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꽃잔디처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

찰라777 2013. 4. 20. 07:22

꽃잔디의 전설처럼 남을 위해

희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분홍색으로 홍조를 띠며 피어난 꽃잔디다. 작년에 현관 밑 자투리 화단에 조금씩 심어 놓은 꽃잔디가 새끼를 쳐서 제법 무리를 이루며 아름답게 피어 있다.

 

 

 

삭막한 텃밭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잔디

 

감자와 강낭콩, 옥수수, 땅콩 등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아직 정중동이다. 파종을 한지 오늘로 보름이나 되는데 다소 걱정이 된다. 마늘과 시금치는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나마 삭막한 텃밭에서 푸름을 간직하는 것은 마늘과 시금치뿐이다.

 

곰치와 취나물을 파종해 놓은 곳으로 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왕겨 사이로 여린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원래 곰취와 취나물은 발아가 늦는다고 했는데 감자나 다른 것들에 비해 오히려 일직 싹을 돋아내고 있다. 왕겨로 덮어 주어서일까? 어쨌든 반갑다.

 

▲ 왕겨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곰취 새싹

 

산수유는 노란 색깔이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그렇게도 노랗던 산수유가 빛바랜 물감처럼 퇴색되어가고 있다. 새악씨처럼 부끄러운 듯 오므려 있던 꽃잎들이 발랑 까져 벌어지며 시들어 가고 있다. 꽃들도 나이가 들면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모양이다. 산수유가 질 때가 되니 살구꽃이 다소곳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는 곰취와 취나물에 물을 주고, 꽃잔디에도 물을 주었다. 물을 머금은 꽃잔디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물방울을 함초롬히 머금고 있는 꽃잔디를 바라보노라니 문득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이 꽃잔디는 구례 섬진강변에서 가져온 것이다. 수평리에 살 때에 이웃집 혜경이 엄마가 몇 그루를 심어 준 것을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 가져와 심었던 것인데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 주고 있다.

 

 

▲ 꽃잔디의 꽃말은 <희생>이다.

 

혜경이 엄마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꽃을 좋아 하는 줄 알고 자기 집 화단에 심은 꽃은 물론이고, 새로운 꽃나무를 발견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금세 가져와 우리 집 화단에 심어 주었다. 매발톱, 더덕, 매화, 수국, 채송화… 혜경이 엄마가 가져다 심어놓은 꽃이 화단에 가득 찰 정도였다.

 

꽃잔디의 꽃말이 <희생>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정말 꽃잔디처럼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동네 노인들이 일을 좀 도와 달라고 하면 자기 집 일을 뒤로 미루고 다른 사람 일을 먼저 거들어 주곤 했다. 홀로 살고 있는 그녀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차례로 앓아눕게 되자 몇 년간 똥오줌을 받아내며 정성스럽게 수발을 들었다. 그리고 홀로 장례까지 치러냈다. 그녀의 효행은 구례군은 물론 전라남도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어 도지사로부터 효행 상을 받기도 했다.

 

홀로 농사를 짓고, 여기저기 품일을 하여 살아가는 그녀는 아무리 힘들어도 언제나 꽃잔디처럼 환하게 미소를 짓곤 했다. 그녀는 정말 꽃잔디의 전설처럼 환생을 한 여인일까?

 

 

▲ 구례 섬진강 변에 살 때에 혜경이 엄마가 준 꽃잔디가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씨처럼 곱게 피어나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과 땅이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을 때 하느님이 그 혼돈의 질서를 잡으려고 해에게 따스한 봄볕을 세상에 골고루 뿌려주라고 했다. 해님이 햇살을 뿌려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 소나기를 마구 퍼부었다. 구름의 심술 때문에 강물이 넘치고 둑이 무너져 봄에 돋아나던 새싹들까지도 다 떠내려 가버렸다.

 

이를 보다 못한 하느님이 구름을 타이른 후에 봄의 천사를 보내 망가진 산야를 가꾸게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많이 망가져버려 봄의 천사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봄의 천사는 예쁜 꽃들에게 황폐해진 땅으로 내려가 꽃을 피워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꽃들은 저마다 핑계를 대며 다 거절을 해버려 봄의 천가가 한 숨을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봄의 천사님 그 일을 우리한테 맡겨주시지 않을래요?" 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잔디들이 겸손하게 웃고 있었다. 천사의 허락을 받은 잔디들은 황폐한 들판과 산기슭을 푸르게 뒤 덮어주었다.

 

 

 

▲ 구례에서 몇 그루 옮겨 심은 꽃잔디가 무더기로 피어나 황폐한 정원을 밝혀주고 있다.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봄의 천사는 잔디에게 선물을 주실 것을 하느님께 요청했다. 봄의 천사의 요청을 받은 하느님은 잔디의 머리위에 예쁜 꽃 관을 씌워주었는데, 그 꽃이 꽃잔디가 되어 지금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고 있다고 한다.

 

혜경이 엄마는 꽃잔디처럼 남을 위해 희생을 마다 않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나는 꽃잔디에게 물을 주며 고마운 혜경이 엄마를 생각했다. 구례에 살 때에 혜경이 엄마가 이웃집에 없었더라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우리네 삶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여보, 우리 섬진강에 언제 가지요?"

"오월에 가기로 했잖아요."

"오월? 좀 빨리 가면 안 될까?"

"왜요?"

"섬진강도 보고 싶고, 저 꽃잔디를 보니 수평리 마을 혜경이 엄마도 보고 싶어지네."

"그럼 우리 다음 주에 가요. 나도 혜경이 엄마가 보고 싶어요."

 

 

 

더 주저할 일이 아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야 한다. 아직 텃밭에 다른 싹들이 나려면 멀었으니 5월까지 크게 할 일도 없다. 아내와 나는 다음 주에 섬진강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변을 따라 꽃구경도 하고, 꽃잔디처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혜경이 엄마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설래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