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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석도(怪石圖)를 바라보며 불황을 이겨내자

찰라777 2010. 6. 10. 12:12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 불황을 생각하고 그렸겠는가? 그는 37년이란 생애동안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을 그렸다. 동생 태오의 제안으로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80년의 일이다. 1890년 7월 29일 권총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 동안2000 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니, 그는 1년에 무려 200여 점을 그린 샘이다. 고흐는 그의 그림이 팔릴지 안 팔리지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한 사람이다.

 

" Picture speaks by itself."

 

그가 말하듯 그는 모든 것을 그림을 통해 말했다. 고흐에게 있어서 그림은 곧 그의 삶 모든 것이었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절대 불평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종교적, 인간적, 절대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 후인 1990년 5월 15일 그의 "가셰 박사의 초상"은 크리스티즈에서 8,250만 달러(한화 약 99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로 팔렸다. 허지만 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의 일이다. 그는 출세니 치부니 하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요즈음 불황이라 그림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회도 뜸하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6월 9일 하나로 갤러리에서 열리는 월암 정영남(月俺 鄭永男)과 인석 정성태(忍石 鄭成泰) 2인의 초대 개인전(2010.6.9~6.29)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월암의 작품 13점, 인석의 작품 20여 점이 전시되는 하나로 갤러리는 고요했다. 고요하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었다. 전시장에는 김충조 의원을 비롯하여 두 화가를 아끼는 몇 분의 지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1960년대 어느 한가로운 시골 다방 같은 풍경이라고나 할까? 그 시대에는 그림을 사랑하는 화가들은 다방을 빌려 그림을 전시하곤 했었다.

 

두 사람은 모두 60 중반을 넘어선 한국화의 중견화가들이다. 두 화가는 오픈 인사말을 통해 갑자기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며칠 전 두 분이 의기투합하여 최근에 그린 그림들을 전시를 하기로 했다는 것. 사회자는 이를 '번개전시회'라고 표현했다. 이는 마치 요즈음 유행되는 '번개팅'과 같은 개념이다.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렸고, 그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전시를 하기로 했다는 것. 이는 마치 60년 대 시골 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동기와 흡사하다.

 

월암의 그림은 향토색이 짙은 목가적인 풍경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관념을 강조하는 월암의 산수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고향의 들판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월암은 전통회화양식과 화법에 중심을 두면서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감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고 있는 중견작가다. 그는 한국 남종산수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의 영향을 받아 익혀온 남종산수화의 맥을 잇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장영준 평)"

 

부드러운 곡선, 향수어린 시골 정경, 실루엣처럼 번지는 아련한 풍경은 그만의 독특한 화법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의 생기와 활발한 기운이 넘쳐나고 있다. 서정적인 정감이 번져나는 그의 그림에서는 그가 실재 거닐며 체험했던 농촌의 느낌과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인석의 작품에서는 월암의 그림과 정 반대의 느낌을 준다. 특히 '폭포'와 '괴석도(怪石圖)'를 주제로 한 그림이 눈에 띤다. 인석(忍石)은 그의 호가 말해주듯 바위와 폭포를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평생동안 수묵화를 그려온 중진화백이다. 고향이 구례인 그는 지리산의 폭포를 즐겨 그렸다.

 

그가 그린 폭포를 바라보노라면 기암괴석에서 우레처럼 내리치는 폭포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폭포는 그의 뜨거운 열정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바위를 뚫고 천둥치는 소리로 흘러내리는 물의 본성은 그가 닦아온 정신세계의 도(道)가 진하게 배어 있다.

 

평생을 바위와 폭포를 그려오던 그가 최근에는 괴석도(怪石圖)란 괴상한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괴석은 십장생(十長生,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는다는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열 가지)의 하나로 영원불멸의 상징이다.

 

 

괴석은 비바람 눈보라에도 강인한 힘과 자태로 견디어 낸다. 흔들리지도, 중단하지도, 좌절하지도, 배신하지도 않으며, 의리와 정직한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남을 모함하거나, 미워하거나, 해칠 줄 모르며, 입이 무거운 군자를 칭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모든 괴로움, 그리움, 기다림,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인고와 번뇌의 세월을 보내면서 성공하는 사람을 괴석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석, 그는 괴석 같은 사람이 아닐까?

 

1946년에 출생한 동갑내기인 두 중진 화백은 관람객이 없는 조용한 갤러리의 그림 앞에서 해맑게 웃었다. 월암(月俺))의 순수한 모습에서는 향토색이 짙은 시골 냄새를, 의지가 굳어 보이는 인석(忍石)의 모습에서는 인고의 세월을 살아가는 괴석 같은 인내를 엿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불황을 모르는, 오직 그림이 좋아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순수한 모습이다.

 

요즈음 세상은 불황으로 집도 팔리지 않고 돈이 돌지 않는다고 아우성들을 치고 있다. 그럴수록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잠시 짬을 내어 두 중진화가의 그림을 감상해보는 것도 불황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 아닐까? 월암의 '목장'에서는 마음의 쉼표를 찍고가는 하는 목가적인 여유를, 인석의 '괴석도(怪石圖)'에서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0.6.10 뉴스게릴라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