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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처럼 휘날리는 현충원 수양벚꽃

찰라777 2012. 4. 19. 07:36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현충원 수양벚꽃

 

 

봄이 오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갖가지 꽃들이 생생하게 피어난다. 그중에서도 수양벚꽃은 단연 압권이다. 현충원 입구에 들어서면 충성분수대가 나온다. 충성 분수대 뒤에는 넓은 겨레의 마당이 나오고, 그 양편에 휘휘 늘어진 수양벚꽃이 애국선혈의 영혼을 위로라도 하듯 만장처럼 펄럭인다. 현충원에는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기리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수양벚꽃과 함께하는 열린현충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쌍폭포?

 

 

▲세자매 폭포?!!!

 

 

효종이 북벌정책의 일환으로 심었다는 수양벚꽃

 

동작구 공작봉 기슭에 자리 잡은 현충원은 수양벚꽃, 개나리, 목련,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팥베나무, 밤나무 등과 초본류 172종이 자라고 있다. 특히 수양버들처럼 양 옆으로 축 늘어진 수양벚꽃은 조전시대 방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효종이 북벌정채의 일환으로 활을 만들기 위해 수양벚나무를 심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충성분구대와 수양벚꽃

 

 

그래서인지 총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모습을 하고 있는 충성분수대 사이로 비추어 보이는 수양벚꽃이 더욱 의미가 깊게 보인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예비군 등 6인의 동상, 그리고 그 위에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애국 애족하는 남녀노소의 국민상, 마지막으로 태극기를 받쳐 들고 한 손으로 횃불과 월계수를 들고 있는 남녀상은 만개한 수양벚꽃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수양벚꽃은 옆은 연분홍 홍조를 띄고 있다. 더욱이 태극기와 함께 만장처럼 휘날리는 수양벚꽃은 길을 걷는 자로 하여금 저절로 숙연한 느낌을 들게 한다.

 

 

 ▲만장처럼 휘날리는 수양벚꽃길

 

 

 

 

 ▲태극기와 수양벚꽃과 호국영령들의 무덤

 

 

 

 ▲충성분수대

 

 

겨레의 마당 좌측으로 걸어가니 작가의 팬사인회와 함께하는 북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다. 현충원에서 열리는 북페스티벌도 퍽 이색적으로 보인다. 북페스티벌이 열리는 바로 옆에는 현충지가 있다. 아, 현충지에 비추이는 수양벚꽃의 반영이 너무나 아름답다! 휘휘 늘어진 연분홍 색깔이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선혈들의 영혼처럼 물속에 투영되어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기존에 있는 웅덩이를 살려 만든 이 연못은 사방에 잔디와 화수목이 식재되어 있고, 등나무, 정자, 벤치 등 휴게시설이 아늑하게 설치되어 있어 사색을 하며 휴식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휴식처이다. 이 연못은 전 묘역 잔디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의 용수원이 되기도 한다니 참으로 유익한 연못이다.

 

 

 ▲호국열령의 선혈처럼 투영되는 현중지 벚꽃

 

 

 ▲우산처럼 펼쳐진 수양버들

 

 

 

 

현충지를 지나면 바로 묘역으로 연결된다. 수양벚꽃 펄럭이는 벚꽃터널을 지나 현충문 옆에 있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해본다. 이름도 성도 밝혀지지 않는 48위의 무명사탑 후면에는 "이곳에 겨레의 영광과 한국의 무명용사가 잠드시다"란 말이 새겨져 있어 못다 핀 청춘을 조국을 위해 이슬처럼 사라져간 그들의 영혼이 더욱 빛나 보인다. 6.25가 발발하여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자 약 5만으로 추산되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전선에 참전하여 포항지역을 비롯한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7,000여 여명이나 전사를 하였다고 한다.  

 

 ▲학고의용군무명용사탑

 

 

수양벚꽃은 현충탑을 돌아 육각형으로 된 충무정에 주변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수양벚나무에 치렁하게 매달린 수양벚꽃이 포말이 명멸하는 폭포수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오래된 고목에서 피어난 수양벚꽃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벚꽃 사이사이에 피어 있는 목련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풍경이란 말과 글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절경이다. 이 주변에 사진가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정자에 앉아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마치 앳된 소녀의 표정처럼 상기되어 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수양벛꽃 아래서 입을 벌리며 떠날 줄을 모른다. 만개한 수양벚꽃 사이에 세워진 육사7기특별동기생추모탑이 묘한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다.

