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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킴여행⑫]말로만 듣던 인도 열차사고를 목격하다

찰라777 2013. 12. 12. 12:41

자동차 사고, 열차 사고, 돌풍....

트럭이 휴지조각처럼....나무아미타불!

 

 

칸첸중가가 바라보이는 평온한 아침 풍경

 

아침에 일어나니 칸첸중가 설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다가왔다. 베란다 앞에 피어난 장미꽃 너머로 칸첸중가 설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히말라야의 설경을 바라보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영감이 떠오를 것만 같다. 설산을 바라보이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명상을 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다.

 

 

 ▲ 장미꽃 너머로 바라보이는 칸첸중가 설산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에 오른다"는 죠지 말로리의 명언이 떠올랐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최초에 오른 전설적인 영웅이다. 누구나 저 설산을 보면 언제든지 오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

 

설산 앞 낮은 봉우리에는 티베트 사원의 탑이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 부겐빌레아 꽃이 아침설산 풍경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아, 여기가 극락인가! 샹그리라인가!

 

▲ 칸첸중가 설산 밑에 빛나는 티베트 사원의 탑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지금 주변 환경은 저절로 명상에 들게 하는 풍경이다. 나는 설산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명상에 들었다. 직립으로 앉아 명상에 드는 순간은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하다. 내 마음은 잠시 저 불가사의한 칸첸중가의 설봉에 앉아있었다. 아,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보 출발시간이에요.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내려가요."

"그렇군요. 여기서 저 설산을 바라보며 며칠 더 있었으면 좋겠네."

 

 

티스타 강으로 추락한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다

 

평온한 아침, 지프는 경쾌하게 삼나무 숲이 우거진 좁은 길을 내려갔다. 30여분을 달려가자 곧 티스타 강이 나타났다. 운전사 따시는 아침을 좀 먹어야 한다며 티스타 강변 촐라Khola에 있는 따시 레스토랑에 차를 멈추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짜이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현지에 있는 인도인이 금방 강물로 트럭이 추락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강변으로 몰려갔다.

 

 

 ▲티스타 강변의 따시 레스토랑

 

 

 ▲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진 트럭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있다.

 

▲ 자동차사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주민들

 

 

맙소사! 트럭은 레스토랑 바로 옆 커브를 돌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채 티스타 강에 쳐 박혀 있었다. 트럭이 휴지조각처럼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모든 것은 순간에 일어난다.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고, 영원이 순간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강 밑으로 내려가 현장을 보고 있었다. 졸음이 왔을까, 아니면 과속을 하다가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을까? 강물은 말없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양 마음이 아파왔다. 생과 사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따시, 플리즈 슬로우리 드라이빙!"

"오케이 노 프로블렘."

 

야자수 그늘아래서 만난 소경 노인

 

나는 운전사 따시에게 천천히 갈 것을 주문했다. 그는 염려 말라고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스러운 모습이었다. 인도의 운전사들은 무슨 말을 건네든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대답은 '노 프로블렘'이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도인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 낮은 지역으로 내려오니 차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티스타 강을 벗어나니 곧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이제 완전히 낮은 지역으로 내려온 것이다. 넓은 지평선이 아득히, 그리고 끝없이 펼쳐졌다.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2000~4000m 산간에만 있다가 낮은 지역으로 내려오니 나사가 풀린 듯 몸이 느슨해졌다. 목가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낮은 지역은 기온이 상승하여 자동차의 문만 열면 지독하게 덥다. 자동차는 푸른 차밭이 초원을 이루고 있는 숲속을 지나갔다. 이곳도 다르질링 차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차밭을 달리다가 12시가 되어서 우리는 야자수 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어느 마을에 멈추었다. 야자수가 늘어선 주변에는 그야말로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차밭,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 떼…….

 

 

 

 

우리는 야자수 그늘 아래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며 짜이를 마셨다. 차를 마신 후 잠시 마을을 산책하였다. 잔디밭에 앉아 자전거를 수리하는 모습도 퍽 인상적으로 보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울타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소경인데도 그는 울타리를 손으로 만지며 보수를 하고 있었다.

 

 ▲ 휴게소 인근 시골에서 만난 소경

 

 

 

할아버지는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갈 듯 가벼운 모습이다. 맨발로 말없이 울타리를 보수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자 갑자기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린 시절에 느꼈던 사문유관(四門遊觀)이 떠올랐다.

 

시타르다 태자는 출가를 하기 전 가비라 성 밖으로 놀러갔다가 동문 밖에서 노인을, 남문 밖에서는 병든 사람을,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북문 밖에서는 승려를 만나, 인생의 네 가지 괴로움인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 일어난 일들이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존재다.

 

 

▲ 대나무로 엮어 만든 시골집

 

 

수수깡과 대나무로 얽어매어 친 울타리는 먼 옛날 우리네 시골 모습을 보는 것 같다.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인 집이다. 대나무로 벽을 만들고 초가지붕을 얹은 집들이 야자수 그늘아래 시원하게 들어 서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집에서 거의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닭들이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우리는 시원한 야자수 그늘 아래 앉아서 쉬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휴식이란 언제나 필요하다. 이런 태고의 풍경 속에서는 방아착! 모든 것을 확 내려놓고 마음을 쉬게 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을 하기 위해 지프를 타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헉! 웬 드라큘라!"

"아이 킬 유!"

 

 

▲ 헉, 웬 드라큘라가!

 

 

바다님이 어디서 났는지 드라큘라 가면을 쓰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바다님이 익살에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ㅋㅋㅋ 지루한 여행 중에 저런 익살이 청량제 역할을 한다니까.

