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폭설에 파묻혀 새들의 낙원이 되어버린 콩밭

찰라777 2013. 1. 14. 07:42

폭설에 파묻혀 새들의 낙원이 되어버린 콩밭

[생태계의 보고 DMZ 연천 풍경 ①] 새와 고라니의 겨울나기

 

 

오늘 아침(1월 10일) 내가 사는 연천은 영하 20도가 넘었다. 춥다! 이렇게 추운 날도 꼬박꼬박 잊지 않고 우리 집을 방문해 주는 것은 새들밖에 없다. 새들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고 쓸쓸할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최전방 DMZ 오지에 새들마저 찾아주지 않는다면 정말 춥고 외로울 것이다. 법정스님 말씀처럼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새들이 떠나가 버린다면 얼마나 적막하고 쓸쓸하겠는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여유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콩새(되새과)

 

 

새들은 나의 가장 친한 벗이다!

 

지난해 겨울 이곳에 이사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러기들이었다. 기러기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임진강 주상절리를 통로로 삼아 출퇴근을 했다. 기러기들이 날아드는 가을에는 북쪽에서 끊임없이 남쪽으로 날아들기 시작하다가 겨울이 되면 기러기들도 터를 잡는 모양이다.

 

 

▲기러기들의 울음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아침 해가 뜰 무렵이면 서쪽인 한강 하류 방향에서 임진강을 따라 이곳으로 날아와 연천평야나 철원평야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는 석양 노을이 질 무렵이면 다시 서쪽으로 잠자리를 찾아 끼룩거리며 날아간다. 추운 겨울 나는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임진강 평화습지원을 찾은 두루미들

 

지난 여름에는 백학저수지에 수많은 학이 날아들어 길조를 만난 기쁨에 감개가 무량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민통선 안에 있는 '임진강 평화습지원'에 두루미들이 날아들어 나를 더욱 기쁘게 해주고 있다. 두루미들이 들려주는 음악 소리는 정말 부드럽고 정감이 간다.

 

금년 들어 벌써 네 번이나 평화습지원을 찾아 두루미들과 조우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에 그저 감탄을 할 뿐이다.살벌한 휴전선에 두루미들이 평화롭게 거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남과 북으로 갈라진 3.8선이 전혀 의식이 되지않는다.

(*참조: 두루미를 찾아 떠나는 DMZ 겨울 탐조여행 http://blog.daum.net/challaok/13741484)

 

요즘 집 주위에 새들이 부쩍 늘어났다

 

▲ 수확시기를 놓쳐 폭설에 파뭏여 얼어버린 콩밭이 새들과 고라니들의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콩밭 주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이 콩밭을 바라보면 괜히 콩밭 주인에게 미안해진다.

 

요즘 집 주위에 새들이 부쩍 늘어났다. 우리 집 앞과 옆쪽에 빙 둘러 있는 콩밭이 그만 수확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눈 속에 그대로 방치해 있기 때문이다. 콩밭을 볼 때마다 콩 농사를 지어 온 밭주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고 아플 지경이다.

 

나도 금년에 50여 평 콩 농사를 지어 메주콩 한 말, 서리태 한 말을 수확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처럼 가뭄이 극심할 때 그 정도의 콩 농사를 짓는 일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귀한 콩을 수확시기를 놓쳐 눈 속에 얼려버린 콩밭 주인의 마음은 오죽 아프겠는가!

 

▲일손이 모자라 수확시기를 놓치고 폭설에 묻혀버린 콩밭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폭설과 강추위 때문에 콩밭 주인은 콩을 베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묽히게 되어 버렸다. 눈 속에 파묻힌 콩들이 그대로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벼, 깨, 고추, 율무 등을 거두어들이느라 미쳐 콩밭에 손을 쓸 새가 없었다고 한다.

 

농사철에는 모두가 너무나 바빠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농사란 시기를 놓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일 년 콩 농사를 망친 콩밭 주인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타겠는가?

 

 

 

그런데 그 콩밭에 새들이 콩 이삭이 달린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여 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 둘 모여들더니 이젠 떼거리로 물려 든다. 폭설 속에 갇혀 먹거리를 구하기가 정말로 힘들텐데 콩밭에 콩이 널려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콩밭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새에게는 구세주를 만난 샘이다.

