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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피, 인도의 베네치아-<작은 것들의 신>의 고향에서

찰라777 2014. 3. 27. 07:44

 

▲알레피의 백워터 트립(수로유람) 하우스 보트

 

 

서른하나.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고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이.

 

이곳 남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s)에 나오는 말입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그 지역과 관련 있는 소설 한권을 미리 읽는다거나, 혹은 여행 가방에 챙겨 넣어 여행을 하면서 읽는 다면 훨씬 더 그 지역의 삶과 문화가 피부에 와 닿아질 수 있겠지요. 해서 나는 여행을 떠나면 늘 그 지역의 소설을 한권쯤은 찾아 읽거나 여행 가방에 챙겨 넣고 가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발칸 반도 여행을 떠나면서는 보스니아 출신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 동유럽을 여행하면서는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티베트와 차마고도를 여행하면서는 제임스 힐톤의 <잃어버린 지평선>뭐 이런 식으로 그 지역과 관련 있는 책 한권을 읽게 되면 훨씬 여행이 더 흥미롭고 현지의 삶과 문화가 피부에 가까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번 남인도 여행길에는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등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를 들추어 보기도 했지만 이 책들은 너무 방대해서 짧은 여행 동안 읽기에는 무거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서사시는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들입니다.

 

<작은 것들의 신>은 그동안 인도여행을 몇 차례 하면서 대강 훌터 보기는 했지만 완독을 하지는 못했던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인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다시 이 책을 들추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룬다티 로이가 바로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남인도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남인도 께랄라주 아예메넴에서 시리아 기독교도인 어머니와 힌두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배경을 소설화하여 그녀의 첫 작품으로 출간한 후 영국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예메넴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코친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소설은 이란성 쌍둥이, 에스터와 라헬의 경험을 좇고 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인 아무는 기독교도인으로 사회의 관례를 깨고 힌두교도와 결혼하나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친정에 얹혀살면서 쌍둥이와 함께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하우스 보트 선상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당시 인도 사회의 편협한 신앙과 위선에 대하여 날카롭게 풍자를 하면서 전통적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비롯하여 인도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로이가 성장한 께랄라 주는 당시 기독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면서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요소가 상존했던 곳으로, 소설은 공산주의와 낙살라이(인도 극좌정당)당원들의 폭동이 확산되어 전통적 카스트 제도를 뒤흔들며 두려움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어난 두 주일간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주인공격인 아무는 쌍둥이의 소중한 친구인 불가촉천민 파라반 벨루타(멋진 웃음을 가진 작은 것들의 신’)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어, 이 소설에서 사랑의 법칙이라고 기술 된 것, 즉 우리의 성욕을 제한하고 누가사랑을 받아야 하며, 어떻게 얼마나 많이 받아야 하는지를 규정한 인간이 만든 법칙을 위반하게 됩니다.

 

아무는 그 비천한 연인 벨루타의 품에서 구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 벨루타는 인간이 만든 법칙인 강간죄로 억울하게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무 역시 늙지도 젊지도 않은,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과 비극적인 작별을 고하고 맙니다.

 

로이는 께랄라 사회라는 닫힌 세상 속에서 카스트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을 하면서도 사랑의 법칙은 카스트 제도 하에서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 문명에 존재한다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태인 출신인 케르테스 임레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첫 소설 <운명>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임레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조차도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서른한 살을 살아오기까지 방황을 하며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서른한 살이라는 나이는 인생항로의 어느 시점에서나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이곳 께랄라주를 여행하면서 내가 굳이 로이의 소설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들의 처지도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단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로유람을 하고 있는 하우스 보트

 

남들은 여행을 자주 떠나는 우리 부부를 매우 부러워하기도 하고 행복의 표상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비추일 수도 있겠지요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지금도 여러 가지 병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불안함 삶을 살아가는 아내는 <여행>에서 유일한 희망과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여행은 아내에게 있어서 작은 것들의 신에 해당되는 유일한 출구입니다. 그것은 불안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 유일하게 맞이하는 최소한의 낙이자 행복이기도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최근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암흑처럼 다가오는 불길한 말을 들었습니다. 의사는 CT촬영과 초음파 촬영결과 아내의 몸에서 이상한 덩어리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조직검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지금까지 겪어온 그 어떤 고통보다도 아내는 더욱 초조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심장이식이란 대수술을 할 때보다도 아내는 더욱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거의 식사도 거른 채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병원으로 결과를 보러가는 날 아내는 거의 사색이 되어 로이가 소설에서 표현을 했듯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행히...결과는 악성이 아니고 오랜 당뇨 투병에서 올 수도 있는 굳은살이라는 진단결과가 나왔습니다. 휴우~ 옆에서 지켜본 나는 안도의 숨을 길게 몰아쉬었지만, 병원을 나서면서도 아내의 표정은 별로 밝지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항로는 이렇게 늘 만만치가 않습니다. 삶의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지요. 이런 위기의 순간, 하늘과 바다가 갈라지는 수평선상에서 우리가 다시 재충전을 하여 살아가는 방법은 바로 <여행>이라는 작은 신입니다. 

 

▲코친의 호수. 바다와 강이 어우러진 코친의 호수는 백워터 트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보, 여행을 서둘러야겠어요. 오늘 당장 여행사에 전화를 해요.”

