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나팔꽃이 기상나팔을 불어주네!

찰라777 2014. 8. 15. 05:53

 

점점 더 신성한 기운, 그리고 생기가 넘치는 금가락지

 

 

나팔꽃이 힘차게 기상나팔을 불어주네!

 

 

 

금가락지의 아침은 나팔꽃들의 요란한 기상나팔소리로 시작된다. 여명이 밝아오면 대문에서 나팔꽃들이 동쪽을 향해 힘찬 팡파르를 불어준다. 보라색 나팔꽃은 참으로 아름답다. 지리산 구례에서 이사를 올 때 섬진강변에 핀 나팔꽃 씨를 몇 알 받아와 뿌려 두었는데, 해마다 빠지지 않고 피어나 기상나팔을 불어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우체통 주변에 피어있는 새로운 소식이라도 알리려는 듯 더 힘차게 기상나팔을 불어준다. 우체통 주변에 나팔꽃이 유독 많이 피어나는 것도 묘하다. 원래는 정자 주변에 씨를 뿌렸는데 20여 미터 되는 우체통까지 번식을 하여 척박한 땅에서 연보라색을 꽃이 피어나며 파수병 역할을 하고 있다.

 

 

 

 

나팔꽃 씨방이 톡 튀어 올라 대문으로 떨어졌을까? 아니면 바람에 날려 왔을까? 나팔꽃은 기쁨, 영광, 결속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피어다가 저녁에 지고 만다고 하여 ‘덧없는 사랑’에 비유하기도 한다.

 

나팔꽃은 해가 뜰 무렵에 활짝 피어났다가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잎을 오므리기 시작하여 저녁나절이면 시들고 만다. 집에 손님이라도 와 있으면 나팔꽃은 더욱 힘차게 기상나팔을 불며 방문객을 환영한다.

 

 

 

 

식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팔꽃들이 기상나팔을 불기 시작하면 우체통 건너편에 장독대에 피어있던 달맞이꽃들은 꽃잎을 오므리기 시작한다. 달을 향하여 퍽퍽 피어나 밤의 연주를 시작하며 달을 맞이하던 달맞이꽃들은 나팔꽃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휴식에 들어간다.

 

 

 

 

사계절 중 금가락지가 가장 푸르게 보이는 계절은 여름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우선 푸른 잔디 정원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정자 앞 느티나무 밑에는 코스모스가 가는 허리를 한들거리며 청초하게 피어나고 있다. 나는 느티나무를 본 순간부터 그 주위에 코스모스 동산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임진강변에 핀 코스모스 씨를 받아 2년 전에 정원 울타리와 느티나무 밑에 몇 개 뿌려 주었다.

 

 

 

 

 

 

작년에는 코스모스가 별로 눈에 띠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상당히 많은 코스모스들이 느티나무 주변을 에워싸며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꽃을 피워주고 있다.

 

울타리 주변에는 해바라기를 심으려고 했는데, 해바라기와 유사한 돼지감자를 몇 뿌리 심었다. 그랬더니 울타리 남쪽과 서쪽을 따라 돼지감자가 퍼지면서 울타리에 빽빽이 들어차고 있다. 해바라기처럼 큰 꽃송이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노란 꽃들이 피어난다.

 

대문 건너 처마 밑에는 수세미 넝쿨이 지붕으로 뻗어나며 노란 꽃을 피워주고 있다. 이곳에 뭔가를 심어서 아침 햇볕을 가리고 싶었는데, 작년에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수세미 네 포기를 얻어와 처마 밑에 심었다. 거름도 주지 않고 맨땅에 심었는데 수세미는 아주 연약하나마 그늘을 드리우고 수세미도 몇 개 열려 주었다.

 

 

 

 

가을이 지나고 수세미가 말라서 떨어지도록 그대로 둔 채 겨울을 났다. 그랬더니 금년 봄에 수세미 네 그루가 그 자리에서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수세미는 종자로 번식을 하는 1년생 식물이다. 그렇다면 마른 종자가 땅에 떨어져 그 자리에 다시 돋아난 샘이다.

 

 

그 자리에서 수세미가 다시 돋아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수세미 대신 여주를 심어보자고 해서 여주 네 포기를 사다가 심었는데 여주보다 오히려 수세미가 훨씬 더 무성하게 자라나며 아침마다 노란 꽃을 피워 주고 있다.

