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연천여행]꾸미지 않은 소박함이 더 아름다워요!

찰라777 2014. 8. 21. 07:42

청정 연천, 꾸미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

 

2014년 8월 16일 흐림

 

 

 

▲임진강 평화습지원

 

소요산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청정남 아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기차를 타고 내가 사는 곳 연천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자동차로는 여러 번 왔지만 기차를 타고 가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는 것. 어떻게 가면 되느냐는 그에게 일단 소요산역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 내가 마중을 나가겠노라고 했다.

 

그는 다른 한 사람의 일행과 함께 신설동역에서 오후 1시쯤 출발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도봉산역에 도착을 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 소요산역까지 자동차로 가는 시간이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소요산역까지는 약 35km거리로 넉넉 잡고 1시간정도 걸린다.

 

나는 미리 전곡으로 가서 이것저것 일을 보았다. 두부 한모, 무 한 개, 설사약, 그리고 김장배추를 씌울 망사와 철서도 샀다. 전곡에 한 번 나가면 이것저것 볼일이 많다. 메모지에 적지 않으면 빠뜨리고 십상이다. 어떨 때는 메모지에 적은 일도 잊어버리고 올 때가 있다.

 

 

▲소요산역에 내린 청정남 아우를 맞이하며...

 

전곡에서 일을 보고 소요산역에 도착을 하니 2시 40분이다. 아우가 타고 온 기차가 덕정역을 출발했다는 신호가 떴다. 그러면 그가 탄 전철이 10분 정 후에 도착 할 것이다. 아우는 2시 52분에 출구를 나왔다.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기차역에 내릴 때 누군가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퍽 흐뭇한 일이다. 공항이나 버스터미널보다 훨씬 시적이다. “소요산역에 내리면 누군가가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 이 한 마디의 말이 곧 시가 아니겠는가?

 

선글라스를 쓰고 역 출구를 빠져 나오는 아우를 보자 무척 반가웠다. 그는 전통문화 답사회원 동오회원이라는 분과 함께 왔다. 현영 씨라는 분도 내 블로그를 매일 애독을 하시는 분인데 꼭 한 번 내가 사는 연천을 가고 싶어 했는데, 마침 시간이 닿아 함께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기차역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 반갑고 정겹다.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 나는 자동차를 전곡으로 몰았다. 곧 38선을 넘고 한탄강 유원지가 나왔다. 연천에 처음 와 본다는 현영 씨를 위해서 이럴 때 나는 연천을 소개하는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한다.

 

 

사랑교를 지나 태풍전망대로 가는 길

 

 

“38선 상에 위치한 이곳은 전곡선사문화유적지입니다. 한탄강 변에 있는 캠핑장은 오토캠핑장이지요. 이곳에는 자동차야영장, 카라반, 물놀이장, 선사유적지와 연계 된 산책로 등이 있지요. 한 번쯤 머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한탄강 유원지 오토캠핑장

 

 

나는 사랑교를 지나가면서 한탄강 유원지를 바라보며 설명을 해 주었다.

 

“아주 멋진 곳이네요! 전곡에 이런 고풍스런 유적지가 있는 줄을 몰랐어요. 사랑교라는 이름도 특이하내요.”

“저도 사랑교라는 이름이 특이하여 그 지명의 유래를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랑교를 지나갈 때마다 남녀 간의 살이 얽힌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법도 하고, 어쨌든 그 이름 자체가 마음에 든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원래 이곳 지명이 사랑동(沙浪洞)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땅이 모래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랑교를 지나 나는 임진교를 지나다가 다시 차를 돌렸다. 이곳에 오면 꼭 한 번 보여줄 곳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군남면 진상리를 지나 임진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연천에는 안보 5경이란 특이한 관광테마가 있다. ‘안보5경’이란 태풍전망대, 1.21무장공비침투로, 철도중단점, 열쇠전망대, 상승OP 제1땅굴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오늘 가는 곳은 태풍전망대이다.

 

“어머! 이런 멋진 길과 풍경이 저는 좋아요! 꾸미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네요! 그런데 저기 수수처럼 생긴 것은 뭐지요?”

“네, 저건 율무 밭인데요. 이곳 연천에서 우리나라 율무의 70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지요.”

