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땅과 천장에서 자라나는 '역고드름'

찰라777 2013. 1. 13. 06:39

낯선풍경 체험

유령의 이빨인가, 식인상어의 이빨인가?

조각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역고드름'

 

"와아! 저건 거대한 죠스의 아가리야."

"어머, 저런 게 있다니…. 꼭 지옥문 같아요."

"에구머니나! 아빠 난 무서워서 그냥 차 안에 있을래요."

 

정말 괴이한 풍경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로 몸이 움츠러들고 있는데, 을씨년스런 언덕에 유령처럼 입을 벌린 채 거대한 죠스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굴이 나타나니 머리털이 송골송골해지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 동굴 천장에는 식인상어 죠스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고드름이 수없이 달려있어 섬뜩한 느낌이 든다.

 

 

▲ 유령의 아가리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긴 '역고드름' 동굴 입구

 

 

상상을 뛰어 넘는 희한한 광경이다. 내가 보기엔 동굴 입구가 마치 거대한 죠스(jaws, 식인상어)의 이빨처럼 보이는데, 아내는 유령의 입이라고 하고, 경이는 무서워서 차 안에 있겠다고 한다. 가까이 가보니 식인상어가 집어 삼킬 것만 같은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다.

 

 

▲ 역고드름으로 가는 좁은 신작로는 매우 미끄러워 위험하므로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는 것이 좋다. 폐철로 교각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역(逆)고드름'이라니. 그 이름조차도 괴상했다. 거꾸로 자라나는 고드름이라는 뜻이다. 역고드름 동굴을 찾아가는 길도 으스스한 풍경이다. 눈 쌓인 좁은 신작로는 얼음 반 눈 반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것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도로 폭이 너무 좁아 자칫 잘못하면 도랑으로 미끄러져 처박히고 말 것만 같다. 부서진 철로 다리에 '역고드름'이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아내가 위험하다고 들어가지 말자는 것을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라고 우기며 1단 기어로 겨우 기어가야 했다.

 

 

▲역고드름이 있는 고대산

 

 

'역고드름'은 경원선 종착역인 신탄리역에서 철원 방향으로 3.5km 떨어진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 고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역고드름을 찾아가다보면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서는 "강원도에 들어섰습니다", "경기도에 들어섰습니다"란 말을 되풀이한다.

 

 

 

▲ 고대산 중턱에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역고드름 동굴

 

 

부서진 철길 언덕을 가까스로 지나니 눈 속에 파묻힌 동굴 하나가 나타난다. 그런데 동굴 모습이 그냥 동굴이 아니다. 거대한 고드름이 유령처럼 동굴 입구를 막고 있다. 더구나 앙상한 나뭇가지가 헝클어진 유령의 머리를 연상케 하여 더욱 괴이하게 보인다. 악마의 입처럼 보이기도 하고, 식인상어의 이빨처럼 보이기도 하여 무섬증이 절로 든다. 들어오는 길도, 동굴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다.

 

'터널 내 역고드름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터널내부는 낙석 및 고드름 낙하위험이 있으니 절대출입을 금지하며, 사진촬영은 외부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 연천군수'

 

 

▲ 천장에서 칼이나 창처럼 뻗어내린 고드름이 땅에서 자라나는 역고드름과 묘하게 서로 뒤엉겨져 있다.

 

안내 게시판에서 보는 것처럼 터널 내부는 정말 위태위태하다. 입구에는 흰 칼이나 작두로 장막을 쳐 놓은 것처럼 거대한 고드름이 얼어붙어 있다. 천장을 쳐다보면 머리털이 거꾸로 설 것만 같은 섬뜩한 풍경이다. 칼날이나 송곳처럼 날카로운 고드름이 수없이 밑을 겨냥을 하고 있다. 만약에 저 고드름이 떨어져 찍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저승길로 행차할 것 같다. 함부로 절대로 들어갈 일이 아니다. 위험천만이다. 지옥문이란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정말 기기괴괴하네요!"