 

 

말로만 듣던 인도 열차사고 현장을 목격하다

 

우리는 다시 끝없이 이어지는 차밭 평원을 달려갔다. 2시간여를 달렸을까? 갑자기 숲속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강한 돌풍이 불어 나무들이 뿌리 채 뽑히거나 부러진 것 같았다. 길이 막히고 자동차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 돌풍으로 부러진 나무들

 

 

그런데 이제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길이 막히고 많은 사람들이 철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도상의 지명을 보니 바나하트Banarhat지역이다. 여기서 부탄 국경도시 푼춀링까지는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아이고, 저런, 열차사고가 났나 봐요?"

"어, 정말이네!"

 

왼쪽 철길에는 커다란 기중기가 동원되어 탈선을 한 열차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수십 량의 열차가 철로에서 탈선을 하여 넘어져 있었다.

 

 

 

 

▲ 인도의 열차사고 현장

 

"아니, 어떻게 된 거죠?"

"트레인, 붐~ 키스."

 

구경꾼 중 자전거를 세워놓고 있는 중년 남자에게 물어보니 열차가 양쪽에서 충돌을 했다고 한다. 어제 밤에 강한 돌풍과 함께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는데 신호를 보지 못한 열차가 서로 충돌을 했다는 것. 자세히 보니 한 쪽은 승객을 태운 열차이고 다른 한쪽은 화물열차처럼 보였다.

 

▲ 충돌한 열차를 기중기로 끌어 올리고 있다.

 

종종 신문지상이나 텔레비전 뉴스에만 들었던 인도 열차사고를 현장에서 목격을 하게 되다니… 사람이나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상자를 물어보니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날씨 탓도 있지만 필시 기관사의 실수가 큰 것 같이 보인다.

 

한 사람의 실수로 이렇게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기계문명의 발달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대량살상사고를 불러일으키고 만다. 아비규환, 지옥이 따로없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프는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앞으로 몇 시간이 지나야 길이 열릴지 모른다고 운전사 따시는 혀를 내두른다. 이것이 바로 인도여행의 현주소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좀 우회를 하더라도 길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따시는 얼굴을 실룩이며 곤란하다 표정을 지으며 차에서 내려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 돌풍으로 부러진 나무와 넘어진 전봇대

 

"돌아가는 길은 훨씬 멀고 아주 나빠요. 그 길로 가면 요금을 더 받아야 하는데요?"

"따시, 우리가 계약을 할 때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질 않았소?"

"그렇지만 돌아가는 길이 멀고 길이 나빠 천천히 가야만하니 기름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거든요."

"우린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어요. 계약 한 대로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줘요."

 

우리는 따시와 요금문제로 다소 실랑이를 벌렸다. 인도의 운전사들은 툭하면 팁을 더 달라든지, 요금을 더 달라고 상투적인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럴 땐 좀 완강하게 나가야 한다. 결국 그가 입을 비쭉거리더니 차를 몰기 시작했다.

 

따시의 말대로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은 정말 엉망이었다. 도로가 패이고 무너져 내려 도저히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빨리 몰면 자동차가 덜컹거려 천장에 헤딩을 하고 말았다. 돌풍으로 무너진 나무들이 길을 막히기도 하여 그 나무를 치우고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무너진 나무를 톱으로 잘라서 머리에 이고 가거나 수례에 싣고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나뭇가지 하나를 질질 끌고 가기도 했다. 땔감으로 사용할 모양이다.

 

 

 

▲ 다시 평화롭게 보이기만 하는 푸른 차밭

 

 

돌풍지대를 지나자 다시 푸른 차밭이 평화롭게 펼쳐졌다. 칼림퐁에서 부탄 국경 푼춀링까지 이어지는 평원에는 푸른 차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후 3시 반, 우리는 드디어 부탄과 인도 국경 도시 자이가온Jaigaon에 도착했다.

 

자이가온은 부탄으로 들어 갈수 있는 유일한 육로이다. 담 하나를 두고 인도와 부탄이 국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나는 칼림퐁에서 자이가온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느라 수고를 한 운전사 따시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 칼림퐁에서 부탄 국경까지 지프를 운전한 인도의 운전사 따시(좌측) . 그는 항상 '노 프로블렘'하며 웃는다.

 

 

"따시, 고마워요. 다음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요."

"오케이. 초이 잘 가요."

"따시, 돌아가는 길 운전 조심하세요."

"노 프로블렘."

 

'노 프로블렘' 참 좋은 말이다. 오늘 일어났던 사고를 연상하며 묻는 의미를 그는 알고 있다는 듯 싱긋 웃었다. 그들은 인생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금 때문에 잠시 티격태격 했지만, 그도 흔쾌히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인도 사람들은 언제 또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금방 풀어진다. 말하자면 뒤 긑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따시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오늘처럼 다사다난했던 길을 무사히 운전해 왔지 않은가.

▲인도와 부탄의 국경도시 자이가온. 이곳을 니나가면 드디어 부탄이다!

 

정말 긴 하루였다. 칼림퐁의 평화로운 아침, 티스타 강의 자동차 사고, 야자수 그늘에서 만난 소경 할아버지, 인도의 열차 사고, 돌풍으로 무너진 나무, 그리고 다시 평화로운 푸른 차밭…….

 

인생의 희로애락을 한 순간에 다 겪어보는 그런 날이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런 화두를 안은 채 인도 국경을 통과하기 위하여 인도 국경 검문소로 들어갔다.

<계속>

 

 

 

 

■ 단 하루만에 겪은 희로애락의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