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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기행⑤]보름째 설악산을 맴돌고 있다는 사람

찰라777 2014. 6. 14. 06:29

일곱 번째 오르는 설악산 등정기⑤

보름째 설악산을 맴돌고 있다는 사람

 

 

▲설악동 민박촌에서 바라본 설악산

 

두어 평 남짓 되는 방에는 작은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고, 오래된 TV도 한 대 있었다. 음식은 마루 겸 부엌으로 쓰고 있는 싱크대에서 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장을 풀고 우린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마루에서 한 중년 남자가 등산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스틱과 배낭, 등산화를 이리저리 돌아보며 그는 등산장비를 닦고, 조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삼매경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궁금증이 일어나 나는 그에게 눈인사를 보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미 대청봉을 다녀오신 모양이지요?”

“네, 벌써 보름째 설악산에 머물고 있네요. 울산바위, 대청봉, 금강굴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있습니다.”

“아하, 그래요? 멋진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네, 설악산은 보면 볼수록, 오르면 오를수록 매력이 있는 산입니다."

"그러면 설악산을 훤히 꿰고 계시겠군요?"

"천만에요. 오르면 오를수록 모르는 것이 더욱 많아요. 이 웅장하고 깊은 설악산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아마 평생을 살아도 모를 것 같아요."

"흐음……. 오르신 말씀입니다. 저도 사실은 이번에 대청봉 종주를 일곱 번째 오르게 되는데요. 설악산에 올적마다 새로운 신비경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지요.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주로 사람이 적은 비수기철에 설악산을 오릅니다. 지금이 딱이지요.”

“그렇군요. 사실은 저희들도 비수기를 틈타 사람이 적은 설악산을 오르고자 왔습니다만.”

“잘 하셨어요. 너무 고요하고, 풍요롭고, 아름답고… 설악산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아마 좋은 산행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떠나시나요?”

“아니요. 날씨가 너무 좋아 며칠 더 머물 예정입니다.”

 

멋진 분이다.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설악산의 가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마 나무의 수보다 사람의 수가 더 많지 않을까? 코스마다 사람에 치여 등산이 지체되고 앞 사람이 낸 먼지를 마시고 산행을 하는 고초를 겪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수기인데다 평일이다. 신록이 우거진 설악산은 너무나 고요하고 공기가 맑다. 이런 시기를 틈 타 산행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산 사나이의 여유로운 모습을 바라보니 어쩐지 내 마음도 풍요해 진다. 우리가 묵을 방으로 들어갔다.

 

배가네 집 연탄생구이

 

“아주머니 이 근처에 저녁을 먹을 만한 식당이 있나요?”

“요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추어탕 집이 있고요. 그 아래 정육점을 겸하고 배가네 식당이 있어요. 배가네 집 삼겹살 연탄 구이가 먹을 만해요.”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배나네 집으로 갔다. 대포항에서 회는 먹지 못했지만 삽겹살이라도 먹으며 내일 산행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배가네 집(033-636-7916)에 들어가니 잘생긴 쥔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민박집 주인이 극구 추천을 해서 왔어요. 삼겹살 두 근에 소주 한 병 주세요.”

“아, 그래요? 잘 오셨습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할 것입니다.”

 

 

▲설악동 배가네 집 연탄 생구기

 

쥔장은 먼저 이글이글 타는 연탄불을 가져와 화로에 넣어 놓고, 맛있게 보이는 삼겹살과 소주 한 병(처음처럼 18도)을 가져왔다. 상추와 홍당무, 열무김치, 마늘, 풋고추와 된장도 곁들여 나왔다.

 

“이 상추와 김치는 저희가 직접 기른 무공해 애채입니다. 고기는 강원도 산이고요. 맛있게 드십시오.”

“아, 그래요? 참 싱싱하게 보이는군요.”

 

쥔장의 말처럼 그런대로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맛이 있었다. 배가 고픈 탓도 있었지만 김치 맛도 좋았고, 상추도 밭에서 금방 따왔는지 싱싱했다. 삼겹살 두 근 22,000원, 된장찌개에 공기 밥 한 그릇, 오이지, 파 무침, 부추무침, 거기에다 소주까지…

 

총 식사비용은 28,000원이었다. 이건 배낭여행 자에게는 최고의 식사다. 소주 한 병에서 친구가 소주 세잔, 내가 두 잔을 마셨다. 술이 약한 나는 소주 두 잔에 금방 취기가 돌았다. 이만하면 만족한 식사다.

 

 

 

 

배가네 집 벽에는 에베레스트 사진이 걸려 있었다. 쥔장에게 에베레스트를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가본적은 없는데 너무 좋아서 걸어 놀은 사진이라고 했다. "사실 설악산 밑에 살아도 설악산을 거의 오르지 못합니다. 먹고 살기가 바빠서요."

 

 

설악동 민박촌 마을 산책

 

하긴 그렇다. 서울에 사는 사람 남산 안 올라가는 것이나 마찮가지다. 친구와 나는 저녁식사를 맛있게 들고 배가네 집을 나왔다. 그래도 이제 저녁 7시다. 우리는 설악동 마을을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배가네 집 주인의 말로는 설악동 마을에는 약 1300여명이 모여 산다고 했다. 맨 위쪽에 설악동 천주교 성당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당 지붕에는 하얀 백의를 걸친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계시는 듯 했다. 본당 앞에는 성모마리아 상이 고요하게 서 있었다. 예배당은 굳게 닫혀 있었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듯 성당은 적막하기만 했다.

 

성당 뒤로 돌아가니 계단식 논에 모가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고, 그 뒤로 설악산이 아스라이 어둠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산을 향하여 합장을 했다. 산은 겸손한 자를 수용한다. 성당 앞에는 꽤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잔디밭을 걸어 나와 우리는 다시 마을길을 산책했다.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대부분 민박을 하는 것 같았다. 비수기라 그런지 마을은 고요했다.

 

 

 

 

마을을 한 바퀴 돈 다음 쌍천을 따라 걸어올라 갔다. 목조로 깔아 놓은 천변길이 걷기에 좋았다. 설악교에 다다르자 오색찬란한 조명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목우재로 가는 길을 이어주는 설악교는 마치 무지개다리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천변에는 자투리땅을 일구어서 텃밭을 가꾸는 풍경이 이채롭게 보였다. 설악동은 초입에 야영장에서부터 시작하여 민박촌 주택단지, C지구, B지구로 이어지고, 마침내 설악산 등반이 시작되는 소공원이 나온다.

 

 

 

 

 

▲설악동 마을 야경

 

아무리 비수기 철이라고는 하지만 설악동은 너무나 고요하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세월호 참사 이후 여행자들이 뚝 끊겼다고 한다.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중단되고, 여행자들의 발길마저 끊어져 설악동은 개점 휴업상태라는 것. 설악산은 물은 흘러가지만 경제는 돌지 않는다고 한탄을 했다.

 

주차장도 텅텅 비어 있고, 유스호스텔과 모텔과 식당, 마트에도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마치 황량한 폐허를 보는 듯 스산하기만 하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이해 할 수 없는 한 사건이 이렇게 나라 경제의 흐름까지 흔들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민박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일직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