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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마애불

찰라777 2012. 2. 20. 10:37

 

겨울,

봉암사 경내는 추위만큼이나 침묵이 깊다.

1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선방에 좌정을 하고 있다는데

스님들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들다.

봉암산을 품에 안은 희양산의 거대한 바위는 더욱 매섭고 굳세게 보인다.

 

 

  

마애불이 있는 용암용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진공문'란 것이 있다.

스님들이 좌정하고 있는 선방 입구다.

진공문에는 '入此門內(입차문내) 莫存知解(막존지해)'란 주련이 걸려 있다.

이 문을 들어오는 사람은 알량한 알음알이를 갖지 말라는 의미다.

머릿속에 든 모든 것 비우고 들어오라는 말이렷다! 

 

 

마애불로 가는 길에는 용틀임을 하는 소나무들이 엄청난 기를 느끼게 한다.

빗장을 걸어 잠그듯 서 있는 소나무도 있다. 필시 아무나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일 게다.

소나무 길을 지나니 얼음이 산을 이루고 있다. 마치 희양산 바위처럼 거대하게 솟아올라 있다.

 

 

  

 

1km 쯤 올라가니 얼음계곡 건너에 마애불이 고요히 침묵을 한 채 좌정을 하고 있다.

마애불을 참배를 하려면 얼음계곡을 건너야 한다. 조심조심…

미끄러지면 얼음지옥으로 빨려가고 만다.

 

 

 

 

 

백운대라 불리는 마당바위는 온통 얼음이다.

얼음폭포가 하얀 거품을 물고 거대하게 솟아 있다.

보살이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아준다.

그 보살의 손이 관세음보살의 손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조심조심…

발을 내딛어 얼음계곡을 건너간다.

 

  

 

 

얼음암반 위에 보살님이 입을 굳게 다물고

얼음계곡을 건너는 가련한 중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쯔쯔 가련한 중생들아, 무명을 벗고 깨어나라!"

보살의 이마에는 백호광명이 비추이고,

지그시 뜬 눈에는 눈물자국마저 흘러내린다.

 

 

 

  

어지러운 시국과 어리석은 중생을

불쌍히 여김일까?

꾸짖음일까?

굳게 다문 입술이 엄하게 보인다.

머리 위에 깊게 파인 곳에 빛나는 백호광명은

지혜로 살아가라는 계시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원형의 둥근 얼굴,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

코는 모진 세파에 시달려서인지 약간 일그러져 있다.

보살은 선이 유려한 법의를 걸치고,

왼손으로는 단전에 얹고 연꽃을 받쳐들고

 오른손으로 연꽃줄기를 잡고 서있다.

  

 

 

 

오른발을 위로 올려 결과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정적이다.

전하는 말로는 환적선사가 발원기도를 하던 원불이라고 한다.

희산구법에 백운대미륵비명이 실려 있어 고려시대 미륵불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함께 간 보살이 입상에 삼배를 하더니 갑자기 돌을 들고 입상 아래 바위를 탕탕 두드린다.

그 소리가 마치 목탁소리처럼 계곡을 울린다.

 

 

 

 

"아니, 보살님 웬 목탁소리지요?"

"이 암반 전체가 목탁이랍니다."

"호오~"

  

정말 암반에는 움푹 파여 있는 곳이 있는데 하도 두들겨서 그렇단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입상 주변에는 소원을 비는 크고 작은 돌탑이 정성스럽게 쌓여져 있다.

 

 

 

 

 

 

마애불 참배를 하고 반대편 송림을 따라 내려오니 봉암사 전각이 고즈넉이 나타난다.

그리고 침류교(枕流橋)라고 쓰인 다리가 나타난다.

하루는 시자가 서암스님을 모시고 이 다리를 건너다가 이름이 기이하여 여쭈었다.

 

 

 

  

 

"스님 침류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흐르는 물을 베고 있다는 뜻이다. 너는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너는 알겠느냐?"

"…………"

 

뜻을 알 길이 없는 시자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침류교는 '돌을 베개 삼아 흐르는 물에 양치를 한다'는 침석수류(枕石漱流)의 뜻으로 

즉, 물욕을 등진 선비의 모습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현세에 그런 선비들이 몇이나 있을까?

침류교에서 바라보는 희양산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 보인다.

 

 

 

  

11시 30분, 공양간에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가니 "進一步"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신발을 벗고 한걸음 더 다가서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와 접견실로 갔다.

접견실에는 각초스님이 찻상 앞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우리는 묵언정진을 하고 계시는 각초스님께 3배의 예를 올리고

말없이 스님이 따라주시는 차를 마셨다.

매년 1년에 두 차례 하한거와 동안거,

1년에 180일 동안 선방에서 하루에 4시간만 자고 드시는 스님은 학처럼 말이 없다.

 

"잠은 잘수록 더 많이 옵니다."

 

 

 

 

 

스님이 평소에 하시던 말씀이다.

차를 마시고 적조(寂明)스님의 법문을 들은 뒤 우리는 서둘러 봉암사를 나섰다.

눈이 쌓인 길이 얼기 전에 산문을 벗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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