 

 

 

 

 

여주도 자라나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있지만 자생적으로 자란 수세미가 훨씬 더 무성하게 자라며 열매도 크게 열리고 있다. 대신 금년에는 물도 열심히 주고, 퇴비와 깻묵거름도 뿌려 주었다.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란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위네바고족 들은 식물에게서 도움을 받으려면, 사람을 대하듯 식물을 보살피고 적절한 선물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무 아래 앉아 꽃과 이야기를 나누는 네 살배기 아이에게도 이런 말은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간절히 원하면 슬그머니 나타나 병을 치료해 주는 식물들

 

또 체로키족과 크리크족도 오래 전부터 식물이 우리의 스승이자 치유사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증거로, 이들 아이에서는 식물이 그들의 자손인 인류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기 때문에, 제각기 인간의 질병에 필요한 치료제를 제공해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가 아프면 무든 부모들이 그렇듯, 식물들도 우리를 도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식물들은 인간이 질병을 알아보고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주변에 약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나는 위장과 간 기능이 별로 시원치 않다. 이는 학창시절에 워낙 가난하여 잘 먹지 못한데다가 기차통학을 하면서 밥을 먹자 말자 매일 뛰어다니다 보니 위장이 늘어나 위하수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늘 위장과 간을 조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금가락지에 이사를 온 후 무농약으로 지은 싱싱한 야채를 먹고 나서부터는 변통이 몰라보게 좋아지고 소화도 다른 때보다 더 잘된다. 그러다가 모처럼 서울에 가서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음식점에 음식을 먹고 나면 다시 위장 기능이 안 좋아 지고 만다. 서울에서 금가락지로 돌아와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다시 위장 기능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이곳에 이사를 와서 집 앞과 우측에 버려진 모래땅과 자갈밭을 개간하여 텃밭을 만들 생각을 제일 먼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년 조금씩 삽과 쇠스랑으로 땅을 파서 정성을 들여 일구어 가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지금 금가락지는 그야말로 <문전옥답>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래땅에는 감자, 고구마, 당근, 무 등 주로 뿌리 식물과 콩류를 심고, 자갈밭에는 상추, 배추, 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등 야채류를 심는다.

 

 

 

지금까지는 퇴비와 물만 주고,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는 일체 하지 않았다, 풀은 베어내어 그 자리에 거름으로 덮어주었다. 금년에는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오이, 마늘을 비롯하여, 상추, 배추 등도 아주 잘 자라주고 있다.

 

현관문을 열면 앞 쪽 텃밭에는 콩과 고구마가 무성하게 자라나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다. 우측으로 돌아가면 상추, 오이, 토마토를 비롯하여 각종 야채들이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무공해로 텃밭을 일구다 보니 온 집안에 생기가 돌고 있다.

 

 

 

우리의 몸에 이로운 식물들이 돋아나고, 청개구리가 노래를 부르고, 늘 벌과 나비가 날아들며 새들이 지저귄다. 각 종 풀벌레들이 뛰어놀고 들고양이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곤 한다. 무공해 지역이다 보니 각종 식물들이 소식을 전해 모여들고 있는 모양이다.

 

식물들의 의사 전달 방식은 물속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 돌이 일으키는 잔물결은 생태계 전역으로 확산되며, 우리에게까지 밀려든다. 때문에 귀가 아닌 코로, 피부와 눈과 혀로 받아들여도, 미묘하고 정교하며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영혼이 인간의 병을 치료한다

 

인간의 영혼처럼, 식물들의 의도와 지성, 영혼도 화학작용이나 문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은 그 부분들의 총화 이상의 존재이며, 오랜 세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텃밭에 존재하고 있는 식물들과 말을 건다, 무씨를 파종 할 때도 “무씨야, 정성으로 심을 테니 제발 잘 자라다오.”라고 말을 건다. 이번 봄에는 텃밭 주변에 왕고들빼기가 좀 돋아나주기를 바랬다. 그랬더니 정말로 집안 이곳저곳에 왕고들빼기 들이 돋아났다.

