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브로콜리에게 바치는 냉이꽃

찰라777 2013. 5. 8. 13:37

 

5월 7일 맑고 덥다

 

브로콜리에게 농이꽃을...

 

입하가 지나니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브로콜리(broccoli) 이랑 풀베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브로콜리 이랑은 말냉이꽃 천지다. 이게 말냉이 밭이지 누가 브로콜리 밭이라고 하겠는가? 같은 해땅물 농장 범주 안에 있는 땅인데도 식물의 종류는 이렇게 다르다. 어제까지 베어냈던 상추, 봄배추 밭은 20~30여 가지 풀이 혼합되어 자라고 있는데, 브로콜리 이랑은 완전히 냉이꽃의 독점무대다. 간혹 광대나물이 자줏빛 꽃을 피우며 나타나기는 하지만 냉이꽃을 관상용으로 키우는 것처럼 피어있다. 냉이꽃 우거진 수풀 사이사이에 브로콜리가 한그루씩 자라고 있다.

 

 

 

"제작 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쇠뜨기 일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쇠뜨기가 물러나기 시작하고 말냉이가 점유를 하기 시작하더니 금년에는 완전히 말냉이 일색으로 변해버렸어요. 9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한삼덩굴과 단풍잎돼지풀이 완전히 뒤덮고 있었어요. 그런데 매년 풀들이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삼덩굴과 단풍잎돼지풀은 번식력이 강해서 제거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하셨나요?"

 

"씨가 맺히기 전 8월 중순경에 예초기나 낫으로 베어주면 다음해에 절반이상으로 줄어듭니다. 즉, 씨가 당에 떨어져 다음해에 돋아나지 못하게 되므로 자연히 번식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아하, 참 좋은 방법으군요."

 

홍 선생님은 말냉이 꽃을 바라보며 해땅물 농장에 식물이 변해온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잠시 말냉이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이곳에 한삼덩굴과 단풍잎돼지풀로 뒤덮여 있었을 환경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 끈질기고 번식력이 강한 한삼덩굴과 단풍잎돼지풀을 제거하느라 얼마나 혼 줄이 났을까? 특히 이곳 임진강변에는 단풍잎돼지풀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냉이를 베어내기전 브로콜리 이랑

 

식물의 천이

식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변천해 간다. 이를 식물의 천이(遷移, succession)과정이라고 한다. 국민대학교 산림대학원에서 숲 해설가 과정을 공부하며 숲의 천이에 대하여 자세하게 배울 기회가 있었다. 숲의 천이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없는 나지의 상태에서 맨 처음 나타나는 것은 냉이 같은 1년 생 풀들이다. 그러다 망초 같은 다년생식물이 나나타고, 이어서 싸리 같은 양수성을 띤 관목이 나타난다. 양수성을 띤 나무 밑에 활엽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양수성 교목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활엽수 숲이 된다. 활엽수는 음지에서도 잘 견디는 서어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음수성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활엽수도 자리를 내어 주게 되고 극상림(極相林, climax)을 이루게 된다. 이를 숲의 천이(遷移, succession)과정이라고 한다.

 

▲풀 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나는 브로콜리

 

 

극상림은 어떤 지역의 식물군집이 변하는 생물학적 천이의 최종단계다. 극상림에서는 다른 종들이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원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오랜 기산에 걸친 기후변화, 생태학적 과정과 진화로 환경이 바뀌어 가기 때문에 극상 단계도 변화를 하게 된다.

 

이처럼 어떤 생육지에서 자라는 식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변화하게 된다. 어떤 원인이 의해 형성된 나대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식물(개척자)이 이입, 정착하여 개체수를 늘리고, 또 다른 종의 식물들도 계속 유입되어 초원, 관목림, 교목대를 이루게 된다.

 

 

▲간간히 광대나물꽃이 피어있다.

