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다락방에서 아침을 열며

찰라777 2012. 1. 12. 10:36

다락방에서 아침을 열며…

 

▲금가락지의 다락방에서 매일 아침 임진강에 뜨는 일출을 맞이한다.

 

 

첫째 동방을 씻으오니 온 집이 청정하고

둘째 남방을 씻으오니 마음에 걸림 없고

셋째 서방을 씻으오니 깨끗한 나라 이루옵고

넷째 북방을 씻으오니 영원토록 편안 하네.

 

마음의 도량이 깨끗하면 자연히 집안의 도량도 깨끗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마음의 도량인 동시에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수행의 도량이다. 아침에 마음이 청정하고 집이 깨끗해야 하루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이곳 금가락지에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런 생각이 사무친다. 적막강산! 무인도 같은 곳에서 10일을 살고 나니 마치 10년은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금가락지의 생활은 모든 것을 잊게 해주고 있다. 섬진강에서 살다가 갑자기 이사를 하느라 두어 달간 부산을 떨었던 시간이 언제였든가 할 정도로 까마득하다.

 

금가락지에서는 늦어도 새벽 5시면 눈이 떠진다.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이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부엌으로 나가 냉수를 한 컵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다락방까지 층계는 정확히 16계단이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하루의 삶을 열어간다. 이 계단은 수행의 계단이다.

 

▲임진강 건너편 동산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는 나의 희망이다!

 

 

아마 이 층계를 하루에 20~30번은 오르내릴 것이다.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자연히 마음이 차분해진다. 계단은 내 마음을 여는 도량이다.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운동이 된다.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면 작은 다락방이 나온다. 다락방에 들어가면 사방에 절을 한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작업이다.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절을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만물이 있기에 내가 존재 하는 것이 아닌가. 공기, 물, 햇빛, 땅, 나무, 식물, 동물, 강, 길, 집, 사람들… 모두가 고맙기 그지없는 존재들이다.

 

절을 하고 나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참회의 명상에 잠긴다. 지금까지 지어온 갖가지 죄업을 생각해보면 남은 여생동안 평생을 참회해도 씻을 수가 없다. 아득히 먼 그 옛날부터 지은 모든 악업은 욕심내고, 화를 내고, 어리석음에서 온 것이다. 그 악업을 몸과 입과 생각으로 끊임없이 지어온 것이다.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은 죄는 크게 나누어 십악(十惡)으로 구분된다. 살생, 도적질, 사음, 거짓말, 아첨, 이간질, 험담, 그리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는다.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정치, 사회의 뉴스거리는 모두 이 십악의 죄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지어온 죄업을 어찌 씻어낼까?  사람들은 금방 탄로가 날 것임을 알면서도 매일 크고 작은 십악을 짓는다.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에 누군가가 썰매를 탄 흔적이 보인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에 주상절리 적벽을 바라보며

매일 2시간정도 산책을 하는 즐거움은 추위를 잊게 해분다.

 

 

십악은 오늘만 짓는 것이 아니다. 백겁을 두고 죄업을 짓는 것이다. 이 죄업을 한 생각에 다 없애버릴 수는 없을까? 그것은 도를 깨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도를 깨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지어온 죄업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죄는 남이 씻어 줄 수가 없다.

 

참회나 회개를 한다고 해서 자신의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기 때문이다. 죄의 대가를 치르고 죄업을 씻는다고 해도 그 흔적은 영원히 남아있다. 그러니 죄를 짓지 않는 게 최상의 방법이다. 참회나 회개는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예방조치일 뿐이다.

 

본래 죄의 자성이란 없다고 한다. 도를 깨치면 마른 풀을 확 태우듯 죄업이 남김없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죄업이 사라지면 마음에서 일어난 죄업이 또한 없어져버릴 것이 아닌가. 마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고, 죄와 마음이 없어져 둘이 함께 공해지면, 이것을 이름 하여 참회라고 한다. 그러니 중생이 죄업을 씻으려면 얼마나 많은 참회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인가?

