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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기행⑥]108톤의 청동으로 주조한 신흥사 통일대불

찰라777 2014. 6. 16. 12:09

일곱 번째 오르는 설악산 등정기⑥

백발신인이 터를 잡은 설악산 신흥사 

 

권씨와 김씨의 전설이 얽힌 권금성

 

★권금성

 

다음날 아침 5시, 민박집에서 라면 한 봉지와 햇반 하나를 끓여서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본격적으로 설악산 등산에 나섰다. 소공원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인데도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말썽도 많고 여전히 신흥사에서 받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이다.

 

이른 아침이기는 하지만 소공원은 너무나 한산하다. 우리 두 사람과 5명의 등산객이 전부다. 설악산에 와서 이렇게 한산한 소공원을 보기는 처음이다. 우리는 마치 태고의 설악산 모습을 걷는 착각에 빠지며 소공원을 걸어 신흥사 입구로 갔다. 좌측에는 권금성이 우람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권금성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에 2,100m나 쌓아올린 산성이 권금성이다. 신라시대 권씨와 김씨 두 장사가 난을 피하기 위해 쌓았다 하여 권씨와 김씨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 마을에 살던 권씨와 김씨는 난을 당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급한 나머지 산꼭대까지 올라갔으나 성이 없어서 적병과 싸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권씨가 냇가의 돌로 성을 쌓자고 제안을 했고, 산 밑으로 내려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를 김씨가 받아서 성을 쌓기 시작하자 하룻밤 사이에 성을 쌓게 되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 후 두 장사의 성을 합쳐 지은 이름이 권금성이 되었다고 한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전설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 정성이 가상하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바라본 설악산 

 

 

백발신인이 터를 잡은 신흥사

 

권금성을 바라보며 소공원을 지나니 푸른 신록 속에서 신흥사 일주문 나타났다. '설악산 신흥사(雪嶽山新興寺)'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을 하여 향성사(香城寺)라고 하였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698년)에 화재로 손실되어 그 당시 9층 석탑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다

 

▲신흥사 일주문

 

그 후 의상조사가 능인암 터(현재 내원암)에 다시 중건을 하고 사명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을 하였으나 조선 인조 20년(1642년)에 또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하고 말았다.

 

화재로 소실된 사원을 영서, 혜원 연옥 세분의 고승들이 중창을 사원하며 기도 정진을 하던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이니라" 고 말을 한 후 사라졌다고 한다. 스님들은 백발신인이 점지를 해 준대로 그 자리에 절을 중창을 하고 신인(神人)이 길지를 점지해 주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신흥사(神興寺)라고 지었다.

 

6.25 사변 때 고성군 건봉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북지역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어 신흥사로 이관하게 되었고, 그 후 복지사업 등 지역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귀신 신(神)자를 새로운 신(新)으로 바꾸어 지금의 신흥사(新興寺)가 되었다고 한다.

 

 

108톤의 청동으로 주조한 통일대불

 

 

 

일주문을 지나니 거대한 청동대불이 나타났다. 이 청동대불좌상은 분단된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아 10년간의 공사 끝에 1997년 10월 25일 점안을 한 통일청동대불이다. 높이 14.6m, 좌대직경 13m로 아파트 6층 높이의 청동대불을 조성하는데 108톤의 청동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신흥사 통일대불

 

미간 백호에는 지름 10cm의 인조 큐빅 1개와 8개의 큐빅이 박혀 중생계의 무명을 밝혀주듯 찬란한 광채를 발광하고 있다. 그러나 녹이 쓴 청동대불은 검게 보여 청동인지, 돌인지 잘 분간이 안갈 정도이다. 또 청동대불 안에는 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세심교에서 만난 설악산 선인

 

청동대불을 지나니 세심교가 나왔다. 스님 세분이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훌렁한 차림으로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들지 않고 신선처럼 가볍게 걸어가는 모습이 배낭을 걸머진 우리들과는 퍽 대조적이다. 유유자적하는 모습이랄까?

 

세 스님의 모습에서 나는 문득 신흥사 절터를 점지해준 백발신인을 떠올렸다. 속세를 떠나 이런 곳에 머문다면 정말 신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어온 업장이 지중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이 중생들의 고단한 삶이다. 세간의 집착을 훌훌 털고 무명초를 백호로 싹싹 밀어버리고 혈혈단신으로 산사로 뛰어든 스님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선처럼 산책을 하고 있는 스님들

 

세심교를 건너니 경내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사천왕문(四天王問)이 나왔다.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은 동쪽을 수호하며, 선한 이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준다.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은 악인에게는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키게 하고, 칼을 들고 남쪽을 수호하고 있는 증장천왕은 만물을 소시키는 덕은 베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은 북쪽을 수호하며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 준다고 한다.

