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남인도·스리랑카·몰디브

기차의 창틀에 매달린 불가촉천민

찰라777 2014. 4. 2. 05:31

자신의 발자국까지 지우는 사람들

 

오래전 나는 북인도 바라나시에서 쉬라바스티(기원정사)로 가기 위해 고락푸르에서 기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인도의 지방 3등 열차는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지각한 완행열차를 기다리느라 플랫폼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때우기 십상입니다. 그날도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플랫폼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몇 시간이나 연착 된지도 모르는 낡아빠진 기차가 도착하여 아내와 나는 붐비는 사람들 틈에 끼어 기차에 올랐습니다.

 

 

▲연착된 3등열차를 기다리는 인도 사람들

 

우리는 겨우 판자로 된 3등 열차 좌석을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열차 칸에서 유리창에 매달려 앉아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사람들이 내려 자리가 비어 있는 데도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아이 밑에는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열차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와 내가 그 아이와 두 여인을 우리 앞에 빈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자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우리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환하게 미소를 짓는 아이의 표정이 어찌나 천진난만하던지아내는 그 귀여운 아이에게 풍선 하나와 볼펜 한 자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볼펜과 풍선을 받은 그 아이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창들에 매달린 인도의 아이

 

그런데 할머니가 아이로부터 볼펜을 뺐더니 다시 우리에게 건네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극구 아이에게 주라고 다시 건네주어도 할머니는 기어코 안 된다며 우리에게 아내에게 기어코 다시 볼펜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 찰나에 어떤 뚱뚱한 중년 남자가 열차에 오르더니 뭐라고 인도말로 버럭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자 그 두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열차 한구석 부리나케 옮겨가더니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 남자의 눈치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와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 

 

 

아이와 두 여인은 몇 정거장이 지나서 중간에 내렸는데, 풍선을 든 아이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한 손엔 분홍색 풍선을 부둥켜 안고 손을 흔드는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그들은 불가촉천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가촉천민은 글자를 배워서도 안 되고 가촉민들과 어떠한 접촉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말하자면 신분이 있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자리에 앉아서도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카스트제도 때문에 그 할머니는 볼펜을 우리에게 다시 건네주었던 것 같습니다.

 

 

▲풍선을 안고 우리가 보이지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남인도를 여행하며 그 아이의 표정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하우스보트에서 내려 우리는 코코넛 나무 우거진 마을길을 걸어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어제 짐을 받아 하우스보트에 옮겨 주었던 남자들이 하우스 보트에서 버스까지 짐을 옮겨주는 군요. 저들은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일까요? 문득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의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특히 인도남부 지방에는 카스트 제도가 더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불가촉천민)은 가촉민들, 즉 신분 있는 힌두교도들과 신분 있는 기독교도들이 만지는 어떤 것에도 손을 대서는 안 되었다. 마마치는 에스타와 라헬(그녀의 외손자들)에게 파라반(불가촉천민의 한 명칭)의 발자국을 밟을까봐 파라반들은 빗자루로 자기네들의 발자국을 쓸어 지우면서 뒷걸음질로 기어가곤 했던 것을 기억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시절 파라반들은 가촉민들이 다니는 길을 걸을 수도 없었고 상체를 가릴 수도 없었고 우산을 쓸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는 그들의 더러운 입김이 상대방에게로 향하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가려야 했다(‘작은 것들의 신. 97페이지 중에서)’

   

여기서 파라반은 불가촉천민 중의 한 명칭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신분제도 중 천민을 노비, 무당, 백정 등으로 구분을 했던 것과 비슷한 신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족, 귀족, 무사), 바이샤(농민, 상인, 연예인), 수드라(수공업자, 하인, 청소부)로 구분이 되고 수드라 밑에 가죽을 다루는 일, 시체를 다루는 일, 어부, 백정, 구식 화장실의 변을 정리하는 일 등 가장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최하층 신분이 있습니다 

 

 

 

불가촉천민(untouchable)을 부르는 이름인 달리트(Dalit)’억압받는 자’, ‘파괴된 자’, ‘억눌린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들을 하리잔(Harijan-힌두교 비슈누 신의 다른 이름), 신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자는 운동을 전개하며 신분제도를 없애는 일이 앞장을 섰습니다.