“아, 그래요? 제가 율무를 무척 좋아하는데 다음에 이곳에 와서 사야겠군요.”

“그러세요. 저희 동네에서도 율무가 많이 생산되거든요. 싸게 사드릴 게요. 하하.”

“호호 고맙습니다.”

 

 

 

▲임진강변에 끝없이 펼쳐진 율무밭

 

연천에는 율무, 연천쌀, 연천고추, 연천 콩, 연천 참깨 등 여러 가지 특산품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연천율무를 그 첫 번째로 친다. 청정지역 DMZ의 산간 고랭지에서 생산된 연천율무는 휴전선 인접지역으로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지역으로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 기름진 땅에서 생산되고 주야간 온도차가 많아 여묾 새가 충실하고 지역명품으로 타 지역 율무와는 확연히 차별된다.

 

현영 씨는 푸른 콩밭과 율무 밭을 지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연천은 눈에 띠게 자랑할 만한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다. 그러나 볼거리가 없는 것이 오히려 볼거리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제주도 같은 곳은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이미 오염이 되어 버린 곳이다.

 

그러나 155마일 휴전선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 연천은 꾸미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높은 산이 없는 연천은 끝없이 펼쳐지는 율무 밭과 벼논, 그리고 콩밭이 초원을 이루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연천은 공장이 없어 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청정하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다들 숨쉬기가 수월하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97퍼센트가 군사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그만큼 개발이 낙후되어 있기도 하지만, 인구가 적고, 공장이 없이 청정 그대로의 자연이 유지되고 있다. 연천군의 면적은 675㎢로 서울의 1.2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약 46,000여 명(2012년 12월)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거리나 들판에 사람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나는 연천군을 돌아다니다 보면 호주대륙과 남극 사이에 있는 태즈매니아를 연상하곤 한다. 우리나라 2분의 1크기의 면적을 가진 태즈매니아의 인구는 고작 50만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구경하기가 힘들다. 내가 나는 이곳 연천도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가 않은 곳이다.

 

왕징면 우정리를 지나 임진교를 지난다. 연천군은 지명들도 특이하고 아름답게 들린다. 한국전쟁 때 북진을 하며 화이트 소령이 건설했다는 ‘화이트교’가 있던 곳이다. 임진교를 지나면 진상리가 나오고 길은 임진강변을 계속 거슬러 올라간다. 옥계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북진 약수터가 나온다. 이 약수터 역시 한국전쟁시 북진을 하면 병사들이 수통에 물을 담아 갔다는 전설적인 약수다.

 

“물맛이 그만이네요!”

“맛보기 힘든 약수지요.”

 

북진약수터의 내력을 들은 현영 씨는 고마운 마음으로 시원한 약수를 마신다. 약수터를 지나면 중면 삼곶리돌무지무덤이 있는 평원이 나오고 곧 이어 휴전선 직전 마지막 마을인 횡산리가 나온다. 이곳은 민통선지역으로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확인이 필요하고, 신분증을 검문소에 맡겨야 한다.

 

“우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정말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네요.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요!”

“네, 사람들이 대부분 연천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르지요. 그런데 오는 사람들마다 큰 감동을 받고 갑니다. 사실 태풍 전망대 보다는 그곳에 이르는 길이 더 아름답지요.”

 

 

북한군 초소와 가장 가까운 태풍전망대

 

민통선 검문소에서 태풍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먼 태곳적 시대로 회귀하는 느낌이 든다. 끝없이 펼쳐진 율무 밭, 임진강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아름다운 강산, 하늘엔 백로들이 평화롭게 날고, 길 옆 숲에는 고라니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군 초소와 불과 1600m 떨어진 태풍전망대.

태풍전망대는 비끼산 최고봉(264m)인 수리봉에 위치하고 있다. 꼬불꼬불한 숲길을 돌아 올라가면 수리봉 꼭대기에 태풍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휴전선까지는 겨우 800m, 북한군보초병이 있는 곳까지는 1,600m 떨어져 있어 맑은 날에는 초병들이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 북한군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우리국군 GOP전망대에서는 시간대별로 안내 헌병이 태풍전망대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 준다. 전망대가 위치한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역사적으로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요지였다. 6·25전쟁 때는 북한군이 의정부·서울 방향으로 공격할 때 경유하던 곳으로, 치열한 전투 후 국군이 북한군으로부터 수복하였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은 원래 6·25전쟁 직후에는 임진강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남쪽 2㎞ 지점에 있었지만, 1968년 북한군이 휴전선 가까이로 철책을 옮겨오자 국군도 1978년 철책을 부분적으로 옮기면서 이 전망대가 38선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가 되었다.