 

 

 

 

 

 

 

 

 ▲충무정 수양벚꽃

 

 

 

 

 

 

 

이 수양벚꽃 터널을 지나면 바로 일반 장병들의 묘역으로 연결된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수많은 젊은 영혼들의 묘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수많은 비가 도열해 있는 묘역 바라보자니 문득 영화 <금지된 장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의 공습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녀 폴레트는 죽은 강아지를 안고 헤매다가 어느 농가에서 미셀이란 소년을 만난다. 소녀는 죽은 강아지를 땅에 묻어주고 그 무덤에 십자가를 세워준다.

 

 

▲영화 '금지된 장난'을 연상케 하는 묘역 

 

 

 

 

 

 

 

 

살아있는 것이 죽었을 때는 이렇게 묻어주는 것이라고 알게 된 폴레트는 새든, 벌레든 죽은 동물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 앞에 십자가를 세워준다. 무덤은 점점 늘어가고 십자가가 필요해지자 미셀은 교회 제단의 십자가을 훔치려 하고 동네 공동묘지에서 십자가를 뽑아온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십자가를 훔치는 장난이 아니라, 어른 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이곳 현충원에도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수없이 무고하게 죽어가 묻혀있지 않은가!

 

 

 

 

묘역 중앙으로는 공작산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있다. 그 냇물 사이로는 노란 개나리가 아름다운 새악씨들처럼 피어 있다. 개나리는 결혼도 해보지 못하고 숨져간 젊은 영혼들을 위로 하듯 수줍게 피어나 있다. 개나리꽃 사이로 희뜩희뜩 보이는 망자의 묘비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유 없이 죽어간 저 망자들의 영혼을 그 무엇으로 위로하고 보상을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는 위정자와 어른들은 할 수 없다. 오직 온힘을 다하여 저 순수한 꽃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망자의 영혼처럼 뚝뚝 떨어지는 목련꽃

 

 

묘역은 위로 올라 갈수록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점점 넓게 차지하고 있다. 묘역 중앙에는 별을 단 장군들의 영혼이 잠들고 있고, 그 전후좌우로 대통령들의 묘가 엉청나게 많은 평수를 차지하고 포진하고 있다. 도대체 독재자의 묘를 왕릉처럼 이렇게나 크게 쓴 묘지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을까? 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살아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고, 인권을 유린하더니, 죽어서도 나라의 위해 목숨 바쳐 죽어간 호국영령들을 내리 누르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대통령 묘역에는 하얀 목련이 통탄을 하며 죽은 자의 영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호국지장사란 절이 나온다. 신라시대(670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은 당시 화장사(華藏寺)로 불렸으나 조선 명종(1550년)에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 묘를 이곳에 두면서 능(陵)이나 원(園)에 속하여 나라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들던 조포사(造泡寺)로 기능하다가, 1984년 국립묘지에 안장된 호국영령을 기원하는 뜻으로 호국지장사로 바뀌었다. 지장사에는 물맛이 기가 막힌 약수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약수를 마시거나 떠간다. 약수를 마시려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데, 종교를 초월하여 누구나 약수터 앞에 세워진 약왕보살과 지장보살에게 절을 하게 되어 있다. 절에 오면 절을 하여야 겸손해진다고 했던가?

 

 

 

지장사를 지나 제법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철창으로 가로막힌 숲에는 키 큰 참나무들이 묵묵히 서 있고, 그 아래는 진달래꽃이 선혈처럼 붉게 피어있다. 아직 키 큰 나무들은 잎을 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키가 큰 나무들은 키 작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종족을 퍼뜨릴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것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식물들이 키가 작고 연약한 식물들을 위한 깊은 배려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세계는 어떠한가? 키 크고 힘센 자들은 키 작고 힘이 약한 민초들을 짓밟아버리려고만 한다. 우리는 식물의 세계에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숲의 터널을 지나면 가르는 높다란 창살 벽이 나온다. 이 창살장벽이 꼭 필요할까? 국립묘역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이라고 하는데 창살의 끝은 뾰쪽하고 날카롭다. 과연 그 누가 이 날카로운 창살벽을 타고 넘어 조국영령들의 묘지를 파헤친단 말인가? 독재자의 묘역 말고는 파헤쳐질 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 창살벽을 사이로 난 길을 산책한다. 이 창살벽을 산책하다보면 마치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벽 안은 저승이요, 밖은 이승이다.

 

 

 

벽을 타고 꼭대기에 이르면 동작대가 나온다. 서달산 마루에 자리한 동작대에 올라서니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멀리 남산과 북한산이 보인다. 관악산과 청계산도 보인다. 도심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에는 천만 서울시민의 얼이 비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