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차마 너를 꺾을 수 없구나! -현호색

찰라777 2013. 5. 11. 07:36

5월 9일 맑음

 

 

차마 너를 꺾을 수 없구나!

 

원두막에서 홍 선생님이 가져온 커피를 한잔 마시며 이랑 만들기에 대한 말씀을 경청하는데 백로 한 쌍이 날아와 아래 논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먹이를 찾아 헤맸다. 갈아엎은 논에는 벌레 등 먹이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마늘밭으로 가서 풀베기 작업을 시작했다. 풀을 베는 작업은 자연농사의 기본이다. 풀베기는 금년 들어 초벌로 베는 작업이라고 한다. 풀을 베는 작업을 하며 나는 식물의 당양성에 대하여 많은 색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 해땅물 농장에는 다른 곳에 비해 여러 종류의 식물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은 농약을 치지 않고 풀을 뽑지 않은 탓이리라.

 

어제 베었던 마늘밭은 온전히 냉이꽃 천지인데 오늘 풀베기를 하는 이랑은 쇠뜨기가 점령을 하고 있다. 바로 옆 이랑인데도 식물의 종류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홍 선생님은 이를 땅 속의 비밀이락 했다. 땅만이 식물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현호색

 

나는 쇠뜨기 수풀 속에서 광대나물꽃과 현호색의 현란한 아름다운 빛깔을 발견했다. 푸른 쇠뜨기 속에서 몇 그루의 현호색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색을 빚어낼 수 있을까?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현호색과 광대나물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어야 했다.

 

 광대나물

 

 

현호색은 매우 독특한 꽃모양을 하고 있다. 양 옆으로 나팔처럼 길게 뻗은 홍자색꽃잎이 요염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이 요염하게 입술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랄까? 양 꽃잎 두 장 모두가 진짜 입술처럼 가운데가 약간 패여 있다.

 

 

 

 

 

언뜻 보면 하나의 통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4장의 꽃잎으로 되어 있다. 아래위로 2장의 꽃잎이 보이고 입술처럼 벌어진 꽃잎 속에는 혀처럼 보이는 2장의 꽃잎이 봉오리처럼 뭉쳐있다.

 

입술 반대쪽 끝은 뭉툭하게 약간 들려 있는데, 꿀샘이 들어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가느다란 줄기에 열 개도 넘는 꽃송이를 달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현호색은 서로 부끄러워할까? 차곡차곡 피어나 위로 올라 갈수록 서로 엇갈려 엉덩이를 쳐들 듯 부끄러운 자태로 피어있는 모습이 더 요염하게 보인다. 그 속내를 인간인 미물이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현호색의 속명은 코리달리스(Corydalis)인데 이는 종달새란 그리스어이다. 꽃 모양이 종달새 머리 깃과 닮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호색은 그 아름다운 색깔이 가장 매력적이고 신비스럽다. 연보라색, 보랏빛이 도는 하늘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재주를 피워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 낸다 해도 저 한 송이 현호색이 내는 빛깔을 어떻게 따라 갈수 있을까? 

 

 

"차마 너를 베어낼 수 없구나! "

 

나는 저 아름다운 현호색을 도저히 베어낼 수가 없었다. 행여 현호색 꽃잎이 다치지나 않을까 염려를 하며 현호색 주변에 있는 풀들만 조심스럽게 낫질을 하여 베어냈다.

 

밭이랑 만들기에 대하여

 

"이랑 만들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작업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집 앞과 퇴촌에서 농사를 지어보다가 2004년 가을 처음에 이곳에 홀로 들어와 친구 저 산 밑에 있는 밭 1500여 평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내 사정을 듣고 마음대로 쓰라고 빌려준 땅이었습니다.

 

무성하게 우거진 풀을 베어서 땅에 깔고 버려진 쓰레기와 큰 돌들을 주어내는 작업을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삽질을 해서 고랑과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12월이 되어 땅이 얼자 작업을 중단해야 했어요. 2005년도에 땅이 얼자 다시 작업을 시작해서 고랑과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채소농사를 시작했는데 결과는 아주 비현실적이었어요. 그저 뿌린 씨앗이 싹이 나와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개사육장이 있었는데 하루 종일 큰 소리로 개들이 짖어대고, 음식 썩는 냄새, 뜰 끓는 파리들, 개 주인이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 자연훼손 등을 견디다 못해 애써 일구어 놓은 밭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6가지 작물이 심어져 있는 밭 이랑

 

 

홍 선생님은 처음에 이곳에 와서 농사를 시작할 당시 애로 사항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그 고초를 이해할 수가 있다. 힘들어 받을 일구어 놓고 떠나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애써 일구어 놓은 밭을 떠나 정발장군 묘소 인근에 밭 3000평을 임대를 하여 2년간 농사를 짓다가 개사육장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2007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와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산비탈에 15년째 방치된 밭 1000여 평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온갖 무성한 풀과 찔레나무, 칡덩굴과 관목으로 우거진 묵은 밭을 하나하나 손으로 베어내어 고랑과 이랑을 만들었다.

 

"당시 아내는 생계유지를 위해 동수원에서 양품점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벌이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었지요. 그땐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떨어져 방황을 했습니다. 나는 홀로 이 농장에 매달리고 아내는 밤 늦게까지 가게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부모 없는 집에서 방황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농사가 조금   안정이 되자 모두 합치기로 했어요."

 

말이니까 그렇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밭 고랑

 

"밭을 개간 할 때는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물이 자라는 곳이 아니라고 해서 고랑이나 수로를 소홀이 해서는 안 되지요. 밭이랑은 약 90cm 넓이로 만듭니다. 그러면 양쪽 고랑에서 풀베기 작업을 할 때에 손을 뻗쳐 작업을 하기가 매우 적절합니다.

 

고랑은 사람이 드나들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넓이로 만듭니다. 대략 30~50cm 정도로 하지요. 처음에는 작물을 더 많이 심을 생각으로 고랑을 좁게 만들었는데 풀을 깎는 등 작업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고랑을 넓게 만들었지요. 고랑의 깊이와 폭은 그 땅의 건습정도에 따라 결정을 하고, 이랑은 높은 것을 가운데에 만들고 그 양편에 낮은 것 등을 다양하게 만들어 혼작을 하기에 좋도록 만들었습니다.

 

높은 이랑에는 습기를 싫어하는 토마토, 배추 무, 멜론 등을 심고, 낮은 곳에는 당근, 피망, 고추, 가지 등 마른 땅을 싫어하는 작물들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파, 대파, 매리골드 등 향기가 나는 작물을 심어 벌레를 쫓아내는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해땅물 농장의 어떤 이랑에는 작물이 무려 6가지나 심어져 있다. 풀에 덮여 있어 작물이 잘 보이지 않아 작업을 할 때에 매우 조심을 해야 한다. 잘 못하면 밟기가 쉽기 때문이다.

 

 (2013.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