너무 무리가 아니겠소? 이사를 한 후유증도 생각해야지요.”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어디론가 떠나야만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알겠소.”

 

나는 서둘러 여행을 떠나자는 그런 아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그것이 악성이란 진단이 나왔다면 어떻게 될 뻔 했을까요? 당장에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고, 캔서에 대한 투병생활은 물론 자칫 대수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그런 불길한 전조가 어른거렸기 때문에 아내의 표정은 그렇게 사색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좋지 않는 진단이 나와 또 다시 당신을 고생시킬 생각을 하니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차라리

여보, 그만 말해요. 우리 서둘러 여행이나 떠나도록 합시다.”

 

돈이 문제가 아빈다. 이건 생사를 넘나드는 절대절명의 순간이기 때문입이다. 아내는 이런 경우 마이너스 대출을 받던지 달라 돈을 빚내서라도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여행이 지옥보다 더한 고통의 순간을, 찰나의 죽음을 면할 수 있다면,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떠나야 겠지요.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해서 나는 병원을 나서면서 여행사에 즉시 전화를 해서 이곳 남인도까지 날아오게 되었습니다. 패키지여행을 택한 것은 항공스케줄을 쉽게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사를 한지 불과 일주일만인 이사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섬주섬 여행 가방을 챙겨들고 이곳 남인도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문제 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모두 사소한 일들로 서서히 잊히게 마련입니다. 그 찰나의 사소한 일을 참지못해 인간은 여러가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인생의 어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수는 없겠지요.

 

▲백워터 트립을 하는 환상의 하우스보트

 

그러나 낯선 여행지에서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접하다보면 적어도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순간을 모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아내가 그렇습니다진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그 암울한 시간들을 아내는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여행은 아내가 기대는 유일한 <작은 신>인지도 모릅니다.

 

코친을 출발한 버스는 열 두 명의 여행자들을 태우고 알레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함께한 여행자들을 살펴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군요. 한 팀은 할머니와 딸, 그리고 손자 이렇게 3대가 함께 왔고, 또 다른 한 팀은 올케와 시누이가 사이좋게 여행을 왔군요. 아주 보기 드문, 그리고 보기에 좋은 동반자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전주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한 네 분이 함께 오셨습니다.

 

나이 대를 보니 70대가 다섯 분, 60대가 여섯 분, 그리고 20대가 한 분이군요. 모두가 여행께나 하신 분들 같습니다. 적어도 남인도 여행을 올 정도이면 북인도는 이미 다녀오신 전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유일한 20대 아가씨를 모두 아가씨라고 불렀습니다. 요즈음 같은 시절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이렇게 여행을 떠나 온 20대 아가씨가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거기에 유머와 재치가 넘쳐흐르는 현지 인도인 가이드 샌딥(20)이 함께 하여 우리는 마치 한 가족처럼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알레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다시 로이의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차창에 문득문득 스쳐 자나가는 호수와 야자수가 운치를 한껏 더해주고 있습니다. 코친에서 그 유명하다는 카타칼리 공연을 보지 못하고 왔지만 나는 곧 백워터 수로와 우거진 야자수 풍경에 흠뻑 빠지고 있었습니다. 하우스 보트들이 수로를 따라 통통거리며 지나가기도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보트를 타고 이 수로를 따라 아룬다티 로이의 고향인 아예메넴까지 문학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코친을 출발한지 약 2시간 만에 우리는 드디어 인도 속의 천국 알레피에 도착을 했습니다. 어느 좁은 골목에 정차를 한 버스에서 내리자 호수는 보이지 않고 가무잡잡한 남인도의 건장한 사내들 세 명이 버스로 다가와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단단한 갈색 피부, 동그란 눈동자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그들은 버스에서 우리들의 여행 가방을 챙겨들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코코넛 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 골목길, 그들의 뒤를 따라가자 놀랍게도 꿈에서나 보았음직한 아름다운 강과 수로, 그리고 하우스 보트들이 나타났습니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훑고 지나갑니다.

 

와아, 강이다!”

저기~ 배 좀 봐요!”

배위에 집을 지어 놓았네요!”

 "여기가 낙원이네요!"

 

무더운 날씨와 버스여행에 지친 동반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식 환성을 지르며 맑은 수로에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자 갑자기 기운들이 솟아나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강가에 정박한 두 개의 하우스 보트에 올라탔습니다. 오늘 밤은 이곳 하우스 보트에서 묵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탈 하우스 보트 바로 옆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군요. 많은 사람들의 망자를 보내는 마지막 고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영원히 살 것 같지만 반드시 그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주문을 듣게되니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흐르는 강가에 하나로 공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지

잃어버린 시간은 없다고

꿈이 살며시 가버리기 전에

꿈을 이루라고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꿈을 잃고 나중에는

정신까지 잃게 된다고.('작은 것들의 신'들 중에서)

 

하우스보트에 오른 순간, 나는 작은 것들의 신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시의 내용이 지금 우리 삶의 순간에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이에 봉착을 하게되지만 살아있는 순간은 이렇게 또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우스 보트에 여장이 푸니 배안에 낭만이 가득 차오르고 있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