 

전망대에서는 북한 오장동농장이 내려다보이며 맑은 날에는 개성 부근까지 볼 수 있다. 전망대 내에는 장병들의 종교 집회장소인 교회·성당·성모상·법당·종각 등이 있고 실향민들의 망향비와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서 2km 떨어진 필승교는 임진강이 최초로 남한 지역으로 유입되는 곳인데, 전망대 전시관에는 1985년 이후 강으로 떠내려 오는 북한의 생활필수품, 일용품, 간첩의 침투장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북한 땅을 굽어보고 계시는 성모마리아 상이 오늘 따라 더욱 성스럽고 평화롭게 보인다. 방한 중인 로마 프란시스코 교황이 바로 이런 곳을 방문하여 남북 평화를 기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임진강 평화습지원의 고즈넉한 산책길

 

태풍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린 전망대 바로 밑에 있는 ‘임진강 평화습지원’으로 갔다. 맨드라미가 곱게 피어난 평화습지원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방문객이라곤 우리 밖에 없다. 이렇게 고즈넉한 습지원에 아무도 없다니 큰 행운이다.

 

 

 

 

 

 

 

 

 

 

 

▲임진강 평화습지원은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고즈넉한 산책로와 아름다운 습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겨울에는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날아 오는 곳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들이 날아드는 평화습지원에는 맨드라미를 비롯하여 해바라기, 도라지, 율무 등 화초들이 강변 늪지를 따라 아름답게 장식을 하고 있다. 율무는 겨울에 날아드는 두루미들을 위한 사료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풍전망대만 오르고 이곳은 거의 지나치고 만다.

 

습지원에서 1시간가량 산책을 한 우리는 민통선 검문소를 빠져 나와 임진강 주상절리라 바라보이는 금가락지로 왔다.

 

“여긴… 더 멋진 곳이네요! 연천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네, 소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청정한 곳이지요. 가을엔 저 주상절리에 담쟁이넝쿨이 붉게 물들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냅니다. 가을에 한 번 오세요.”

“정말 그래야겠네요!”

 

 

네팔어린이를 위한 정성어린 선물

 

 

주상절리를 바라보며 임진강을 따라 산책을 하는 내내 현영 씨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천은 꾸미지 않는 소박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지역이다. 고대산을 끼고 동막골유원지, 한탄강관광지, 재인폭포, 열두개울을 비롯하여 전곡리유적, 숭의전 등 역사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천하면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청정한 공기와 물, 자연경관을 거닐다보면 저절로 심신이 힐링이 된다. 청정 연천은 그런 곳이다. 집에서 마련한 된장찌개에 저녁식사를 한 현영 씨는 그저 감개무량한 모습이다.

 

“오늘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이 되었어요. 차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히려 이런 오지를 찾아주신 두 분께 내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청정남 아우는 떠나기 전에 베개처럼 생긴 꾸러미 하나와 검정 비닐로 쌓은 묵직한 뭉치를 내 놓았다.

“형님 이거 지고 오느라 땀께나 흘렸어요. 현영 씨가 모은 동전과 조카 동균이가 모은 동전인데 네팔의 아이들 학자금으로 보태려고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이런 고마울 데가… 너무나 고마워요. 네팔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겠습니다. 이번 10월에 네팔에 가면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네팔 아이들에게 선물로 내 놓은 동전 꾸러미

 

 

정자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며 이야길 하다 보니 어느새 9시가 지났다. 자동차가 없이 방문한 그들을 문산역까지 바래다주고 오는데 마음은 뿌듯하지만 졸음이 몰려온다. 아내에게 핸들을 넘겨주고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추신

다음 날 각하와 함께 동전을 늘어 놓고 헤아려 보니 무려 339,960원이나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정성들여 모은 동전을 기부 해 주신 현영 씨와 동균 씨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