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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사'를 향한 꿈...'해땅물 자연농장' 홍려석씨

찰라777 2013. 5. 17.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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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해땅물 자연농장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홍려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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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사'를 향한 꿈...

'해땅물 자연농장' 홍려석씨

 

지난 5월 10일 아침,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소재 '해땅물 자연농장'에 도착하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밭에서 홍려석(55) 선생님이 홀로 파프리카를 심고 있었다. 그는 내가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무아지경에 빠진 듯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일체 잡념을 떨쳐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농장에서 작업을 하는 홍 선생님을 바라보노라면 도를 닦는 수행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텁수룩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야생화가 만발한 풀 속에 파묻혀 일을 하고 있는 그는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오직 햇볕과 땅과 물로만 10여 년째 농사를 지으며 그의 꿈을 일구어나가고 있다. 원래 그는 농사의 농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느 대기업의 잘나가는 간부였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창 일을 할 나이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해고를 당하고 나서 처음 1년 동안 그는 충격과 갈등 속에서 방황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방황 속에서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집 근처에 있는 세 평 정도의 공터를 발견했다. 흙을 만지며 공터에 이것저것을 심다보니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텃밭의 풀 속에서  벌레들이 움직이는 자연의 생태계를 관찰하며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텃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그는 <생태농업을 위한 길잡이>이란 책을 읽게 되었고, 하동에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던 조한규 지구촌자연농업연구원 원장의 <조한규의 자연농업>이란 책을 읽으며 풀과 벌레가 공존하는 자연농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인 가와구치 요시카노의 저서 <신비한 밭에 서서>란 책을 읽고 나서부터 그는 자연농사를 한번 지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햇볕과 땅과 물로만 농사를 짓는 '자연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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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여년 동안 삽 한자루로 땀을 흘려 개간을 하여 이루어 놓은 해땅물 자연농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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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에게 한 10년간 집안 살림을 꾸려나갈 것을 부탁하고 자연농사를 지을 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절친한 친구가 그의 소식을 듣고 이곳 백석리에 묵어 있는 땅이 있으니 마음대로 농사를 지어보라고 하며 3000여 평의 땅을 그에게 선뜻 빌려주었다.

2004년 가을, 그는 40대 중반에 삽 한 자루를 들고 홀로 백석리로 왔다. 집안의 생계와 아이들을 아내에게 맡겨둔 채, 그는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삽질을 했다. 동네 식당에서 숙식을 하며 날이 밝으면 삽질만 해댔다. "저 사람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야?", "꼭 미친 사람 같다" 등 쑤군거리는 마을사람들의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삼덩굴과 단풍잎돼지풀, 찔레, 칡넝쿨 등 잡초만 무성한 땅을 개간하여 <신비한 밭에 서서>란 책에 쓰인 내용을 굳게 믿고 자연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가 짓는 농사는 기존 관행농법의 틀을 깨고, 유기농법을 뛰어넘어, 국내에서 아무도 짓지 않던 자연의 순리에 따른 농사법이다. 그가 짓는 자연농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밭을 갈지 않는다(무경운, 無耕耘)
-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사용하지 않는다(무비료, 無肥料)
-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무농약, 無農藥)
- 풀을 뽑지 않고 벌레도 죽이지 않는다(무제초, 無除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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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초가 무성한 땅에서 풀과 함께 건강하게 자라나는 브로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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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농작물과 잡초, 벌레가 서로 공생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가는 생명 순환의 농사를 해와 땅과 물로만 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각종 화학비료, 퇴비, 농기계를 이용한 관행적인 영농방식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농사이다. 홍 선생님은 '농법'이란 말을 쓰지 않고 '농사'라는 단어를 쓴다. '농법'은 기계나 농약, 비료 등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짓는 방법이지만, '농사'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주어진 땅에 햇빛과 물로만 짓는 의미라는 것.

"묵은 땅에 무성하게 돋아난 수많은 잡초를 베어내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첫 해는 물론 4년 동안 농사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고추를 심었는데 정상적으로 성장한 고추의 1% 정도만 자라더니 죽지도 않고 새끼손가락만 한 고추 두 개가 파랗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은 지 5년째 되는 해부터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최초로 토마토와 고구마, 호박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해에 친구들과 친지들이 그 농산물을 사주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200만 원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600만 원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땅이 비옥해지기 시작하며 농사가 점점 잘 되어가기 시작했어요."

잡초밭에서 시작한 농사... 5년 만에 올린 최초의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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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초밭에 파프리카를 심고 있는 홍려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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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저서 <신비한 밭에 서서>란 책을 보면, 관행농법으로 지어온 땅에 3~4년 정도 자연농사를 지으면 각종 화학비료와 농약의 오염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게 된다고 한다. 5~6년이 지나면 땅이 제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비옥해지고, 10년이 되면 자연 상태의 산처럼 비옥하게 변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해로운 풀이라고만 알고 있는 잡초가 토양 깊이 뿌리를 내려 미네랄 등의 영양분을 작물에게 끌어다준다고 합니다. 잡초들은 작물의 영양분 흡수지역을 넓히고, 무기질이 풍부한 비옥한 토지로 만들어준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잡초나 풀을 뽑지 않고 베어주기만 하면 땅은 점점 비옥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땅에서 어떤 것도 옮기지도 않고, 이 땅에서 난 풀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되돌려주면, 저 산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는 대지처럼 스스로 비옥해진다는 것이지요."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이다>란 책을 쓴 미국의 식물학자 조지프 코캐너는 50년 넘게 잡초와 작물, 토양의 관계를 연구하여 이미 이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코캐너는 캔자스 지역 시골에서 잡초와 씨름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 어린 코캐너가 한 이웃 농부의 옥수수 밭에 빽빽이 돋아난 쇠비름을 마구 뽑아대는 것을 농부가 제지하며 말했다.