 

현재 인도에서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차별은 헌법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인도는 아직도 전체 인구의 16퍼센트가 불가촉천민으로 구분되어 여전히 사회적인 냉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가촉민들과 신체접촉이 금지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지나간 길은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바람에 자신들이 지나간 길은 지나가면서 다시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우물을 사용하면 오염된다고 하여, 마을 안의 공공우물도 사용하지 못하므로 이들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우물은 각종 동물의 뼈로 그 주변을 에워싸 표시를 해 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들이 다른 카스트를 가진 사람과 신체접촉을 하게 되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 돌과 몽둥이로 몰매를 맞아 죽기도 하며 특히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처럼 고급 카스트와 신체접촉이 발생할 경우 총에 맞아 죽기도 합니다.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서 불가촉천민인 벨루타가 기독교도인 아무와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발각되어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신분이 있는 아무와 불가촉천민인 벨루타와의 정사는 벨루타의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그의 아버지는 충성심과 벗어날 수 없는 노예근성으로 그 사실을 아무의 어머니 마마치에게 고하게 됩니다.

 

무고한 벨루타를  가촉민을 사랑했다는 곳 하나로 가촉민들이 음모를 꾸며 경찰들이무차별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내용을 작가 로이는 이렇게 끔찍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식이 반쯤 있어지만 움직임이 없었다. 두개골이 세 군데 파열되었고, 코와 양쪽 광대뼈가 모두 으스러져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없게 뭉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입에 떨어진 강한 타격은 윗입술을 찢고 여섯개의 이를 부러뜨려- 그중 새개는 아랫입술에 박혔다.-그의 아름다운 미소를 끔찍하게 바구어놓았다 그가 입에서 피를 흘린 것은 그 때문아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끓어오르는 입에서 신선한 피, 하복부에서도 내장이 파열되어 출혈을 일으켰고, 흘러나온 피는 복강에 고였다. 등뼈도 두 군대에 손상을 입었다. 또한 뇌진탕으로 오른쪽 팔이 마비되었고 방광과 직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그의 무릎뼈는 양쪽 모두 박살이 나 있었다."

 

작가 로이는 이 소설에서 사랑의 법칙이라고 기술된 것, 즉 우리의 성욕을 제한하고 누가 사랑을 받아야 하며, 어떻게 얼마나 많이 받아야 하는지를 규정한 인간이 만든 법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에서는 하리잔에게 입학이나 취업시 일정비율을 이들에게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으며, 하리잔 출신의 장관도 배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법적으로는 차별이 금지되었으나 인도 전역에는 아직도 카스트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어 종교적·문화적·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으며 여전히 절대적인 가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신분제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어떤 형식으로든지 지구상에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 한자,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에 신분제도는 여전히 여전히 상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탈을 쓴 똑 같은 사람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신분을 구분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나는 짐을 옮겨준 그들에게 약간의 팁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들이 가난하다고 하여 연민의 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짐을 옮겨준 수고로움에 대하여 최소한의 성의를 표시한 것 뿐입니다그들은 떠나는 버스를 향해서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들의 웃는 모습과 흔드는 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도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세계자연유산 서고츠 산맥을 오르며...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마두라이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버스로 8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 잡혀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여행은 시간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8시간이 걸릴지 아니면 하루가 걸릴지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이 인도여행입니다.

