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못 먹는 땅콩 밭에 똥이나 싸버려?

찰라777 2013. 8. 11. 17:11

땅콩을 먹으러 왔다가 똥을 싸고 간 너구리

 

작년에 갔던 각설이가 아니라, 작년에 왔던 너구리가 다시 땅콩 밭을 찾아왔다.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이라더니, 너구리는 땅콩 맛을 기억하고 기어이 땅콩 밭을 파헤쳐 땅콩 알을 까먹기 시작한 것이다.

 

 

▲ 땅콩 밭에 너구리 똥으로 보이는 짐승의 똥

 

 

▲ 너구리가 파먹은 땅콩

 

 

작년에는 8월 20일경에 너구리가 밤손님이 되어 땅콩 밭에서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금년에는 8월 11일부터 찾아왔으니 10일 정도 빠르게 찾아온 샘이다. 파헤쳐진 땅콩 뿌리를 들어보니 땅콩 알이 제법 여물어 있다. 그러니 너구리는 땅콩이 익는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땅속에 있는 땅콩을 찾아내는 걸 보면 너구리의 후각은 과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인간보다 월등한 후각을 가지고 있는 샘이다. 작년에 너구리에게 판정패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 미리서 텃밭 전면과 우측에 망사로 펜스를 쳐 놓았었다. 고라니가 고구마 순을 뜯어 먹을 때 미리 예비를 해 둔 것이다.

 

▲ 땅콩 밭에 펜스를 쳤다.

 

 

그러나 너구리는 좌측의 빈 공간을 통해서 보란 듯이 들어와 즐겁게 땅콩을 까먹고, 그러고 나서는 옥수수를 타고 올라가 유유자적하며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며 후식을 즐긴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

바야흐로 너구리와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 마리 벼룩을 잡기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하지 않던가? 애써 키워 온 땅콩을 모조리 너구리에게 진상을 할 수는 없다. 나는 10km나 떨어진 군남면 진상리 제일종묘상회로 가서 50m짜리 망사와 1.5m 고추 지주대 30개를 사왔다. 어쩌면 땅콩을 사먹는 돈보다 너구리를 방어하는 비용이 더 들어갈지도 모른다.

 

 

▲ 펜스 밑에 돌을 괴고 흙으로 묻었다.

 

 

허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너구리가 한번 맛을 들이면 땅콩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 뻔하다. 나는 우측에 마저 망사로 펜스를 쳤다. 말뚝을 박고, 집게를 물리고, 망사 밑에 돌을 물리고, 흙을 덮어두었다. 물론 이 방법이 너구리를 완전히 방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해볼 때까지는 해보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밤이 지나고 아침이 돌아왔다. 물론 내가 가장 먼저 가 본 곳은 펜스를 쳐 놓은 땅콩 밭이다. 다행히 어젯밤에는 땅콩이 무사했다. 펜스를 돌아보니 아직 구멍이 나 있지는 않다.

 

 

▲ 펜스를 빙 둘러친 텃밭.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판이다.

 

 

그런데 나는 펜스 밑을 살펴보다가 물컹한 짐승의 똥을 발견했다. 하마터면 밟을 뻔했던 똥이었다. 너구리의 똥일까? 그렇다면 녀석이 예의 즐거운 식사(?)를 하러 왔다가 방어망을 뚫지 못하자 성질이 나서 똥을 갈기고 갔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에이,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식으로 똥을 싸고 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작년에도 녀석은 망사를 이빨로 끊고 보란 듯이 땅콩을 파먹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맛을 보고 맛을 아는 땅콩 맛'을 녀석은 결코 그냥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똥을 싸고 간 녀석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녀석은 땅콩 밭에 공해가 없는 천연비료를 주고 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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