 

동굴 안은 아내의 이 표현이 딱 들어맞는 풍경이다. 어두운 터널에는 사방에 흰 고드름이 유령처럼 서 있다. 천장, 바닥, 벽이 온통 고드름 천지다. 거대한 고드름이 장막을 드리우고 있는 입구와는 달리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고드름이 작아진다. 선인장이나 석순 모습을 한 고드름이 점점 작아지며 이상한 모형의 돌기를 이루고 있다.

 

 

▲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역고드름. 마치 고드름 조각전시장을 발불케 한다.

 

 

천장에서 내리 뻗은 고드름은 수없이 많은 날카로운 칼날 모습인 반면, 밑에서 솟아오른 역고드름은 선인장처럼 뭉텅뭉텅하다. 퍽 대조적인 모습이다. 어떤 조각가가 저런 기묘한 조각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오직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각품이다. 마치 설치미술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동굴 안은 고드름이 창조한 조각전시장이다. 그 모습도 가지가지다. 선인장, 성모마리아상,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헐크, 마네킹, 독수리, 나이키, 인간탑, 천사, 유령, 도인, 석순…. 조각의 이름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인다.

 

 

▲ 마치 조각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역고드름

 

 

역고드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간 중간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맺혀 있다. 그 모습이 어찌 보면 선인장의 매듭처럼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무덤 속에서 드러난 뼈마디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온도 차이로 발생하는 물방울들이 천장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맺혀진 매듭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칼날과 석순처럼 자라나는 역고드름이 만나면 그대로 얼음기둥이 되고 만다.

 

▲ 석순처럼 매듭이 져 있는 역고드름. 날씨변동에 따라 굵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역고드름 풍경에 취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청년 두 사람이 올라왔다. 그 중에 한 청년이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러더니 동굴 맨 안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도를 닦는 도인처럼 보인다.

 

"야, 위험해 빨리 나와!"

"괜찮아, 너도 좀 들어와봐. 여기 앉아 있으면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아지거든."

"내가 미쳤냐? 거길 들어가게."

 

 

▲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청년. 그러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고드름에 찔리면 큰 상처가 나거나 생명이 위험하므로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한 청년은 간이 큰 사람이고, 또 한 청년은 간이 콩알만 하게 작은 모양이다. 그러나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천만이다. 생명을 담보로 하고 들어가야 하므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바닥에는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고드름이 뒹굴고 있다. 만약 저 고드름에 맞기라고 한다면 어찌되겠는가? 아마 저 청년은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래도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고대산 중턱에 위치한 이 폐터널의 설치연도나 사용목적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규모나 형태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경원선 복선공사로 터널을 시공하다가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중단되어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역고드름은 매년 12월부터 2월 중순까지 길이 30~150cm, 폭 5~30cm에 이르는 신기한 형상을 드러내는데, 추운 날씨일수록 그 크기가 더 굵고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년 겨울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고드름의 굵기가 더 굵어진 것 같다. 그러나 저 괴이한 역고드름도 봄이 오면 녹아서 유령처럼 사라지고 만다. 녹기 전에 한번쯤 가서 신비한 겨울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 역고드름 찾아가는 길


- 승용차 이용 : 역고드름은 3번 국도를 타고 연천으로 가다가 경원선 종착역인 연천군 신탄리역에서 철원방향으로 3.5km 정도 떨어진 고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신탄리역에서 가다보면 연천과 철원의 경계선 우측에 '역고드름'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그 이정표를 따라 고대산 방향으로 비포장 좁은 길을 2km 정도 올라가면 역고드름 동굴이 나타난다. 길이 좁고 미끄러워서 가급적 4륜구동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기차 이용 : 서울에서 전철 1호선을 타고 동두천이나 소요산역까지 가서 경원선으로 갈아타고 신탄리역에서 하차, 3.5km를 걸어서 가거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 위치 및 관람시기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산 173
- 주의사항 : 고드름이 천장에서 수시로 떨어져 내려 동굴 안은 매우 위험하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 관람시기 : 역고드름은 매년 12월부터 2월 중순까지 두 달 남짓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