 

"오늘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정성스럽게 합장을 하게. 그러면 사천왕이 자네를 수호해 주실걸세."

"글쎄. 양심이 찔리는군. 평소에 지은 업장이 많아서."

"하하, 그럼 저 지국천황님께 이실직고를 하게나."

 

 

 

▲신흥사 사천왕

 

사천왕문을 지나니 보제루가 나온다. 보제루는 각종 법회를 여는 곳으로 특히 신흥사 보제루는 직경 6척 비자나무 통에 황우 여섯 마리 분의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法鼓)와 목어가 보존되어 있고, 네 벽에 시판은 추사의 친필이 있어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른 아침이라 문이 열려있지 않아 관람을 하지 못했다.

 

붓꽃 만발한 신흥사 극락보전

 

보제루를 지나니 극락보전이 아담하게 나타났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전각으로 신흥사 극락보전은 조선인조 25년(1647년)에 건축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다.

 

▲신흥사 극락보전

 

▲아미타 삼존불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영원토록 중생을 교화하시는 분이 아닌가? 그래서 아미타불을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이라고도 부른다. 법당에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했다. 가운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세음보살,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아미타 삼존불로 모시고 있다.

 

특히 신흥사 아미타 삼존불은 목조로 제작을 한 것으로 1651년 조선시대 조각승 무염에 의해 제작되었다.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조각승 무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무릎, 당당한 어께, 알맞은 허리 등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명지전

 

좌측과 우측에 협시불로 봉안을 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내려놓은 중품중생인의 수인을 하고, 고통의 바다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이 올바른 깨달음을 통해 고통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극락세계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 후불탱화와 함께 극락세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미타삼존불은 어쩐지 오늘 우리들을 설악산이라는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삼성당

 

 

 

 

 

 

 

극락보전을 참배하고 나오는데 네 기둥에 초서로 새겨진 주련(株聯-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이 퍽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절마다 대웅전 기둥에는 그 절을 상징하는 주련을 써 붙여놓고 있는데, 신흥사 주련은 오늘 설악산을 오르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내용이다.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극락세계 법당앞에 둥근달과 같은얼굴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아미타불 금색광명 온누리에 비추이니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누구든지 일념으로 아미타불 부르며는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찰나간에 무량공덕 원만하게 이루리라

 

"저 주련을 보니 오늘은 아미타불을 불러야 할 것 같네."

"극락왕생 하려고?"

"누구든지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설악산 대청봉에 올려 준다는군."

"그러면 오늘은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겠네."

 

이미 두 사람 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대청봉을 오르는 것은 체력상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며 천천히 오르면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장엄하고 있는 의 부처님이 우리를 대청봉까지 오르게 해 주시지 않겠는가?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고..

 

해우소에 근심을 풀어 놓고

 

극락보전을 나오니 붓꽃으로 보이는 보라색 꽃이 권금성 기암괴석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조화다. 해우소에 들어가 근심을 풀고 나오는 심신이 한결 가볍다.

 

종각과 어울리는 설악산의 풍경도 한 폭의 멋진 풍경이다. 거기에다 거북이 세 마리가 품어대는 정화수를 한 바가지 떠서 마시니 오장육부가 시원하다. 오, 멋지고 아름다운 아침이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마음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사대천왕님께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고 신흥사를 나왔다.

 

"헉, 이거 벌써 7시네."

"신흥사에서 1시간을 배회했군. 이러다 날 새는 것 아닌가?"

"게으른 산행이 이래서 좋은 것 아닌가? 볼 것 다 보고 해우소에 근심도 풀어 놓고……."

 

 

▲비선대로 가는 울창한 숲길

 

   

세심교에서 설악산 선인도 만나고, 극락보전에서 아미타 부처님 친견하고, 해우소에서 근심도 풀어 놓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감로주를 마시고 나니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쳐 나왔다. 

 

우리는 신흥사를 빠져나와 천천히 비선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길, 울울창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휴우~ 심호흡이 저절로 되며 맑은 산소가 폐부 깊숙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