 

필자는 1995년 리비아 사하라 사막에서 대수로 공사를 하고 있는 동아건설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동아건설은 지중해 근처인 뱅가지에서 1400km나 떨어진 사리르 라는 지역에서 그 지역 지하에 매장된 지하수를 뽑아 올려, 거대한 관을 만들어 가며 대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너무 건조해서 어떤 식물도 살아갈 수 없는 모래 땅 뿐이다. 그런데 폐수를 담아놓은 연못에 갈대 같은 식물이 자라고,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모래땅에 물이 있으니 바람에 실려 왔는지, 아니면 땅속에 종자가 잠재해 있다가 나왔는지 식물들이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식물의 천이는 시기와 환경에 따라 건성천이와 습성천이, 1차 천이와 2차 천이로 구분된다. 건성천이는 모래땅이나 암석과 같은 건성환경에서 진행되어 비옥, 다습한 토양이 형성되는 천이이다. 사하라 사막도 모래땅을 파면 나무 화석이 발견된다. 코란에 의하면 사하라 사막도 오래 전에는 호수와 강이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땅이 지각변동이나 식물의 천이에 의해서 사막으로 변하고 지하에 나일강이 200년 동안 흐르는 양의 물이 지하에 매몰되어 있다고 한다.

 

해땅물 농장은 과거에 어떤 대지였을까? 브로콜리 이랑은 다른 이랑에 비해서 상당히 높았다. 구석기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니 건성천이가 이루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보다 훨씬 높았어요. 그런데 매년 돌을 골라내다 보니 점점 낮아져서 지금의 형태로 변했습니다. 브로콜리는 건조한 환경을 좋아해서 이랑을 높게 만들었지요. 이 지역은 돌이 참 많은 지역인 것 같습니다. 이랑이 자구만 작아지고 허물어져 내려 이렇게 이랑 벽을 한 번씩 툭툭 쳐 주지요. 관행농법에서는 매년 이랑을 갈아엎고 다시 만들기 때문에 이랑이 무너져도 별 문제가 없지만 자연재배는 매년 같은 이랑에서 농사를 지으므로 이랑을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구석기문화가 발달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이랑을 만드시느라 엄청 힘이 들었겠네요."

 

"네, 삽질을 해서 만든 이랑입니다. 브로콜리는 2월 말에 파종을 해서 4월에 이식을 하고, 6월 중순에 수확을 합니다. 건조한 것을 좋아해서 이랑을 높게 만들었어요. 수확을 할 즈음에는 사이사이에 고구마를 심을 예정입니다. 혼작을 시도해 보는 것이지요. 꽃봉오리의 입자가가 퍼져 성겨지기 전에 수확을 하는데 금방 성겨져 버려 수확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우스에서는 인위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어 수확기시를 비교적 정확히 맞출 수 있지만 자연노지 재배에서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 2년 동안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풀을 베실 때에는 이랑 높이까지만 베어주시면 됩니다."

 

홍 선생님은 각 작물의 이랑에 풀을 베어 내기 시작하기 전에 작물에 대한 재배방법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왕초보 농사꾼인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브로콜리는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셀레늄 같은 영양이 풍부하여 항암작용에도 탁월한 식품이다. 캘리플라우어 종류도 병행하여 재배를 하고 있다.

 

 

 

나는 냉이꽃을 베어서 브로콜리 주변에 쌓아가기 시작했다. 냉이꽃의 꽃말은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하는데, 냉이꽃이 마치 브로콜리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 같았다. 냉이꽃을 베어내면 다소 매운 냄새가 풍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고랑에 앉아 이랑을 발로 툭툭 쳐가며 풀을 베어나가는데 땀이 배어들었다. 브로콜리 잎에는 이슬이 맺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다. 한 이랑을 베는데 오전을 소비했다. 단발을 하듯 냉이꽃을 베어내고 나니 브로콜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냉이와 풀을 베어낸 뒤 드러난 브로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