 

 

 

하얀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왕고들빼기로 쌈을 싸먹거나 된장에 찍어 먹으면 그 쌉쌀한 맛이 입맛을 저절로 돋우게 한다. 최근에 왕고들빼기가 항암효과에 뛰어나다고 알려지자 들과 산에는 왕고들빼기가 남아있지를 않는다. 우리 집 정원 여기저기에 서 있는 왕고들빼기 들은 아침마다 나에게 인사를 한다.

 

“쥔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싱싱한 잎이 있어요. 오늘 아침 좀 뜯어 잡수시지요.”

“그래요? 괜찮겠소? 그럼 부드러운 잎 몇 장만 뜯을게요. 하하.”

 

맨 꼭대기에 있는 왕고들빼기 잎을 몇 장 뜯으면 하얀 진액이 뚝뚝 떨어진다.

 

“아프지 않소? 미안하이다.”

“아니오. 우린 곧 회복이 되어 내일 아침이면 새로운 잎을 내지요. 뿌리 채 뽑아버리지 않는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 그래요! 고맙소이다.”

 

왕고들빼기나 상추 등 채소는 뿌리를 뽑지 않으면 죽기 전까지 사람에게 무한 리필을 해준다. 잎을 뜯어내면 계속 다시 돋아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동물들과 다르다. 동물은 어딘가를 한 번 자르면 복원을 할 수가 없고, 생명은 일회성으로 그친다.

 

요즈음은 왕고들빼기 꽃이 연한 노란색으로 피어나고 있다. 이 꽃을 따서 그늘에 말려 왕고들빼기 꽃차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파주시 두포리에 600여 평의 밭이 있는데, 그 밭에 오갈피나무를 심으며 습기가 친 곳에 돌미나리가 좀 돋아나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졌었다. 나와 내 친구 응규는 둘 다 간 기능이 별로 좋지가 않다.

 

 

 

야생 돌미나리는 해독작용이 뛰어나 숙취해소에 도움을 주고 간 기능에 많은 도움을 주는 식물이다. 우리는 두포리 밭을 일구며 돌미나리가 돋아나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카페에 공지를 해서 돌미나리 모종을 구했다. 그랬더니 대전에 살고 있는 회원 한분이 돌미나리 모종 한 주먹을 시장에서 구했다며 보내왔다. 그 돌미나리를 밭 한 가운데 심었다. 그러나 그 양으로는 번식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듬해 놀랍게도 수많은 미나리들이 여기저기 돋아났다. 근처에 미나리 방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 작은 양의 모종이 이렇게 번식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덕분에 우리는 매년 두포리 밭에서 돌미나리를 캐다가 무쳐 먹거나 그냥 쌈을 싸기도 한다.

 

이로쿼이 족 사이에서는 사람이 병이 들면 그 병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식물들이 나타나서 환자가 그 식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자신에게 필요한 식물을 찾았을 때 그 식물에게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식물이 다른 식물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주어 우리가 필요한 식물을 채취했을 때 더욱 강력한 약효를 발휘한다고 한다.

 

 

 

 

위네바족 사이에서는 식물을 약용으로 채취할 때 식물에 소망을 이야기하며 힘을 발휘해 달라고 부탁하면, 식물이 실제로 그렇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물이 아픈 사람의 몸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환자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은 그 식물의 잎이나 줄기, 뿌리가 아니라 그것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찮은 잡초라 할지라도 업신여기지를 말아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집 주변에만 해도 몇 백가지나 될지 모르는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 식물들이 모도 다 연관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언어로 서로 말을 걸고 있다.

 

어디선가 우리 집 텃밭으로 찾아와 돋아난 돌미나리, 왕고들빼기들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이들은 인위적으로 기른 식물이 아니다. 그런데 내 소망을 알아차리고 내 몸의 약한 부분을 치료해주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다 소중하다

 

아침에 기상나팔을 불어주는 나팔꽃이나 밤중에 퍽퍽 소리를 내며 달을 맞이하는 달맞이꽃도 내게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이지만 집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초들도 모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생명들이다. 이 잡초들이 매일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나는 매일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를 귀담아 듣는다.

 

 

 

며칠 전에는 금가락지 앞 임진강 주상절리 위로 아름다운 쌍무지개가 그림처럼 커다랗게 드리워졌다. 금가락지에 무언가 상서로운 행운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 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무한히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