 

 

수확을 놓친 농부 덕분에 콩밭은 새들의 낙원으로 변해있다. 콩밭 주인에게는 참으로 안 된 일이지만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은 우리 집은 덩달아서 낙원으로 변한 느낌이다. 새들을 더 까이서 바라보게 된 나는 늘 즐겁고 기쁘다.

 

새들은 우리집 베란다, 테라스, 텃밭, 나뭇가지 위에 앉아 매일 노래를 들려준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매일 찾아와서 합창을 해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독서를 하다가 눈이 피로하면 다락방 봉창을 통해 콩밭의 새들을 바라보곤 한다.

 

▲ 금굴산에서 조심스럽게 콩밭으로 내려오는 고라니

 

때로는 고라니나 노루도 산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새들과 함께 콩을 뜯어먹는다. 고라니와 노루는 매우 의심이 많아서 한번 콩을 뜯어먹고 나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곤 한다. 그리고 조금만 인기척을 내면 화들짝 놀라며 산으로 줄행랑을 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 줄행랑을 치는 고라니

 

녀석들의 귀는 참 밝기도 하다. 멀리서 다락방 들창문을 여는 소리만 바스락거려도 화들짝 놀라며 줄행랑을 친다. 사슴처럼 생긴 고라니가 새들과 어울려 콩을 뜯어 먹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꼭 에덴동산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어떨 때는 고라니들이 서너 마리씩 내려와 콩을 뜯어 먹다가 자기들끼리 사랑놀이라도 하듯 응석을 부리며 이리저리 뛰어놀기도 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다!

새들에게 매일 감사하며 '사랑'을 보낸다

 

새의 종류를 관찰해보니 참새는 물론 멧비둘기, 지빠귀, 박새, 되새 종류가 많고 드물게 방울새도 날아든다. 하늘에는 독수리들이 가끔씩 빙빙 돌기도 하는데 콩밭에 내려오지는 않는다. 이웃집에 사는 노교수 말에 의하면 수리부엉이도 있다는 하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마주할 날이 있겠지.

 

 

새들은 끼리끼리 떼를 지어 몰려든다. 자기들끼리 짹짹거리며 콩밭에 숨어 눈 속에 파묻힌 콩들을 열심히 쪼아 먹다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라도 하면 휙휙, 푸드득, 후다닥 제각기 날갯소리를 내며 숲이나 나무 위로 날아간다. 그런데 요즈음은 내가 밖으로 나와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아마 내가 녀석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나는 우리 집을 찾아 준 새들에게 매일 감사하며 '사랑'을 보내고 있다. 아마 녀석들도 그런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차린 모양이다. 새들 중에서 되새가 콩을 먹는 모습이 제일 귀엽고 깜찍하다. 멧새는 새털도 고기비늘처럼 겹겹이 붙어있고 눈자위도 붉게 생겨서 다소 징그럽게까지 보인다. 참새는 너무 경박스럽다.

 

▲멧비둘기

 

그런데 입부리도 짧고 꼬리도 짧은 콩세(되새과)는 귀엽기 그지없다. 가슴과 어깨는 붉은 빛을 띤 갈색이고, 배와 허리는 흰색을 띠고 있다. 뺨은 푸르스름하고 부리는 노란색을 띠고 있다. 몸통이 둥그렇고 통통한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녀석은 다른 새들에 비해 귀엽고 예쁘며 여유가 있어 보인다.

 

▲ 눈에 파묻힌 콩밭에서 쪼아먹을 콩을 노려보고 있는 콩새

 

 ▲ 콩을 쪼아 먹는 모습 

 

 ▲ 콩을 쪼아 삼키고 있다.

 

눈 속에서 콩을 쪼아 콩깍지를 벗기고 콩알을 삼키는 모습은 참으로 일품이다. 콩새가 콩 알을 부리에 물고 있는 모습이 운 좋게 카메라에 잡혔는데, 참으로 귀여운 모습이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만 빙그레 미소를 짓곤 한다.

 

▲콩을 부리에 물고 있는 콩새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귀여운 모습인가. 녀석은 콩을 쪼아 먹다가 배가 부르면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여유로운 모습이다. 어느 듯 나는 녀석과 친구가 되어 있다.

 

나는 녀석과 매일 대화를 나눈다. 새들이 곁에 있어주어 늘 외롭지 않고 춥지도 않다. 새들이 없다면 적막한 이 산중에서 얼마나 춥고 쓸쓸하겠는가? 그러니 나는 새들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샘이다. 새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다음 포스팅은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희망과 용기를 준 새들에게 신세를 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