 

다락방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우리면 삼라만상이 깨어나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온다. 요즈음은 불을 꺼도 밖이 훤하다. 달빛이 비추이기 때문이다. 눈이 아직 덜 녹아 달빛을 받아 반사하기 때문에 눈 내린 겨울밤은 여름보다 훤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해는 바로 임진강 건너편에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서서히 솟아오른다. 다락방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느낌은 묘하다. 환희! 그것은 환희의 아침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

 

 

기러기들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임진강 위로 날아간다. 임진강은 새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새들은 아침에는 서쪽에서 날아와 동쪽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저녁 때 쯤이면 반대로 새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락방에서 아침 해를 맞이한다. 쪽문으로 해가 뜨는 일출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

 

7시 30분이 되면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도량을 청소를 한다. 집은 곧 도량이다. 매일 청소를 하지만 먼지들이 서리처럼 하얗게 내려 앉아 있다. 더욱이 금가락지의 바닥은 짙은 밤색으로 되어 있어 먼지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지은 죄업도 이 먼지처럼 많으리라. 아내와 나는 매일 이 먼지를 쓸고 닦아낸다.

 

청소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적게 먹고 적게 사용하는 것이다. 음식물은 남는 찌꺼기가 없게 하고, 휴지사용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생활쓰레기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것만이 지구의 자원을 아끼는 유일한 수단이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집안의 전등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거실 샨데리아의 전등도 두개만 남겨두고 빼냈다. 부엌의 형광등은 하나만 켠다. 보일러 가동도 4시간에 한 번씩 가동이 되도록 예약을 하고, 쓰지 않는 방의 밸브는 막아두었다. 그래도 실내 기온은 20도 전후를 유지되었다.

 

내의를 입고 실내에서도 아웃도어를  입고 생활을 한다. 문을 수시로 열어 공기를 환기 시킨다. 실내공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좋지 않은 밖의 공기보다 무려 25배나 혼탁하다. 이렇게 생활을 하는 것은  생활 그 자체가  수행이기 대문이다.  집안 공기를 청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실내에 있는 화초에게도 좋은 것이며 자원을 아껴서 더울 좋다.

 

그런의미에서 금가락지는 내가 수행생활을 하기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적도 자동차도 없는 절간 같은 금가락지에는 수행을 하기에는 참을 좋은 장소이다. 달빛과 햇빛, 맑은 공기, 새들, 나무, 강.... 이런 자연이 도반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이 도량을 더욱 청정하고 맑게 유지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 마음부터 청정하게 씻어내야 한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는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도 많이 먹지 않고 자신의 몸을 유지할 만큼만 먹는다. 모든 동물이 그렇다. 오직 사람만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많이 사용하고, 많이 비축을 한다. 그것은 탐용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다. 나는 기러기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없을까? 적게 먹고, 적게 싸고, 적게 비축하는 삶이야말로 지구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산책길에 나선다. 춥다고 움츠려들면 더욱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추울수록 몸을 움직여 열을 내야 한다. 마스크를 하고 옷을 두껍게 입고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길을 걷다보면 온 몸이 더워진다. 주상절리 적벽을 바라보며 임진강을 걷는 기분은 매우 상쾌하다. 2시간 정도의 산책에서 돌아오면 기분이 매우 상쾌해진다.

 

샤워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집안의 이곳저곳을 손을 보고 정리 정돈을 한다. 마당도 쓸고 뜰의 휴지도 주어야 한다. 시골에 살다보면 일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 할 일이 있다. 봄이 되면 일손이 더욱 바빠질 것이다. 텃밭도 가꾸어야 하고, 잔디도 깎아야 한다.

 

 

▲금가락지 다락방에서 바라본 일몰이 황홀하다

 

 

다시 2층 다락방에 올라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석양이 찾아온다. 임진강의 석양은 과히 환상적이다. 오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갔던 기러기들이 석양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아간다. 해를 따라서 날아다닐까? 나는 다락방에서 끼룩끼룩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석양을 맞이한다. 금가락지의 생활은 다락방에서 아침을 열고 다락방에서 저녁을 맞이한다.

 

석양 노을을 바라보며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하루를 마감하는 감사의 절을 올린다. 오늘 하루 무사하게 보내게 해준 것을 감사드리며,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더불어 존재 하고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주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물, 공기, 햇빛, 땅, 나무, 식물, 바다, 동물……. 모든 만물과 함께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