  

버스는 알레피의 긴 백워터 이리저리 건너다니다가 마침내 숲속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서고츠 산맥(Western Gaths Mts)의 초입에 들어선 것입니다. 서고츠 산맥은 인도 서해안에 남북으로 1600km에 걸쳐 길게 뻗어있는 산맥입니다. 평균 해박고도는 900~1600m이나, 최고봉인 아나무디산은 2695m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라비아 해에 면하여 장대한 벽처럼 솟아있는 서고츠 산맥은 여름철에 아라비아 해에서 불어오는 남서계절풍이 산맥에 정면으로 부딪치기 때문에 서쪽 비탈면과 해안평야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하여 무성한 열대림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고지에는 아열대림을 이루어 인도코끼리, 호랑이 등의 야수가 많고, 티크목, 흑단, 백단 등의 나무와 후추, 카르다몸, 차가 많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인도의 서쪽에 남북으로 1600m에 걸쳐 뻗어 있는 서고츠 산맥

 

서코츠 산맥은 히말라야 산맥보다 더 오래된 산맥으로 생물학적, 물리학적, 생태학적 가치가 높아 201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높은 산악 삼림생태계는 지구상에서 전형적인 몬순기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숲에는 적도가 아닌 열대상록수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자연보존연맹 목록에 멸종위기에 처한 325종의 동식물을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바람을 등지고 있는 동쪽 비탈면에는 가뭄이 심하다고 합니다. 산맥하나로 이렇게 기후가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태백산맥이 가로 놓여있는 동해안 쪽에는 많은 눈이 내리는 것과 흡사한 기후이겠지요.

  

고무 수액 채취현장을 가다

 

 

버스는 점점 삼림이 우거진 숲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나무마다 푸른 비닐을 층층이 발라놓은 숲이 나오는군요.

 

 

저기 저 나무는 고무나무입니다. 이곳은 인도에서 고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랍니다.”

 

센딥, 버스를 멈추어서 고무나무를 좀 볼 수 없을까?”

 

그러지요. 버스를 잠시 멈추고 고무 수액을 채취하는 모습을 보기로 하지요.”

 

 

▲서고츠 산맥의 고무나무 숲

 

 

고무나무에서 고무 수액을 채취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로에서 고무나무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군요. 나무에 칼금을 그어 상처를 내면 진한 우유 같은 고무 수액이 상처를 낸 자국을 따라 흘러내려 바닥에 받쳐 놓은 통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고무나무 줄기의 1m 높이 되는 곳의 나무껍질에 칼금을 나선형으로 그어놓고 계속해서 1개월을 받으면 약 1kg의 수액을 채취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라텍스(latex)라고 하는데, 부패와 응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소량의 암모니아를 가한다고 합니다.

   

참 신기하네요!”

 꼭 우유처럼 생겼군요!”

 

▲고무나무 칼금에서 흘러내리는 고무 수액

 

모두가 신기한 듯 고무 수액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칼금을 긋는 자국이 매우 아파보입니다. 나무는 참으로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입니다. 저 고무나무는 살아있는 동안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고, 상처를 내서 우리인간이 유익하게 쓸 고무를 생산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존제입니까?

 

그러나 칼금을 긋는 자리에서 하얀 진액이 솟아나는 것을 보니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여듭니다. 우리는 고무나무 숲에서 나와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고무수액을 실어나르는 화물차

 

버스는 계속해서 가파른 비탈길을 헉헉 거리며 올라갑니다. 남인도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여긴 거의 2000m가 넘어요. 거의 서고츠 산맥의 정상부근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버스는 비탈길을 헉헉거리고 가다가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엔진이 달구어져서 엔진을 식혀야 한다고 합니다. 에어컨 가동도 중단하고 올라왔는데아무래도 인도산 버스가 성능이 그리 좋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할지, 다시 인도여행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헌준한 서고츠 산맥 줄기.

 

 

언제 다시 출발할지 기약이 없는 버스에서 내려 첩첩이 둘러싸인 서고츠 산맥의 산과 숲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에서 가까운 거리에 서고츠 산맥에서 가장 높은 아나무디 산(2695m)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