 마을에는 이동식 구멍가게(만물상)가 하루에 한번씩 다녀간다.

 

 

모든 것이 대형화 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인간이 마치 컴퓨터가 조정하는 로봇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는 대형마트의 출현으로 구멍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지가 오래전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많은 물건들을 보다 싸고 편리하게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구멍가게보다는 결코 싼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자동차를 몰고 가느라 기름 값이 들어가지요. 공짜 파킹 시간이 초과되면 주차비 물어야지요. 구매충동으로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많이 사게 되지요. 또 물건을 많이 사오면 냉장고에 가득 채워야 하니 전기세가 더 들어가지요. 거기에다가 냉장고 공간이 부족하면 김치내장고다 냉동고다 해서 냉동장치를 더 사야되지요.

 

또 너무 많이 사서 음식물이 부패되면 버리게 되지요. 그러니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구멍가게보다 더 싸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구멍가게는 내집의 냉장고처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언제나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소량씩 사오면 됩니다. 

 

그러나 이제 아파트와 자동차, 대형마트는 소비의 대명사처럼 보입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자동차들이 많아지고 아파트와 자동차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기업 형 대형마트가 거대하게 똬리를 틀고 소형 구멍가게들을 몰아내고 맙니다.

 

구례읍에도 작년에 대형 농협 하나로 마트가 새로 들어섰습니다. 이미 축협 하나로 마트가 있고, 삼성마트, 이마트 등 마트들이 몇 개나 있는데도 정부는 대형 농협마트를 들어서게 허가를 하고 있습니다. 인구 몇 만도 아니 되는 읍에서 작은 구멍가게는 설 땅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나는 시장보기는커녕 계산대 직원에게 의심만 받고 그 복잡한 지하 주차장을 겨우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슬리퍼를  신고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물건을 사러 가는 수평리가 갑자기 그리워졌습니다. 

 

커피를 공짜로 뽑아주며 물건을 외상으로 주는 수평상회 민우 엄마의 웃는 모습도 그립습니다. 민우엄마는 나를 보면 무조건 커피를 공짜로 뽑아주었습니다. 그런 수평리 마을의 구멍가게 인심이 그립기만 합니다.

 

이거야 정말, 나는 정말 화성에서 온 사나이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