"애야, 다른 조건은 똑같은데, 쇠비름이 잘 자라는 곳에서 가장 좋은 옥수수가 열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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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성한 냉이꽃 속에 들러싸여 함께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는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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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코캐너는 잡초는 해로운 풀이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농부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옛 사람들도 무지했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된 거란다"고 코캐너에게 말했다. 그 농부의 말 한마디가 그를 평생 잡초 연구에 매진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토양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 한 들판에서 우물을 파다가 마침내 잡초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두께가 60cm가량 되는 표층에서 살이 오른 지렁이와 곤충을 포함한 토양의 생물이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토양에서 그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하부 토양층 깊은 곳까지 내리 뻗은 잡초의 뿌리였다. 깊이 90cm 정도 되는 치밀하고 딱딱한 하층토까지 잡초의 뿌리가 뚫고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원래 수수 작물이 무성한 비옥한 목초지였던 그 들판은 제초작업 탓에 잡초라고는 비름과 까마중, 도꼬마리 세 종류만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이 세 잡초의 곁뿌리가 그 들판 밑 하층토까지 뻗어 있었고, 그 뿌리를 따라 수수 작물도 함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잡초 뿌리가 없는 곳에는 수수의 뿌리도 없다는 점이다. 잡초들은 표층토양에 많은 영양분이 있었는데도 하층까지 뿌리를 깊이 뻗어내어, 작물이 표층토양에서 영양분을 충분히 빨아들이도록 도우며 작물의 영양 흡수지역을 넓혀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농사'를 향한 10년간의 도전...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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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잡초 속에서 신선하게 자라나고 있는 청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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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선생님은 코캐너의 이 말을 굳게 믿으며 잡초를 일절 뽑지 않고 작물이 함께 자랄 정도로만 베어내서 그 잡초로 작물을 감싸 안아주었다. 10여 년 동안 자연농사에 쏟은 그의 집념이 점점 결실을 거두어가는 것일까? 작년에 그는 약 1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농사에 투자한 원가는 불과 50여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원가에 비하면 큰 수익을 올린 것이다. 물론 그의 노동력은 제외한 원가이다.

그가 짓는 농작물은 일반 관행농법으로 지은 농작물보다 몇 배나 비싸다. 그런데도 자연농사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자연농사로 지은 맛있고 신선한 무공해 채소 등을 회원제로 구입해서 먹어준다고 했다. 그는 수확의 결과보다는 작물을 키우는 과정에 열중하고 있다. 아니 즐기고 있다는 것이 맞은 표현일 것이다. 일을 즐기는 자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다.

 

 <길밭>에서 60여 가지의 채소를 기르고 있는 홍려석 씨의 건강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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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서 200여 평의 텃밭을 일구어 텃밭 농사를 짓고 있던 기자는 작년에 연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한 귀농교육에서 홍려석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매우 큰 감동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5월 1일부터 '해땅물 자연농장'에 실습을 자처하고 매일 농장을 드나들고 있다.

집에서 6km 정도 떨어진 농장을 매일 오가며 나는 농사일을 배우는 것보다도, 남들이 다 안 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자연농사'에 10년 동안 고집스럽게 도전하고 있는 홍 선생님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꿈을 계속 꾸며 행동으로 옮기다보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지 않은가?

나는 봄비에 젖어 있는 풀잎을 털며 홍 선생님이 꿈을 일구고 있는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거의 10년째 햇빛과 땅과 물로만 농사를 지어온 농장은 60여 가지의 작물이 다양한 풀과 함께 힘차게 자라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세계 8대 '자연농사' 농부로 선정... 그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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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륙양용의 논밭 못자리에 볍씨를 파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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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홍 선생님은 농사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아무리 비옥한 토지라도 인간과의 교감이 없이는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자라나는 아기를 어머니가 돌보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봄비 내리는 날 아침 농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원두막 근처로 오니 '봄맞이'꽃이 은하계의 별처럼 수없이 피어 있다. 이곳 해땅물 농장은 지대가 높아 봄이 늦게 찾아온다. 앙증맞은 봄꽃들이 기지개를 펴며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있다.

 

 
 아내와 함께 다정하게 토마토를 심고 있는 홍려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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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홍 선생님은 혼자가 아니다. 10여 년 전 이곳에 올 때는 혼자였지만, 몇 년 전부터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귀농을 해서 합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4000여 평의 대지에서 건강하게 자라나는 작물과 야생화들이 그를 반기고 있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많은 식구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잡초가 우거진 밭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농사를 짓다보니 심신이 편해지고 저절로 건강해진 것 같아요.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 1년에 2억 원을 줄 테니 생산량 전량을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들여 키운 건강한 농작물을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회원님들이 이 농장에 와서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직접 지어보는 체험을 하며 심신이 건강해지는 수련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해와 땅과 물로만 '자연농사'를 짓는 세계 8대 농부로 선정되어 금년 8월에 일본 오사카에서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예술제인 세토치 아트 페스티벌(setouchi triennale)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화사하게 피어 있는 야생화처럼 해땅물 농장에서 자라나는 작물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기원해본다.

 

*이글은 필자가 5월 16일자 오마니뉴스에 기고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